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41 건 검색)
- “손주들 얼굴 좀 보자” 케냐로 날아간 할머니
- 2025. 01. 08 20:33문화
- ... 동안 홀로 한국에 살았다. 이대로 아들 가족이 한국에 오기만 기다릴 순 없었던 그는 더 늦기 전에 케냐에 가기로 결심한다. 21시간에 달하는 대장정에 오른 할머니. 그를 기다리는 건 케냐에서 병원을...
- 총 맞아 숨졌는데 사인이 ‘교통사고’?…케냐 경찰 ‘폭력 은폐’ 의혹
- 2025. 01. 07 16:07국제
- ... 시신을 수습한 영안실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케냐에서 영안실에 기록되는 1차 사인은 시신을 인계하는 경찰이 직접 기록한다. 이후 정식 부검을 거쳐...
- 케냐 남부에 500㎏ 우주 쓰레기 추락
- 2025. 01. 02 14:28국제
- ... 우주 쓰레기를 묘사한 모식도. 과학계에선 약 1억3000만개로 추정한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아프리카 케냐 남부의 한 마을에 무게가 500㎏ 달하는 우주 쓰레기가 떨어졌다. 1일(현지시간) 케냐...
- 케냐 경찰 아이티 배치 50일···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 갱단
- 2024. 08. 14 16:07국제
- ... 그치지 않으면 총으로 쏘겠다”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CNN에 전했다. 그는 당시 경찰도, 케냐 경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안보지원군(MSS)도 현장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2021년...
스포츠경향(총 65 건 검색)
- 케냐의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 도핑 위반으로 무려 6년 자격 정지
- 2024. 06. 06 08:16 스포츠종합
- 로넥스 키프루토. AFP 10㎞ 로드 레이스 세계 기록 보유자인 로넥스 키프루토(25·케냐)가 도핑 규정을 어긴 혐의로 6년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BBC는 6일 “키프루토가 선수생체통제파일(ABP·Athlete Biological Passport)을 통해 금지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키프루토가 2020년 발렌시아에서 세운 기록,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따낸 1만m 동메달이 모두 발탁된다”고 보도했다. 키프루토가 2020년 발렌시아에서 세운 10㎞ 최고기록(26분24초)도 취소된다. 선수생체통제파일(ABP)은 선수의 생체 특성과 생리학적 변화를 추적해 도핑을 감지하는 데 사용된다. 선수 혈액 및 소변 등을 통해 선수가 금지약물을 사용할 때 변화하는 수치를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식이다. ABP는 스포츠에서 도핑을 막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금지 처분을 집행한 경기윤리유닛(AIU)은 “패널은 키프루토의 변론을 기각했다”며 “ABP의 비정상적인 변화는 혈액 조작과 같은 것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키프루토는 스포츠 중재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그는 2023년 5월 11일에 금지 처분을 받기 전에 이미 불법 도핑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잠정적으로 선수 자격이 정지됐다.
- ‘바다 건너 사랑 2024’ 케냐 찾은 안내상 “가뭄으로 위기. 절실히 도움 필요”
- 2024. 05. 12 09:28 연예
- 배우 안내상이 출연하는 KBS1 글로벌 나눔 다큐 ‘바다 건너 사랑 2024’ 케냐 편의 한 장면. 사진 KBS 배우 안내상이 글로벌 나눔 다큐 KBS1 ‘바다 건너 사랑 2024’를 통해 케냐를 찾는다. 12일 밤 방송되는 ‘바다 건너 사랑 2024’에서 안내상이 방문한 케냐는 기후 변화로 인해 살인적인 홍수와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는 최악의 가뭄을 반복해 겪고 있다. 식량안보 조정그룹에 따르면 가뭄과 기아에 시달리는 케냐 사람이 600만명이 넘고, 5세 미만 아동 97만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안내상은 케냐 안에서도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투르카나 지역을 방문해 가뭄과 기아에 허덕이며 노동에 내몰린 세 명의 아이와 함께했다. 첫 번째로 만난 9세 소녀 츄베는 이웃집 창고에 홀로 지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래전 병으로 숨을 거뒀고, 아버지 역시 다른 도시로 일을 나갔다 세상을 떠났다. 이후 가족의 추억이 남은 집마저 강풍에 무너져 하나뿐인 남동생과도 떨어져 살게 됐다. 그는 다시 동생과 함께 살날을 그리며 매일 4~5m 깊이의 구덩이에 들어가 사금을 찾고 있다. 안내상은 츄베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며 위로를 전했다. 배우 안내상이 출연하는 KBS1 글로벌 나눔 다큐 ‘바다 건너 사랑 2024’ 케냐 편의 한 장면. 사진 KBS 또한 투르카나 남쪽 켕고레렝 마을에서 지내는 로테케니도 만났다. 목축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가축이 모두 죽어 로테케니의 가족은 전 재산을 잃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지며 로테케니는 1년 전 영양실조에 걸렸다. 앙상한 몸으로 ?m 주째 누워지내는 그는 그런 와중에도 가족을 위해 일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에 안내상은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만난 11세 카디예는 4년 전 병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1년 후에 아버지마저 잃었다. 이후 카디예는 8살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두 동생 에카이와 아카이를 혼자 돌보고 있었다. 세 자매는 하루도 쉬지 않고 채석장에 나가 시멘트 재료로 쓰이는 돌을 캐고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했지만, 카디예는 교사가 꿈이라고 전했다. 아이의 사연을 들은 안내상은 눈물을 흘리며 카디예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했다. 배우 안내상이 출연하는 KBS1 글로벌 나눔 다큐 ‘바다 건너 사랑 2024’ 케냐 편의 한 장면. 사진 KBS 가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기본적인 것조차 갖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란 안내상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저도 그냥 생각만 했었는데, 와보니 간절한 도움이 정말로 필요합니다”라고 케냐 아이들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안내상이 출연하는 글로벌 나눔 다큐 ‘바다 건너 사랑 2024’는 12일 오후 11시10분 KBS1을 통해 방송된다.
- 김호중 “아이들은 죄가 없다” 케냐 찾아 내비친 안타까움
- 2024. 01. 25 09:15 연예
- 가수 김호중. tvN 방송화면 캡처 가수 김호중이 기후 위기를 맞은 케냐 투르카나를 방문해 따뜻한 희망을 전했다. 지난 24일 오후 7시 30분 tvN ‘희망의 빛, 블루라이팅’이 첫 방송됐다. ‘희망의 빛, 블루라이팅’은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이 다시 한번 희망을 찾도록 마련된 캠페인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에서 김호중은 약 18시간의 비행을 거쳐 케냐 투르카나 지역에 도착, 아이들을 위한 희망 여정을 떠났다. 최악의 가뭄을 맞이해 메마른 투르카나 지역의 대지를 본 김호중은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물에 대한 흔적이 하나도 없다”라며 충격에 휩싸였다. 불과 2년 전까지 강이었다는 땅에 김호중은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기후 위기의 현실을 몸소 깨달았다. 이후 김호중은 투르카나 지역에서 가장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을 만났다. 지하수를 얻기 위해 강바닥을 파내 만든 스쿱홀에서 흙과 부유물이 섞인 물을 자연스럽게 마시는 아이들의 상황에 김호중은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서 (마시고 있다). 질병을 얻을 걸 알면서도 이 친구들은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심각한 현실을 전했다. 곧이어 도심에 위치한 병원에 도착한 김호중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김호중은 기후 위기로 200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 또는 영양부족 위협인 상태를 전하며 “안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작고 말랐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호중은 “‘큰 주삿바늘이 들어갈 수 있는 혈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라며 “아이들은 죄가 없잖아요”라며 진심을 드러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간 김호중은 샤드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2살 나이에 가장이 되어 식수를 얻기 위해 매일 왕복 5시간을 걸어 다니는 샤드락의 사연에 김호중은 가시밭길을 동행하는 데 이어 함께 축구를 하며 추억을 선물했다. 김호중은 “(샤드락과) 비슷한 건 아니지만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저도 어렸을 때 제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었다. 외로운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냈다. 샤드락에게는 형이 없는데 ‘(제가) 형이 되어줘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같이 시간을 보냈다”라며 속마음을 내비쳤다. 또한, 김호중은 샤드락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건네며 “형은 꼭 샤드락 보러 다시 올 거야. 약속할 거야”라고 다짐했다. 아이들의 평범한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따뜻한 노래까지 선물한 김호중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식수 정화제라고 4g만 넣어도 물 10L를 정화할 수 있다. 전쟁 등 큰 국제 이슈로 후원이 열악하고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충분히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도움이 절실한 상황을 이야기, 극한의 환경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점을 짚으며 모두의 관심을 독려했다. 한편, 김호중은 ‘희망의 빛, 블루라이팅’을 비롯해 클래식 단독쇼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 김호중, 케냐에 희망 전한다···“꿈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 2024. 01. 17 09:00 연예
- 케냐 투르카나를 찾은 가수 김호중. 이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제공 가수 김호중이 어린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후원을 독려한다.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는 김호중이 24일 오후 7시 30분 방송되는 tvN ‘희망의 빛, 블루라이팅’에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함께 케냐 투르카나 지역을 찾아 리얼 스토리를 전한다고 17일 밝혔다. 해당 방송은 tvN 최초로 모금 방송으로 김호중이 케냐 투르카나 지역을 찾아 희망을 선물하고 관심을 독려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김호중은 대기근을 겪는 케냐에서 오염된 식수로 이중고를 겪는 난양아키피 마을을 찾아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열 두 살 샤드락을 만난다. 케냐를 찾았던 김호중은 “샤드락에게 꿈을 물었을 때 아무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바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며 “엄마 아빠를 병으로 잃은 샤드락에게 의사란 꿈이 삶을 지탱하는 의지 같았다. 샤드락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따뜻한 관심과 후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김호중은 마음 아픈 사연과 함께 ‘You Raise Me Up’ 등을 부르며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케냐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독려할 예정이다.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월드리포트]아프리카 모범생 ‘케냐의 타락’(2008. 02. 05)
- 2008. 02. 05 국제
- 부정선거로 촉발된 유혈사태 장기화… 종족 갈등에 경제양극화 겹쳐 수습 난관 유혈사태로 난민이 된 케냐 여성들이 22일 국제구호단체의 물품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 부정 시비로 시작한 케냐 유혈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종족 간 무차별 살육전으로 치달으면서 불붙은 폭력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음와이 키바키 현 대통령 측과 라일라 오딩가가 이끄는 야권은 선거 결과와 정부 구성 문제를 놓고 연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구 언론은 한때 ‘아프리카의 모범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대륙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였던 케냐마저 또 다른 분쟁지역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도대체 케냐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거 후폭풍에 흔들리는 케냐 케냐를 지금의 혼란으로 밀어넣은 직접적인 계기는 2007년 12월 27일의 대선이다. 2002년 집권한 키바키는 경제 성장과 안정론을 근거로 재선을 노리고 있었고, 이에 맞서 ‘오렌지야당운동(ODM)’의 오딩가 대표는 정권 교체를 주장했다. 케냐인들의 높은 참여 속에 치른 대선은 개표 도중 키바키 대통령이 돌연 작업을 중단시키고, 며칠 후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부정 의혹에 휩싸였다. 여론조사는 물론 대선 직후 실시한 개표에서 앞서고 있던 오딩가 대표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키바키가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케냐 선관위원장도 “키바키가 선거를 이겼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 의문을 증폭시켰다. 선거 부정을 둘러싼 논란은 곧 거리 소요 사태로 번졌다.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대규모 슬럼가인 키베라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소요는 급속도로 케냐 곳곳에 퍼져나갔다.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단순 항의를 넘어 약탈과 방화, 보복 살인으로 비화한 폭력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케냐의 연말연시는 피로 물들었다. 일련의 사태로 현재까지 숨진 이는 7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케냐에서 대선 이후 난민이 25만 명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넘쳐나는 난민을 수용할 곳이 없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등 긴급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불안은 점점 커지고 아프리카에서 선두를 달리던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전염병과 물자부족 등으로 10만여 명이 기아에 처했다는 국제 사회의 경고는 케냐가 극심한 식량 위기에 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혈 사태가 키바키 대통령의 부족인 키쿠유족들을 집중 겨냥하는 양상으로 나타나자 인종 청소 또는 제노사이드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구 주류 언론에선 1994년 후투족들이 100일간 투치족 80만 명을 집단학살한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빗대어 케냐를 ‘제2의 르완다’로 지칭하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케냐의 경우, 르완다같이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으로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21일자에서 이미 선거운동 기간 때 지역의 부족별 회의에서 타 부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내용을 논의하는 등 ‘종족 캠페인’이 난무했다고 보도했다. 종족 갈등은 예견된 비극 케냐 야당 지지자들이 23일 나이로비에서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뛰어가고 있다. 선거전이 유혈 충돌로 얼룩진 것이 케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다당제 도입 후 첫 총선을 치른 1992년부터 2005년까지 폭동과 종족 간 비방이 종종 반복되어 나타났다. 부패와 연고주의에 물든 정치인들이 종족 간 감정을 부추겨 정치적 지분을 얻으려 한 탓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종전과는 사뭇 다른 규모와 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부터 일기 시작한 종족 간 불화에 더해 케냐의 경제 양극화, 국제정치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케냐는 40개가 넘는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키바키 대통령을 배출한 키쿠유족은 전체의 약 22%로, 가장 부유한 종족이다. 1963년 독립한 이래 이들이 정치·경제 등 전 분야의 주요 자리를 독점하며 케냐를 지배해왔다는 것이 최근 다른 종족들에게서 집중 포화를 받는 배경이다. 그 자신이 키쿠유족이었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는 키쿠유족에게 온갖 특권을 줬다. 비옥한 땅이 많은 서부에 키쿠유족들을 집단이주시켜,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던 칼렌진족이나 루오족 등이 소유한 토지를 헐값에 사들이도록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케냐에 잔존하는 뿌리 깊은 종족 간 반목은 실상 제국주의의 달갑지 않은 유산이다. 종족 간 차이를 부각시키고 한쪽에만 특혜를 주는 일명 ‘분할통치’ 전략의 결과로 종족 간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것. 케냐가 독립한 후에도 정치·경제적 이권을 계속 유지하려던 영국은 종족 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구역을 책정하기도 했다. 하버드대 아프리카학 캐롤라인 엘킨스 교수는 “식민 역사를 고려하면 케냐에서 종족 갈등이 좀 더 일찍 불거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아프리카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오랜 종족 간 혐오가 실제로는 ‘식민지적 현상’이며, 파키스탄·짐바브웨·이라크 등 다른 과거 영국 식민지들에서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종족 갈등에 더해 경제 양극화도 유혈사태를 심화하는 요인이다. 키바키 정권 하에서 케냐는 연평균 5~6%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케냐 전 국민의 55%가 하루당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는 조사는 아프리카의 모범국치고는 부끄러운 성적표다. 이들의 박탈감은 ‘키바키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케냐는 어디로 전략적 이유로 서구가 케냐의 부정부패를 용인한 것도 사태를 키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케냐를 아프리카 대테러전 전초기지로 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도 키바키 정권이 출범한 1년쯤 뒤에 반부패 정책을 총괄하던 이가 영국에 망명해 부패 실상을 폭로했음에도 이를 간과하고 오히려 원조를 더 확대했다. 결과적으로는 키바키의 입지를 넓혀준 셈이다. 이처럼 복잡한 요인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것은 케냐 사태를 수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짐작케 한다. 키바키 대통령이 거국 내각 구성 등을 제안하며 야당을 달래려는 분위기지만, 오딩가 측의 입장은 완강하다.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오딩가는 “나는 지금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라며 당분간 타협은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오딩가의 ODM은 케냐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케냐인들의 바람은 대선과 같은 날 치른 총선에서 드러난 듯하다. 오딩가의 야당은 210석 중 95석을 차지해 키바키의 당을 두 배나 앞질렀고, 키바키 정권 장관의 절반은 선거에서 패했다. 국민이 ‘변화’를 주문한 것이다. 정치권과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 슬기로운 타협점을 찾을지가 관건이다.
- 월드리포트
- [월드리포트]케냐에 개밥 원조계획 논란(2006. 02. 21)
- 2006. 02. 21 국제
- “기아 어린이 개 취급하는 꼴” 비난받아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냉동된 개밥 파우더를 주려는 뉴질랜드 여인이 호주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케냐 구제 자선단체 회원이며 개 비스킷을 전문으로 만드는 마이티믹스사의 창업자인 크리스틴 두루몬드는 “올 3월 처음으로 케냐 빅토리아 호수에 위치한 루진가 섬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개밥 파우더 6000여 개를 식량 지원 차원에서 주려 한다”고 최근 언론에 밝혔다. 약 42t에 이르는 개밥 파우더 전달 계획은 마이티믹스사가 운송비까지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지 어린이 160명이 두 달 동안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양이다. 두루몬드에 따르면 개밥 파우더는 개에게는 물론 인간 몸에도 좋은 음식으로 냉동 건조된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곡류는 물론 녹용도 포함돼 있다. 그녀는 케냐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친구인 루이스 멕길의 딸에게 현지의 기아 현황을 들은 후 이 계획을 생각해냈다. 영양학적으론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개밥 파우더는 개의 체중을 늘리는 데에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티믹스의 대변인인 게이너 시비터는 “다소 엽기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영양학적으로는 개밥 파우더가 쌀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자사제품 홍보 의도” 의심 하지만 이 계획이 알려지자 뉴질랜드는 물론 호주 언론까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세계 빈민구제기구인 OXFAM 뉴질랜드 지부 회장 베리 코스티도 “마이티믹스의 개밥 파우더 전달 계획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며 “윤리 문제를 접어 두고 뉴질랜드에서 케냐까지의 운송 거리를 고려할 때 보관 문제 때문에도 이 계획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진정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고 싶다면 그 지역 식품회사를 지원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현지 식품회사가 현지인의 체질에 맞으면서 영양도 풍부한 음식을 만들어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선 방법”이라며 “마이티믹스가 광고 효과를 노리고 이번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케냐 정부도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완전히 개 취급한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케냐 특별 프로그램 담당 장관 존 문에스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개밥 파우더의 반입을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밥 파우더 전달 계획이 윤리 문제로 확대돼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처음 이 계획을 착안한 두루몬드는 자신이 전달하려는 개밥 파우더가 인간에게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 역시 매일 두 끼 식사를 개밥 파우더를 물에 섞어 먹는다”며 직접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만든 개밥을 먹는 장면까지 보였다. 하지만 진실(?)을 전달하려는 두루몬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양학자들은 그의 계획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오래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은 신체 면역 체계가 크게 떨어져 있어 새로운 음식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며 “개 음식을 인간에게 주려는 계획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 월드리포트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케냐,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의 노래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 2011. 02. 09 19:18 화제
-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고로고초 마을. 하루하루 쓰레기로 연명하던 마을의 아이들은 절망의 눈빛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며 희망을 말하지 않았을 때 한국인 임태종 목사는 이곳에 합창단을 꾸렸다.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노래는 이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쓰레기 더미 속의 아이들, 빵보다 절실했던 희망 지라니 합창단을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도 수원의 축복기도원교회에는 전날 내린 눈으로 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지난 11월,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지라니 합창단이 묵고 있는 곳.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처음 보는 방문객이 낯설기도 할 텐데 아이들은 마냥 해맑다.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지라니 합창단의 주인공들이다. 지라니 합창단은 2007년 첫 공연은 시작해 올해 네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50여 일 동안 전국을 돌며 24회 공연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아이들에게서는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무대에 더 서고 싶다고 임태종 목사를 조르는 아이들이다. “한국에 들어와 이틀에 한 번꼴로 공연을 했어요. 다들 강행군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나 봐요. 스태프들은 지쳤는데(웃음). 공연이 끝나면 제게 ‘파더, 내일 공연 없어요?’라고 물어요. 없다고 하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요. 사랑에 굶주렸던 아이들이 노래하며 사랑을 받게 됐고 그로 인해서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어서 쉬라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노래하는 걸 보더니 자기도 무대에 나가겠다고 조르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아이들이 정말 노래를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노래에 담긴 아이들의 행복은 지라니 합창단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이견이 없는 ‘천상의 목소리’.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최빈민국의 쓰레기 마을에서 왔다 하여 처음 동정의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아이들의 행복을 부러워할 정도다. “아이들의 상황과 형편을 아는 분들은 아이들이 굉장히 어두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직접 만나보고는 굉장히 놀라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밝고 명랑하다고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합창단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죠.” 임태종 목사지라니 합창단 아이들의 집이 있는 고로고초 마을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전역에서 매일 수백 톤의 쓰레기가 유입되는 곳이다. 고로고초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 어마어마한 쓰레기 더미는 악취를 뿜어낼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의 온상이다. 극단적인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마을 사람들은 쓰레기 속에서 쓰레기에 기대어 산다. 6년 전 구호활동을 목적으로 고로고초 마을을 찾았던 임태종 목사는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제가 20년 동안 구호활동을 하며 전 세계 열악한 지역을 많이 다녔지만 고로고초만큼 처참한 곳은 없었어요. 텅 빈 눈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져 허기를 달래는 아이들을 봤을 때의 충격은 너무도 컸죠. 쓰레기 한가운데에서 한 아이가 풀린 눈으로 아무런 삶의 의욕도 없이 쓰레기 더미를 뒤져 무언가를 먹고 있더군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모습이 또렷해졌어요. 그 아이를 그렇게 두고 온 것이 무척 가슴 아프고 자꾸만 눈에 밟혀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죠.” 평소 가난한 이들에게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그이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보고 싶었다. 당장 먹을 것을 주는 건 쉽다. 하지만 언젠가 음식은 바닥날 것이고 그들은 쳇바퀴 돌 듯 다시 쓰레기 더미로 돌아갈 것이다.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임 목사의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당장 끼니를 굶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 아닌 노래를 가르쳤냐고 물어요. 배고픔을 달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와 희망에 대한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장 저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자신감으로 스스로 당당히 일어서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믿었고요. 사람을 회복시키는 데 노래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죠.” 숱한 어려움과 고난 끝에 모아진 아이들의 노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스와힐리어로 ‘좋은 이웃’이라는 뜻의 ‘지라니’ 합창단이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임 목사는 우선 아이들을 가르칠 지휘자를 찾았다. 한국에서 케냐까지는 비행기로 20시간이 걸린다. 그 먼 곳까지, 그것도 쓰레기로 둘러싸인 마을에 선뜻 아이들을 가르치러 오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음악 교육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었다. ‘당돌’하게도 세계 정상의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한 달여의 설득 끝에 성악가 김재창씨를 상임지휘자로 초빙했다. 로마 콘설바토르 수석 졸업에 세계적 성악대회 우승 경력을 가진 그의 참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험난한 과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고로고초 아이들에게 ‘도레미’로 시작하는 서양식 음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다.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의 눈에는 절망의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빛을 쫓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좀처럼 모아지지 않던 소리는 서서히 노래가 되어 들려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악을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흑인 특유의 음악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음은 점점 자리를 찾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입었다. 세계 최고의 합창단을 만들겠다는 임 목사의 다짐은 더 이상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지만 정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아요. 대부분 고생한 일들이죠. 처음에는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어요. 합창할 공간이 없어서 쓰레기산 위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시작했는데 연습 내내 지독한 악취와 쓰레기 타는 연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죠. 노래하려고 입만 열면 벌레가 날아들어서 아이들은 도망가고…. 연습실이 마련되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어요.” 공식적으로 합창단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생계조차 막막한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노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연습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이런저런 설득 끝에 아이들을 합창단으로 끌고 오면 또다시 부모가 데려가는 지루한 줄다리기가 반복됐다. 수없이 많은 난관이 가로막았지만 음악의 힘은 위대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다. “노래 부르지 말고 쓰레기 주워 오라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몰래 연습에 나오는 아이, 자신을 학대하는 새엄마를 피해가며 살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연습에 빠지지 않는 아이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아이들이 노래 부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지라니 합창단은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영혼을 울리는 한 맺힌 노래, 전 세계 7만여 명에게 감동 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합창단을 결성하고 4개월 만인 2006년 2월, 나이로비에 위치한 케냐 국립극장에서 열린 첫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합창단의 아름다운 노래에 찬사를 보냈고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인 2007년 6월에는 대통령궁에서 공연을 가졌다. ‘대통령 앞에서 노래한 슬럼가의 아이들’로 케냐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곧 날개를 달았다. 목표는 전 세계였다. 처음으로 케냐를 벗어나 한국으로 날아온 합창단은 25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미국으로 향했다. 2008년 뉴욕과 시카고, 필라델피아 공연까지, 이제까지 지라니 합창단의 무대를 지켜본 사람은 전 세계 7만 여 명에 이른다. 임 목사는 2008년 여름, 예일대 공연을 마치고 예일대 합창단 상임지휘자인 제프리 두마 교수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예일대 공연에서 합창단은 여섯 번의 기립박수와 다섯 번의 앙코르 무대가 끝난 후에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동양의 한국 사람들이 아프리카 슬럼가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오늘 미국 주류사회의 백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을 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지구촌 인종을 뛰어넘는 상징적인 날이 아닌가 싶다고 하더라고요. ‘기적’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합창단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얼마든지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맑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노래는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눈빛 어디에도 쓰레기 더미에 휩싸인 절망은 없다.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임 목사는 아이들이 가진 ‘한(恨)과 애환(哀歡)’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힘겨운 삶에 담긴 애환이 묻어 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영혼을 울리는 한 맺힌 깊은 소리예요. 그 진심이 듣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요. 듣는 이들이 느끼는 감동은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하다 보면 노래를 듣고 그 절절한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 그리고 합창단 아이들 역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자주 흘린다. 맨 처음엔 노래 부르는 것이 힘들어서 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기쁨의 눈물이었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끼니를 해결하고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말하지도, 눈빛을 맞추지도 못했던 자신들이 노래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는 거예요. 아이들 스스로 자신감과 가능성을 가지게 된 거죠. 기대 이상의 변화가 합창단은 물론 케냐 나이로비의 쓰레기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 한국 공연 중 소년원의 청소년 수감자들과 함께했던 ‘2011 신년 희망 콘서트’는 의미가 깊다.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이제껏 그 어떤 공연에도 냉담했던 소년원 아이들은 합창단의 노래에 마음을 움직였다. “합창단 아이들은 비교할 수 없이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에요.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거의 없어요. 여섯 형제의 아버지가 모두 다른 집의 아이도 있고 입에 담기조차 힘든 학대를 받는 아이들도 있죠. 그런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니 아마 그것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 같아요. 그런 아이들이기에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글로벌 리더의 꿈으로 자라난 쓰레기 더미에 심은 희망의 씨앗 노래는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쓰레기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도둑질과 마약, 폭력에 빠져 있던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리고 점점 그 희망은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임태종 목사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놀라운 과정을 지켜봤다. “합창단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바뀌었어요. 생활습관과 표정, 행동이 바뀌며 생활이 달라졌죠. 가족과 주변을 돌볼 줄 알게 됐고요. 동네 아이들조차 가까이 다가가기 싫어했던 리건은 지금 합창단 내에서 제일의 젠틀맨이 됐고 악명 높았던 불량 청소년 라울랜스는 고등학교 입학 3개월 만에 전교 2등이라는 성적을 냈어요. 아이들에게 음악적 재능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들 하나하나 천성적으로 타고난 끼와 재능이 있어요. 그것을 잘 발굴하는 작업을 해서 무궁한 가능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언젠가 아이들이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자라나 그 지도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아이들의 꿈이 바르게 자라날 수 있게, 반듯하게 주춧돌을 놓아주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임태종 목사는 조금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예술 교육을 위해 ‘지라니 아트스쿨’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술과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예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전인적 인격으로 자라나는 것을 후원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지난 5년 동안 체득한 문화의 힘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킨 그 힘은 아이들이 언젠가 지구촌 화해 시대를 열어갈 글로벌 리더로 자라나는 데 밑바탕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40명의 합창단이 비행기를 타고 한 번 공연을 할 때마다 약 2억원의 비용이 든다. 사람들은 그 돈으로 왜 빵을 사주지 않고 노래를 가르치는지 묻는다. 그에 대한 답은 아이들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은 무엇으로도 따질 수 없는 값진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강은호, 지라니문화사업단>
- 케냐로 의료봉사 다녀온 모델 오미란
- 2007. 12. 21 연예
- 모델 오미란이 개그맨 김용만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곳에서 일일 간호사로 활약했던 오미란. 그녀가 케냐 빈민가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다양한 부족이 옛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나라, 1인당 GNP가 겨우 3백50달러이며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 육상대회(특히 장거리 경주) 때는 늘 선두에 서는 나라, 최고급 커피 생산지, 1년 내내 눈 덮인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나라. 바로 아프리카 케냐다. 모델 오미란이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그 머나먼 곳에 다녀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개그맨 김용만과 안과 의사들의 자원봉사단체인 비전케어스와 함께 ‘프리 아이 캠프(Free Eye Camp)’ 의료 자원 봉사단으로 참가한 것이다.보이지 않아도 체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마치 영화 속인 듯,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우리가 거쳐온 과거일 수 있지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너무 가난했어요. 겨우 두 줌의 옥수수 정도로 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1 마사이족 노인에게 사랑의 열매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김용만 2 나이로비에서 80Km 떨어진 카지아도의 키자베 병원에서 마사이족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 3 마사이족 환자들의 개안수술을 돕고 있다. 4 키베라에서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그녀가 목격한 케냐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도심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한국의 1960~1970년대쯤 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렇게 어려운 곳에 의료시설이 잘 되어 있기는 만무했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안과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처음에는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안내를 해도 쭈뼛거리며 잘 안 오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몰려서 줄을 서서 진료를 받으셨어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글자도 잘 안 보이는 채로요. 그냥 방치한 채 사는 거죠.” 대부분의 안과 질환이 간단한 수술과 치료로 실명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평생 앞을 못 보고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의료진들을 도와 일일 간호사로 시력을 체크하고 기록했다. 또 사람들을 안내하고 이동시키는 역할도 맡았다. 의사소통은 영어. 케냐는 부족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공용어는 영어다. 도심에서도 두 시간 반(실제로는 3시간 이상 걸렸다고 한다)이나 떨어져 있는 마사이족이 사는 마을은 이 중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병원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가보니 대충 건물을 지어놓고 오래되어 관리가 되지 않은 곳이었어요. 마사이족은 산속에서 사냥하면서 농사짓고 살고 있어요. 어떤 분은 산에서 눈이 나뭇가지에 찔렸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한 거예요. 실명 위기에 있는 사람이었죠. 한쪽 눈이 흰자만 보이는 분도 계셨고요. 정말 가슴 아팠어요.” 마사이족은 지금도 전통 의상인 빨간 색깔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산다. 오미란은 문명의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꾸미지 않고 살아서인지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어떤 분들은 자기 나이도 잘 몰라요. 나이를 여쭈어보면 옆사람을 쳐다보면서 눈을 껌뻑거리죠.”“큰 도움이 아니어도 좋아요” 오미란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어린아이들이 너무 혜택을 못 받아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이 많이 보고 많이 배워야 하는데 낙후된 환경에서 자라는 걸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 속상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는 참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작은 것에 투정 부리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오미란은 지난 4년 동안 ‘사랑의 열매’에서 활동해왔다. 그동안 이 단체를 통해 조산아 백일 잔치 행사와 조산아 가정 돕기 패션쇼, 소아 백혈병 돕기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이번 행사는 기간도 길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라 많은 홍보대사들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미란은 현재 방송과 홈쇼핑 사업 등으로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봉사를 위해 과감하게 스케줄을 조정해 참여한 것이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작은 힘인데 어떤 효과가 있을까?’하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번 하고, 반복해서 일을 할수록 효과가 나타나는 거예요.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그 분야에 대해 모르고 있던 분들이 ‘그런 게 있었어요?’하고 묻기도 해요. 좋은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정보가 없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녀는 사랑의 열매뿐 아니라 슈퍼모델 모임인 아름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아름회는 사랑의 열매와 공동으로 연말 이벤트나 행사 등을 마련하기도 한다. 모두 그녀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시니까 깨닫는 바가 많아요. 나만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큰 도움이 못 되더라도 작은 것으로도 얼마든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남한테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봉사함으로써 그걸 갚아나간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제공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