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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바다의 왕자’ 뻔하지만 당당한 귀환(2023. 12. 27 07:00)
- 2023. 12. 27 07:00 연예
- 전편에 비해 확실히 무대는 커졌고, 유머나 전율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추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버디무비의 큰 틀 안에서 기시감과 익숙함이 차고 넘친다. 지루할 틈은 없지만, 특별한 색깔이나 개성은 찾기 힘들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목: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Aquaman and the Lost Kingdom) 제작연도: 2023 제작국 : 미국 상영시간: 124분 장르: 액션, 모험, 판타지 감독: 제임스 완 출연: 제이슨 모모아, 패트릭 윌슨,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앰버 허드, 랜달 파크 개봉: 2023년 12월 2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최근 들어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불신과 우려는 더욱 가중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후 급속하게 침체한 극장 분위기와 맞물려 직격탄을 맞은 형국이다. 원인은 여러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열풍의 시작으로 지목되는 <아이언맨>(2008) 이후 10여 년 이상 유지됐던 인기가 사그라들 때가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마디로 관객들이 질렸다는 것이다. 인기에 편승한 과도한 투자와 세계관 확장도 몰락의 한 부분으로 지목받는다. 명분과 외모만 다를 뿐 계속해서 반복 생산되는 유사 작품들로 초기의 신선함과 재미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외형적으로만 몸집을 키운 작품들의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결국 마진율이 현저히 약화한 셈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플래시>, <더 마블스> 등 최근 개봉한 일련의 작품들 흥행 기록은 과거에 비교하면 가히 처참하다는 표현을 피할 수 없다. 나름의 북미지역에서는 인지도 있고 제작비도 1억2000만달러를 투자한 <블루 비틀>은 아예 한국에서는 극장에 걸리지도 않은 채 OTT로 직행했다. 이러한 형국이다 보니 이번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개봉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각이 희망적일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외부적 환경을 차치하고도 작품 자체를 둘러싸고 일어난 여러 잡음과 구설수로 인해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악재에 악재가 거듭된 블록버스터 가장 치명적인 것은 극 중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메라 역의 배우 앰버 허드와 연인이었던 조니 뎁 사이의 법적 분쟁이다. 한국에서야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는 게 당연하지만, 본국에서는 세기의 막장 스캔들로 악명이 자자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여주인공을 교체한다는 둥, 촬영분의 상당 부분을 들어냈다는 둥 여러 소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실제 영화상에는 나름의 예상보다는 비중 있는 분량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초 제작 발표된 이 작품은 원래 2022년 12월 개봉 예정이었다. 이후 두 번의 연기를 거치며 올 12월로 확정됐는데, 이런 과정에다 수차례 진행된 테스트 시사에서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는 소문이 더해지며 작품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어쨌든 결국 뚜껑은 열렸고,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이틀 빠른 지난 12월 20일 개봉으로 전 세계 최초 개봉이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개봉 상황 역시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모처럼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서울의 봄>의 위세가 아직 건재할 뿐더러,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같은 날 개봉하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이 공개된 것이 2018년 겨울이었으니 딱 5년 만에 돌아온 속편이다. 전작을 연출했던 제임스 완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고, 출연진도 대부분 그대로 돌아왔다. ■속편의 법칙에 충실한 전형적 오락영화 전편에서 이부형제 옴 마리우스(패트릭 윌슨 분)의 야욕을 물리치고 아틀란티스의 왕이 된 아쿠아맨, 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 분)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광기에 사로잡힌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의 폭주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배돼 있던 옴과 힘을 합쳐야 할 처지에 놓인다. 전편을 무난히 즐긴 관객이라면 이번 속편 역시 큰 불만이 없을 수도 있겠다. 전편에 비해 확실히 무대는 방대해졌고, 유머나 전율을 자아내는 자잘한 요소들을 추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신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 한국계 배우 랜달 파크의 비중이 늘어난 부분이 반갑고 즐거웠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발견된다.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다룬 버디무비의 큰 틀 안에서 수많은 기시감과 익숙함이 차고 넘친다. 빠른 전개와 현란한 상황들로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지만, 이 작품의 색깔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색깔이나 개성은 잡아내기 힘들다. 이나마라도 정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뛰어난 연출 감각을 선보인 제임스 완 감독이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위안거리를 찾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리오 바바 감독의 ‘흡혈귀 행성’ /film-grab.com 마리오 바바 감독은 1960~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흥했던 범죄물과 공포영화를 지칭하는 일명 ‘지알로(Giallo)’ 장르의 대가로 명명된다. 하지만 애정극부터 역사물, 판타지까지 장르를 구애받지 않는 초월적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다. 무성영화 시절 특수효과 담당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1930년대 촬영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1960년 <사탄의 가면>을 통해 본격적인 감독의 길을 걷는다. 그의 연출은 표면상 보통의 상업영화에 부합하는 작업임에도 허를 찌르는 독특한 발상과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이탈리아 상업영화 발전의 중요한 과업으로 인정받는다. 그중에서도 1965년 발표한 SF 공포영화 <흡혈귀 행성>(Terrore nello spazio)은 후대 SF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유명하다. 존 카펜터의 <괴물>(The Thing·1982)이나 토브 후퍼의 <뱀파이어>(Lifeforce·1985), 데이비드 토히의 <에이리언 2020>(Pitch Black·2000),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Mission To Mars·2001) 등이 직접적으로 그 영향력 아래 있다고 지목되는 영화들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Alien·1979). 정작 감독과 각본가 댄 오베넌은 <흡혈귀 행성>은 본 적조차 없다고 항변했지만, 형식과 설정, 비주얼 면에서 많은 부분이 닮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감독 제임스 완도 작품을 준비하며 <흡혈귀 행성>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로 악당 ‘블랙 만타’가 복수를 위해 탈취하는 잠수선의 내부와 부하들의 복장은 노골적으로 <흡혈귀 행성>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왔다.
- 시네프리뷰
- [렌즈로 본 세상]득점왕의 귀환(2022. 05. 27 13:53)
- 2022. 05. 27 13:53 스포츠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이 지난 5월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득점왕 트로피인 황금 축구화 ‘골든부트’와 함께 왔다. 입국장 앞을 가든 메운 팬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의 득점왕 등극을 축하했다. 앞서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올 시즌 38경기 일정 중 35경기에 나서 23골을 터뜨리며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에 오른 대기록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6월 2일 브라질전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국내 평가전을 치른다. 오는 10월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을 앞둔 마지막 전력 담금질이다. 손흥민은 이번에도 대표팀의 주장으로 뛴다. 푸른 잔디에서 펼칠 손흥민과 대표팀 선수들의 싱그러운 몸짓을 기대한다.
- 렌즈로 본 세상
- [편집실에서]중국 200년 만의 귀환(2021. 07. 02 13:59)
- 2021. 07. 02 13:59 오피니언
- 7월 첫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대 대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앞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대선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날은 중국 공산당 10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온 말이 섬뜩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축대회 연설에서 “중화민족이 괴롭힘을 당하는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괴롭히면)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얘기지만 주변국들도 그냥 흘려넘길 얘기는 아닙니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강하면 힘들었습니다. 강대국을 옆에 둔 이웃나라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2005년께 중국을 다녀왔던 재정경제부 고위관료는 “중국에서 발 마사지 받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5년여가 지난 지금 그의 말은 현실이 됐습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일본을 앞질렀고, 미국도 곧 따라잡을 기세입니다. 코로나19는 그 시기를 더 앞당겨 오는 2028년이면 미중 간 경제규모가 역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겨우 7년 뒤의 얘기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부산을 떠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0여년 전만 해도 그들은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연에는 전 세계에서 특사들이 방문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이때의 기록입니다. 중국인들이 느낄 벅찬 감정을 이해할 만합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중국의 귀환은 우리에게도 사대의 예를 갖춰야 했던 시대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결코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두 강대국 틈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이 호랑이라면 우리는 그 호랑이 위에 올라타야 합니다. 지금까지 중국 부상의 가장 큰 수혜를 받은 나라는 한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의 저가 노동력과 큰 소비시장은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5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리더가 운전대를 잡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는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낡음을 청산하고 비전을 제시할 리더가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절대강자가 없다는 것은 반가울 수 있습니다. 여야 후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기술적으로 많이 쫓아왔다지만 당분간 흉내낼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입니다. 군웅할거를 통해 최고의 지도자가 뽑히기를 기대합니다.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대선전을 지켜보겠습니다.
- 편집실에서
- [박상영의 Re:코노미]사라진 단어 ‘인플레이션’의 귀환?(2021. 04. 09 11:40)
- 2021. 04. 09 11:40 경제
- ㆍ코로나로 침체된 경기 반등 기대감 확산되자 인플레이션 예상 목소리 2000년대 들어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까.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가 예상보다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올해 6.5% 성장하며 45년 만에 중국 성장률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도 이 같은 경기 회복 기대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1년 말에는 위기 이전 수준을 훨씬 웃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UPI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반기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3월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2%를 상회하더라도 선제적 통화 긴축을 하지 않겠다”며 일정 수준까지는 용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플레이션의 귀환? 그동안 인플레이션은 사라진 유물 취급을 받았다.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됐음에도 물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것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그중 온라인 쇼핑업체의 성장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전보다 사람들은 싼값에 물건을 사게 되자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졌다는 이른바 ‘아마존 효과’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은 2018년 보고서를 통해 국내 온라인 상품 판매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같은 해 근원 인플레이션율(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은 0.02~0.03%포인트 떨어진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전 세계 공산품 가격을 끌어내렸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성장률이 낮아진 점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돌았다. 여기에 자동화와 국제 분업체제의 확산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 오히려 물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시차의 문제였을 뿐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됐기 때문에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침체 장기화와 디플레이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했던 정책들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본 것이다. 특히 1조9000억달러(약 2139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안 입법작업을 끝낸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에는 3조달러(약 3381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패키지를 준비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반기는 정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각국 정부 입장에서도 인플레이션은 나쁘지 않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주요국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돈을 풀고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정부 부채는 물론 민간 부채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은 부채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급증했던 영국의 정부 부채도 파운드화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해결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영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59%에 달했지만 1971년에 56.3%까지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으로 GDP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빚이 줄어들게 된 셈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물가안정보다 고용 회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점도 중앙은행이 섣불리 통화 긴축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한다. 실제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경제 수장들도 줄곧 경기 회복의 척도로 고용을 언급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일터로 복귀시키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이것이 완료될 때까지 목표를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2월에는 “지난해 2월 이후 노동시장을 떠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1월 실업률은 10%에 가깝다”며 고용지표의 일시적인 개선으로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미국의 나 홀로 성장에 기댄 만큼 신흥국과의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3월 30일(현지시간)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2013년의 긴축발작 때와 유사하게 미국의 금리 상승은 대외 금융 의존도가 높고 부채비율이 높아진 신흥국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며 “이들 국가는 회복이 느린 관광업에 주로 의존해 압박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으로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세는 저조한 모습이다. 2020년 4월 이후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금의 70% 이상이 중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에서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출 강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웃돌고 있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2021년 2월까지 신흥국에서 유출된 금액의 69%만 재유입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으로 자금이 모이면서 2010년에는 남유럽, 2013년에는 브라질과 터키가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불균형한 형태의 회복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에게는 미국의 빠른 회복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지난해 늘어난 빚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집값 상승과 주식 투자 붐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1726조원으로 1년 전보다 7.9% 늘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75.5%로 2019년 말보다 13.2%포인트 높아졌다. 소득과 비교해 채무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지원 대신 이자지원 등 금융지원에 치중했던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 박상영의 Re:코노미
- [문화프리뷰]싹쓰리 성공에 편승한 90년대 귀환(2020. 08. 21 15:20)
- 2020. 08. 21 15:20 문화/과학
- 올여름 가요계 주인공은 단연 ‘싹쓰리’다. ‘다시 여기 바닷가’, ‘그 여름을 틀어줘’, ‘여름 안에서’ 등 다수의 노래가 출시 직후 주요 음원차트 상위권에 들었으며, 두 달 가까이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 ‘다시 여기 바닷가’로는 Mnet <엠카운트다운>과 MBC <쇼! 음악중심>에서 1위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각종 차트와 음악방송을 싹쓸이하겠다는 이름 속 야망은 아주 쉽게 이뤄졌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결성된 싹쓰리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세 멤버 유재석, 이효리, 비의 인지도가 높고,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조합이었기에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가 수월했다. 여기에 그룹을 조직하고 노래를 만드는 과정을 방송에 담음으로써 친근감을 갖췄다. 멤버들의 유쾌한 대화와 장난기 넘치는 행동으로 시청자들은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노래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멜로디가 함께 화면에 흘러서 사전 홍보 효과도 누렸다. 싹쓰리의 탄생, 히트는 멤버들끼리 향유할 추억과 성과에 머물지 않는다. 싹쓰리는 듀스가 1994년에 발표한 ‘여름 안에서’를 리메이크하는 등 1990년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의 댄스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 활동을 포착해 여러 가수가 90년대 댄스음악 복원에 나섰다. 코요태가 유피의 1997년 히트곡 ‘바다’를, 걸그룹 시크한 아이들이 룰라의 1996년 히트곡 ‘3! 4!’를 리메이크했다. 자자는 본인들이 1996년에 낸 ‘버스 안에서’를 새롭게 구성해 선보였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는 아이돌 가수들을 불러 ‘피버뮤직 2020 쿨 썸머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해변의 여인’, ‘운명’, ‘애상’ 등 쿨의 대표작들을 다시 만들었다. 싹쓰리에 의해 대중음악계에 잠시 새 조류가 나타났다. 90년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반가운 현상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상파 음악방송은 죄다 아이돌 그룹들이 차지해 왔다. 근래 TV조선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흥행한 뒤로는 트로트 가수들이 브라운관을 무른 메주 밟듯 누빈다. 젊은 세대와 50~70대가 즐길 음악 프로그램은 여럿이지만 30·40대들을 위한 콘텐츠는 전무한 상황이다. 때문에 중년들로서는 90년대 재현 물결이 은혜롭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흐름은 판이 펼쳐졌을 때 편승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자자는 올해 23년 만에 신곡을 냈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코요태는 이따금 신작을 출품하긴 해도 늘 반응이 저조하다. 시크한 아이들은 유명하지 않은 신인 걸그룹의 집합이다. 시들시들한 이들이 탄력을 획득하기 위해 싹쓰리를 따른 결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나같이 ‘여름에는 댄스음악’이라는 암묵적 관습을 좇은 것도 헛헛함을 키운다. 어떻게든 한철장사에서 이익을 챙겨 보고자 부랴부랴 뻔한 상품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나온 모양새다. 근시안적 태도 대신 체계적인 구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벌일 때, 그리고 이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부피를 더해 갈 때 어떤 경향이 실하게 지속될 수 있다. 올여름 90년대 음악의 귀환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 문화프리뷰
- [언더그라운드 넷]PC방 전원차단 폭력성 실험, 전설의 귀환?(2020. 06. 19 15:22)
- 2020. 06. 19 15:22 사회
- “사실 ‘대리기자’ 3편을 사과영상으로 찍으려고 했어요. 그동안 사과할 기회가 마땅치 않았고….” 기자와 통화한 유충환 MBC 기자(43)의 말이다. 그런데 사과라니. 그 사건은 ‘폭력 수위가 높은 인터넷 게임이 아이들의 심성에 폭력적으로 작용한다’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한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실험을 담은 보도(사진)다. 유 기자가 두꺼비집 전원을 내리자 한참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2011년 2월 보도였다. 9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유튜브 캡처 “정치권과 연계해 게임 셧다운제를 지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게임 마녀사냥 그런 의도는 더더욱 아니었어요.” 유 기자의 회상이다. 발단은 한 초등학교 4학년 엄마의 제보였다. 초등학생들이 성인용 PC게임을 하며 채팅으로 주고받은 욕설을 접하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제보 담당자도 오간 채팅 내용을 출력해 들고 왔는데 놀라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 당시 보도에 그 ‘충격’을 담았다지만 그는 “당시 경솔했고, 잘못된 보도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의욕만 넘쳤던 것 같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연차도 어렸고, 깊게 생각 안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연히 논리가 성립되지 않은 실험이었죠. 대조군이 없었던 것도 맞고요.” 실험은 당시 코멘터였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던진 ‘아이디어’에 착안해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경기 안산의 한 PC방을 섭외해 주인의 양해를 얻은 뒤 전원을 끄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나온 의혹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중요한 아이템 거래를 하던 중 망친 것이 아니냐’는 등의 의혹도 있지만 실은 실험을 하기 전에 학생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지 미리 다 체크했습니다. 실험 이후에 ‘형이 미안하다’고 사과했죠.” 뭐 그렇다 치자. 새로 론칭한 ‘대리기자’는 어떤 콘셉트? “개인 유튜버와 달리 아무래도 저희는 뉴스입니다. 플랫폼이 유튜브라도 저널리즘이 들어가 있겠죠. 이슈 현장이나 실험에도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을 추구하려고 해요.” 사과하더라도 아마 비난은 남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닐 업보다. 기왕에 시작하는 거, 이번엔 실수가 없기를.
- 언더그라운드 넷
- ‘아날로그가 좋아’ LP 음반의 귀환(2019. 03. 18 14:11)
- 2019. 03. 18 14:11 문화/과학
-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음반 전시장. 턴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매장 방문객들이 빙빙 돌아가는 LP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바로 옆 진열장에 청음을 위해 시대별로 분류된 음반들을 손으로 훑어가다 보면 각양각색의 그림으로 장식된 정사각형의 음반 겉표지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문다. 음반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서 대여절차를 밟은 뒤 턴테이블 위에 걸자 예의 익숙한 LP 음색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만 바늘이 음반을 따라 흐르며 들리던 미세한 잡음은 과거보다 더 희미해지고 음색은 더 또렷해졌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이곳 ‘뮤직 라이브러리’와 바로 옆 ‘바이닐 앤 플라스틱’ 전시장에서는 음악을 넘어 취미생활 전반에 관련된 이와 같은 복고 아이템들도 함께 볼 수 있다. LP 음반 생산업체인 마장뮤직앤픽처스 엔지니어가 제작한 LP 음반을 검수하고 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 정태춘·박은옥, 김창완밴드 등 LP 발매 ‘폴라로이드’라는 상표명이 일반명사가 된 즉석인화사진기를 비롯해 타자기, 카세트 테이프와 재생기기까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뉴트로(new+retro)’라 불리는 새로운 복고 감성 상품들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LP의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단지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주목받는 아날로그 기반 품목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만 판매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하며 실제 음반을 찍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LP만은 예외다. 정태춘·박은옥, 김창완밴드, 김광석, 조동진 등의 ‘레전드’급 대중음악인 외에도 아이유나 에픽하이,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한정판 음반까지 LP로 발매하는 경우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1~12월 LP 음반과 턴테이블 거래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28% 늘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글로벌 뮤직 리포트 2018’을 보면 세계적으로도 LP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어 2017년 기준 전년 대비 22.3% 수익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음부터 재생까지 모든 과정에서 디지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현실에서 LP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발달과 맞닿아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의 음악 녹음은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사실 고성능의 음향장비로 듣는다면 같은 음원을 디지털기기로 재생했는지 LP 턴테이블로 재생했는지 구분하기란 어려워요.” LP 음반을 생산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음질의 차이가 큰 의미가 없어진 시대가 오면서 LP만의 아날로그 음색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음반 중 복각판과 신보의 비율이 6대 4 정도”라며 “단순히 LP에 추억을 가진 연령층 때문에 시장이 커진 것이라기보다는 젊은 층에서도 LP 음반을 내는 뮤지션들에게 큰 호응을 보내기 때문에 신보를 LP로 찍는 경우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따지면 LP 역시 처음에는 신기술의 집약체로 탄생했다. 1948년 미국 컬럼비아사가 처음으로 개발한 LP를 시연할 때까지 널리 쓰이던 SP(Standard Playing Record)는 한 면에 길어야 3~4분 정도밖에 녹음할 수 없었다. LP(Long Playing Record)라는 이름은 초기부터 면당 22분을 넘길 정도로 재생시간이 길다는 뜻에서 붙었다. 현재는 해외에서 보편화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바이닐(vinyl)’이란 이름은 LP를 만드는 소재인 폴리염화비닐(PVC)에서 유래한 것이다. LP의 등장으로 긴 재생시간이 필요한 교향곡이나 오페라 등을 한 장의 음반에 담을 수 있게 된 클래식 음악계는 물론이고 3~4분가량의 짧은 싱글 곡 위주로 음반을 냈던 대중음악계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한 음반에 여러 곡을 담는 정규 앨범이라는 개념이 정착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다시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원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나타났다. 한 곡 단위로 구매하고 듣는 문화는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과거부터 있던 소수의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LP가 부활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지난해 11~12월 거래액 128% 늘어 “젊은 손님들도 ‘스마트폰으로 들으면 뭔가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고, LP판을 만져보고 사야 진짜 뭔가를 샀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눈으로 보고 만져보면서 고르는 기분도 있으니까.” 서울 중구 황학동의 중고 LP 상가에서 만난 점주 김모씨(55)는 최근 이곳까지 음반을 찾으러 오는 젊은 손님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팝음악이나 국내 대중음악 음반,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식 음반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게를 찾는 얼굴들이 점차 젊어지고 있다.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마포구 홍대 주변에서 레코드숍을 열고 있는 점주들의 말도 비슷하다. “중고 LP면 음질이 좋다고 하긴 어렵고, 지금의 20대들이 어렸을 적 들었던 추억의 음색이라고 하기도 힘들죠. 결국 흔히 쓰는 말로 ‘갬성(감성)’ 때문에 찾는 것 같아요.” 레코드가게 주인 최모씨(40)의 말이다. LP를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음질이 저하되는 문제는 최소화하면서 아날로그 고유의 음색을 살린 점 못지않게 ‘가성비 좋은’ 보급형 턴테이블이 출시된 점도 LP가 인기를 모으게 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아날로그적 복고 ‘감성’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소비시장의 흐름이 바뀐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큰 부피를 차지하며 자리잡고 있던 ‘전축’이 사라진 이후 쓸 만한 기능을 갖춘 턴테이블을 국내에서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국내 수입된 제품의 폭이 좁고 가격도 비싸 소수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해외직구까지 해가며 턴테이블을 샀다. 하지만 지금은 LP에 입문하기에 부담없는 가격으로 기존에 쓰고 있던 스피커나 헤드폰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보급형 턴테이블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왕이면 음질도 좋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면 돼요. 바이닐(LP)이 CD나 카세트와도 다른 게 특유의 음색도 있지만 음반을 찾아 턴테이블에 올린 뒤 톤암을 잡고 바늘을 올려놓는 그 과정 자체가 매력이니까.” 한남동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만난 대학생 임호빈씨(24)는 달리 보면 번거롭다고도 할 수 있는 재생과정 자체가 LP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20대층의 큰 관심을 모은 ‘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뮤지션들의 유산을 직접 만지고 소장·수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임씨는 “딱히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지만 (음반을) 소장하면 수십 년 뒤 더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뿌듯해지는 느낌도 든다”고 덧붙였다.
- 수소경제의 귀환, 이번엔 안착할까(2018. 08. 27 14:50)
- 2018. 08. 27 14:50 경제
- ㆍ‘신기루 vs 미래 동력’ 논란 속 특정 대기업 지원용 비난도 기획재정부가 8월 13일 혁신성장의 로드맵 격인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에서 3대 전략투자 분야로 ‘수소경제’를 언급하면서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당장 국회에서는 수소를 법으로 규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에너지기본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8월 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혁신성장 관련 정부부처·기업·전문가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국가 연구기관인 녹색기술센터가 정의한 수소경제란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석탄, 가솔린, 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석연료의 환경오염문제, 자원고갈문제 등을 수소로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2000년대 초 등장한 말이다. 기재부는 국내 수소차나 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관련 상용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므로 정부가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만 잘 조성하면 글로벌 수소경제를 선도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수소경제에 대한 청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환경단체들은 수소경제의 핵심인 ‘수소’가 화석연료나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가공 에너지라는 점을 들어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수소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기재부가 꺼내든 수소경제 투자방안의 경우 사실상 수소연료전지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다를 바 없어 특정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수소경제 마스터플랜’ 수소경제에 적극적인 건 여당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최근 수소의 안전관리·사업법 제정안과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안, 한국가스공사법 개정안 등 수소에너지 관련 3법을 발의했다. 미세먼지 등의 문제에 친환경차인 수소차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지난 5월 확정된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수소차 국고보조금이 추가된 것도 여당 덕분이었다. 당초 환경부는 친환경차 보조금에 수소차를 넣지 않았다. 이에 여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넣는 게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결국 최종 추경 확정안에는 112억5000만원의 수소차 보조금이 추가됐다. 기재부가 3대 전략투자 분야로 재차 수소경제에 힘을 실어주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제 수소경제가 대세가 되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연말까지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안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다. 2019년 예산안에서 확정된 수소경제 투자금액은 1100억원으로 2018년(422억원) 대비 갑절 이상 늘었다. 하지만 기재부가 한 가지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이미 13년 전인 2005년 9월, 수소경제 구현을 목표로 한 종합계획안이 발표된 바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하여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인 이 계획안은 당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해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총 46페이지 분량인 이 계획안에는 수소경제의 장밋빛 전망에서부터 수소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소 생산, 유통, 수송,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및 연료전지 개발 투자, 연료전지차 보급 등 세부안이 총망라돼 있다. 왜 2005년이었을까. 수소경제의 근원부터 살펴봐야 한다. 수소경제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1년 취임하면서 에너지 자립 등을 이유로 수소경제를 언급하면서부터다. 이어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이에 화답하듯 2002년 <수소 혁명>이라는 책을 내면서 수소경제는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국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수소경제에 대한 보고를 처음 접한 건 2003년 12월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노 대통령에게 ‘미래에너지 기술 확보방안’이라는 제목의 서면보고서를 통해 수소경제를 소개했다. 노 대통령이 수소경제를 직접 체험한 건 2005년 3월 현대자동차의 시험용 수소연료전지자동차를 처음 타보면서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노 대통령은 수소차를 타며 크게 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달 뒤 장문의 마스터플랜이 탄생한 배경이다. LG경제연구원 기재부가 밝히지 않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2005년 화려하게 탄생한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이 언젠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기재부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마스터플랜을 만든 산업부도 이 플랜이 어찌됐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간경향>은 이 마스터플랜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산업부 내 담당부서와 유관부서 등에 수차례 마스터플랜에 대해 문의했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모르겠다”였다. 그렇다면 마스터플랜은 어디 갔을까.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수소차는 결국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함께 개발하던 연료전지는 정부 내 연료전지사업단 등을 거쳐 민간에도 기술이 보급됐고, 현재도 국책기관에서 연구 중이다. 그럼에도 마스터플랜을 두고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 마스터플랜이 내놓은 장밋빛 전망 중 현실화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시 정부는 마스터플랜에서 2020년 국내 수소차 보급을 200만대로 추정했다. 2020년을 16개월가량 앞둔 현재 수소차 보급은 200만대는커녕 1000대에도 못미치고 있다. 이마저도 국가가 수소차 한 대당 수천만 원의 막대한 보조금을 줘가며 보급시킨 결과다. 2020년까지 2800개 이상 건립하겠다던 수소스테이션(충전소)도 현재 기준으로는 전국에 10개가 안 된다. 수도인 서울에도 겨우 2개의 충전소가 있을 뿐이다. 2020년부터는 신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가정용 전력의 상당 부분을 연료전지로 대체하겠다는 계획도 발전용 연료전지 개발사업이 별다른 성과를 못내면서 모두 실현되지 않았다. 수소업계에서는 정책이 늘 제자리를 맴돈다는 뜻으로 ‘10년 또 10년’이라는 자조를 하기도 한다. “수소경제는 신기루” 비판 넘어설까 최대 2040년까지 내다보고 만들었던 마스터플랜이 사라진 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에서 수소경제는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 ‘신기루’와 같은 수소경제를 실패하지 않으려면 분명 과거 마스터플랜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나 공무원들도 큰틀에서는 문 대통령의 수소경제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수소경제 관련 연구를 하는 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수소경제의 개념이나 기술이 마스터플랜이 나왔던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다만 이번 기재부의 방안은 수소차 활성화를 위해 수소 생산 및 유통 등 인프라 구축에 보다 초점이 집중된 게 차이점”이라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수소경제 계획안은 만들어가는 중”이라면서도 “과거 마스터플랜 내용을 참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등은 수소경제가 과연 지속 가능한 모델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부장은 “수소경제의 핵심인 수소 자체가 천연가스나 석유 등 기존 화석연료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미 해외도 수소경제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 굳이 이 시점에 수소경제를 왜 다시 꺼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환경단체의 지적처럼 수소를 만들려면 반드시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수소경제의 최대 단점이자 난관이다. 이는 수소경제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코 경영연구원이 2005년 마스터플랜이 나올 당시 발간한 ‘수소경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수소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천연가스를 이용한 천연가스 개질법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서 발전한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수소를 만들려면 비용도, 환경오염 문제도 만만찮다는 게 문제다. 보고서는 “천연가스 개질법의 경우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생산비용이 가솔린보다 2배가량 높다”고 지적했다. 천연가스 개질법의 경우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켜 수소차가 친환경차라는 논리를 무색케 한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소생산의 경우 비용이 가솔린 대비 최대 5배에 달한다고 포스코 경영연구원은 분석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세먼지 대책으로 친환경 수소전기차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천연가스 개질법만큼 효율적인 방법으로 거론되는 게 원자력을 통한 수소 생산이다. 실제 한국수력원자력은 자체 블로그를 통해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이용해 물을 직접 분해한 뒤 수소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며 “수소에너지 상용화를 위해서는 발전단가가 낮은 원자력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홍보 중이다. 하지만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가 원자력을 끌어다 수소를 생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재부도 수소 생산 문제를 의식한듯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맞게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수소경제를 활성화한다면서도 수소 생산에 있어 가장 비용도 높고 효율도 떨어지며 기술발전도 덜된 방법을 택하겠다는 이야기다. 수소 제조비용과 환경오염 문제는? 수소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통하고 제공할 충전소를 짓는 문제가 남아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선보인 2세대 수소차 ‘넥쏘’의 경우 한 번 수소를 충전하면 최대 600㎞를 갈 수 있지만 충전소가 드물어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소차가 활성화되려면 특히 도심에 충전소를 짓는 것이 필요한데, 인구밀집지역일수록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다. 수소업계와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만에 하나 폭발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큰 탓이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200곳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하려던 계획도 기존 휴게소 사업자들의 반발과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 일부 지자체들이 충전소 건립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충전소 한 곳당 20억원에 달하는 건립비용이 걸림돌이다. 수소경제가 결국은 특정 대기업들에만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기재부가 발표한 수소버스 등 수소차 보급 확대와 인프라 확충은 모두 대기업이 주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수소차는 현대차의 완벽한 독점사업이다. 정부는 수소차 보급을 위해 넥쏘 구매자들에게 판매가(6800만원)의 40%가량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보조금만 3000만원에 달해 웬만한 중형차 값을 넘어선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혁신성장 계획이라는 게 결국은 대기업들이 투자하고 기업하는 데 뭐가 도움이 될지 들어준 꼴이 됐다”며 “혁신성장 중 바이오헬스가 삼성을 위한 거라면, 수소경제는 현대자동차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를 만들고 유통하는 수소업계도 SK나 효성 등 대기업들이 주로 참여 중이다.
- [터치스크린]레디 플레이어 원-원조 가족오락영화의 화려한 귀환(2018. 03. 26 17:04)
- 2018. 03. 26 17:04 문화/과학
- 거대하고 화려한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는 한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들로 대표됐던 기발하면서도 훈훈함이 넘쳐났던 80년대 가족오락영화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다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목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39분 장르 액션/ SF/ 모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타이 쉐리던, 올리비아 쿡, 벤 멘델존,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T.J. 밀러 개봉 2018년 3월 2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짧지 않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비로소 극장에 불이 켜지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린다. 어떤 이는 차마 내지르지 못한 감격의 탄성을 꾹꾹 눌러 흘리기까지 한다. 언론시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참, 표를 받으며 보니 일반관객 시사도 겸해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어떻든 분명한 건 함께 본 사람들 중 적잖은 수가 제대로 ‘감동’ 받은 듯 보이더라는 사실이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어니스트 클라인이 2011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최첨단 사이버 가상현실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을 잠식한 2045년의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실상은 80년대를 필두로 한 대중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총집대성해 추억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작품이다. 실제로 작가는 성장하면서 접했던 무수한 영화, 만화, 게임, 도서, 음악의 전방위적 대중문화에서 원작의 영감을 얻었고 그 중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수많은 유명 캐릭터와 브랜드의 각축장인 이 영화 속에서 미국 외에 유일하게 부각되는 국가는 일본뿐이다. <고질라>, <건담>, <아키라> 같은 유명 작품과 게임들이 비중 있게 등장할 뿐 아니라 극중 등장인물 가운데에서도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그룹을 일컫는 ‘톱 파이브’ 안에 일본인이 두 명이나 활약한다. 두 나라가 대중문화 안에서도 영상과 게임의 영역에 있어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본질과 별개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최첨단 디지털로 소환된 아날로그 서정 소설은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음에도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화되며 꽤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소설보다 짜임새가 탄탄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향수에서 창조된 이미지들이 빼곡히 들어찬 디지털 가상공간 ‘오아시스’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곳에는 아바타뿐 아니라 사람들이 잊고 있던 다른 형태를 한 의외의 인격도 존재한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은 뒤 영리하게 주제를 각인시킨다. 주제는 예부터 끊임없이 언급되어 왔던 우정, 사랑, 인간애 같은 고전적 화두다. 거대하고 화려한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는 한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들로 대표됐던 기발하면서도 훈훈함이 넘쳐났던 80년대 가족오락영화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다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80~90년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작품의 구성과 전개부터 등장인물들의 모습, 내면에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정서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영화적 낭만을 소환해낸다. 극중 악의 중심에 선 캐릭터 ‘놀란 소렌토’는 이런 극의 특징을 대표한다. 막강한 권력만큼이나 거대한 탐욕을 지닌 소렌토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야비하고 비열한 방법을 마다않을 뿐 아니라 잔인한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냉철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수시로 허점을 보이고 막판에는 의외의 감수성까지 드러내는 반전을 보여준다. 요즘 영화에선 보기 드문 꽤나 인간미 넘치는 악당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명불허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최첨단의 영화기술이 집대성되었지만 화려함을 조율하며 역설적 주제를 확고히 밀어붙이는 힘은 당연히 연출에서 기인한다. 모처럼 자신의 장기를 제대로 펼쳐 보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다음과 같이 소신을 밝힌다. “기술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스토리 전달에 기술을 이용할 뿐이다. 최첨단기술 덕분에 이런 작품이 탄생하지만, 스토리 전달과 캐릭터에 집중하는 데 기술적인 요소가 방해가 돼선 안 된다.” 필자가 영화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3요소는 확고한 우선순위를 갖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지닌 ‘누가’ 만드느냐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다. 이 기준들은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신을 갖게 되는 지표다. 스필버그와 과거 그의 영화들은 옳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옳다. 적어도 현시점에 있어서만큼은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그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뚜렷한 증거다. 아는 만큼 보이는 저작권 파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부분은 이제껏 하나의 화면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유명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모인 이들의 집합은 같은 소속사(?) 안에서만 모여 집안 잔치를 해오던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의 규모는 하찮게 보일 정도로 급이 다른 빅 이벤트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과정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란 짐작에는 이견들이 없다. 반면 영화 속에서 그들의 비중이란 예고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대부분이 카메오나 단역 수준으로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것도 짧은 몇몇 장면에 치우쳐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므로 집중해 찾아보거나 운이 좋으면 눈에 띌 정도다. 이마저도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이니 사전지식이 없다면 이런 소소한 재미조차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겠다. 어찌됐건 그들을 한 화면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여유가 된다면 최소한 다음의 작품 정도는 미리 봐둔다면 영화를 배로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초콜렛 천국>(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 1971) 멜 스튜어트 감독 <에이리언>(Alien. 1979) 리들리 스콧 감독 <샤이닝>(The Shining. 1980) 스텐리 큐브릭 감독 <카우보이 밴자이의 모험>(The Adventures of Buckaroo Banzai Across the 8th Dimension. 1984) W.D. 리히터 감독 <빽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1985)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모탈 컴뱃>(Mortal Kombat. 1995) 폴 앤더슨 감독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 1999) 브래드 버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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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귀환’을 포기할 수 없는 팽목항(2014. 12. 23 15:39)
- 2014. 12. 23 15:39 사회
- ㆍ아직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 “이곳의 의미를 기억할 공간으로 남겼으면” 지난 12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진도항)을 찾았다. 40일 만이었다. 싸늘했던 팽목항의 겨울 바람은 눈보라로 변했다. 추위에 온몸이 저절로 후들거렸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주변 건물에 불만 켜져 있지 않았더라면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팽목항 방조제 위로 올라갔다. 팽목항 일대는 눈으로 하얗게 덮였지만 방조제만은 예외였다. 저녁만 되면 강한 바람에 파도가 방파제 위까지 넘나든다. 그 때문인지 눈이 쌓이지 않은 채 바닥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동안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늘나라 우체통’도, 현수막과 리본도 제자리에 있었다. 시민들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음료와 과자로 차린 상도 그대로였다. 다만 모두 물에 젖고 얼었다. 12월 17일 오전 팽목항 방조제의 모습. | 백철 기자 팽목항 방조제 오른편의 너른 공터에는 세월호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머무는 조립식 가옥 10채가 있다. 한때는 컨테이너 박스와 사람으로 빽빽했지만 지금은 임시가옥과 식당, 화장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공터 옆 주차장의 그 많던 차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대책본부 해체 후 정부시설 모두 철수 지난 11월 11일 정부가 세월호 수색 중단을 발표한 뒤 해경 상황실과 소방본부, 의료진 등은 모두 팽목항을 떠났다. 주말마다 팽목항을 찾던 시민들도 이젠 관광버스 한 대를 겨우 채울 정도라고 한다.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매일 오가는 정기 셔틀버스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몇 명 없다. 팽목항의 세월호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시간과 추위와 싸우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 걸러 한 명씩 감기와 몸살에 시달린다. 감기약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의료진과 약국이 철수한 탓에 왕복 1시간 이상 걸리는 진도 읍내의 병원에 들를 수밖에 없다. 세월호 가족들과 장기 봉사자들은 전기장판과 이불로 밤을 버틴다. 식사할 때는 최대한 따뜻하게 먹기 위해 식당에 모두 모여 먹는다. 식당에는 소형 열풍기 두 대만이 돌아가고 있다. 조립식 가옥에는 세월호 네 가족과 자원봉사자 6~7명이 머물고 있다. 팽목항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한 집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성인 남성 4명 정도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원룸이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권오복씨(59)가 머무는 곳이다. 두꺼운 검은색 점퍼를 입은 권씨는 전기장판에 앉아 연신 기침을 했다. 그는 신발장 위에 쌓여 있는 감기약을 가리키며 “의료진들이 떠날 때 저것만큼은 놓고 가라고 특별히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동생과 보낸 지난 설날 생각이 난다”고 했다. 지난 1월 30일, 권씨와 동생 식구는 서울 신도림동에 있는 권씨 집에서 설날을 보냈다. 그게 동생 식구와 보내는 마지막 설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권씨의 동생 권재근씨와 조카 권혁규군은 여덟 달 넘게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모두 7남매예요. 설날에 바빠서 못 온 사람, 연락이 안 되는 사람 빼면 명절에 보통 3~4가족밖에 못와요. 그런데 동생은 자기 살기도 바쁘면서 명절을 빼먹은 적이 없어요. 한 번 오면 사흘씩은 머물다 가는데 요새 형제간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요?”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체된 이후인 11월 20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체육관에서 철수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진도를 떠날 수 없어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팽목항 시설이 완전히 철거될 수 있다는 말에 가족들은 팽목항 조립식 가옥에 들어가기로 했다. 팽목항의 정부 지원시설들이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 백철 기자 권씨는 가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길어야 한두 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갔어요. 세월호 인양까지 하려면 언제 끝날지 몰라요. 오랫동안 가려면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체육관에 있을 때부터 일부러 TV 오락프로그램도 틀고 운동경기도 틀었어요.” 조립식 주택 옆에 있는 팽목항 식당에 들어갔다. 남자 4명이서 귤을 까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팽목항의 다른 세월호 가족들과 장기 봉사자들이다. 계속되는 온정의 손길에 그나마 위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해 왔다. 세월호 유가족인 ‘팽목 삼촌’ 김성훈씨(39)다. 김씨는 단원고 2학년 9반 학생이었던 고 진윤희양의 ‘삼촌’이다. 촌수를 정확히 따지면 육촌 오빠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탓에 그냥 ‘삼촌’으로 불렸다고 한다. 김씨가 수개월을 팽목항에서 살면서 자연스레 ‘팽목 삼촌’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김씨는 범대본이 해체된 이후 팽목항의 정부 관련 시설이 모두 철수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팽목항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십시일반 도와주시는 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며 식당 한편의 칠판을 보여줬다. ‘김ㅇㅇ-다시멸치 2박스, 손국수, 천연로션, 최ㅇㅇ-커피, 참치통조림, 제주국민TV 조합원-귤 45㎏, 이ㅇㅇ-김치 2박스, 삼겹살 1박스.’ 하루에 적으면 6~7명, 많으면 25명가량이 팽목항 시설을 유지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었다. 때로는 도움의 손길이 넘쳐 형편이 어려운 진도 군민들과 나눌 때도 있다고 한다. 7월부터 팽목항에 상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백순혁씨(33)는 팽목항에서 2014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백씨는 다른 봉사자들이 고향에 내려간 지난 9월 추석에도 팽목항을 지켰다. “오랫동안 봉사활동하면서 가족들과 슬픔도 기쁨도 나누면서 지내 왔어요. 그런데 11월이 지나면서 정말 힘들어진 게 사실이에요. 정부에서 제공해온 지원과 여러 봉사자들이 다 빠져나갔죠. 하지만 계속해서 팽목항 시설이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요. 올 연말은 세월호 가족분들과 잘 지낼 생각만 하고 있어요.” ‘팽목 삼촌’ 김성훈씨는 정부가 팽목항 시설의 의미를 살려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지금은 팽목항이 슬픔의 장소지만, 결국엔 치유와 희망, 상생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팽목항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곳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원을 세우면 역사적 의미도 살릴 수 있고, 외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아 진도를 방문할 것이니 경제적으로도 상생하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팽목항 사람들은 팽목항을 지킬 의지를 밝히면서도 이곳을 “지옥 같은 공간”이라고 묘사했다. 아직 9명의 실종자가 바다를 헤매고 있고, 정부는 세월호 인양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오복씨가 얼굴을 에는 바닷바람에 떨며 말했다. “하루빨리 동생과 조카의 장례를 치르고 세월이고 팽목이고 새까맣게 잊고 살고 싶어요. 정부에서 세월호 인양을 약속해야 하는데 믿을 수가 없어요.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 못 떠나고 있는 겁니다.” 팽목항 방조제 뒤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윙윙 하며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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