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413 건 검색)

캄보디아 장관·‘오징어 게임’ 출연 인도 배우···한예종이 20년간 배출한 외국인 졸업생
캄보디아 장관·‘오징어 게임’ 출연 인도 배우···한예종이 20년간 배출한 외국인 졸업생
2025. 02. 06 17:05문화
... 게임> 시즌 1에 알리 역으로 출연한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가 AMA+ 출신이다. 캄보디아 공보부 정무장관 힘 소티샤, 태국 반솜차오프라야 라자밧대 교수 아사바세마차이 타난팍, 베트남...
간호사가 꿈인 캄보디아 ‘심장병 소년’…한국서 두 차례 수술받고 건강 되찾아
간호사가 꿈인 캄보디아 ‘심장병 소년’…한국서 두 차례 수술받고 건강 되찾아
2024. 11. 06 20:49사회
... 회복했다. 6일 강릉아산병원은 홍 리읏(18)이 병원에서 심장병 수술을 무사히 받고 지난 5일 캄보디아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홍 리읏은 수술하지 않으면 40세까지 95%가 사망하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ㅇㅇ
29억 빼돌린 캄보디아 거점 ‘주식 리딩방’…일당 기소
29억 빼돌린 캄보디아 거점 ‘주식 리딩방’…일당 기소
2024. 11. 06 10:36사회
... 거점을 둔 해외 주식리딩방 투자 사기 일당이 만든 가짜 투자 사이트 화면. 남부지검 제공 캄보디아에 거점을 두고 ‘해외 주식 리딩방’ 사기를 벌여 29억원가량을 빼돌린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마약 수사관 현지파견’, 베트남·말레이·캄보디아로도 확대한다
‘마약 수사관 현지파견’, 베트남·말레이·캄보디아로도 확대한다
2024. 10. 30 11:25사회
... 있다. 정효진 기자 검찰이 마약 수사의 국제공조관계 강화·확대를 위해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에 마약 수사관을 파견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태국에만 파견했다. 검찰은 실시간 국제공조로 현지...

스포츠경향(총 149 건 검색)

‘시사기획창’ 캄보디아에서 사라지는 한국인들
‘시사기획창’ 캄보디아에서 사라지는 한국인들
2024. 12. 24 21:05 연예
KBS 24일 오후 10시 KBS1 ‘시사기획창’은 캄보디아에서 사라지는 한국인들에 대해 조명한다. “제가 죄인이에요. 내가 좀 더 영리하고 제가 좀 더 정신 차리고 이랬으면…” 평생 모든 돈 7천만 원은 물론이고 대부업체에 빌린 1억 5천만 원까지. 주식리딩방 사기로 하루 아침에 2억 3천만 원을 날린 78세 노인의 넋두리이다. 정말 좀 더 영리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신종 사기 수법을 자주 보도하던 한 기자에게 ‘주식리딩방 업체에 잠입해 있는데 도와달라’는 한 통의 제보 메일이 왔다. 기자를 만난 제보자는 국제범죄조직의 조직원으로 두 달 동안 일했다. 제보자가 기자에게 건넨 USB에는 범행에 사용한 대본과 조직원 리스트, 입금 내역과 피해자 명단 등 조직 내부 자료 수백 건이 들어 있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는데 그냥 넘길 수 없다. 사회부 기자들은 조직의 근거지가 있다는 캄보디아로 향했다. 제보는 사실이었다. 29층짜리 초고층 빌딩 전체가 범죄 조직이었다. 한 차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뒤 제보가 쏟아졌다. 한 제보자는 “기자님이 취재한 곳은 중소기업이고 대기업 같은 범죄 단지들이 정말 많습니다”라고 전했다. 그 안에선 투자리딩방 사기, 로맨스 스캠 사기 등 다양한 범죄가 일어나고, 심지어 한국인 조직원을 감금하고 전기고문까지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2024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 이야기도 사실인걸까. 취재진은 한 번 더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 행각. 한국인 조직원을 상대로 한 내부 교육에서 우두머리는 “끝까지 끌고 가서 끝까지 뽑아먹자”고 말했다. 수법은 교묘했고 치밀했다. 제보자가 단 2달 동안 일한 조직의 내부 자료에는 피해 한국인이 129명, 피해 금액은 33억 원에 달했다. 짧게는 1분 단위로 수백, 수천만 원을 입금한 사람도 있었다. 경찰이 집계한 투자리딩방 사기의 공식 피해액만 5,400억 원.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촘촘하게 그물을 짰다면, 누구든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법 밖의 세상,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KBS 사회부 기자들이 걸어 들어갔다. 24일 밤 10시 KBS1에서 방송되는 ‘시사기획창’에서 당신이 속고 있던 그 범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이트진로, 캄보디아 ‘진로 EDM 페스티벌’ 현지 MZ 세대 공략 지속
하이트진로, 캄보디아 ‘진로 EDM 페스티벌’ 현지 MZ 세대 공략 지속
2024. 11. 22 11:34 생활
하이트진로가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축제인 ‘본 옴 뚝(Bon Om Touk, 물 축제)’에서 ‘진로(JINRO) EDM 페스티벌’을 개최해 ‘진로(JINRO)의 대중화’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진로(JINRO) EDM 페스티벌 현장 하이트진로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코픽섬에서 열린 ‘진로(JINRO) EDM 페스티벌’을 마쳤다. 하이트진로가 주최한 캄보디아 최초의 EDM 페스티벌로 지난 2017년 첫 개최 이후 2019년까지 매년 개최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정 중단된 후, 4년 만에 다시 진행하게 됐다. 올해 4회째를 맞은 ‘진로(JINRO) EDM 페스티벌’은 10여 명의 현지 유명 뮤지션들이 참석해 약 10만 명의 관객이 축제를 즐기며, 캄보디아 MZ 세대들에게 각광받는 뮤직 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이트진로는 ‘진로 바(BAR)’를 운영하며 참이슬과 청포도에 이슬을 비롯한 과일리큐르 5종을 판매하고, 포토존 및 경품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해 현지인들의 브랜드 체험 기회를 늘리며 K-소주 대표로서 위상을 높였다. 하이트진로는 현재 이온 몰(AEON MALL) 18개 매장과 DFI LUCKY 52개 매장, 세븐일레븐 105개 매장 등 캄보디아의 주요 대형 유통 채널 대부분에 레귤러 소주 및 과일리큐르를 입점시키며 판매망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현지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이러한 현지인 대상 판매를 기반으로 하이트진로의 캄보디아 소주 수출량은 2019년 이후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31% 성장률을 기록하며 외형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2023년 하이트진로의 캄보디아 현지 거래선 출고 자료 기준으로 현지인 판매 비율이 약 96%를 차지하며 현지화 전략이 통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 황정호 전무는 “캄보디아 MZ 세대의 뜨거운 호응 덕분에 ‘진로(JINRO) EDM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현지에서 브랜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현지 맞춤형 마케팅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시장에서의 성장세를 더욱 강화하고 아시아 주류 시장에서 K-소주 문화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KT “캄보디아 난청아동 4명에 인공와우 수술”
KT “캄보디아 난청아동 4명에 인공와우 수술”
2024. 09. 08 12:46 생활
KT는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캄보디아 프놈펜 프레 앙두엉 병원에서 ‘캄보디아 KT 꿈품교실’ 5주년을 기념하고 난청 아동을 위한 인공와우 수술과 재활 환경 개선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8일 밝혔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프레 앙두엉 병원에서 환우 20명이 KT ESG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KT KT는 2019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캄보디아 최초 난청 아동 재활센터인 꿈품교실을 열고 난청 아동 8500여명을 지원해 왔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관계자 88명과 수혜 난청 아동 43명이 참석해 인공와우 최신 정보와 꿈품교실 성과를 공유했다. KT는 난청 아동 4명이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수술비를 지원하고,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직접 수술을 시연해 현지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의료 기술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오태성 KT ESG경영추진실장(상무)은 “지난 5년간 꿈품교실은 캄보디아 난청 아동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며 그들이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아동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지속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플랜코리아 백진희 홍보대사, 캄보디아 방문 교육 현황 점검
플랜코리아 백진희 홍보대사, 캄보디아 방문 교육 현황 점검
2024. 09. 05 13:11 생활
국제구호개발 NGO 플랜코리아는 백진희 홍보대사가 지난 8월 24일부터 31일까지 캄보디아 라타나키리와 씨엠립주를 방문 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백진희 홍보대사는 2012년부터 플랜코리아 홍보대사로 활동, 지원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23년 플랜코리아의 여아 지원 캠페인에 참여해 이후 여자아이들의 현실 인식을 제고하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해왔다. 이번 캄보디아 방문에서 소녀들의 교육과 생리 건강, 조혼 예방, 위생 등 현지에서 중요한 이슈들을 직접 살펴보며, 관련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활동을 진행했다. 방문 기간 동안 백진희 홍보대사는 라타나키리 지역에서 마을 주민 및 청소년 그룹이 주최하는 조혼 인식 개선 캠페인에 참여했다. 캠페인에서는 조혼이 소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현실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여자아이들의 생리 건강과 교육에 대해서도 백진희 홍보대사는 현지 고등학교를 방문해 소녀들과 생리 건강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생리대 파우치 제작 이벤트를 통해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또한 플랜코리아의 지원으로 식수 위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마을을 방문해 개선된 식수 시설을 살펴보았다. 새로 설치된 위생 시설이 주민들, 특히 여아와 여성들의 생활에 미친 긍정적인 변화를 직접 확인하며, 물과 위생 문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플랜코리아 관계자는 “백진희 홍보대사의 이번 캄보디아 방문은 플랜코리아의 여아 및 여성 지원 활동을 직접 살펴보고 현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고 밝혔다. 백진희 홍보대사 방문기는 플랜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인 플랜TV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주간경향(총 8 건 검색)

[가깝고도 먼 아세안] (36)캄보디아 대운하, 경제 도약인가 외교 위기인가
[가깝고도 먼 아세안] (36)캄보디아 대운하, 경제 도약인가 외교 위기인가(2024. 08. 23 16:00)
2024. 08. 23 16:00 국제
훈마넷 캄보디아 총리 부부가 메콩강 하구에서 해안에 이르는 푸난 테초 운하 착공 시작 버튼을 누르고 있다. /캄보디아 총리실 2023년 8월 캄보디아를 38년간 철권 통치해온 훈센이 아들 훈마넷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었다. 영국 명문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인 훈마넷이 이끄는 캄보디아가 어떻게 변화할지 이목이 쏠렸다. 훈마넷은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학 경제학 석사와 영국 브리스톨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캄보디아가 친서방 정책으로 전향하지 않겠는가 기대였다. 중국과 손잡은 크메르 민족주의 훈마넷의 국정 운영 첫 선택은 중국을 통한 경제 부흥이었다. 훈마넷이 총리에 취임한 직후인 2023년 9월, 캄보디아는 중국 국유기업 중국도로교량공사(CRBC)와 17억달러(약 2조3000억원) 규모의 ‘푸난 테초(Funan Techo) 운하’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180㎞ 떨어진 태국만까지 운하를 연결하고, 수문이 있는 3개 댐과 11개 교량, 208㎞ 보도 등을 건설하는 대형 사업이다. 운하는 폭 100m, 깊이 5.4m로 건기에는 최대 3000t 화물선을 수용할 수 있고, 강 수위가 높아지는 우기에는 5000t 화물선까지 드나들 수 있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한 푸난 테초 운하는 캄보디아 정부가 51% 지분을 확보하지만, 17억달러 모두 중국 투자금으로 집행한다. 중국도로교량공사가 건설해 40~50년간 운영하다가 캄보디아 정부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2024년 8월 5일 푸난 테초 운하 기공식을 보도한 캄보디아 언론 크메르 타임스에 따르면 훈마넷 총리는 푸난 테초 운하를 “역사적인 사업”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만·도로 인프라가 부족한 캄보디아는 전체 수출입 물량의 33%를 베트남 호찌민 항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물류 자주권 확보를 위해 국운을 걸고 진행하는 사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가 베트남과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세제 혜택을 일부 누리고 있지만,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이웃 나라에 의존하고 있어 캄보디아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훈마넷 총리는 푸난 테초 운하 건설을 두고 “우리의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까지 언급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운하 건설을 통해 50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베트남을 통하지 않은 교역을 통해 운송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운하 운영 첫해에는 8800만달러 수입이 예상되며 2050년까지 5억7000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인 전망이라는 의견이 많다. 호주 싱크탱크인 로이연구소(Lowy Institue)는 ‘캄보디아 정부의 전망은 연평균 8.1% 성장을 전제로 한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환경과학 전문 매체인 몽가베이(Mongabay) 역시 ‘일반적인 중국 일대일로 자금은 연이율 5~10%’라며 캄보디아가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우려를 밝혔다.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인프라 사업을 전개했다가 심각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라오스의 사례가 캄보디아에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트남 겨냥한 푸난 테초 운하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운하 사업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캄보디아의 운하 건설은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지역 환경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콩강은 중국에서 발원해 미얀마-태국-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 순으로 흘러내린다. 상류 국가인 캄보디아에 대운하가 건설되면 물길과 강물 유입량이 변화해 베트남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4년 5월,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는 ‘캄보디아 운하 건설은 건기에는 베트남에 물 부족을, 우기에는 홍수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트남 메콩 델타 지역은 베트남 전체 쌀 수출 물량의 95%, 과일 생산량의 70%, 수산물의 60%를 책임지고 있는 식량의 보고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와 중국·라오스에 건설된 수력발전 댐들의 영향으로 민물이 줄어들고 있다. 폭염이 심했던 지난 4월에는 식수에까지 바닷물이 섞여 염류화 되는 비상사태를 겪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지속해서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 운하 건설에 대한 공동 환경영향평가를 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운하 건설에 따른 영향은 미미하고 운하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며 강경한 자세로 나오고 있다. 캄보디아 림 항구에 정박 중인 2척의 중국 초계함/캄보디아 국방부 페이지 중국 군사력에 의존한 크메르 민족 부흥 캄보디아 운하 건설은 군사적으로도 민감한 이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푸난 테초’라는 운하의 이름부터 신경 쓰인다. ‘푸난’은 서기 1~6세기에 지금의 태국과 베트남 남부지방까지 영토를 차지했던 캄보디아 대제국의 이름이다. ‘테초(Techo)’는 캄보디아어로 ‘강력한’이라는 뜻이니 푸난 테초는 ‘위대한 푸난제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푸난 테초 운하 사업은 캄보디아가 ‘중국의 힘을 빌려, 베트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크메르 민족 중흥’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180㎞ 해안까지 이어지는 이 운하는 중국 해군이 실질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캄보디아 림(Ream) 해군기지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림 해군기지는 중국의 해외 2호 해군기지가 됐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자국 영토에 ‘외국 군사기지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을 근거로 이를 부정하지만 믿는 이는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1300t급 초계함 2척은 2023년 12월 림기지에 정박한 이래 현재까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 전투함은 대함 미사일 발사 장치에 속사포는 물론 헬기 착륙장,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췄다. 푸난 테초 운하가 건설되면 이 전투함은 운하를 따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까지 몇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중국군이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6세기 푸난 제국에서 9~15세기 크메르제국까지 1000년이 넘게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장악했던 캄보디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태국과 베트남의 틈바구니에서 국가 발전은 정체되고 있다. 푸난 테초 운하 사업은 훈센-훈마넷 부자 세습 정권이 정말 캄보디아 민족 부흥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고자 추진한 것일까? 철권 통치로 야당 국회의원들을 탄압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바람에 이반된 민심을 크메르 민족주의 자극으로 덮으려는 속셈은 아닐까? 캄보디아 경제 발전을 위해 운하가 필요하다면 베트남과 함께 환경영향평가를 반영해 사업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베트남과의 분쟁을 피하고 메콩강에서 전쟁의 씨앗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길이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가깝고도 먼 아세안](12)캄보디아 ‘친중’ 깃발에 베트남 긴장 고조(2023. 06. 02 11:29)
2023. 06. 02 11:29 국제
캄보디아 모로독 테코 국립경기장 / 크메르 타임즈 지난 5월 17일 폐막한 제32회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개최국 캄보디아는 금메달 81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31회 대회에서는 금메달 9개, 30회 대회에서는 4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이다. 이러한 성적 상승 비법에는 개최국 프리미엄에 중국의 특별 과외가 있었다. 중국은 12개 종목의 캄보디아 선수단 160명을 자국으로 초청해 7개월간 중국 코치진의 집중 합숙 특훈을 받게 했다. 중국으로 오가는 모든 교통비, 머무는 동안의 숙박비, 식비까지 중국 정부가 전액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중국은 이번 대회 주경기장이었던 6만석 규모의 모로독 테코 국립경기장도 1억6000만달러(약 2100억원)를 들여 무상으로 지어주었다. 중국과 캄보디아의 농도 짙은 밀월 관계는 스포츠 교류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도시가 된 시아누크빌 캄보디아와 중국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공항, 항구, 발전소, 고속도로, 정유공장 등 모두 65개의 주요 국가 인프라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 대부분은 캄보디아 서남부의 시아누크빌에 집중됐다. 특히 2022년 중국도로교량공사가 20억달러(약 2조6400억원)를 들여 건설한 수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연결하는 187㎞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시아누크빌로 유입되고 있다.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자본이 투입된 카지노, 호텔, 식당, 유흥업소 등이 난립하며 아세안의 마카오라고 불리는 시아누크빌의 경제가 중국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 15만명의 시아누크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기준 약 17만명이고, 시아누크빌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만 약 10만명이다. 부동산 가격이 3배에서 10배까지 치솟은 시아누크빌 상황에 캄보디아 현지 기업들은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옮겨갔다.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안의 중국 영토나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게다가 중국 폭력조직들에 의한 총기 사고, 인신매매, 매춘, 각종 폭력 사건이 만연해 캄보디아 전국적으로 반중 감정이 출렁이고 있다. 2019년 7월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캄보디아와 중국이 비밀 협약을 체결해 시아누크빌에 있는 림(Ream) 해군기지를 중국이 차지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중국 양국은 이 부분을 부인했지만 2022년 6월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림 기지 북쪽에 중국군 전용기지 건설 착공식을 연다고 보도했다. 이어 중국 외교 당국자가 “림 기지 시설 일부를 중국이 사용할 것”이라고 확인해준 것을 후속 보도까지 해 국제적 파장이 더욱 커졌다. 캄보디아 림 해군기지는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와 인접해 있고, 아세안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 지역으로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다. 변변한 군함 하나 없는 캄보디아 해군이었기에 그동안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기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 지역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캄보디아 언론 ‘크메르 타임스’는 중국의 해군기지 시설 확충은 무상 원조로 이뤄지고 있으며, 군함 개조와 군함 수리를 위한 토크 마련, 대형 군함이 입항할 수 있는 부두 건설과 군 병원을 짓고 있다고 지난해 6월 보도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시내 전경 / Max Pixel 해군기지마저 장악에 베트남 긴장 중국의 림 기지 장악에 가장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북쪽 국경과 동해(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중국이 캄보디아 림 기지를 사용하면서 옆구리마저 무방비 상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은 림 기지 주변에 설치한 레이더를 통해 불과 30㎞ 떨어진 베트남 제5지역 사령부의 동태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역의 항공 운항 상황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태국 최대 해군기지이자 미 해군이 자주 이용하는 태국 사타힙 해군기지까지 정찰할 수 있어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위치를 점하게 됐다. 림 기지에서 차량으로 3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중국 국영기업으로 의심받고 있는 톈진 유니온 개발그룹이 3억5000만달러(약 4조6000억원)를 들여서 다라 사코(Dara Sakor) 국제공항을 건립 중이다. 올해 중반쯤 개항 예정인데, 인구 10만명도 안 되는 지역에 3400m나 되는 캄보디아 최장 길이의 활주로가 있어 실질적으로 중국 공군기지 건설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1979년 1월, 베트남은 200만명이 넘는 캄보디아 국민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주범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지금의 캄보디아 정권을 세웠다. 베트남으로선 38년 철권통치를 하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에 대해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캄보디아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면서 베트남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양국 간 긴장감이 높아진 배경이다. 2021년 6월 베트남 국방부는 캄보디아 접경지대인 끼엔장성에 해양순찰과 정보 수집을 하는 무장 민병대를 창설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9개 선박과 1개 소대로 이뤄진 민병대는 정규군은 아니지만, 베트남군이 각종 훈련과 장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이 무력 충돌까지 각오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규군이 캄보디아군 또는 중국군과 무력 충돌을 빚으면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지만, 민병대이므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열어둔 것이다. 중국은 오랜 시간 계획해 림 해군기지 배후도시 개발을 위해 시아누크빌 투자를 단행했다.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림 기지에 근무하는 중국 군인 규모 파악을 어렵게 하고, 중국인을 대거 이주시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림 기지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훈센이 오랜 우호관계였던 베트남과 척을 지면서까지 중국과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첫째 아들이자 캄보디아 군사령관인 훈 마넷을 정계에 입문시켜 정권을 세습하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다룬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사회]개발의 그늘, 용산과 캄보디아 ‘동병상련’(2013. 05. 14 11:09)
2013. 05. 14 11:09 사회
ㆍ강제퇴거로 고향서 쫓겨난 벙깍호수 주민과 용산대책위 연대투쟁 모색 경제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개발을 할수록 빈민층이 늘어나고 평범한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매년 GDP 성장률 6~7%을 기록하는 캄보디아도 마찬가지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는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살던 지역에서 강제퇴거를 당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5월 8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참사 현장에서 강제퇴거를 겪고 있는 캄보디아 프놈펜 벙깍호수 마을대표 보브 소피(왼쪽 네 번째)씨와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구속 중인 전 마을대표 욤 보파씨의 석방을 촉구하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벙깍호수 상황 2009년 용산과 비슷 지난 5월 8일 주한 캄보디아대사관이 위치한 서울 한남동에서 용산참사 철거민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벙깍호수마을 대표 보브소피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연 기자회견에서 “캄보디아 정부는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단행되는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양은선 간사는 “한국과 캄보디아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단순히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생각에 용산참사범대위와 공동으로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캄보디아 정부는 대규모 산업 개발을 위해 토지를 사기업에 장기 임대하는 경제적 토지양여 제도를 시행 중이다.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미 4000가구가 마을을 떠났고, 현재는 700가구만 남아 강제퇴거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항 과정에서 국제엠네스티가 지정한 양심수 욤보파는 현재 체포돼 수감된 상태다. 이충연 위원장은 현재 캄보디아 벙깍호수의 상황이 2009년 용산참사와 닮은꼴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마을주민들이 폭압적인 강제퇴거를 처음 겪으면서 당황하는 모습들, 누구 하나 의지할 데 없어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어하는 모습들이 2009년 우리의 모습과 똑같았다”고 말한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이원호 사무국장은 “현재 캄보디아 상황이 우리나라 1980~90년대 수준이라고 하지만 강제퇴거가 진행된 과정은 용산참사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보브소피는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포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며 “이렇게 발전되고 현대화한 도시에서 참혹한 철거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남짓 감옥에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웠는데 이충연 위원장은 4년 반을 살고 나왔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개발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다는 것에서부터 용산과 캄보디아는 닮은꼴이었다. 2009년 용산참사가 벌어지기 전 이충연 위원장은 부모님과 함께 남일당 건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상가세입자에게 책정된 보상금은 평균 2300만원. 시설비, 권리금까지 더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그 돈을 받고 새로 개업을 하고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용산구청에 찾아가 호소를 하고 변호사도 알아봤지만 대책이 없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 위원장이 ‘투쟁’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남일당 건물의 화재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 위원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 등으로 5년 4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벙깍호수마을 대표 보브소피도 마을에서 미트볼 장사를 하는 평범한 세 아이의 엄마였다. 남편은 이 지역에서 자동차 운전사로 일했다. 남편의 한 달 월급은 300달러였고, 보브소피는 장사가 잘 되는 날에는 하루 25달러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수준의 소득이었다. 하지만 벙깍호수가 개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부가 사기업 ‘슈카쿠’에 벙깍호수 개발을 맡긴 것은 2003년부터였다. 2007년부터 강제퇴거로 쫓겨나기 시작한 주민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보브소피는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정부에서 호수 주변과 호수 위의 수상가옥만 강제퇴거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우리 집도 강제퇴거 대상이 됐다. 그제야 개발이 우리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내 삶이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체계가 터무니없기는 벙깍호수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두 가지 선택지를 내놓았다. 보상금 8500달러를 받거나 정부가 마련한 재정착지에 가서 사는 것이었다. 보브소피는 두 가지 다 선택할 수 없었다. 8500달러로는 한 평의 땅도 살 수가 없는 돈이다. 정부가 마련했다는 재정착지도 너무 먼 곳이라 장사를 하고 있는 보브소피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항운동을 시작했고, 그러다가 감옥에 수감됐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일자리를 잃었고, 지금 온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다. 남편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아이들은 여동생이 대신 키우고 있다. 개발의 수혜자가 지역주민이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것도 용산과 캄보디아의 닮은꼴이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용산 4구역에는 지하 7층, 지상 40층짜리 초대형 건물 6개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문제로 개발이 중지되고 이후 부동산 경기가 악화해 재개발 진행이 멈춰진 상황이지만, 2008년 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로 1조400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벙깍호수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인 ‘슈카쿠’ 또한 캄보디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다. 특히 슈카쿠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여당 상원의원이다. 일종의 정경유착인 셈으로 캄보디아 내에서는 재력으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개발로 자신들 삶의 터전 빼앗겨 기자회견을 마친 캄보디아 주민들과 용산참사 철거민들은 캄보디아대사관을 방문해 서한을 전달하고 동자동 지역공동체를 방문해 함께 식사를 했다. 지역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주민들이 흩어지고 주민간 연대가 약화하는 것은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동자동을 찾은 보브소피는 “(지역주민들끼리 함께 하는) 이런 문화가 좋다”며 “지역에서 뭘 만들어내야 할지, 주민들끼리 단결하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충연 위원장은 “지금 캄보디아에서 저항운동을 하다 구속된 여성분이 2명이라고 들었다. 그 분 아이들에 대한 공동육아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용산참사 당시 재활용품을 수거해서 몇백만원의 투쟁기금을 만든 적이 있다. 작더라도 지역에서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도 필요하다. 캄보디아 주민들과 활동가가 한국에 초청되면서 캄보디아 정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며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이제껏 국제연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연대하면서 아시아 내에서 강제퇴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공모전]영화 같은 캄보디아 야경(2013. 01. 29 13:25)
2013. 01. 29 13:25 사회
캄보디아 여행 중 만난 멋진 야경에,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한 컷 찍었습니다. - 김지혜 ■응모 요령 소재나 주제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과도한 보정은 사양합니다. 합성한 사진도 곤란합니다. 촬영 장소와 시간을 밝혀 주시고, 짧은 글도 덧붙여 주십시오. 사진사이즈를 2mb 이상으로 올려주세요. ■응모 방법 wkhphoto@kyunghyang.com으로 사진과 글,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보내 주세요. ■상품 매월 ‘이달의 최우수작’ 수상자에게 니콘 쿨픽스 S3100 1대 수여.(기종은 추후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제세공과금은 당첨자 부담입니다. ■발표 및 게재 매주 지면. 월별 최우수작은 다음달 첫째주. 후원 : 니콘이미징코리아
사진공모전

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윤현숙, 캄보디아 천사들과 함께한 2박 3일
윤현숙, 캄보디아 천사들과 함께한 2박 3일
2013. 11. 29 14:20 연예
패션 사업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윤현숙. 최근 그녀가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의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통해 따뜻한 나눔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는 그녀의 지난 3일을 되짚어본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출발 평소 친분이 있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아데나문화재단. 홍보대사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늘 말뿐인 봉사가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꼭 함께하겠다고 몇 번이나 동참 의사를 밝혔지만 그때마다 스케줄이 겹치면서 피치 못하게 미뤄야 했다. 마침내 지난 10월 10일, 윤현숙(42)은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진 속 해맑게 웃고 있던 아이들을 직접 만날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출발 이틀 전, 재단으로부터 캄보디아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려 봉사활동 일정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을 거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물이 빠지는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출발 당일, 다행히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탔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하나도 괜찮지 않더라고요. 공항에서 빠져나와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주변이 온통 물바다였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아쉬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른 시간부터 예쁘게 단장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는 마음이 더욱 짠해졌다. 내 이름은 스마일 쌤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교육과 문화, 복지와 보건 의료 등을 통합 지원하는 아데나문화재단의 사업국 T&S(Trust and Smile) 아동센터.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얼굴을 빠끔히 보고는 부끄러운지 도망치기를 몇 차례 반복하며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왔다. 개중에는 센터에서 교육을 받아 한국말을 제법 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 멋진 자기소개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부끄럽지만 그동안 봉사활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몸만 갔어요. 대신 고민은 엄청 열심히 했어요. 첫 만남인데 어떤 인상을 줘야 할까,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엇을 함께해야 할까 뭐 그런 고민이요(웃음).” 조별로 나눠 한바탕 게임을 하며 친목 도모의 시간을 보낸 뒤 그녀는 특별한 한국어 수업의 선생님으로 나섰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일까. 아이들은 집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웃음꽃이 피어났다. 덕분에 그녀는 ‘스마일 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가르친다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아이들이 한국어를 무척 잘했어요. 영어도 잘하고요(웃음). 내년이나 후년쯤엔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돼요.” 켜켜이 가난이 쌓여가는 마을 둘째 날, 윤현숙은 재단과 결연을 맺고 있는 콕 저어 마을을 방문했다. 씨앰립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품을 찾아내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대여섯 살 남짓의 아이들부터 허리가 굽은 노인까지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라고 했다. 설상가상 그녀가 도착했을 땐 홍수에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뒤엉켜 있었다. “저어 마을의 첫인상은 마치 수상가옥 같았어요. 충격 그 자체였죠. 뒤죽박죽이란 단어가 딱 맞을 거예요. 한편에서는 구정물로 설거지를 하고, 또 그 옆에서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TV 속에서나 보던 바로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무릎까지, 허벅지까지 차오른 빗물 탓에 앞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애초 계획했던,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위생 봉사도 취소됐다. “저희는 마을의 1/3도 채 돌아보지 못했어요. 빗물이 가득 고인 곳은 성인의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찼다고 했어요. 갖고 간 선물들, 학용품들을 나눠주고 인사를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작은 선물에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한 번 더 웃을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름조차 묻고 답하지 못한 서너 살 남짓의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차에서 내려 제일 처음 만난 아이였는데 제가 이렇게 팔을 내미니까 쪼르르 와서는 품에 안기더라고요. 한참 동안 제게서 떨어지질 않았죠. 손에 쥐어준 초코 과자를 놓지 않고는 저만 바라보는데…. 유난히 그 아이가 눈에 밟히네요.” 얼굴에 그린 행복 마지막 날, 윤현숙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 페이스페인팅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어떤 아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어떤 아이는 무서운 원시인으로 변했다. 까르르까르르.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아라피야’라는 전통 노래와 핸드벨도 배웠다. “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꿈을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날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면 무척이나 행복한 기억이었음에도 눈물부터 나요.” 찰나 같았던 2박 3일, 헤어짐을 받아들이기엔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넘치도록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나눔의 행복에 대해 강조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별을 앞두고 저희 조였던 한 아이가 편지를 건네줬어요.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터졌죠. 아이에게 ‘다음에 또 올게. 우리 웃으면서 보자. 꼭 약속해’라고 말하고는 엉엉 울었어요. 제가 감히 이들을 도와준다는, 그 말 자체가 어쩌면 참 건방진 생각인지도 몰라요. 오래도록, 의미 있게,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는가 그걸 고민하려고 해요.” 시간을 나누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들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작은 계획을 세웠다. 제법 구체적이고 야무지다. “한시적 관심만으로는 근본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없어요. 저는 제 나름의 방법을 찾았어요. 일단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예요(웃음). 한 번 가보니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한 연예인들과 바자회를 열려고 해요. 또 내년 3월엔 의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할 예정이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 일부는 아이들을 위해 쓸 거예요. 그리고 5월쯤, 다시 아이들을 찾으려고 해요. 아이들이 어떻게 커 있을까 무척 궁금해요.” 윤현숙에게 나눔이란 소중한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건 ‘시간’이다. “예전에는 그저 돈을 기부하고, 필요한 물건을 채워주는 것이 나눔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면서 그 개념이 바뀌었어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나눔은 제 시간을 나누는 것이에요. 저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어 살아왔어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한정된 시간, 그 시간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가치 있게 쓴다는 것, 그러면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소통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눔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아데나문화재단과 함께 사랑을 나눠요! 비영리단체인 아데나문화재단은 지난 2007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국내 장학생들을 선발해 중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책임지는 ‘아데나장학회’에서 출발했다. 미래의 인재 양성을 위해 현재 국내 장학사업, 해외 교육복지사업, 복지후원사업, 문화공헌사업 등을 펼치고 있으며 사랑의 연탄 나눔, 서울 영아 일시보호소 자원봉사, 사랑의 집 꾸미기 등의 활동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또 2011년 캄보디아 NGO 단체인 ‘Trust&Smile’을 설립해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보육 및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가정의 아동들을 후원하고 빈곤 지역 개발·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 문의&신청 02-567-6952, www.athenacf.com <■글 / 김지윤 기자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 아데나문화재단>
캄보디아로 떠난 이수경의 특별한 일주일
2012. 10. 09 14:11 연예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절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헤엄을 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끝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배우 이수경이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의 아이들과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을 공개한다. 지난 8월 20일, 캄보디아 씨엠립공항에 도착한 배우 이수경(30)은 아이들에게 줄 선물 상자들을 챙기며 “부족하진 않겠죠? 좀 더 챙겨왔어야 했나?”라고 되물었다. “비행기에서 ‘캄보디아입니다’ 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어떤 걸 해주기로 했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준비한 걸 아이들이 좋아할까? 혹시 아이들이 내게 선입견을 갖게 되면 어쩌지? 진심이 전달될까? 그런 걱정과 우려가 컸어요. 처음 해보는 봉사활동인데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 무척 떨려요.” 색색이 물든 천사들의 마음 국제아동후원단체인 플랜코리아와 이수경이 첫날 향한 크롱 마을(Khlong Village)의 한 초등학교. 이 지역은 캄보디아 앙코르 참에서 7km 떨어진 곳으로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거나 노점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맑은 눈망울로 미소를 짓거나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을 꼬옥 잡고는 부끄러운지 도망치기를 몇 번. 그녀를 위한 공연을 펼쳐 보이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시선은 뽀얀 피부의 이수경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학교에 도착하기 전엔 그래도 이곳이 NGO 단체들의 지원을 받는 곳이라고 해서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이들이 입은 옷은 다 낡아 해져 있고, 교재도 없이 선생님의 말씀에만 의존하며 수업을 받더라고요. 아니,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 이 정도면, 도대체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더 열악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짠했어요.” 준비해간 색색의 매니큐어로 아이들의 손톱을 물들이던 이수경은 특유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마음에 드니?”라고 틈틈이 물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따라 웃었다. “사실 이전에는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저 울고, 떼쓰는 악동들이라고만 여겼죠. 그런데 이곳에 와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걸러지지 않은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본 뒤로는 제 마음이 변했어요. 천사 같은 아이들 덕에 저도 정화가 되는 것 같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이번 봉사활동에 동행한 그녀의 헤어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역시 운동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남자아이들도 또 다른 스태프들이 비눗방울을 불자 방울을 터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풍선을 불어 막대에 꽂아주는 기자를 콕콕 찌르더니 잡고 있던 동생의 손을 먼저 내밀게 하는 아이도 있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사소한 행동에도 감동을 받고 그마저도 서로 먼저 하겠다고 티격태격하는데… 뭐랄까,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봉사가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솔직히 아이들의 머리카락 사이로 나방이나 벌레가 죽어 있는 것이 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만 때가 낀 손톱을 내밀며 이 색을 바를까 저 색을 바를까 고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조차 무척 미안해졌죠. 나중에는 아이들이 몰려서 조금 힘들었지만(웃음). 좀 더 연습을 해서 다음에 올 땐 더 빨리, 더 많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였지만 이수경은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만들어준다는 기쁨으로 직접 반죽한 호떡을 익히기 위해 한참 동안 뜨거운 불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기껏해야 호떡인데 맛있게 먹어주니까 정말 제가 더 고맙네요.” 준비해간 학용품도 전달했다. 뜻밖의 선물들을 한가득 품에 안고 돌아서면서 깡충깡충 뛰며 기뻐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마음도 벅찼다. 후원아동 샤넷을 만나다 같은 날 오후, 이수경은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동 샤넷(12)의 집을 방문했다. 가출한 어머니와 재혼을 하면서 아이들을 버린 아버지. 하루 두 끼를 먹으며 생활하고 그마저도 힘들 땐 논밭에서 개구리를 잡아 허기진 배를 채우지만 두 오빠, 고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넷은 단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만족할 줄 모르면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러웠어요. 제가 이 상황이었으면 전 샤넷처럼 감사하면서 살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어휴, 울면 안 된다고 해서 지금 최대한 참고 있는데 힘드네요.” 처음 만난 이수경의 손을 살갑게 잡고 미소를 잃지 않던 아이. 엄마가 돌아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고개를 숙인 건 오히려 이수경이었다. 1·2 페이스 페인팅과 헤어 컷 중인 아이들. 3·4 이방인들의 방문이 낯선 아이들. “엄마랑 있어본 적이 너무 오래돼 잘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런 거 물어본 것 자체가 미안해지네요. 그래도 고모님이 엄마의 빈자리를 잘 채워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돼요.” 준비해온 선물 꾸러미들을 하나씩 풀면서 일일이 사용법을 알려주자 아이의 큰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낯선 물건들 중에서도 특히 실로폰을 한참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다. 샤넷이 사는 마을의 산타클로스가 된 이수경은 자신을 떠올리며 희망을 갖길 바라는 작은 염원을 담아 어두운 방 안 곳곳에 반짝거리는 야광 스티커를 붙여줬다. 1 이수경의 후원 아동 샤넷. 2 머리핀을 선물받고 좋아하는 샤넷의 고모. “샤넷을 만나기 전까진 이 아이가 제 도움을 받아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됐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런 마음이 사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그런데도 꿈을 꾸는 이 아이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늘의 인연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다음에 꼭 다시 봤으면 해요.” 샤넷의 고모는 떠나는 그녀의 손에 코코넛을 쥐어줬다. “너무 많은 걸 받았는데 이것밖에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쓰레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안롱 삐 지역은 씨엠립에서 25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 매립지에는 자체적으로 20여 가구 정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쓰레기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모아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돈이 되는 건 구리선과 같은 금속류. 하지만 1차 수거작업을 거친 뒤 오기 때문에 대개는 얻기 힘들며 보통은 비닐봉지, 음식물 쓰레기, 캔 등을 모아서 쓰레기장 옆 고물상을 운영하는 업자들에게 판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1 쓰레기 마을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 흘리는 이수경. 2 씨엠립 지역의 쓰레기를 싣고 온 쓰레기차. 3·4 쓰레기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 쓰레기 마을로 떠나기 전 일행들은 작은 고민에 빠졌다. 참을 수 없는 악취와 믿기 힘든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는 선발대의 조언에 따라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결국 마스크 하나만을 주머니에 넣은 채 목적지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서서히 보이는 작은 산, 바로 쓰레기 더미였다. 차 문을 열자 퀴퀴한 악취가 무방비 상태의 일행을 당혹하게 했고, 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을 타고 오르는 파리 떼의 습격은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그러나 대여섯 살 남짓의 아이들부터 허리가 굽은 노인까지 이곳의 주민들은 그런 일행들의 표정이 오히려 더 낯설다는 듯 묵묵히 쓰레기를 골라내고 있었다. “차라리 비염에라도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차 문을 여는 순간 악취에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어떻게 아이들을 이런 상황에 그대로 두는 것일까, 당황했는데 부모도 갈 곳이 없어 여기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해가 조금 됐어요. 아이를 버리지 않고 책임지겠다는 작정을 했다는 거니까.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불만이 없고….” 저 멀리 트럭이 보이자 사람들이 한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차한 트럭은 씨엠립 지역에서 모아온 쓰레기들을 쏟아냈다. 예고도 없이 후진하는 트럭에 치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값이 나가는 쓰레기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뻗쳤다. “이곳에는 분리수거란 것이 없어요. 모든 쓰레기가 한곳에 모이는데, 쓰레기를 잘게 나누면 무게가 더 나가서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빗물과 섞인 쓰레기 웅덩이에서 수영도 하고, 그 물을 마시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더럽다는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나마 이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불규칙적으로 오는 트럭을 만나는 날이면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일해봐야 벌 수 있는 돈은 한국 돈으로 4백원 남짓. 그것도 값이 나가는 것들을 모았을 때 이야기다. “여기서 태어나 죽 자란 아이들은 이곳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안대요. 다른 직업이 있고,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상상도 못하는 거죠. 아이들의 소망이 뭔 줄 아세요? 쓰레기차가 자주 오는 것,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배고프지 않게 먹는 것. 무척 슬픈 일이죠.” 희망을 꿈꾸는 아이, 몸 쓰레기장에서 만난 소녀 레이 스레이 몸(13).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인 몸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쓰레기장에서 번 돈으로 온 가족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로 5만원 가까이 하는 자전거는 말 그대로 사치품.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수경이 몸을 위해 자전거를 비롯한 특별한 선물들을 준비했다. “아이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삼겹살도 샀어요. 한 끼 식사로 영양 보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회충제도 샀고요. 제가 신고 왔던 이 장화도 벗어주고 가려 해요.” 낯선 이들의 방문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몸의 부모 역시 한때는 쓰레기를 팔아 생계를 이었지만, 현재는 이웃들의 논밭에서 일한 품삯으로 쌀과 채소를 얻어 끼니를 때우고 있다. 밥을 챙겨주는 것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인 몸의 부모는 “누구도 시킨 적은 없었지만 스스로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아이의 일당이 살림에 큰 보탬이 되고 있는 터라 말릴 수도 없다”라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잠시 후 이수경은 온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푸짐한 반찬은 아니었지만 서툰 솜씨로 구운 고기를 가족은 맛있게 먹었다. 몸의 엄마는 본인의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른 스태프들이 밥을 먹는 동안 주변에 모여든 강아지들과 파리 떼를 쫓아주기에 바빴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조심스럽게 냄비 하나를 들고 왔다. “저희가 남긴 음식을 챙기려고 하는 듯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손을 대지 않은 새것을 드리겠다고 하니, 먹다가 남긴 것까지 달라고 하셨어요. 오히려 저희가 더 미안할 정도로. 거리낌도 없고 그저 무척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몸이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제가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몸은 쓰레기장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속이 상하네요.” 급하게 준비한 선물들이었지만 몸의 가족은 그녀의 진심을 읽었고 행복해했다. 작별의 순간, 말없이 따라나선 몸의 엄마가 이수경을 가만히 안았다. 그러고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온전히 다 전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그녀 나름의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 “자전거는 몸이 학교를 꼭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샀는데 온 가족이 마치 차 한 대가 생긴 것처럼 기뻐해주셔서 제가 더 감동받았어요.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상황이죠. 몸의 엄마는 저랑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질 않는다는데…. 그나마 몸은 행복한 편인 것 같아요. 글자도 모르는 부모님께서도 몸이 꾸준히 학교에 나가길 원한대요. 그래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고(눈물).” 행복을 나누고 사랑을 더하다 마지막 일정은 고아원 코소(COSO) 방문이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이수경은 씨엠립의 시장부터 찾았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정확하게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는 합동 생일 파티를 해주기로 결심한 것. 좋은 일에 쓰는 것이니 아낌없이 달라고 애교스럽게 흥정까지 하며 산 물건들을 든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1 생일파티 후 기념사진. 2 이수경이 직접 만든 생일 케이크. 3·4 훌라후프를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수경과 아이들. 5 아이들이 그린 이수경 초상화. 6 일일교사로 나선 이수경. 7 함께 기념사진 찍으며 ‘김치~’. 고아원에 도착하자 서른 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천만 번 사랑해’가 현지에서 방송된 덕에 이미 이수경은 씨엠립의 스타였다. 극중 이름인 ‘은님’을 외치며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녀를 껴안았다. “먼저 저를 알아봐줘서 신기했어요(웃음). 이곳은 부모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거나 가난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래요. 아마 제가 후원하는 샤넷도 고모님이 없었다면 정말 잘해야 이곳에 올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길거리에 내몰렸겠죠.”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듯 각기 다른 언어가 적힌 옷을 입고 자원봉사 선생님들을 통해 배운 영어로 짧은 질문들을 던지는 아이들은 티 없이 맑았다. 일일 선생님이 된 이수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들었다. “부모가 없거나 버려진 아이들이라면 어딘가 아픔이 있을 거라고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순수해요. 이렇게 낙후된 시설에서 학용품도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이 그래도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학업에 대한 열의를 보이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마침내 과자로 만든 생일 케이크가 완성됐다. 그동안 생일을 모르고 살아온 여섯 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에 어리둥절하던 아이들은 촛불을 끄고 나서 서로 눈치를 보더니 급기야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정말 많이 얻었다고 할 때마다 ‘줄 거 다 주고 와서 뭘 얻어?’ 했는데 정말 그 말의 참 뜻을 이젠 알겠어요. 이번 일정을 통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얻었어요. 제 주변을 더 돌아보고 더 나눠야 할 것 같아요.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아, 다른 분들도 이런 제 마음을 읽고 조금이라도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준비해간 훌라후프와 제기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수경을 고아원 원장인 션 삼낭(32)이 불렀다. 그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아이들이 전통 춤 공연을 선물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흥이 오르자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이수경과 일행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한참 동안 고아원에는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이수경과 일행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출발 당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던 이들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벅찬 감동을 나눴다. 행복을 나누러 갔다가 사랑을 더해온 셈이다. “제가 생각하는 나눔이란, 음…. 어려운 것이 아니다?(웃음) 나눔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거고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쉽게, 그러나 생각만 하지 말고 다 같이 실천했으면 해요. 나누면 배가된다고 하잖아요. 실천하는 나눔은 몇백 배가 된답니다!” 플랜코리아와 함께 사랑을 나눠요! 플랜코리아는 1937년 설립된 국제 아동 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의 한국지부다. 1937년 설립된 국제 아동 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은 비종교·비정치·비정부 국제기구이자,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기구다. 1953년부터 1979년까지 26년간 플랜의 후원을 받아오던 한국은 1996년 세계 최초로 수혜국에서 후원국 자격으로 입지를 전환했다. 현재 대한민국, 영국, 미국 등 21개 후원국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전 세계 48개국 1백50만 명의 아동들과 9백만 명 이상의 지역사회 주민들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 문의 및 신청 02-790-5436, www.plankorea.or.kr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원상희 ■취재 협조 / 플랜코리아>
[재능을 나누는 사람들]①캄보디아에 음악으로 희망을 전한 손담비
[재능을 나누는 사람들]①캄보디아에 음악으로 희망을 전한 손담비
2011. 01. 10 15:50 연예
ㆍ“나누는 것만큼 배가된다는 말, 그 진정한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아요” 무대 위 화려한 디바 손담비가 지난 11월 캄보디아로 떠났다. 인구의 80%가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나라, 국민소득이 400달러가 채 안 되는 나라, 30년 전 학살의 상처가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나라 캄보디아. 손담비는 그곳에서 열두 살 소년 사쿤을 만나 따뜻한 나눔을 전했다. 손담비라는 이름으로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여행. 스타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떠난 여정에서 그녀는 1일 음악 선생님으로 그곳의 아이들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사실 떠나기 전에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어요. 제가 의외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고, 그곳 아이들이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알기에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긴장도 됐거든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무척이나 밝은 표정으로 반겨주었어요. 기쁘게 맞아주어 가슴이 짠하기도 했고 한결 마음이 놓였죠.” 손담비가 찾아간 곳은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 스와일리엔. 수도인 프놈펜에서 차와 배를 번갈아 타고 4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이 반가웠던 이유는 그곳에도 희망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의 미소를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환한 미소 뒤에는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가 만난 열두 살 소년 사쿤은 태어나기 전 아버지를 잃고 가족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소년 가장이다. 하루에 300원을 벌기 위해 낮엔 이웃의 소를 대신 키우고 밤에는 물고기를 잡는다. 야자수 잎을 엮어 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쿤은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TRK센터에서 하루 한 시간 영어 수업을 받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은 집에서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이 서서 공부를 하는 사쿤을 보고 그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에 바닥이 무너져 다리를 다쳤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환경인데도 무척 밝아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공부가 하고 싶다는 사쿤을 위해 해주고 싶은 건 많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우선 구멍이 숭숭 뚫린 낡은 대나무 바닥과 야자 잎으로 벽을 감싼 허름한 집을 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함께 캄보디아를 찾은 자원봉사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합친 결과 사쿤 가족에게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튼튼한 집을 지어줄 수 있었다. 사쿤이 편안하게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꼼꼼히 고른 책상도 선물했다. 사쿤이 공부하는 TRK센터에서 1일 음악 교사가 되어 재능 기부에 동참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준비해간 탬버린과 실로폰, 멜로디언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며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살고 있는 곳도,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을 만들어내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희망, 손담비가 전하고 온 음악의 힘이었다. “사랑을 나누겠다고 찾아간 곳에서 더 큰 사랑을 배우고 왔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저 역시 덩달아 웃을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생겼어요. 나누는 것 만큼 배가된다는 말, 그 진정한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아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제공 / 코피온>
재능을 나누는 사람들
캄보디아로 부부 첫 해외 봉사 다녀온 최수종·하희라 부부
2008. 03. 12 연예
배고픔에 지치고 병에 걸린 아이들은 이 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죽어간다. 세계 최대 빈민 국가인 캄보디아의 빈민들은 여전히 구호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끝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한다.캄보디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여행지다. 특히 앙코르와트 사원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유적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 화려하고 거대한 유적지는 제대로 둘러보려면 며칠이나 소요될 정도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캄보디아의 가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캄보디아 빈민들의 삶은 잘 꾸며진 관광 특구와는 극심한 차이가 있다. 오랜 내전으로 여전히 세계 최대 빈민 국가라는 오명을 면치 못하는 나라 캄보디아, 이곳에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방문했다.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보며 눈물 흘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사회복지법인 하트하트재단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의료진들과 의료 봉사에 참여했다. 캄보디아는 심각한 건강의 사각지대다. 이들은 앙코르와트 유적지 안에 위치한 오지 마을 ‘룸쩌익’, 의료 봉사진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물 위의 마을 ‘꼼뽕클레앙’ 등 소외된 마을 등을 찾아갔다. 두 아이의 부모이기도 한 이들 부부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위생이나 건강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들은 그곳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처럼 걱정하고 돌봐주었다. 어린이무료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을 찾아가 아이와 부모를 격려했고, 병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캄보디아 의료 봉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자들의 혈압과 몸무게를 체크하며 진료를 지원했고, 그곳 사람들에게 위생 교육을 하는 등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 일과가 끝난 후 피곤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현지 아이들과 투호, 단체 줄넘기, 짝짓기 놀이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바로 몇 주 전 동료 배우 신이와 네팔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최수종은 익숙한 솜씨로 아이들을 돌봤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현지인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는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무덥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 감동받았죠. 열과 성을 다하는 팀원들 덕분에 더 힘을 내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었네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시 캄보디아에는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고, 모두 1천4백 명 이상의 환자가 몰려들어 진료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강행군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이들 부부는 안타까움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했다. 하희라는 환자들이 아이 약과 어른 약을 혼동할까 우려해 현장에서 아이의 약 봉투에 직접 곰을 그려주는 재치도 발휘했다. 그녀의 진심 어린 모습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하희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아 안타까웠어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준비해간 학용품, 티셔츠, 치약, 칫솔 등을 직접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생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나눠요” 이들 부부의 선행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결식아동을 위해 사회복지단체 굿네이버스에 1억원을 기부했고, 1억원 상당의 아동복을 홀트아동복지회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 외에 알려지지 않은 선행은 일일이 논할 수 없을 정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기부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최수종은 최근 OBS 경인TV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에 출연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억원은 제게 큰돈입니다. 굉장히 큰돈이죠. 예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안이 무척 어려웠어요. 그때 무의식중에 ‘하나님, 제가 나중에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만나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죠. 제 봉사나 기부는 하나님과 약속이에요.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거쳐왔기에 남의 고통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지금은 원하는 만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왔지만, 영원히 풀지 못할 한이 있다고 고백한다. “지금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고생을 많이 하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시 아버지가 남겨주신 건 빚뿐이었어요. 그때는 ‘이제 나는 가장이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죠. 어머니는 충격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서 일어나지도 못하셨어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때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어요. 1980년대는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살았어요. 밥 먹기 힘들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떠올리기 힘들 만큼 고생스러웠던 시절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차마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제가 눈물이 많아요. 드라마 찍으면서도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장면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나죠. 아버지가 생각나요.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해요.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요.”“이제야 연기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는 1년 반 동안 대조영으로 살았다. ‘대조영’은 시청률 30%를 웃도는 성공적인 드라마였다. 성공의 주역은 당연 최수종이다. 그는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연기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그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인내와 노력의 시간들이 있었다. “역사에서 완벽하게 고증되지 않은 인물을 어떻게 연기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제 열정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까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앞서 ‘태양인 이제마’, ‘해신’ 등의 성공으로 사극 흥행의 보증수표가 됐지만, 그의 짙은 쌍꺼풀이 장애가 되기도 했다. “이상하게 쌍꺼풀이 화면에서는 더 짙고 동글동글하게 나오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역사의 영웅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는 지적이 있었어요. 제 외모에서 어떻게 위엄이 나오느냐는 것이죠.” 그는 대조영을 완성해내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아예 식단을 바꾼 것이다. “대조영을 시작할 때 캐릭터를 어떤 인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밥이나 밀가루를 입에 대지 않고, 과일이나 채소로 끼니를 때웠죠. 스태프들과 다 같이 둘러 앉아 먹을 때는 반찬 위주로 먹었고요. 건강이요? 의사들이 ‘정말 좋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건강해졌어요. ‘이런 식단이 내 몸에 맞는구나’ 생각했죠. 요즘도 밥을 먹긴 하지만 채소 위주로 먹고, 소식하고 있어요.” 연기의 달인 최수종은 정작 연기를 논할 때 “이제야 연기를 알 것 같다”며 겸손해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콤플렉스는 있다. 선한 인상이다. “제 인상 때문에 악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세요. 저는 악역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쌍꺼풀 때문에 선해 보이지만, 가끔 (남들이) 눈을 보면 무섭다고도 해요. 지금까지 두 차례 정도 감독님들에게 ‘이런 드라마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비디오테이프를 드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안 시켜주시더라고요. 배우들은 선택을 받는 입장이잖아요. 어떤 역이든 당위성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아내는 하늘이 주신 선물, 아이들은 보너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대한민국 공식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다. 결혼한 지 어느덧 15년. 항상 신혼처럼 사는 이들 부부는 정말로 한 번도 다퉈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싸움의 원인 제공은 남자가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싸움이 되지 않죠. 만약 남자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데 아내가 ‘다음날 일이 있는데 이제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져요. 그때 남편이 ‘남자가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다면 싸움이 됩니다. 그럴 때는 그냥 잘못했다고 하고, 아내를 술자리로 데려가 보세요.” 실제로 최수종은 하희라를 술자리에 데려간 적도 있다. 평소 술을 잘 못하는 하희라가 기분이 좋아져서 과일주 반병을 마셨고, 술이 좀 취하니 먼저 “노래 부르러 가요”라고 했단다. 그날 이후 하희라는 술자리에서 늦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술 먹고 집에 늦게 들어가면 이렇게 써놓은 쪽지가 있더라고요. ‘만약 들어와서 나를 깨우면 벌금 ○○. 이 돈으로 ○○을 살 것임’ 그래도 깨우긴 하죠(웃음).” 이들 부부는 대화를 많이 한다. 촬영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휴대폰을 통해 수시로 통화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묻고, 하루 일정을 보고한다. 여전히 신혼 분위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아내는 하늘이 제게 내려준 선물입니다. 아이들이요? 보너스죠. 그만큼 제겐 아내와 아이들이 소중합니다. 제 옆을 항상 지켜주며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는 말을 해주는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나이 70, 80이 되어도 청바지 입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이제 사랑뿐 아니라 나눔도 함께하는 최수종·하희라 부부. 이들 부부의 사랑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더 많은 곳에 사랑의 손길이 닿길 기대한다. ■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제공 / 하트하트재단하트하트재단을 통해 사랑을 나누어요 www.heart-heart.org 우리은행 163-360225-13-002 ARS 060-702-1004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