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3,315 건 검색)

2030년까지 관광객 1억명 유치…충남도, 동남아 관광객 유치
2030년까지 관광객 1억명 유치…충남도, 동남아 관광객 유치
2025. 02. 13 14:25경제
... 엑스포’ 참가…관광자원 홍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필리핀 트래블투어 엑스포’. 충남도 제공 충남도가 2030년 관광객 1억명 목표 달성을 위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도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관광객충남필리핀유치동남아
충남도, 21개사 5600억 투자 유치
2025. 02. 10 20:01경제
... 등 증설·이전 국내 21개 기업이 충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기존 시설을 증설하기로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10일 도청에서 박상돈 천안시장 등 9개 시군 단체장·부단체장, 김종학 태성 대표이사 등 21개
공장업체충남증설유치
반도체 등 21개 기업, 공장 증설·이전…충남도, 5600억 투자 유치
반도체 등 21개 기업, 공장 증설·이전…충남도, 5600억 투자 유치
2025. 02. 10 15:00경제
... 전경. 충남도 제공 국내 21개 기업이 충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증설하기로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10일 도청에서 박상돈 천안시장 등 9개 시군 단체장·부단체장, 김종학 태성 대표이사 등 21개...
‘마을대피소·버스정류장·경로당’ 위치 한 눈에…충남도, 마을 종합지도 설치
‘마을대피소·버스정류장·경로당’ 위치 한 눈에…충남도, 마을 종합지도 설치
2025. 02. 09 10:51사회
... 시군 마을회관 4985곳에 설치 충남 15개 시군 마을회관에 설치된 마을 종합지도. 충남도 제공 충남도는 15개 시·군 마을회관 4985곳에 마을대피소·버스정류장·경로당 등의 위치 정보를 담은 ‘마을...
충남마을마을대피소버스정류장경로당

스포츠경향(총 285 건 검색)

[오피셜] 다시 뛰기 시작한 손준호, 2025년 스타트는 충남아산에서! “K리그1 승격 위해 최선 다할 것”
[오피셜] 다시 뛰기 시작한 손준호, 2025년 스타트는 충남아산에서! “K리그1 승격 위해 최선 다할 것”
2025. 02. 05 22:48 축구
충남아산FC 인스타그램 캡처 국제축구연맹(FIFA)의 판단으로 한국에서는 중국축구협회가 내린 영구 제명 징계를 피하게 된 손준호가 K리그2 충남아산FC에 입단했다. 충남아산은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손준호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손준호는 구단을 통해 “충남아산FC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기쁘다.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충남아산FC가 K리그1로 승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손준호는 그간 꾸준하게 개인 훈련을 하며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아산은 손준호의 가세로 다음 시즌 K리그1 승격을 위한 천군만마를 얻었다. 손준호는 6일부터 제주에서 진행되는 충남아산의 동계 2차 전지훈련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팀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빠르면 오는 23일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1라운드 서울 이랜드FC전에서 지난해 9월1일 이후 약 6개월 만에 K리그 복귀전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수원FC에서 뛰었던 손준호. 프로축구연맹 제공 손준호는 2023년 5월 중국 상하이 훙차오 공항을 통해 귀국하려다 중국 공안에 잡혀 약 10개월간 구금된 끝에 지난해 3월 석방됐다. 3개월 동안 국내에서 몸을 다시 만든 손준호는 지난해 6월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K리그1에 복귀해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팀의 파이널A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게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리자 수원FC가 계약을 해지해 무적 신세로 지내 왔다. FIFA가 지난달 24일 손준호 영구 제명 징계를 전 세계로 확대해달라는 중국축구협회의 요청을 기각하면서 손준호는 중국 리그를 제외한 다른 리그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손준호는 K리그1, 2 복수 구단과 협상 테이블을 차렸으나 일단 충남아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수원FC)가 지난해 9월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중국 프로축구 승부 조작 의혹 속에 중국 공안에 10개월 동안 구금됐다 지난 3월 풀려난 손준호는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았다. 연합뉴스
FIFA 징계 피한 손준호, 충남아산 유니폼 입고 K리그 복귀한다
FIFA 징계 피한 손준호, 충남아산 유니폼 입고 K리그 복귀한다
2025. 02. 05 18:54 스포츠종합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수원FC)가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중국 프로축구 승부 조작 의혹 속에 중국 공안에 10개월 동안 구금됐다 지난 3월 풀려난 손준호는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았다. 2024.9.11 stop@yna.co.kr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FIFA)의 판단으로 한국에서는 중국축구협회가 내린 영구 제명 징계를 피하게 된 손준호가 K리그2 충남아산FC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축구계에 따르면 충남아산과 손준호는 5일 입단에 합의했다. 손준호는 개인 훈련으로 몸을 만들어 왔고, 오는 6일부터 제주에서 진행되는 팀 동계 2차 전지훈련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손준호가 팀에 잘 녹아 든다면 오는 23일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1라운드 서울 이랜드FC전에 출전할 전망이다. 그러면 지난해 9월1일 이후 약 6개월 만에 K리그 복귀전을 치르게 된다. 손준호는 2023년 5월 중국 상하이 훙차오 공항을 통해 귀국하려다 중국 공안에 잡혀 약 10개월간 구금된 끝에 지난해 3월 석방됐다. 3개월 동안 국내에서 몸을 다시 만든 손준호는 지난해 6월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K리그1에 복귀해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팀의 파이널A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게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리자 수원FC가 계약을 해지해 무적 신세로 지내 왔다. FIFA가 지난달 24일 손준호 영구 제명 징계를 전 세계로 확대해달라는 중국축구협회의 요청을 기각하면서 손준호는 중국 리그를 제외한 다른 리그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손준호는 K리그1, 2 복수 구단과 협상 테이블을 차렸으나 일단 충남아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충남도청 오황제, H리그 남자부 1라운드 MVP
충남도청 오황제, H리그 남자부 1라운드 MVP
2024. 12. 12 10:18 스포츠종합
1라운드 MVP로 선정된 오황제. 한국핸드볼연맹 제공 충남도청 오황제가 2024~2025 핸드볼 H리그 남자부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한국핸드볼연맹(KOHA)은 12일 이번 시즌 1라운드 개인상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MVP로 뽑힌 오황제(레프트윙)는 5경기 42득점으로 활약했다. KOHA가 자체 개발한 채점 시스템을 통해 라운드 MVP 최고점인 311점을 획득한 오황제는 “팀원들이 함께해줘서 MVP에 뽑힐 수 있었다”며 “전국체육대회 우승 당시 느낀 짜릿한 맛을 H리그에서도 맛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1라운드 캐논 슈터는 지난달 23일 인천도시공사와 경기에서 시속 106.69km 슛을 던진 하태현(SK호크스)에게 돌아갔다. 1라운드 베스트팀은 라운드 전승을 기록한 두산이 차지했다.
충남아산 돌풍 이끌었전 김현석 감독, 전남 드래곤즈 사령탑으로 부임
충남아산 돌풍 이끌었전 김현석 감독, 전남 드래곤즈 사령탑으로 부임
2024. 12. 10 19:51 축구
전남 새 사령탑에 선임된 김현석 감독. 전남 SNS 올해 프로축구 충남아산의 돌풍을 이끌었던 김현석 감독(57)이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잡는다. 전남은 10일 “2024년 K리그2(2부)에서 최고의 지도력을 선보인 김현석 감독이 2025년부터 전남과 함께 K리그1 승격에 도전하기로 상호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가물치’라는 별명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인물이다. 373경기를 뛰면서 111골 54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베스트 11에 6번, 최우수선수(MVP·1996년), 득점왕(1997년) 등을 수상한 K리그 전설이다. 은퇴한 뒤 프로와 아마추어에서 오랜기간 지도자로 경험을 쌓았던 그는 올해 충남아산에 부임해 역대 최고 성적인 K리그2 2위에 올려놓았다. 또 승강 플레이오프(PO)에선 K리그1 11위 대구FC를 상대로 1차전에서 4-3으로 승리한 뒤 2차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1-3으로 패배해 첫 1부 승격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전남에서 재도전에 나서는 김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와 함께 승격에 도전하겠다. 전남과 함께하게 돼 기쁘다. 전남은 과거 끈끈한 축구로 한국 축구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열광적인 지역민들과 서포터스분들이 동행한다”면서 “전남도민이 염원하는 K리그1 승격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은 2018년 K리그1 꼴찌로 2부로 밀려난 뒤 올해까지 6년째 2부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는 K리그2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정규리그 3위 서울 이랜드를 넘지 못하면서 1부 복귀에 실패했다.

주간경향(총 22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57)충남 아산 곡교천 - 노랗게 물든 행복의 길
[정태겸의 풍경](57)충남 아산 곡교천 - 노랗게 물든 행복의 길(2023. 11. 16 07:00)
2023. 11. 16 07:00 문화/과학
마지막 축제다. 올해는 유독 단풍이 늦게 올라오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절정에 달한 빛깔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충남 아산의 곡교천. 이곳은 단풍이 낙엽이 되기 직전 거리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고, 이 노란 빛을 찾아 사람이 모인다. 곡교천 은행나무 길은 아산시가 가을마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여행지다.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1㎞ 구간에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다. 이곳에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건 1973년의 일. 당시 수령 10년생의 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인간의 나이로는 얼추 환갑에 가깝다. 그사이에 나무들은 가지를 길게 뻗어 멋들어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가을만큼은 다르다. 매년 11월 초가 되면 모든 잎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은행잎 비가 내린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 누구 하나 찌푸리지 않고 함박웃음이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표정에서 드러난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을 한 아름 안아 던지고 그 사이로 뛰어가는 사람, 이 아름다운 절정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 계절이 주는 행복이 이 거리에 가득 찼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꽃길 - 연꽃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2023. 09. 15 10:58)
2023. 09. 15 10:58 문화/과학
ㆍ 햇볕이 제법 온화하다. 비로소 가을이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 충남 공주 여행을 떠난 길에 입소문 자자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전남 담양일 테다. 하지만 공주 정안천 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안천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그러니까 금강수계에 해당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충적평야가 만들어진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보물앞들, 새보들, 백보들, 오인들, 수촌들처럼 ‘들’이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물길이 만들어진 평야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광이 오밀조밀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정안천 생태공원 일대는 그런 면모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 과거 이 주변은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생태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2010년대에 이 일대를 공원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제는 양쪽으로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가 터널을 만든다. 여름 내내 이 일대에 연꽃 향기가 은은했지만, 지금은 메타세쿼이아의 청량한 향기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50)충남 보령 삽시도 - 안개 걷힌 섬의 보랏빛 노을(2023. 07. 14 11:19)
2023. 07. 14 11:19 문화/과학
ㆍ 며칠 동안 바다는 뿌연 안개에 덮여 있었다. 충남 보령의 섬, 삽시도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여객터미널에서는 배가 뜰지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해무가 삽시간에 걷히기 시작했다. 어렵게 배는 바다로 나아갔다. 섬은 그렇게 한여름 여행자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한반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 중에서 삽시도는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눈을 현란하게 하는 풍경이나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비경을 숨겨둔 섬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섬은 그 대신 여유를 선사한다. 인적 없는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던 오후. 멀리서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보랏빛 노을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직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섬의 선물. 이 정도면 삽시도의 오로라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다. 낮에는 해변에서 동죽을 캐고, 저녁에는 자줏빛 하늘에 취하는 섬. 언제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 듯하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44)충남 논산 돈암서원 - 봄햇살 가득한 예학의 산실(2023. 03. 24 12:50)
2023. 03. 24 12:50 문화/과학
충남 논산에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돈암서원이다. 서원은 유생이 공부하는 인재양성소를 떠올리면 되겠다. 서원에 뭐가 있냐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돈암서원은 2019년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등 8개 서원과 함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돈암이라는 명칭은 연산면 임리에 있는 바위를 일컫는다. 워낙 유명해 인근에 사원을 세우고 추후 왕이 사액하면서 ‘돈암’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634년(인조 12년) 기호학파의 거두 사계 김장생 선생을 배향해 건립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훼철령을 내릴 때도 돈암서원은 살아남았다. 그만큼 인재를 많이 양성했고, 서원의 본보기라 할 만큼 예학의 산실로 여겨진 덕이었다. 서원은 입지부터가 범상치 않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담장 밖 산앙루는 찾는 이를 압도한다. 담장 밖의 백미가 산앙루라면, 담장 안의 백미는 응도당이다. 이곳은 유생을 위한 강당이다. 마루가 넓어 십수명의 유생이 나란히 앉아 학문을 논하는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서원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막상 그 안으로 발을 디뎌보면 보이는 게 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태겸의 풍경

레이디경향(총 14 건 검색)

충남도, KBS 충남방송국 유치 '잰걸음'
충남도, KBS 충남방송국 유치 '잰걸음'
2020. 05. 11 11:03 화제
이우성 충남도 문화체육부지사(왼쪽)가 지난 8일 국회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KBS 충남방송국 설립 관련 건의사항이 담긴 자료를 전달하고 있다.충남도가 KBS 충남방송국 유치를 위한 발걸음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우성 도 문화체육부지사는 지난 8일 임병걸 KBS 부사장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잇따라 만나 KBS 충남방송국 설립을 조속히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먼저 KBS 본사를 찾아 임 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부지사는 KBS 충남방송국 설립 필요성을 설명한 뒤 도내 KBS 방송국 부재에 따른 도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등 지역 내 여론을 전달했다. 국회를 방문해 박 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는 △지상파 방송 의존도가 높은 충남도민에 대한 맞춤형 방송 서비스 제공 △재난 상황 신속 전파를 통한 도민 생명 및 재산 보호 등 KBS 충남방송국 설립 필요성을 설명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박 최고위원은 “공영방송은 경영상 논리를 앞세우거나 수지를 따져서는 안된다”라며 “KBS 충남방송국 유치를 위해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박 최고위원은 지난 2018년 11월 국회 예결위에서 KBS 충남방송국 설립 필요성을 제기한 적 있다. 이 부지사는 국회에 이어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해 한상혁 위원장을 만나 “KBS 충남방송국 설립에 대한 위원회 차원의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전했다. 한편 이 부지사는 지난 2월18일 양승동 KBS사장을 만났으며, 양승조 지사도 지난해 3월과 10월 양 사장을 만나 충남방송국 설립 방안을 조속히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정원 여행자] 충남 서천 -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고
2015. 11. 05 15:02 레저/여행
어제의 해가 잠겼던 바다 위로 떠오른 오늘의 해를 본다. 바람에 수런대는 갈대밭에서, 가창오리떼를 기다리는 금강하굿둑에서, 포구를 바라보는 동백 숲에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의 하루를 가만히 흘려보낸다. 이즈음의 헛헛한 속을 가라앉히려거든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자연의 조화 속에 기댈 따름이다. 백제 유민의 눈물로 빚었다는 달디단 소곡주 한 잔도 매우 유용하다. 국내 4대 갈대밭 중 하나인 신성리갈대밭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인근 주민들이 갈대를 꺾거나 게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을 잃고 헤맸다는 옛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서천의 해 지는 풍경은 어디나 아름답다. 금강하굿둑에서 가창오리떼를 기다리다 문득 마주해도 좋고, 낙조 감상을 위해 작정하고 오른 동백나무 숲 동산에서 바라봐도 좋다. 바다와 강을 물들인 붉은 낙조는 어느 곳에서 보든 여운이 길다. 해 뜨는 풍경 또한 그 못지않다. 서해에는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바닷가 작은 마을들이 있다. 당진 왜목마을과 서천 마량포구가 그 대표 주자로, 세밑 세시엔 해넘이와 해맞이를 위해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꽤나 북적인다. 마량포구는 바다 쪽으로 꼬리처럼 튀어나온 땅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동남쪽으로 치우친 비인만을 안고 있어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완전무결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남쪽으로 많이 기우는 동짓날을 중심으로 50일 전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적기다. 해 지는 서해에서 해 뜨는 풍경을 보려거든 이처럼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시절이어야 한다. 예부터 민간에선 동지를 설 다음 가는 작은설로 대접해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했다. 중국 주나라에선 광명이 부활하는 날이라 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태양의 부활’이란 의미가 부여된 것은, 동지를 정점으로 그다음날부터 낮이 점점 길어지는 까닭이다. 간당간당 두 장 남은 올해의 달력을 만지작거리며 속이 헛헛해올 때면 어둠의 정점을 찍고 부활하는 태양의 힘을,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자연의 법칙을 되새겨볼 일이다. 인디언 달력을 빌리자면, 강물이 얼고 기러기 날아가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11월 아니던가.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 땅을 찾는 이유도 그래서다. 마량포구는 동남쪽으로 치우친 비인만을 안고 있어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동백 같은 해가 지는 포구로 일출과 일몰로 유명한 마량포구지만, 포구 뒤편 야트막한 동산 자락을 에워싼 동백나무 숲도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500년 수령의 마량리 동백 숲은 서천8경 중 1경으로 손꼽힌다. 오랜 숲답게 당연히 전설도 깃들어 있다. 500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가 꿈꾸길, 바다 위에 떠 있는 꽃무리를 잘 번식시키면 마을이 번영하리란 계시를 받았다는 것. 실제로 바다에 나가 발견한 붉은 꽃을 건져 심었더니 마을엔 내내 풍어의 기쁨이 이어졌다고 한다. 마량리 동백은 4월 중순경에야 절정을 이루는 춘백(春栢)이라 이즈음엔 꽃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진초록 이파리들 속에 드문드문 붉은 꽃이 눈에 띄었다. 철모르고 핀 저간의 사정이야 꽃만이 알 일이지만 맵찬 바람을 버티는 동백이, 앙다문 입술을 부르르 떠는 그 붉은 결기가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동백 숲을 뒤에 두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백정은 서천의 일몰 명소다. 누각에 오르면 동해처럼 망망한 서해 바다가 펼쳐진다. 너른 바다 위의 한 점 바위섬과 꺼져들기 전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는 낙조가 말을 아낀 선시(禪詩) 같다. 동백이 툭-툭- 지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에 이 숲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다. 숲에선 해 같은 꽃이 지고 바다 위에선 꽃 같은 해가 질 터인즉. 1 동백 숲을 뒤에 두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백정은 서천의 일몰 명소다. 2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숲 위에 자리한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3 서천군의 대표적 특산품인 한산세모시의 맥을 잇고자 건립한 한산모시관. 4 감미로운 술맛에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취기가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일명 ‘앉은뱅이술’. 동백 숲 인근 홍원항은 식도락 여행의 필수 코스다. 큰 방파제와 줄지어 늘어선 어선의 규모만으로도 이 고장의 중심 어항임을 알 수 있는 홍원항은 계절마다 대표 메뉴를 갱신하며 낚시꾼과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3, 4월엔 주꾸미, 5월엔 광어와 도미, 9, 10월엔 전어인 식인데, 바다에서 나는 제철 별미로 1년 내내 축제가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성한 해산물이 쉼 없이 나는 서면 앞바다의 위상은 김에서 또 한 번 방점을 찍는다. 충남 생산량의 86%,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서천의 특산품으론 한산세모시와 한산소곡주를 빼놓을 수 없다. 희고 맑은 색감에 섬세한 결을 지닌 한산세모시는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 여름철 옷감으로 으뜸이다. 한산소곡주는 백제의 궁중 술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번 맛을 보면 일어나지 못한다 하여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도 불린다. 소곡주는 달고 짙고 끈끈하다. 술이 꿀맛이다. 술잔에 흘러내린 술이 손가락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술을 마시다 말고 손가락을 쪽쪽 빨았을 정도다. 찹쌀로 빚은 술이라 달기도 하거니와 엿기름가루도 들어간다. 여기에 생강, 국화, 고추가 독특한 향미를 더해 달아도 질리는 맛은 아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자면 이 정도 단맛은 필요했겠구나 싶다. 술맛에 반해 과거를 놓친 선비, 도둑질을 하려다 술에 취해 붙잡힌 일화 등 소곡주에 얽힌 옛날이야기들을 안주 삼아도 즐겁다. 한산모시관과 소곡주 양조장은 한산면에 바로 이웃해 있다. 주꾸미, 전어, 광어 등 1년 내내 해산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홍원항. 두루 둥글게 품어내는 생명의 정원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밭은 영화나 드라마가 유독 사랑하는 촬영지다. 멜로든 액션이든 스릴러든, 갈대밭이 소화 못할 장르는 없다. 연인이 걷고 있다면 더없이 애틋하고, 쫓기는 이의 다급한 뒷모습에선 날 선 긴장감을 부추기는 배경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과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야간 수색 작전 중 우연히 만나는 장면의 배경도 늦가을의 갈대밭이었다. 충남 서천군 신성리의 금강변 갈대밭이 바로 그곳.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슬픈 연인, 무혁(소지섭 분)과 은채(임수정 분)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부터 가족과 연인, 출사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할 만큼 진경을 자랑한다. 한산면 면소재지에서 강경 쪽으로 300m가량 지나 삼거리에서 금강 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3km쯤 가다 보면,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하구 변에 펼쳐진 갈대밭을 조망할 수 있다. 탐방객들을 위해 조성한 갈대공원은 전체 갈대밭 면적의 2, 3%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소중한 생태자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어른 키를 웃도는 갈대가 양옆으로 도열한 2km 남짓한 산책길은 갈대소리길, 철새소리길, 갈대문학길, 솟대소망길, 영화테마길 등 다양한 테마로 조성돼 산책의 묘미를 더한다. 1 해마다 희귀종의 겨울 철새와 탐조객들이 모여드는 금강하굿둑. 조류생태전시관에서 금강과 철새의 생태를 학습한 뒤 탐조에 나서는 것이 좋다. 2 주꾸미, 전어, 광어 등 1년 내내 해산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홍원항. 3 어른 키를 웃도는 갈대가 양옆으로 도열한 2km 남짓한 산책길은 솟대소망길, 철새소리길, 갈대문학길 등 다양한 테마로 조성돼 있다. 갈대밭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앞에 놓고 느꼈던 먹먹함을 경험해본 일이 있다면, 드넓게 펼쳐질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갈대밭의 미학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조망하자면 흡사 망망대해처럼 보이는 게 광활한 갈대밭의 멋이다. 면적 10만여 평에 이르는 신성리 갈대밭은 규모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새들의 보금자리는 사람에게도 이롭다. 민물과 바닷물의 적당한 교차로 튼실하게 자란 신성리 갈대는 서천의 특산품인 갈꽃비의 재료가 되는데, 수수비와 달리 갈꽃의 부드러움이 섬세한 먼지까지 쓸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갈대밭에 사는 게라 하여 이름 붙은 ‘갈게’는 껍질이 얇고 무른데다 맛이 좋아 장에 내다 팔면 꽤 쏠쏠한 수익원이 됐다고 한다. 다양한 용도로 마을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신성리 갈대밭은 외지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겐 한 자락 소중한 쉼이 되고 추억이 되며, 또 누군가에겐 생계와 생존의 요긴한 수단이 된다. 두루 둥글게 품어내는 이 땅을 생명의 정원이라 이름해도 좋겠다. 해마다 겨울이면 금강하굿둑엔 각양각색의 철새들이 찾아든다. 큰고니, 청둥오리, 검은머리갈매기, 재두루미 등 혹한을 피해 쉬지도 먹지도 못한 채 날아온 손님들이다. 이즈음 금강하굿둑을 서성이는 탐조객들은 기다림의 목적이 같다. 짙은 황혼녘, 일순간 먹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 가창오리떼의 장엄한 군무가 그것. 해가 다 지도록 가창오리떼는 감감무소식이었지만, 저무는 하늘에 선명한 흰 금을 그은 비행운과 쇠기러기떼의 V자 편대비행이 교차하는 순간을 만났다. 사람의 비행이 남긴 궤적 위로 새떼의 비행이 겹쳐진다. 공존은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임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Tip 국립생태원 2013년 금강하구 인근에 오픈한 국립생태원은 축구장 90여 개 규모에 4,500여 종의 살아 있는 동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생태 전시·연구의 요람이다. 국립생태원의 랜드마크인 에코리움에선 한반도 생태계를 포함해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한눈에 관찰,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야외에도 습지생태원, 고산생태원, 사슴생태원 등을 갖추고 있다. 문의 041-950-5300, www.nie.re.kr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2)충남 서산·태안 - 시간이 빚은 서쪽 정원에 갔다
2015. 02. 03 11:13 레저/여행
달의 운행 주기에 따라 간월암의 앞뜰과 뒤뜰은 바다가 됐다가 갯벌이 된다. 바람은 모래를 실어와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거대한 모래언덕을, 시간의 퇴적층을 빚었다. 황무지를 개간해 나무를 심은 한 사람의 열정은 40년이 지나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시간’이 빚은 이 모든 기적을 만나러 서해에 갔다. 만조 때는 섬이 되고 간조 때는 뭍이 되는 간월암은 물때에 따라 암자로 드는 방법이 다르다. 간월암의 정원은 갯벌이거나 바다다 이른 봄, 산중 암자에 방 한 칸을 얻어 두어 달 묵은 적이 있다. 매화가 벙글고 산수유가 번졌다는 소식은 산 아랫동네의 이야기일 뿐, 산사의 봄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엔 새순이 움트는 대신 잔설이 덮여 있었고, 바닥이 절절 끓는 방 안에서도 창틈을 파고드는 삭풍에 코끝이 시렸다. 낯선 방에 대한 신고식이었을까. 처음 며칠은 얕은 잠 속에 끝도 없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엔 늘 바닷물이 스몄다. 암자 뒤꼍에 웃자란 산죽 때문이었다. 봄을 시새우는 성마른 바람은 밤새도록 대밭을 들쑤셔댔고, 울울창창한 대밭은 거친 파도 소리를 토해냈다. 문을 열면 바다가 펼쳐질 것 같았다. 파도 소리를 베고 누워 멀미 나도록 일렁이는 꿈자리에 내내 뒤척이다가, 가지런한 목탁 소리에 눈 뜨던 새벽 3시. 꼭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어야 섬이 아님을, 심심산골 작은 절집에서 알았다. 목조 보살상을 지나 간월암으로 드는 길. 일주문이 소박하다. 고독한 모든 자리가 섬이라면, 간월암은 섬 중의 섬이다. 작은 암자가 저만큼 작은 섬 하나를 온전히 점하고 있어 절이 섬이요, 섬이 곧 절이다.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작은 바위섬 위에 자리 잡은 간월암은 고려 말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라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무학대사는 암자 이름도 ‘간월암(看月庵)’이라 지었다. 한때는 피안사(彼岸寺) 혹은 연화대(蓮花臺)로 불렸다는데, 달을 보며 바다 위에 한 점 섬으로 떠 있는 암자의 풍경은 강 건너 극락정토와 연꽃의 이미지로 읽힐 만도 하다. 간월도에서 바라본 바다. 만조 때의 간월암은 앞마당 뒷마당 모두 바다다.절집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도록, 눈길 닿는 곳마다 바다다. 물론 만조 때의 이야기다. 바다를 앞마당, 뒷마당으로 두른 암자에서 할 일이란 바다 위로 해가 뜨고 바닷속으로 해가 지고, 달이 부풀었다 야위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 몇 발자국씩 의자를 옮기며 종일토록 해 지는 풍경을 마흔세 번이나 바라봤다는 어린 왕자처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서해의 섬은 썰물과 밀물 덕분에 소혹성 B612보다는 덜 외롭다. 물이 빠지면 육지와 이어진 길이 드러나고,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이때 간월암의 마당은 바다가 아닌 갯벌이다. 소라, 고동, 방게를 비롯해 새조개와 굴을 채취할 수 있는 황금 어장이라, 이 일대 밥상을 책임진다. 갯벌이 품은 생명엔 사람도 포함된다. 굴을 캐서 그 돈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친 숱한 이들이 그 증거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맛을 보고 감탄해 태조 이성계에게 진상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바위섬 위에 오뚝한 암자의 살림은 검박하기 그지없다. 물때에 따라 암자로 드는 방법이 다르다. 물이 차면 줄배를 이용하고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다. 우리가 공유했던 한 시절이 서로 다른 추억으로 남듯 간월암을 만조에 찾은 당신과 간조에 찾은 나의 기억은 어긋나게 마련이다. 밀물과 썰물은 달의 운행과 관련된다. 달을 바라보는 암자의 앞뜰과 뒤뜰이 바다가 되거나 갯벌이 되는 것도 달과의 관계 속에 결정된다. 간월암으로 드는 길 내내 작은 소망탑이 이어진다. 사막이 끝난 자리에 바다가 펼쳐졌다 숱한 해수욕장으로 명성을 누려온 태안이지만, 이곳의 숨은 비경으로 ‘사막’이 손꼽힌다는 건 꽤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종 이색적인 여행지를 소개하는 기사와 블로그를 통해 머나먼 열사의 땅에서 찍어온 듯 이국적인 풍경 사진을 접했고, 사막을 횡단한 소감을 읽었다. 여행기의 제목이나 사진 설명엔 ‘서해안에 사막이 있다? 없다?’와 같은 문장이 으레 따라붙곤 했다. 해안사구에 물결치는 바람의 무늬. 바람의 무늬는 천변만화한다.‘서해안의 사막’으로 통하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반도 서북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거대한 모래언덕이다. 길이 3.4km, 너비 500~1,300m에 달하는 규모에, 해안사구의 교과서라 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사구 지형이 존재한다. 갯씀바귀, 초종용, 해당화, 갯방풍, 표범장지뱀은 물론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 쇠똥구리 등 희귀한 동식물의 서식처로 학술적·생태적 가치가 높다. 하여 2001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이래 그 이듬해엔 해양수산부가 사구 주변 바다를 ‘해양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했으며, 환경부는 사구 안의 두웅습지 일대를 ‘습지보전지역’으로 보호하고 있다. 모래사막을 가로지르자 겨울 바다가 나타났다. 모래언덕은 파도와 바람이 빚고, 시간이 깃든 작품이다. 파도가 고운 모래를 해안가에 실어 놓으면 겨울철 세찬 북서풍이 모래를 육지로 옮긴다. 모래는 바람에 의해 쌓이고 깎이고 또 쌓이면서 언덕을 이룬다. 무려 1만5,0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의 퇴적층이다. 해와 나그네 외투 벗기는 내기라도 벌인 것처럼 인정사정없는 바닷바람이 온몸의 숨구멍으로 스며들었다. 생태계의 보고라지만 맵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 사구에서 생명체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른 풀들만 버석거릴 뿐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모래의 움직임에 가장 신바람이 실리는 때는 겨울이다. 천리포수목원의 숲길은 해변 산책로로 이어진다. 천리포 해변을 바라보는 쉼터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답다. 모래언덕에 푹푹 발목을 묻으며 현재진행형의 ‘샌드 아트’를 감상했다. 깊었다가 얕았다가, 잔잔했다가 격했다가, 모래언덕을 캔버스 삼아 바람이 새긴 물결무늬는 쉼 없이 변주됐다. 양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람의 언덕을 가로질러 마침내 사막의 끝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닥뜨린 겨울 바다 앞에 볼멘소리를 꿀꺽 삼켰다. 진격하듯 우-우- 몰려오는 짙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모래바람에 뻑뻑해진 안구를 적셨다. 오아시스가 따로 없었다.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를 찾아서 ‘서해안의 푸른 보석’이라 불리는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 잡았다. 2009년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 천리포수목원의 별명은 ‘신의 비밀정원’이었다. 허락을 받은 식물 연구자나 후원 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국내 최초의 사립 수목원을 일군 설립자 고 민병갈 원장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나무가 주인인 수목원’을 지향했다. 자신의 묘를 쓰지 말고 묘 쓸 땅에 나무 하나라도 더 심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2012년 서거 10주기를 기념하며 그의 유골은 수목원 내 목련나무 아래 안치됐다. 생전에 그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다. 현재 옛 무덤 자리에는 민 원장의 흉상이 놓여 있고, 인근에는 그가 국내 최초로 발견한 완도호랑가시나무가 서 있다. 민병갈 원장의 흉상 인근에는 그가 국내 최초로 발견한 완도호랑가시나무가 서 있다.민 원장은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1945년 그의 나이 24세에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왔다가 이 땅의 매력에 빠져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사재를 털어 천리포 해변 대지를 매입하게 된 이유도 자못 흥미롭다. 1962년 태안을 찾은 그에게 한 노인이 다가와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데 돈이 없다”라며 “땅 2,000평을 사달라”라고 부탁했다는 것. 민 원장은 흔쾌히 노인의 땅을 사들였고, 이를 계기로 차츰차츰 그 일대 땅을 매입하며 1970년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내 자생종을 주로 심다가 차츰 외국의 다양한 묘목과 종자도 들였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두툼한 식물도감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연구하며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개간해 초록을 입혔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엔 1만5,755종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그중에서도 목련류는 400여 종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2020년 국제 목련학회 총회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도 이 때문. 대다수의 수목원이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반면, 천리포수목원은 나무를 중심으로 놓고 관람객들이 움직이도록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해안가 언덕에 심은 나무들은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보기 좋게 모양을 잡고자 가지치기를 하거나 관람객의 보행이 편하도록 꽃과 나무를 정리하는 법이 없다. 수목원 탐방로는 숲길을 지나 바다로 이어진다. 천리포 해변과 낭새섬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황홀한 향기를 가진 납매는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일찍 꽃이 피었다. 꽃보다 화려한 붉은 열매를 지닌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천리포수목원의 ‘겨울 정원’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다. 지난여름의 잔해라기엔 존재감이 무척이나 또렷한 마른 수국은 품위 있게 늙은 노인 같다. 정월에 찾은 수목원엔 미묘한 색감과 형태로 사계절이 공존했다. 먼저, 연못가를 둘러싼 수국은 지난여름의 잔해로 치부하기엔 그 존재감이 또렷했다. 바삭하게 마른 자잘한 연갈색 꽃잎들을 흩뿌리지도 부서뜨리지도 못한 채 애먼 가지나 흔들고 있는 겨울바람이 외려 지쳐 보였다. 동백이 절정에서 자결로 극적인 비장미를 돋운다면, 철 지난 수국엔 세월을 견뎌낸 결연함이 있다. 가을꽃 억새의 은빛 물결은 여전히 탐스러웠고, 겨울 정원의 대표 얼굴인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꽃보다 붉은 열매로 새들을 유혹했다. 호랑가시나무에 홀리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겨울에 천리포수목원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호랑가시나무 군락으로 흘러든다. 하지만 이날의 목적은 노란 복주머니를 닮은 납매(臘梅)를 찾는 것. 천리포수목원으로부터 날아든 올해의 첫 꽃 소식은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다. 혹한 속에 가장 먼저 꽃 소식을 전한다 하여 ‘화신(花信)’이라고도 하고,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손님에 비유해 ‘한객(寒客)’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납매는 한겨울에 피어나는 귀한 꽃이다. 너도밤나무 옆에 피었다는 정보 하나로 출발한 탐매행(探梅行)은 엄지손톱만 한 노란 꽃송이 앞에서 완결됐다. 매서운 추위 속에 곤충을 유혹하고자 강한 향기를 내뿜는 것이 특징이라더니, 과연 향기로 존재하는 꽃이었다. 생강처럼 알싸한 향이 코끝을 뚫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왔다 갔다. 찰나였다. Tip 서산&태안 여행에서 놓치기 아쉬운 풍경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일명 ‘백제의 미소’로 불린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다르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주소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연중무휴, 7~8월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 문의 041-660-2538 1 이원방조제에서 바라본 철새의 군무. 새들의 낙원은 사람에게도 낙원이다. 2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관광명소로 떠오른 대하랑꽃게랑 해상 인도교.이원방조제 학암포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국내 최장 길이의 벽화가 그려진 이원방조제를 볼 수 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손을 보탠 13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기리고자 2.7km 구간을 가득 채운 희망의 벽화다. 주소 충남 태안군 이원면 관리 대하랑꽃게랑 다리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잇는 길이 250m의 해상 인도교로, 꽃게 모양을 형상화한 다리가 재미있다. 해가 지면 다리에 밝혀진 조명이 어선들의 휘황한 불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한다. 주소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 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소통하는 법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소통하는 법
2015. 01. 29 11:44 화제
스마트폰, SNS, 메신저 등 온갖 소통 수단은 늘었지만, 모두가 불통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소통의 해법을 찾아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물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십니까?’ 넥타이를 푼 편안한 차림이면 좋겠다는 요청이 잘 전달된 모양이었다. “너무 젊어 보인다”라며 아내가 썩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사줬다는 캐주얼한 회색 셔츠가 잘 어울렸다. 2010년 민주당 최초로 충남도지사에 당선돼 도민들의 신임을 얻는 행정가로 활동하며 2014년 도정 2기를 맞이한 안희정(50) 지사. 정치색을 거둬낸 인터뷰를 약속하고 만났을 무렵, 그의 이름은 차기, 대망, 대권주자 등의 단어와 함께 연일 정치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몰아치듯 오후 일정을 마치고 한숨 돌리는 기색인 그는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여유로운 티타임에 어울리는 질문을 해보겠다고 일단 운을 뗐다. 건강검진 이후 하루 대여섯 잔씩 마시던 믹스커피를 끊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50의 가장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이놈’, ‘이 녀석’ 등의 씩씩한 단어를 불러오는 두 아들이 있다. 그리고 요즘은 품안의 자식들을 슬슬 떠나보낼 마음의 채비를 하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비로소 시작된 대화 몸이 무거워질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그래도 나름의 고민이 있어요. 입던 바지의 사이즈를 늘려야 하면 짜증이 나죠(웃음). 예전에는 마흔이 고비였다는데, 요즘은 쉰을 넘기면서 달라지는 듯해요. 저도 오십 넘으면서 꺾이고 있어요. 한편으로 여유로워지고, 한편으로는 포기하게 돼요. 예를 들어 운동이라면, 더 어려운 난도에는 아예 도전을 안 하게 돼요. 운동 한 번 세게 했다가는 며칠 드러눕게 되니까요. 몸에 대한 한계라는 것이, 자기가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들더라고요. 열정의 무한 방출이 아니라…. 이 나이 되면 알아요(웃음). 막내아들이 막 스무 살이 됐죠? 도지사님은 그 나이에 이미 인생의 방향을 정하셨잖아요. 아드님도 진로를 정했나요? 이놈이 영어를 잘해요. 어느 날 보니 얘가 헤드셋 끼고 게임을 하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하는 말이 대부분 속어예요(웃음). 참, 그 아이가 중학생일 때 같이 몽골 여행을 갔어요. 스웨덴, 영국, 핀란드, 미국 등지에서 온 10여 명이 팀을 이뤄 게르(전통 천막형 주택) 체험을 하러 초원에 나갔죠. 나는 콩글리시로 “하이, 하우 아 유” 하고 끝인데, 아들은 계속 같이 어울리는 거예요. 속으로 좀 놀랐어요. 그때 모스크바에서 영어 강사를 하는 50대 영국인에게 “아이가 영어 하는 걸 보면 가끔 욕설도 나오는 거 같던데, 부모 입장에서는 교육을 잘못 시킨 거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걱정이 된다”라고 했더니 “우리가 클 때를 돌아봐라. 언어를 배울 때 쉬운 욕부터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 애들은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저를 위로해주더라고요. 어쨌든 둘째 아이는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게임과 음악으로 영어를 해서 영어특기생으로 이번에 대학에 갔어요. 두 아들이 대안학교를 다녔다면서요? 아이들 초등학교 때 제가 수감되면서 가족에게, 특히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무척 힘든 상황이었죠. 아이들이 워낙 학교에 적응을 잘 못했는데, 기존 체제에 집어넣었다가는 더 힘들어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안학교를 찾게 됐죠. 아이들도 그게 좋겠다고 했고요. 지금 돌아봤을 때 당시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부모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느냐에 대해 마음 정리를 해야 돼요. 행복한 인생의 모범답안이 정말 있는 것인가, 내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정말 모범 답안인가, 하고요. 제가 젊었을 때는 아이들은 아직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 어른들이 전적으로 훈육해야 한다는 관점의 교육을 받았어요. 하지만 아이에게 다양한 여건과 기회, 자극을 제공하는 것까지는 해줄 수 있지만, 아이의 선택까지 제가 결정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좌절하거나 지칠 때,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힘, 그 힘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큰 역할인 거예요. 물론 이렇게 아이들을 방목하는 것이 무책임한 결정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대안학교의 많은 부모들이 함께해요. 그럴 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죠. 너는 인생의 답을 알고 있느냐, 하고 스스로 거울을 보는 거죠. 저는 별로 후회하지 않아요. 부모가 소위 명문대 출신일 경우, 아이가 공부를 못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있더군요. 저도 그랬어요.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죽어라 이 악물고 하면 될 일을 왜 안 할까. 이런 생각 때문에 아이를 나무라거나 쥐 잡듯 잡게 돼요. 저는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예의 바르고 성실할 것’을 강조했는데, 사실 그 기준이 아이와 내가 많이 다른 거예요.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년 동안 드럼을 쳤어요. 아이가 드럼을 좋아하고 또 그걸로 끼를 발산하는 게 그렇다고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오케이했죠. 그런데 전자드럼이 앰프를 끄고 치더라도 아무래도 소리가 나서 윗집 옆집에서 찾아오더라고요. 일부러 숨어서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봤더니 “죄송합니다” 하고 나서 “그런데 아저씨, 저는 드럼을 치고 싶은데 몇 시에 치면 돼요?”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이웃집을 돌아다니면서 물어보고는 시간표를 짜서 치더라고요.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거네요? 이게 재미난 게, 우리 애 입장에서는 아버지 세대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우리 세대는 미리부터 상대를 배려해서 실례할 일을 하지 않는 건데, 얘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태클이 들어오면 그때 조정하는 거예요.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의 태도와 방식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더라고요. 괜히 “이 자식아, 나는 안 시끄럽겠냐. 그러니까 나한테도 언제 드럼을 쳐도 되는지 물어봐야지!”라고 말은 했지만, 아이들과 우리 세대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그 사고방식을 인정하게 됐어요. 그 밖에 아이들로 인해 바뀌게 된 것이 또 있나요? 아이들 초등학교 때까지는 종종 군밤을 때리거나 회초리를 들곤 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더니 안 맞겠다는 거예요. 한번은 부자간에 심각하게 붙어서 제가 손을 치켜들었더니 내 손목을 잡고 “아버지, 이제 그만 때려요” 하더라고요. 손찌검을 하려다가 아들에게 손목 잡히는 날, 아버지 인생은 무너지는 거거든요(웃음). 저도 그날 저녁에 거의…(웃음). 아이들과는 어떻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나요? 한번은 아이가 대화와 말대꾸의 차이를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답을 생각하다 보니 저도 나이가 훨씬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과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일방적으로 혼나거나, 아니면 상을 뒤엎고 반항을 하거나. 그렇게 대화가 깨진 책임은 어른이 져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와 대화할 때, 표정으로는 도발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말해요. “인상을 찌푸리든 ‘썩소’를 날리든 봐주겠다. 단 언어든, 행동이든 폭력은 쓰지 마라”라고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자녀 교육에 영향을 받은 조언이나 가르침이 있었나요? 어떤 교육학자의 책에 ‘내가 물려받은 모든 것을 내 대에서 단절시킬 수 있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왜냐면 그 아이는 그 시대의 들판에서, 그 시대의 바람과 공기 속에서 자기 인생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누가 더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 거죠. 그 말이 정말 감동적으로 들렸어요. 그렇다면 이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다했다고 봐도 될까요? 요즘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어요. 내 젊은 친구로서. 우리 아이들과 클럽 한 번 놀러 가는 게 소원이에요. 아이들이 꼬드겨요. 엄마 몰래 데려가주겠다고(웃음). 아빠와 남편으로 찾은 행복 본인의 교육 원칙에 대해서는 부인께서도 흔쾌히 동의하셨나요? (잠시 생각하더니) 집사람이나 저나 항상 부모님 말씀 잘 들었던 ‘범생이’ 축에 속했죠. 따로 원칙이 있다기보다는 함께 룰을 만든 거예요. 두 남자아이가 가지고 있는 드센 성정, 모든 관심이 바깥으로 향해야만 했던 제 직업적인 배경…. 이런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리 가족의 최적의 조건인 거죠. 저 역시 권위적인 아버지였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나를 바꿔버린 거예요. 두 아들의 어떤 점이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가장 닮았다 싶으세요? 일단 둘째는 외모가 거의 저랑 똑같아요. 그런데 애가 워낙 거칠어요. 감정 표현을 부드럽게 못해서 여자친구를 못 사귀더라고요(웃음). 첫째는 외가 쪽을 닮아서 키도 훤칠하고 운동도 잘하고, 눈썹도 짙고 예뻐요. 지금은 의경인데, 그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의 갈등 해결사가 됐어요. “지금 엄마 상태가 별로 안 좋으니까 아빠가 들어와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하고…” 같은 조언과 경고도 해주고(웃음). 두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3년 전쯤, 학부형 모임에 갔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앞에 나와서 자신의 아빠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아빠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과 정치인으로서는 존경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성실하다거나 어렵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계속 밀고 가는 면을 보고 아마 직업인과 인간으로서 존경한다는 표현을 한 거 같아요. “그럼 아빠로서는?”이라고 물었더니 그건 대답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게 친하다는 증거인 거 같아요. 부인에게도 ‘가장 친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셨잖아요. 가장 지척에 있는 사람과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요? (잠시 생각하더니) 상대한테 서운해하지 않으면 돼요. 기대치를 낮춘다는 의미인가요? 서운해하지 않는다는 게 참 어려워요. 남녀가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같이 사는데, 시간이 지나면 양말은 왜 제자리에 안 두는가부터 시작해 생활 습관의 단점이 보이면서 부딪히게 돼요. 그럴 때 전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가 혼자 자취할 때 빨래도 하고 밥도 해야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왔으니까 빨래 하나 더 하고, 숟가락 하나 더 올려두는 거다. 그 이상으로 상대에게 기대하지 말자’라고요. 그런데 이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대목이 임신과 육아예요. 임신과 출산은 제가 어떻게 대신할 수 없잖아요. 가족의 회복 육아가 참 어렵죠. 네, 가장 어려워요. 저는 엄마가 사회생활을 계속할 마음이 있다면, 일하면서 행복한 엄마가 아이에게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포기하고 사회활동에 대한 동경과 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을 품고 한탄한다면 아이에게도 안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라며 10년 만에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그 언저리부터 사실 제 아내는 많은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을 갖게 됐어요. 저는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고 그동안 직업적인 진취를 이루지 못한 아내 입장에서는 자기 원망이 생겼죠. 부모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보니 그게 쟁점이 돼서 오랫동안 우리 사이에 언쟁의 중심이 됐고요. 어떻게 회복하셨어요? 2004년 대선 자금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고 투옥된 1년 동안 참 고통스러웠는데, 그중에서 제가 노무현의 참모 안희정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아빠 안희정으로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데 대해 후회가 밀려왔어요. 그 전에는 첫 번째도 민주화, 두 번째도 민주화, 세 번째도 민주화였죠(웃음). 같이 학생운동을 했는데, 왜 집사람은 밖에서 뜻있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응원해주지 않을까, 이해가 안 갔거든요. 아내는 ‘아빠와 남편 역할을 통해 가정 안에서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죠. 처음에는 그것을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헌신하지 않는 아내를 원망했어요. 그런데 우리 모두는 결국 각자 살 부비면서 살아야 할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어요. 의무와 책임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가족과 있을 때 행복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후로 우리 가족 관계는 좀 더 좋아졌어요. 갈등이 있어도 회복이 빨라지고요? 끊임없이 좋아지고 있어요. 지금도 계속.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부인께서도 공관으로 들어오셨다죠? 이제 열흘 됐어요.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룬다는 주말부부 생활도 끝이 났네요(웃음). 그동안 직접 밥을 해서 드셨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어요. 최근 아내가 공부하러 다니다 보니 도지사 하기 전에 살던 용인 집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오시게 됐어요. 그런데 도지사 봉급 가지고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을 쓰려니까 쪼들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내포신도시 공관으로 오면서 “한쪽이라도 아끼자. 내가 해 먹을게” 한 거죠. 1년여 동안은 제가 해 먹었어요. 음식 하는 거 좋아해요. 텃밭도 가꾸신다고요? 시골 출신이라서요. 요즘은 텃밭이 20평 넘어가면 대농이라고 부른다는데, 공관 텃밭이 그 정도 되니 저는 대농이에요(웃음). 처음에는 철마다 뭘 심어야 하는지 몰라서 농업기술원에서 배웠는데, 가꾸다 보니 아주 재미있어요. 작년에는 무슨 농사가 잘됐나요? 이것저것 다요. 상추, 치커리, 겨자잎과 같은 쌈 채소에 고추, 호박, 가지, 무, 배추도 심었고요. 늦가을에는 지푸라기 깔고 생강도 심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때 보면 분명 시들시들한데 다음날 보면 쌩쌩하거든요. 농업기술원 박사들이 나 몰래 손을 보고 갔나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그렇다고 힘이 들지는 않아요. 매일 아침에 30분 정도 김매주면 깨끗하거든요. 그야말로 로컬 푸드를 실천하면서 살고 계시네요. 그게 어렵지 않아요. 우선은 학교 운영위원회 어머님들이 관심을 가지셔서 가락동 경매 가격으로 사지 말고 재배 농가와 직거래로 물량을 공급받으면 훨씬 안전한 식재료로 아이들 급식을 할 수 있어요. 양파나 감자가 풍년이 들어서 아무리 발에 차이더라도 우리는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먹어야 해요. 그게 정직한 소비예요. 무조건 싼 거 비교해서 사 먹는 건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에요. 그런 경쟁을 하다 보면 그 교환 방식이 역으로 우리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일용직으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직업 고용 생태로 만들어버리거든요.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참여에 대해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실은 주부의 정당한 소비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니 쉽게 와 닿네요. 그럼요. 된장찌개, 감잣국, 감자채볶음 등으로 자주 먹는 감자는 매번 무겁게 장을 안 봐도 돼요. 오래 두면 싹이 나니까 1, 2주일 소비할 정도의 망 단위로 구입하면 되죠. 인터넷에 ‘농사랑’이라고 치면 충청남도 농특산물 인터넷 쇼핑몰이 나와요. 양파, 감자, 잡곡류, 쌀류 이런 것들은 이런 곳에서 직접 구매해서 먹으면 돼요. 택배비도 거의 안 들고, 훨씬 경제적이고. 그런 소비량이 전체 농수축산물의 거래량에서 30~40% 정도만 차지한다고 해도 우리 농수축산물 시장이 튼튼해져요. 부부도 노력이 필요해 이제 두 아들도 장성하고, 부부가 같이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았잖아요.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이 있으세요? 사이좋게 사는 거죠. 사이좋게! 어느 정도 서로가 놓아야 해요. 그러면서도 아주 놔버리면 남남이잖아요. 놓으면서도 서로가 끈끈하게 잡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50, 60대 원숙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게 어렵죠. 평소 부인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하세요? 여성들은 남성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해주길 바라지만, 남성은 공감할 수 있는 박자 감각이 떨어져요. 그 훈련이 안 돼 있어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인간이지만 정말 다른 종이라는 걸 인정해줘야 돼요.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에게 옆집 여자는 밍크코트를 입었더라는 얘기를 해요. 그럼 남편은 ‘사달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내가 못 사주니까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요. 사실 이럴 때는 “당신이 그게 입고 싶었구나”라며 그저 속상한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면 되는데 남자들이 그걸 깨닫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저도 정말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웃음), 요즘에야 좀 알게 됐어요. 그걸 얼마 만에 알게 된 사실이에요? 20년 걸렸나 봐요. 남자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더 속상하고, 여자 입장에서 보면 여자가 더 속상한 그런 마음이 자꾸 생기면 미운 마음에 ‘웬수’가 돼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시점이 좀 지나가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해요. 예를 들어 남성을 이해하려면 성적 욕망과 남성성에 대해 다룬 융의 책들을 읽어보세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 ‘더 하이 스피치’ 챕터는 모두 읽어보길 바라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해야 서로를 달래면서 좋은 친구 관계가 될 수 있어요. 부인께서도 그런 노력을 하신 편인가요? 아내는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아,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제 아내가(일동 웃음)! 학문적인 성과를 이루셨군요! 얼마나 열 받고 복장 터졌으면(웃음). 아내 입장에서 보면 분명 남편은 좋은데 미운 거예요. 확실히 미워해버리면 괜찮은데, 미운데 미워할 수 없으면 시쳇말로 돌아버리는 거예요. 제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끝내 그 열 받음이 오늘날 공부를 하게 만든 거죠(웃음).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이해해주고 공감하려면 첫 번째는 여자를 잘 이해해야 할 거 같지만 안 그래요. 남자 스스로 자기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열을 받았고, 무엇 때문에 욕구불만이 생겼고, 내 마음에서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을 잘 볼 수 있어야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요. 이번 인터뷰는 남편들이 꼭 봐야겠어요. 그냥 말로만 이해하면 안 돼요. 영혼 없이 이해해, 사랑해, 라고 하는 것을 여자는 단번에 알아요. (아내는 입술의 감촉만으로도 진정으로 사랑해서 하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를 알아차린다는 부연 설명을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6년 작 ‘프레스티지’ 스토리를 한참 들려주었다.) 그럼 남자는 모든 걸 다 이해해야 하느냐고요?(웃음)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평화로운 질서, 사이좋은 질서를 만들어내는 거죠.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