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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92 건 검색)

레바논 새 총리에 나와프 살람 ICJ 소장···‘헤즈볼라 지지’ 현 총리 실각
레바논 새 총리에 나와프 살람 ICJ 소장···‘헤즈볼라 지지’ 현 총리 실각
2025. 01. 14 07:47국제
... 총리까지 실각하며 레바논 정치권 내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여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고강도 공격으로 수뇌부가 연이어 사망하는 등...
레바논 새 대통령에 ‘미국 물밑 지원’ 육군 참모총장 유력···헤즈볼라 힘 빠졌나
레바논 새 대통령에 ‘미국 물밑 지원’ 육군 참모총장 유력···헤즈볼라 힘 빠졌나
2025. 01. 09 16:10국제
... 던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지난해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여간...
이스라엘군 “시리아 내 헤즈볼라 연락책 제거”
이스라엘군 “시리아 내 헤즈볼라 연락책 제거”
2024. 12. 04 08:57국제
... 공습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자마가 레바논 남부 키암 지역에서 정보조직 수장, 헤즈볼라 다마스쿠스 사령부의 작전 책임자 등을 역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마는 시리아에서 헤즈볼라로...
시리아이스라엘헤즈볼라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중 상호 공습···레바논 사망자 속출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중 상호 공습···레바논 사망자 속출
2024. 12. 03 09:18국제
... 레바논 육군 불도저를 공격해 군인 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휴전 합의를 위반하고 리타니 강 남쪽으로 무기를 이동시키자 대응조치 차원에서 공습한...
이스라엘헤즈볼라레바논휴전중동 전운 고조

스포츠경향(총 1 건 검색)

‘이슈 PICK 쌤과 함께’ 이스라엘 VS 헤즈볼라–레바논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슈 PICK 쌤과 함께’ 이스라엘 VS 헤즈볼라–레바논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됐나
2024. 11. 17 06:27 연예
KBS 17일 오후 7시 10분에 방송이 될 ‘이슈 PICK 쌤과 함께’에서는 현재 레바논이 겪고 있는 비극의 시작은 언제였고 원인이 무엇인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 레바논 그리고 나아가 중동정세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지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이스라엘, 중동 전문가 성일광 교수와 함께 이야기 나눠본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대립이 저강도 전투에서 고강도 전투로 격화, 수도 베이루트를 포함한 레바논 전역이 큰 피해를 입고 있고 사상자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가자 전쟁은 1년 넘도록 이어지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가운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바로 다음 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저강도 접전이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최근 두 세력 간의 전투는 ‘저강도 접전’에서 ‘고강도 전쟁’으로 성격을 완전히 바꾸었는데, 신호탄이 된 사건이 바로 지난 9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서 발생한 ‘헤즈볼라 대원 삐삐 폭발 사건’이다.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 11명이 사망하고 약 4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KBS 이 삐삐 폭발 사건은 수년간 헤즈볼라를 속여온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의 공작으로 밝혀졌다. 헤즈볼라가 타이완의 골드아폴로 사에 무선 호출기를 주문, 헝가리의 제조사 ‘BAC’로부터 납품을 받았다. 하지만 이 BAC라는 회사가 사실은 모사드의 유령회사로 밝혀졌다. 제조 과정에서 소량의 폭탄을 장착하여 설계한 탓에 삐삐를 사용한 헤즈볼라 대원들은 손과 얼굴 등에 치명상을 입었다. 수년에 걸쳐 공모해 온 작전을 이 시기에 시행한 이유에 대해 성 교수는 “헤즈볼라가 무선 호출기의 결함을 감지하고 이란에 정밀 감식을 의뢰하자 작전이 발각되기 전에 서둘러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전부터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해 온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으로 헤즈볼라의 지휘부 인사가 모두 사망한 가운데,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어 온 수장 ‘하산 나스랄라’마저 지난 9월 27일 사망했다. 하산 나스랄라의 지도로 헤즈볼라는 세계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헤즈볼라군의 병력은 헤즈볼라의 주장에 따르면 약 10만 명에 달하며 이는 7만 명으로 구성된 레바논 정규군을 능가한다. 그야말로 ‘국가 안의 국가’로 자리 잡은 헤즈볼라는 학교, 병원 등 국민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며 헤즈볼라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고, 레바논 곳곳에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다. KBS 헤즈볼라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레바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요청으로 프랑스 통치령에서 벗어나 1926년 레바논 공화국이 건국된다. 그러던 중 1967년 3차 중동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유입,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에 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와 PLO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결국 1975년, 레바논을 15년간 비극으로 몰아넣은 ‘레바논 내전’이 발발한다. 레바논 정부는 1976년 시리아에 개입을 요청한 데 이어 1978년 이스라엘군이 PLO 소탕을 목적으로 레바논을 침공한다. 1982년, 친이스라엘 마론파 대통령인 바시르 제마엘이 임기 시작 전 폭탄 테러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독교 민병대는 대통령 암살의 배후로 PLO를 의심했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급습해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학살은 이스라엘군이 마을을 포위, 봉쇄하는 가운데 행해졌다. 9월 16일에서 18일까지, 사흘에 걸쳐 자행된 ‘사브라-샤틸라 마을 학살 사건’으로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약 460명에서 3,50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대한 내정 간섭 노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982년, 헤즈볼라가 탄생한다. 1979년 이란혁명 후 시아파의 맹주로서 우뚝 선 이란이 소수파로 차별을 받던 레바논 내의 시아파를 지원하여 헤즈볼라라는 강력한 시아파 무장단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헤즈볼라는 결성 직후인 1983년 4월,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그리고 같은 해 10월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 자살 폭탄 테러와 프랑스군 사령부 테러를 가했다. 결국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으로 이루어진 평화유지군은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이에 더해 1982년 침공 후 철수하지 않고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던 이스라엘군까지 몰아낸 헤즈볼라의 인기는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그 후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군인 공격 및 납치를 계기로 2006년 7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34일간 전면전을 벌여 레바논 민간인이 1,000명 이상 사망한다. 전쟁 당시 베이루트의 기간 시설이 이스라엘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었고, 국민들이 입은 큰 피해는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 약화로 이어진다. 이는 이스라엘의 ‘대헤즈볼라 전략’으로 볼 수 있으나,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KBS 성 교수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통해 이스라엘이 얻고자 하는 것은 크게 이스라엘 국가적 차원과 네타냐후 총리 개인적 차원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적 차원으로 볼 때, 이미 헤즈볼라의 포격으로 이스라엘 북부는 초토화되어 레바논 국경 근처의 주민 6~7만 명이 대피한 상황이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더 커질 피해를 고려한다면 헤즈볼라와의 최종적인 합의와 휴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수장을 비롯하여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사망하여 합의 주체가 부재 중이다. 이스라엘의 딜레마인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개인적 차원으로 본다면 그는 현재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 여러 혐의로 재판 중이다. 전쟁을 계속 이어 나간다면 재판이 늦춰지고, 총리직을 유지하는 동안은 처분을 면할 수 있기에 개인적인 이득과 국민의 지지를 고려하여 전쟁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세간의 분석이다. 2026년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네타냐후는 현재 이란과도 무력 충돌을 빚으며 ‘헤즈볼라 섬멸’을 넘어 ‘중동의 재편’을 꿈꾸고 있다. 현재 중동의 정세는 이란과, 이란의 대리조직이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수니파 걸프 국가와 맞서고 있다. 이란이 맹주인 시아파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 역시 적대적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고, 예멘 등지에서는 미군에 대한 공격도 일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수니파 벨트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걸프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에서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속 최악의 국가적 위기를 맞아 핵 합의를 통한 경제력 회복이 필요한 상황으로,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선택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새 대통령인 트럼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집중한 바이든의 대중동 전략은 소극적인 대처로 결국 실패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성 교수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여 이스라엘과 분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힘이 들더라도 ‘이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트럼프가 미국과 이란과 핵 협상을 진행하고, 이란 역시 대리조직 지원을 중단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동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출구 전략이 없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잘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닌,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간 중동 전쟁으로 생겨난 약 4만 5천 명의 사상자와 약 240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전쟁 난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전쟁과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모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슈 PICK 쌤과 함께’ 207회 ‘이스라엘 vs 헤즈볼라 – 레바논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됐나’는 11월 17일(일)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후에는 KBS홈페이지와 wavve, 유튜브 KBS교양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월드리포트]헤즈볼라 지도자 아랍영웅 반열에(2006. 08. 08)
2006. 08. 08 국제
이집트, 나세르 전 대통령과 동격으로 칭송… 서방에 맞서 아랍민족주의 과시 공통점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이끌고 있는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지 50주년을 맞아 이집트의 일부 야당 지도자들과 야당 성향의 신문들이 레바논의 무장단체이자 정치조직인 헤즈볼라 최고지도자(공식직함은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46)를 영웅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7월 25일 보도했다. 나세르 전 대통령(1918~1970)은 이집트 왕정을 타파한 뒤 이집트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인물로 수에즈 운하 국유화와 아랍연합 창설을 통해 아랍민족주의를 서방 세계에 과시한 20세기 최대의 아랍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나스랄라는 주지하다시피 6월 12일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빌미를 제공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이다. 이집트가 그런 나스랄라를 나세르 전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 서방정책으로 전쟁까지 촉발 우선 나세르 전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50주년을 하루 앞두고 AP통신이 보도한 이집트 언론의 ‘나스랄라 찬양론’을 살펴보자.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창한 아랍민족주의인 ‘나세르주의’를 표방하는 주간지 ‘알 카라마’는 ‘나스랄라, 나세르의 발자취 속에’라는 제목과 함께 나스랄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실었다. 야당 주간지 ‘알 아라비’도 ‘나세르 1956-나스라하 2006 : 우리는 싸울 것이며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하의 별지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집트 언론들이 두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게 된 것은 두 사람이 서방에 맞서 펼친 정책과 그 결과가 일치한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의 반 서방정책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아랍민족주의를 만천하에 과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세르는 1956년 7월26일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장악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전격 국유화함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급기야 이스라엘과의 전쟁(수에즈 전쟁 또는 2차 중동전쟁)을 촉발시켜 중동전역에 범아랍민족주의 물결이 넘치게 만들었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스라엘과 프랑스, 영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시나이 반도 등 이집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 수에즈 운하를 11월 6일 재점령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듬해인 1957년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군대를 철수시켰다. 반면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자국병사 2명을 납치한 데 대한 보복으로 헤즈볼라와 그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레바논에 대규모 군사공세 속에서 강력한 저항을 펼침으로써 아랍인들 사이에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국제적인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알 아라비’의 논설위원 모하메드 알 바즈는 “압델 나세르는 끝까지 국가해방을 위해 싸웠고 나스랄라도 마찬가지”라며 “나스랄라는 협상을 거부한 채 상실된 국가적 자부심 회복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알 아라비’의 다른 논설위원인 사이드 알 수웨이크리는 “이집트에 대한 삼중 공격이 있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용감한 아랍인인 나스랄라는 악의 세력과 점령자들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며 나스랄라의 대 이스라엘 투쟁에 찬사를 보냈다. 이집트의 주요 야당인 무슬림 형제당의 고위 간부 압델 모네임 압둘 푸트흐도 “나세르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시온주의자들에 맞서 싸웠고 오늘날 나스랄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물론 나세르와 나스랄라를 동일시하는 움직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나세르주의 정당의 사예드 사반은 “나세르는 모든 식민주의 세력과 맞서 싸웠으며, 그 지역에 있던 혁명세력을 지원했다”면서 “나스랄라의 역할은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저항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나스랄라가 나세르에 비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케파야운동’의 조지 이스라크 대변인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두 사람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처사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국가의 독립과 자부심을 지키는 영웅을 절박하게 찾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꺼져가는 아랍민족주의에 새롭게 불을 지를 지도자가 나스랄라라는 분석이다. 도대체 나스랄라는 어떤 인물이기에 나세르에 비견되는 것일까. 국제사회 압력에 맞서 나홀로 싸움 20세기 아랍 최고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나스랄라는 1960년 8월 3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1975년 레바논 내전 당시 조상들의 고향인 레바논 남부의 알 바주리야로 옮긴 뒤 당시 시아파 정치조직인 ‘아말운동’에 가입했다. 그는 이란에서 이슬람 공부를 한 뒤 당시 헤즈볼라 지도자였던 아바스 알 무사위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자 나스랄라는 22살의 나이에 헤즈볼라에 가입해 레바논 남부지역과 베카계곡에서 항전을 벌였다. 그는 10년 뒤인 1992년 알 무사위에 이어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의 지도하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00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로부터 철수케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나스랄라는 레바논은 물론 아랍국가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또 2004년 이스라엘 기업인과 사망한 병사 3명을 430명의 헤즈볼라 및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맞교환한 일은 그가 투쟁력뿐만 아니라 협상력도 갖춘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리엘 샤론 및 베냐민 네타냐휴 전 이스라엘 총리의 자서전을 읽었다고 한 적이 있다. 이유는 ‘적’을 알기 위해서였다. 파티마 야신과 혼인해 5명의 자녀를 둔 그는 장남 무하마드 자와드를 1997년 이스라엘과 전투 중 잃었다. 그의 사무실과 집은 지난 7월 14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스랄라는 지난 7월 26일 헤즈볼라 자체 방송인 알 마나르 TV를 통해 “미국과 시온주의의 시각은 ‘신 중동’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며 신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은 퇴출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신 중동’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수 차례 쓴 용어이다. 나스랄라는 “신 중동에서는 어떤 저항도 있을 수 없으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의 저항운동이 제거돼야 하는 것”이라며 항전의 확대를 선언했다. 나스랄라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국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라는 적과 맞서 4주째 홀로 싸우고 있다. 국제사회도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정확히는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군을 제외한 모든 세력의 무장해제)를 요구한 2004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59호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유엔 주도하의 다국적군 파견 문제도 사태 해결의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태 해결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나세르 전 대통령이 50년 전 영국·프랑스·이스라엘과 제2차 중동전쟁을 치를 때에는 미국이라는 중재자가 있지만 지금의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고 지지자다. 미국의 주장대로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시리아와 이란만이 사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일까.
월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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