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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9 건 검색)

유인촌 장관 내정과 윤 정부 문화정책 퇴행(2023. 09. 22 11:24)
2023. 09. 22 11:24 정치
ㆍMB 정부 예술계 좌파척결·블랙리스트 사건 재현 우려 ㆍ문체부를 ‘이념부처’ 규정, 극단적 실용주의 노골화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대통령실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 만나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과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KTV 화면 캡처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유인촌은 과거 막말 논란과 이명박 정부 당시 문체부 장관에 재직하면서 실행했던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인사의 적절성을 두고 공방이 뜨겁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에 유인촌 장관을 경험했고, 박근혜 정부 때 본격화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과 맞닥뜨렸던 문화예술계는 이번 인사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예술계 좌파척결 프레임이 다시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제2의 블랙리스트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현장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지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과거의 망령과도 같은 유인촌이 다시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유인촌 장관 내정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고, 이후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굴러갈 것인지를 조망해본다. 윤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현재까지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어떠한 가치도 의미도 담지 못하고, 실체도 없는 수사에 불과한 ‘K컬처’를 주요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문화정책의 비전은 없다. 뚜렷한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했던 ‘문화비전 2030’처럼 정부 문화정책의 철학과 방향, 계획을 제시하는 정책 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대표하는 정책이나 사업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대표 정책으로 제시 중인 사업들도 대부분 이전 정부에서 해왔던 사업이거나 사업의 규모를 확대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전 정부들에서도 문화정책이 다른 분야의 정책에 비해 비중이 낮게 다뤄지는 경향은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만큼 문화정책에 무관심한 정부가 있었을까 싶다. 이는 문체부 예산에서도 드러난다. 총예산 대비 문체부 예산 규모는 2000년대 들어서 처음으로 1%를 넘어선 이후, 문화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꾸준히 증가해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도 1.2%대를 유지해왔으나,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문체부 예산의 비중은 1.0%대로 줄어버렸다. 물론 예산의 규모가 정책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산이 정부의 정책 의지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큰 폭의 예산 삭감이 시사하는 바를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유인촌이 문체부 장관으로 재임했던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도 대부분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쳤고, 문화정책에 대한 비전보다는 소위 ‘좌파 예술인’에 대한 탄압에만 집중했었다. 이러한 두 정부의 유사성이 유인촌 장관 내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내년부터 달라지는 주요 사업을 소개한 문체부 2024년 예산안 설명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또다시 반복되는 문화예술계 이념 전쟁 윤석열 대통령은 문체부를 ‘이념부처’로 규정한다. 좌파 성향을 띤 시민단체들과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좌파 인사들이 문화예술계를 오랫동안 장악해왔다고 발언했다. 이는 문체부를 비롯한 문화행정기관들에 진보적이거나 반정부 성향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을 통해 이뤄져온 문화행정 혁신의 과정을 무력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경험 있고 강력한 인물로서 유인촌 장관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유인촌은 장관 재임 당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좌편향적인 코드인사’로 규정하고 사퇴를 종용한 바 있다.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었고, 이러한 태도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변함없음을 인터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다. 유인촌의 이러한 입장은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이념 논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됐던 블랙리스트 사건을 부정하는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장관 내정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문체부 장관 시절에) 대립적인 관계는 있었지만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없었다”며, 오히려 문체부 공무원이나 지원기관 직원들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블랙리스트 명단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일 수도 있다. 블랙리스트는 물리적 의미에서의 명단(리스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상이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유인촌 장관 시절에 자행됐던 블랙리스트 의혹은 명단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범죄다. 이를 부정하는 발언은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받은 문화예술인에 대한 2차 가해이기도 하다. 결국 유인촌의 발언들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라면, 문화예술계의 이념 논쟁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협잡에 불과하다. “(장관에) 임명이 된다면 그런(블랙리스트) 문제를 다시 한 번 잘 들여보겠다”는 말이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문화정책의 극단적인 실용주의 노선화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콘텐츠와 관광 중심의 문화산업 영역에 집중적인 투자를 약속한 데 반해, 문화예술의 기반이자 토대가 되는 문화예술 창작지원, 문화기반 시설 육성, 생활문화 정책과 같은 사업들은 폐지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대표적으로 ‘예술창작활동 지원’(65억원 삭감)이나 ‘영화 창·제작 지원’(62억원 삭감)과 같은 창작지원사업과 ‘예술의전당 지원’(110억원 삭감), ‘한국예술종합학교 운영’(108억원 삭감)과 같은 문화기반 시설 육성 사업들에서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 또한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56억원 폐지)이나 ‘전통생활문화진흥’(117억원 폐지)과 같은 시민의 일상과 연결성이 높은 사업들을 폐지했다. 그에 반해 콘텐츠 업체들에 대한 금융지원 예산은 1조7700억원 규모라는 역대급 예산을 편성했다. 경제적 효과 창출에만 집중하겠다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방만한 보조금 운영, 낭비적 요소, 이권 카르텔적 요소를 점검하고 모든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불공정, 비합리, 비효율을 제거”하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떠한 지점에서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예술인과 영세 예술단체들을 마치 예산을 낭비하는 부도덕하고 비효율적 존재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문화정책이 가지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 예를 들어 시민의 삶의 질 향상,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통합, 사회적 창의성 및 다양성 증진과 같은 효과는 무시한 채 오로지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라는 경제적 효과에만 매몰된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전개됐던 독립영화 지원사업에 대한 폐지와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에 대한 일방적 해체와 매우 유사하다. 유인촌 당시 장관은 “문화·예술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쥐꼬리만 한 예산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경쟁이 될까?”와 같은 발언을 통해 경쟁과 성과 중심의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생계 보조형 지원은 그만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며 극단적인 실용주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문화정책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와 목적을 오로지 경제적 이윤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문화정책의 발전과정을 통해 만들어온 성과를 무너뜨리고, 전근대적인 방식의 문화정책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인들이 유인촌 문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문화연대 제공 유인촌 장관 내정, 가속화되는 문화정책의 퇴행 이번 유인촌 장관 내정은 유인촌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격 논란과 적절성에 더해 윤석열 정부의 막무가내식 인사 선정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사회 전체에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려와 분노가 문화예술 현장에서 점차 확산 중이다. 그와 동시에 이번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퇴행에 가속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민의 기본권과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문화행정과 문화예술계에서 오랫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이 드러난 계기였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비민주적인 문화행정과 소통 부재, 관료주의 심화와 문화기관의 비대화, 지원사업 위주의 관 주도 중심 정책 등과 같은 문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마련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이러한 노력과 성과들이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했다. ‘윤석열차’ 사건으로 대표되는 예술검열 사건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며, ‘오정희 사건’이나 이번 유인촌 내정과 같이 블랙리스트를 실행했거나 가담했던 자들이 문화권력의 요직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사건과 코로나19와 같은 큰 사건들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의 생존과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이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됐다. 그 여파로 과거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되돌아보는 데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거의 문제를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유인촌의 문체부 장관 내정은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이며, 문화정책의 미래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사안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집
[HOT피플]유인촌 장관, 아이패드 국내사용 금지 ‘예외’ 外
[HOT피플]유인촌 장관, 아이패드 국내사용 금지 ‘예외’ 外(2010. 05. 06 10:38)
2010. 05. 06 10:38 사회
유인촌 장관, 아이패드 국내사용 금지 ‘예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내 통관이 금지된 애플사의 ‘아이패드’를 이용해 언론 브리핑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유 장관은 4월 26일 전자출판 육성 방안을 발표하는 공식석상에서 인증과 형식등록 절차 문제로 국내 반입이 금지된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유 장관의 행동에 대해 비판이 일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이튿날인 27일 “비상업적 목적인 경우 형식등록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태도를 바꿨다. 네티즌들은 ‘유인촌법’ ‘제 식구 감싸기’라며 유 장관과 방통위를 비판했다. ‘도망자’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 검거 위조여권을 이용해 중국으로 출국하려다 도주한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가 잠적 5일만인 4월 48일 검찰에 검거됐다. 대전지검 서산지청 검거팀은 “민 군수가 탄 차량을 발견하고 추적해 서울 양천구 신월동 부근에서 민 군수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민 군수는 검거 뒤 서산지청으로 압송돼 뇌물 등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민 군수는 건설사로부터 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는 등 혐의가 드러나자 위조여권을 이용해 중국으로의 출국을 시도했다. 오은선, 세계 여성 등반사 신기원 열어 ‘2010 안나푸르나 원정대’ 오은선 대장이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했다. 오 대장은 4월 27일 해발 7200m에 위치한 캠프를 오전 5시(한국시간)에 출발해 13시간만인 오후 6시 16분 안나푸르나 정상(8091m)을 무산소로 등정했다. 이로써 오 대장은 1997년 가셔브룸Ⅱ봉을 무산소 등정한 이후 13년만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청화 스님, 이명박 대통령에 ‘거침 없이 쓴소리’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청화 스님이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청화 스님은 4월 25일 봉은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이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모두 비난의 대상으로 여기저기서 씹히는 껌이 됐다”면서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왜 껌이 됐는지 허물을 보지 않고 씹는 입만 탓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을 대신해 법회를 주재한 청화 스님은 이 대통령 외에도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보수 언론 등에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HOT피플
[언더그라운드 넷]‘회피연아’ 고발사태, 유인촌 장관의 행보는?
[언더그라운드 넷]‘회피연아’ 고발사태, 유인촌 장관의 행보는?(2010. 03. 24 22:34)
2010. 03. 24 22:34 사회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포옹’ 직후 김연아 선수는 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블로그결국 사단이 났다. 등 일부 매체(뉴스 포털에서 검색해 보니 본지를 포함한 딱 두 곳이다)가 ‘회피연아’를 보도한 뒤 문화체육관광부는 ‘회피연아’ 동영상을 제작한 누리꾼을 상대로 고소했다. ‘회피연아’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한 김연아 선수를 마치 포옹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자 김 선수가 살짝 피한 것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 GIF 파일 동영상에 붙은 이름이다. ( 866호 ‘언더그라운드.넷’ 참조) 고소 사실이 알려진 것은 3월 16일 인터넷토론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스프레이’라는 누리꾼이 “종로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왔다”며 글을 올리면서부터.(문화부 관계자는 3월 8일 고소했다고 밝혔다) 17일 이 ‘이슈’는 공중파 뉴스를 비롯해 각 포털 뉴스를 일제히 달구며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일단 여론은 문화부 쪽에 호의적이지 않다. 실명 인증해야 글 작성이 가능한 문화부 게시판은 누리꾼의 비난 글로 가득 차고 있다. 문화부는 17일 해명자료를 내고 “공인인 유 장관이 국민영웅인 김 선수를 성추행하려는 듯한 의도를 가진 것처럼 설명을 붙여 악의적 명예훼손을 의도했다”고 주장했다. 문화부는 해명자료와 함께 KBS에 요청해 받은 ‘풀 영상’을 참고자료로 제시했다. “정 기자는 어떻게 봅니까.” 해명을 담당한 문화부 홍보담당관실의 전성호 과장은 ‘풀 영상’에 대한 기자의 소감을 물었다. 글쎄. 확실히 ‘회피연아 동영상’보다는 포옹(?)의 느낌이 크지 않다. ‘회피연아’는 찰나의 순간을 편집해 만든 동영상이다. 전 과장은 풀 영상을 확보한 뒤 문화부 출입기자단에 들고 가 보여 줬다고 했다. ‘모두 이건 아니다 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의 미묘한 분위기’에 대한 증언이 있었다. 김 선수 대신 포옹당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있고, 그 전후의 김 선수 표정은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전 과장은 말한다. “오서 코치는 남자고….” 그는 패러디와 악의에 찬 조작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러디는 농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회피연아’의 경우 실제 유 장관이 포옹을 시도한 것으로 사람들이 믿지 않았냐는 반론이다. 그나저나 이 코너의 지난 기사에서 심장섭 문화부 대변인이 “3월 4일 오전에 유 장관에게 ‘회피연아’ 동영상과 관련된 인터넷 동향이 보고됐고, 장관은 그저 웃기만 했다”고 했는데 칼을 뽑아들었으니 어떻게 된 걸까. 전 과장은 “유 장관이 처음에는 그냥 보고만 받고 웃기만 한 건 사실”이라면서 “‘인터넷 문화가 공공연하게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는 상황이어서 뭔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밑에서 건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문광부 직원들의 고발 요청을 유 장관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3월 18일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누가 올렸는지, 퍼 나른 사람은 누구인지 조사 중”이라면서 “진정한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수사가)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을 흐렸다. ‘회피연아’ 동영상 제작자에 대한 처벌도 유 장관의 의지에 달렸다는 설명이다. 유 장관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언더그라운드. 넷
[독자댓글]830호 ‘유인촌 장관 양촌리 용식이가 완장찬 격’ 外를 읽고(2009. 06. 25)
2009. 06. 25 사회
유인촌 장관 양촌리 용식이가 완장찬 격’을 읽고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신념과 정의를 외치는 진중권씨의 용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많은 분이 양심선언 하시고 국민들도 뜻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너무 암담하지만 포기할 순 없죠.. 내 나라인데… _ 경향닷컴 moto21 저는 주부인데요. 진심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세대가 되었네요. 진중권씨 파이팅하세요. 대단한 용기입니다. 각자의 의견 표현은 좋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후손에게 가시가 되는 발언은 삼가주세요. 용기는 아무나 있는 게 아니랍니다. _ 경향닷컴 푸른소망 속시원하다. 밑에 보면 그만합시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계속해주십시오. 저 같은 일반인은 기껏 한다는 게 자판 두드리는 것뿐입니다. 속시원하게 질러주시니 꽉 막혔던 마음이 다 뚫리는 듯합니다. _ 경향닷컴 대왕아빠 대다수 국민의 울분을 대신 터뜨려주어서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입니다. 모든 비유가 완벽하게 딱 들어 맞는 표현이라 속시원하네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돈으로 장관 자리를 거래하는지 참으로 속 터지는 정권입니다, 검사들도 정권의 개가 되어 기소권을 남발하는 작태를 벌인다고 신문 보던 딸도 화를 내지만, 힘없는 서민으로선 그냥 속수무책, 속만 터집니다. _ 경향닷컴 핑크레이디 진중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투나 태도를 문제로 제기한다. 사실 나도 간혹 당황한다. 그의 직선적인 표현들과 태도는 때론 너무 과격하다거나 공격적이게 여겨질 수도 있고 토론하는 태도도 좀 미흡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바로 가려운 데를 정확하게, 아주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데 있다. 최소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한다. 약자보단 강자를 비판한다. 그런 점들 때문에, 그의 토론 태도나 말투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_ 다음 엄지공주 ‘이명박 정권, 내년 하반기엔 레임덕 올 것’을 읽고 현 정부가 얼마나 못하면 저런 말을 할까. 대통령은 지금 귀를 막고 있습니다. 국민을 조롱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이고 있습니다. _ 경향닷컴 풍초 ‘서울광장 충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읽고 민주주의의 다른 말은 대의정치이다. 그러나 지금 위정자들은 정확하게 민심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 당장 국민이 위임해준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국민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 쌍용차 문제도 그렇다. 리서치결과에서 보듯이 정부가 잘못했다. 정부가 잘못했으니 책임지고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산업은행을 압박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민의 생각을 바로 반영해야 한다. _ 다음 알다마다
독자의 소리
[인터뷰]"유인촌 장관, 양촌리 용식이가 완장찬 격"(2009. 06. 18)
2009. 06. 18 사회
문화체육관광부·문화계 극우단체 향해 ‘칼’ 뽑아 든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됐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46)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그는 누구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는 것일까. 인터뷰하기 위해 6월 10일 만난 진 교수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는 “이 싸움을 위해 진보신당도 탈당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당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다. “한예종 사태는 진보인사 축출이 목적” 진 교수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집중 감사에 이은 황지우 전 총장 사퇴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학교 구조 개편 요구에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한예종을 ‘좌파엘리트의 본산’으로 규정한 보수세력이 MB정권과 코드가 다른 황지우 총장을 비롯해 심광현 영상원 교수, 이동연 전통예술원 교수, 진중권 객원교수 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인사들을 축출하기 위해 권력을 적극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19일 통보한 종합감사처분요구서에서 주력사업이던 통섭교육(학제 간 융합교육)의 중단, 관련 교수 중징계, 이론 관련학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등을 요구했다. 또 공금 유용 등의 이유를 들어 황 총장을 중징계 처분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한 데 이어, 5월 30일 황 총장이 표적감사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낸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심광현·이동연·진중권 교수는 실기 전공과 인문·과학 기술 융합교육을 위해 추진한 통섭교육 사업에 참여해온 인물들이다. 공교롭게도 황지우 총장이 평교수로 돌아갈 서사창작과를 비롯해 이들이 몸담고 있는 곳은 모두 이론과다. 진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보수 인사들의 단체인 문화미래포럼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은 지난해 9월 심포지엄을 열고, 한예종 6개원 해체 및 축소 등을 요구했다. 올들어서는 ‘미디어워치’ ‘빅뉴스’ 등 인터넷 보수매체들이 통섭 과정 부실, 진보 인사의 교수 임용 등을 문제삼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그후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착착 진행됐다. 진 교수는 “당해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되더라”고 말했다. “한예종을 빌미로 저를 구속하거나 도덕적 타격을 주려고 한 게 분명해요. 인터넷 보수매체의 대표가 제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매체들의 보도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이루어졌어요. 또 처분 결과도 상당 부분 해당 매체들이 예견한 대로에요. 제대로 된 감사가 아니라 인터넷 보수매체들이 나를 포함한 한예종 내 몇몇 인사에 가하는 공격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이루어진 거예요. 당해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되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당했겠구나 싶었어요. 문화체육관광부와 인터넷 보수매체는 감사 내용을 실명을 거론하면서 흘리는 식으로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진행했잖아요. 책잡힐 일을 하진 않았지만 미네르바는 뭐 죄가 있어서 구속됐나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어요. 반격하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자신이 칼을 겨누고 있는 상대는 유인촌 장관과 신재민 차관으로 상징되는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문화계 일부 우익단체라고 했다. 이들이 한예종 해체와 이른바 ‘좌파 척결’의 시나리오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에 비해 ‘빅뉴스’ 등을 통해 줄기차게 진 교수를 공격하는 변희재씨는 ‘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빅뉴스’ 대표 변희재씨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6월 9일 진 교수를 고소했다. 한예종의 부실운영 실태를 정당하게 취재해 의혹을 제기했는데, 진 교수가 이를 현 정권과 공모해 이뤄진 것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다.) 진 교수는 “그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그 대가란 “그들이 한 행위를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권력을 사유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는 공정해야 할 국가기관을 오직 정권 유지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잖아요. (촛불재판과 관련한) 사법부 파동에 이어 (노 전 대통령 서거 여파로)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표적 세무조사를 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미국으로 도피했어요. 경찰도 다르지 않아요. 저는 현 정권 하에서 한예종 사태를 비롯해 문화계에서 벌어진 이 야만적인 일들을 역사에 기록으로 새겨둘 거예요. 그들이 조폭과 같은 이런 짓들을 하고도 버젓이 살아가면 안 되는 거거든요.” “사립대 교수들 열등감도 한 몫” 진 교수는 “문화미래포럼과 장단을 맞춰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 한예종 해체 및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열등감과 밥그릇 싸움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2년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한예종이 그동안 국제 예술 콩쿠르·경연대회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며 두각을 나타내자, 사립대 예술계 교수들이 한예종 성장에 위기의식을 가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화미래포럼과 같은 뉴라이트 진영에서 주장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잖아요. 그럼 시장경제 이론에 따라 경쟁해야지, 왜 권력을 끼고 들어와 자유경쟁을 못하게 하느냐 말이에요. 실력이 떨어지면 자기들이 경쟁력을 키우든가 퇴출돼야지, 왜 잘 되는 한예종을 밟으려고 할까요? 좋은 학생들이 한예종으로 몰리니까 위기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한예종은 외국 학생들이 유학올 정도로 국제적인 학교가 됐어요. 좌파를 척결하고자 하는 보수 우익세력과 한예종의 성장에 질투를 느낀 사립 예술대 교수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번 한예종 사태를 몰고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색깔 시비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경. 게다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6월 2일 한예종을 방문해 “황지우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유럽에서는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진 교수는 “우파 정권이니까 우파 총장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딱 나치 수준”이라며 “재미있는 것은 신 차관은 자신이 한 말이 나치의 말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30년대 독일 국가사회주의자(나치)들은 바우하우스의 일부 교수들을 축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1933년 베를린의 비밀경찰국이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로에게 보낸 극비 문서에는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특정 교수들을 지목해 그들이 더 이상 교단에 서지 못하도록 하고, 시행해오던 교육과정도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교단은 ‘국가 사회주의 사상의 원칙을 확실히 지지하는 자’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진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장관의 관계는 이를 테면 히틀러와 독일 나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규정했다. “유인촌 장관과 신재민 차관 둘 다 문화적 마인드가 없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일을 선동과 정권 홍보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파 정권에선 우파 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죠. 몰상식한 거예요. 유인촌 장관이 처음 본 학생들에게 반말하고, 학부모에게는 ‘세뇌당한 것’이라는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죠. 양촌리 용식이가 완장 찼다고 좋아하는 꼴이에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치색이 다른 단체장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었잖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사세요’라고밖에 해줄 말이 없어요. 어차피 역사는 MB정부 5년을 한국사에서 퇴보의 시기로 기록할 테니까요. 이제 3년 반 남았잖아요.” 그렇다면 MB정부의 본질을 진 교수는 어떻게 진단할까. 돌아온 말은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시대착오”라는 것이다. 산업화 초기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500만 조문객 과소평가 말라” “산업화 초기 때는 대다수가 농민이었잖아요. 이들의 신체를 기계의 속도에 맞추려니까 강제가 필요했죠. 소위 산업화 엘리트들이 나머지 국민을 계몽해 끌고 가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는 정치도 일방으로 나타났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이미 정보화시대예요. 누구 한 사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에요. 촛불집회를 보세요. 각각의 개별 주체들의 창의성이 모여 전체적인 효과를 낸 거예요. 그렇다면 정치도 쌍방향이 되어야 하는데, 산업화 초기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MB정부는 여전히 일방으로만 하려고 하죠. 이 사람은 대중은 누군가의 지도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니까 촛불집회를 지도하고 명령한 놈을 찾으라고 지시한 거죠. 그런데 배후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다음엔 초를 무슨 돈으로 샀는지 알아보라고 했다잖아요.” 진 교수는 지난해 말 출연한 MBC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두뇌 속에 삽 한 자루밖에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발언했다. 진 교수는 “이 역시 이 대통령의 사고가 산업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풍자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MB는 현장감독하면서 경제신화가 됐잖아요. 그런데 그게 바로 그의 한계예요. 유일하게 아는 경제가 토목공사니까요. 그래서 산업화 초기, 산업 인프라를 까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운하를 깔자고 했다가 운하가 안 되니까 강을 파헤치자 이러고 있잖아요. 머릿속에 든 게 삽질밖에 없으니까요.” 노 전 대통령 500만 추모 열기에 대한 현 정부의 안일한 인식에 대해서도 그는 쓴소리를 퍼부었다. 국민들의 마음 밑바닥부터 끓고 있는 분노와 저항의 신호를 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조문객이 200만 명이었지만 당시는 동원이 많았어요.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동원이 없었잖아요. 그것도 정부가 차린 분향소엔 가지 않고 대다수가 시민이 만든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어요. 500만 국민이 단지 노 전 대통령이 좋아서 혹은 동정심 때문에만 조문을 했을까요? 기저엔 다른 게 깔린 거예요. 이번 선거 결과를 보세요. 여론조사할 때는 한나라당이 10% 이기고 있었는데, 투표 결과는 오히려 한나라당이 10% 뒤진 걸로 나타났어요. 이게 뭘 말해주는 것이겠어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투표에 소극적이었지만, 한나라당 지지자가 아닌 이들은 표를 통해 민심을 보여주자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에요. 500만 명의 국민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반증이에요.” 진 교수는 국민의 이 같은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현 정부를 ‘바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급기야 ‘폭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MB정부는 프로판 가스를 다 막아놓고 불을 때고 있는 형국이에요. 그럼 폭발하잖아요. 폭발은 거리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투표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거예요.” 진 교수의 말발은 고교시절 ‘이빨싸움’이 원천 진중권 교수는 비유에 강하고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젊은 지지층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를 위악과 독설 혹은 막말이라며 싫어하는 이도 적잖다. 한 예로 얼마 전 소설가 황석영씨가 MB정부를 ‘중도실용정부’라며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자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이라고 했고, 황 작가를 두둔하며 진 교수에게 “공부 다시 하라”고 주문한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미학적 촌티”라고 맞받아쳤다. 5년 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사건을 두고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에 대해 “쪽팔려서 자살했다는 얘긴데 쪽팔린 일을 왜 하냐”고 한 말에 대해선 최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정학을 세 번 맞고서야 고교를 졸업했다는 그는 지금의 말발의 원천은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한 속칭 ‘이빨싸움’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모욕감을 주면 화를 내지 않고 받아쳐야 하는데 이때 재치있게 받아침으로써 상대를 열받게 하는 게 ‘이빨싸움’의 포인트라고 했다. 노동자문화운동하면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훈련을 한 것도 밑천이 됐다. 노동자들에게는 되도록 구어체를 활용해야 하고,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는 “이를 가장 잘 하는 이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라고 말했다. 정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인지, 장바닥 아저씨인지 구분이 안 될만큼 적절한 비유를 섞어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란다. 진 교수는 속칭 ‘낚시질’의 원조이기도 하다. 1999년 조선일보 독자사이트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욕하는 제목의 글을 띄우면 누리꾼들이 광클(광분해 클릭)하는데 막상 내용을 열어보면 “파블로프 개(심리학에서 말하는 조건반사 학설 실험의 개) 실험 중입니다”라고 써놓은 것이다. 당시 그의 별명은 ‘조선일보 밤의 주필‘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검색 기능을 없앴을 정도였다. 그가 사용하는 상당수 용어와 아이디어는 DC인사이드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가장 찌질하면서도 선진적”이라며 “중장년의 기성세대도 젊은이들의 어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 서로 소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유인촌의 문화·예술계 숙청 전말(2008. 12. 18)
2008. 12. 18 문화/과학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장 15명 임기 못 채우고 사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간 기관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기관장들.(왼쪽부터) 고학용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권오남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김주훈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박준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정갑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정국록 국제방송교류재단 사장. 이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3월 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문화포럼에서 한 말이다. 며칠 후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유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신선희 국립극장장,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 신현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김정헌 위원장, 김윤수 관장이 안 나가면 재임 중 일으킨 문제를 공개하겠다”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2월 29일 장관에 취임한 후 공개적인 자리와 지면을 통해 문화예술정책이 아닌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물러나라고 발표한 셈이다. 유인촌 장관 취임 후 공개적 압박 유 장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정은숙 전 단장, 신현택 전 사장 등이 사임했다. 하지만 김윤수 전 관장과 김정헌 전 위원장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명됐기 때문에 사퇴할 이유가 없다”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문화부는 김윤수 전 관장이 미술품 구입과 관련해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임했고, 김정헌 전 위원장은 특별조사를 벌여12월 5일 해임했다. 문화부가 특별조사를 통해 밝힌 김정현 전 위원장의 해임 이유는 ▲문화예술위가 메릴린치증권 등에 700억 원을 예탁해 101억여 원의 평가 손실을 냄 ▲전시공간 제공 목적으로 지원받은 방송발전기금 10억 원 중 3억 원을 당초 목적과 다르게 작가 주거용 빌라 임대에 씀 ▲아르코미술관의 프로젝트형 카페 운영 사업자를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선정한 점 등이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일로 인생을 소진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처분 신청 없이 해임무효 본안 소송으로 갈 것이다”면서 “해임 이유로 밝힌 사안은 사실 관계가 맞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윤수 전 관장도 법적인 대응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임된 김 전 위원장은 3월부터 12월까지 사퇴 압력을 받은 일지를 정리해 에 기고했다. 김 전 위원장의 일지에 따르면 문화부 예술국장, 문화부 차관 등에게 직·간접적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지만 거부했고, 이어서 11월 26일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4명의 직원이 나와 특별조사를 벌였다. 그때 감사를 나온 한 문화부 직원에게서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문화예술위원회가 수익사업 차원에서 운영하는 뉴서울컨트리클럽의 전무이사와 감사 자리를 문화부 예술정책과장이 찾아와 청탁했다는 것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유 장관이 계획한 공공기관장의 ‘물갈이’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문화부 산하에는 사단법인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전국문예회관연합회’를 제외하면 38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확인 결과 38개의 공공기관 중 15곳의 전임 기관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다. 경북관광개발공사의 김진태 전 사장은 임기를 1년 이상 앞두고 4월에 사임했다. 김 전 사장은 사임 이유를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지역에서는 사퇴 압력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5월 사임한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당시 한 일간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새 정부에서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단체장들에게 사임하라는 압력이 있지 않았느냐”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 전 예술감독은 표면적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재에 대한 책임을 사임 이유로 밝혔다. 정 전 예술감독은 노사모를 대표하는 배우 문성근씨의 형수라는 것이 이번 사임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분석이 많다. 참여정부 인사에서 MB 인사로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주훈 이사장은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체육·청소년 분야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다. 그리고 아리랑TV(국제방송교류재단)의 정국록 사장은 취임 이전부터 이명박 캠프의 방송특보를 역임했다. 정 사장은 낙하산 인사이자, MB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장명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임기는 2009년 3월까지지만, 임기를 1년 앞둔 3월에 사임했다. 정재왈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4월에 사임했다. 현재 서울예술단 이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안정숙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임했다. 당시 안 전 위원장은 “남편 원혜영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혔지만, 4기 영진위 구성과 인수·인계 과정의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예술의전당 신현택 전 사장 역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점이 퇴임 이유로 알려졌다. 최태지 전 극장장이 국립발레단장 지원을 위해 사임한 이후 오랫동안 공석이던 정동극장장으로는 구자흥 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이 임명됐다. 그동안 여러 문화 관련 단체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가 정동극장장으로 오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구 관장은 비교적 그런 논란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임기를 4개월 정도 남겨두고 사임한 박정삼 전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후임에 권오남 사장이 임명됐다. 권 사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체육과학연구원의 김정만 원장 역시 낙하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과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지냈고 지난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사람으로 분류되는 송재호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역시 임기 6개월을 앞두고 사임했다. 송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퇴임 압력 여부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연구원에 퇴임 압력이 없었던 이유는 연구기관 구조조정을 하면 연구원장은 자연스럽게 나가게 되니까, 굳이 압력을 줄 필요성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정갑영 현 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출신으로 MB 인맥으로 꼽힌다.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 사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는 공석이다. 코바코로 잘 알려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양휘부 사장 역시 MB 인사로 손꼽힌다. 양 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이명박 캠프의 방송특보단장을 지냈다. 한국언론재단의 박래부 전 이사장 역시 문화부의 퇴임 압력을 거세게 받은 인물로 꼽힌다. 심지어 재단 노조에서도 박 전 이사장의 퇴임을 요구할 정도였고, 문화부의 압력에 발맞추는 노조의 행동에 환멸을 느껴 사퇴했다. 후임 고학용 이사장은 고려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고려대 인맥이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역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권 원장은 국정홍보처 실장 출신. 권 전 원장의 지인에 따르면 “공직 재직 시 후배인 과장이 사표 언질을 해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후임 박준영 현 원장은 2003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제2기 방송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정치지향적 여권 인사로 분류된다.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이밖에 전임 기관장이 임기를 채우고 나갔지만, 후임 기관장으로 MB 인사가 낙점되어 논란을 일으킨 곳도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 원장과 신문유통원의 임은순 원장이다. 이대영 원장은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맡았고, 당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설립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임은순 원장은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언론특보 출신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실 자문위원을 지냈다. 아직 기관장을 교체하지 않은 기관이 몇몇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고석만 원장), 한국영상자료원(조선희 원장)이다. MBC PD 출신의 고석만 원장은 MBC 에서 잔뼈가 자란 유인촌 장관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고 원장은 10월 국감장에서 “퇴임 압력은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장되어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관장에 대한 퇴임 압력과 특별 감사 등으로 전 정부의 인사를 몰아냈다.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을 옆에서 지켜본 문화예술위원회 박명학 사무처장은 “김 전 위원장의 면직 이유라면 대한민국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면서 “이렇게까지 할 줄 정말 몰랐고, 이제는 문화부에서 무엇을 못하겠나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말말말]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外
[말말말]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外(2008. 11. 06)
2008. 11. 06 정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격적 모독이라고 느낄 수 있는 발언을 듣고 모욕감에 화가 난 상태에서 이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보였다. 이유를 불문하고 공직자가 취재진에게 적절하지 않은 언행을 보이고, 이로 인해 국민 여러분과 언론인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언짢게 한 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_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 욕설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서(10월 26일) “국제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부실이 자꾸 나타나고 있다. 금융 위기 해소 시점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전망이 틀렸다. (금융 위기의) 피크(정점)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내수 경기가 상당히 빨리 둔화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출도 계속 잘될 것으로 자신하기 어렵다.” _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내린 후 기자간담회에서(10월 27일) “(한국이)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 받아온 것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2400억 달러)에 10% 정도 더한 규모로 외환시장의 일일 평균 외환거래액이 400억 달러 또는 60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마음먹고 투기를 시작하면 어림도 없는 액수다.” _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한국과 미국이 300억 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것과 관련해(10월 30일)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절호의 투자 기회일 수 있다. 현재 금융시장은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라기보다는 유동성이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시기다. 한국 증시의 평균 주가 순자산비율(PBR)은 0.7배 수준으로 청산가치를 크게 밑도는 ‘저평가·과매도 국면’에 있다.” _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최근 주가 폭락과 관련해 미래에셋 전국지점장회의에서(10월 24일) “그동안 제의는 여러 차례 받았지만 라디오 진행은 시간을 많이 뺏기기 때문에 결정을 망설였어요. 그러다가 올가을쯤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번 제의을 받았죠. 밤시간대라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것도 좋았어요.” _ 가수 변진섭 12년 만에 라디오 DJ로 컴백하면서 밝힌 소감(10월 26일)
말말말
[아주 특별한 인터뷰]유인촌 “국가 위해 할 일 있다면 열심히 할 것”(2008. 02. 14)
2008. 02. 14 사회
날선 바람이 발갛게 언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겨울날의 서울 중구 정동. 풍경은 을씨년스러워도 폐부 깊숙이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는 온몸의 세포를 긴장시키며 새삼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교회, 시립미술관이 분수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정동길에서 유인촌(57) 중앙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문화예술계 최측근으로 현재 유력한 문화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마평과 관련한 그의 속내는 이미 몇몇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는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게 일반적인데도 그는 흔쾌히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꽤나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꼼수를 부릴 줄 모르는 유 교수의 인간적 단면이기도 하다. 빛 바랜 청재킷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나타난 모습에서는 자유인의 삶을 사랑하는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결과(장관 임명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유 교수의 정치권 진입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5월, 서울문화재단을 출범하면서 대표직에 유 교수를 앉힐 때부터 유 교수에게도 ‘정치적 야망’이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많았다. 차기 정부의 문화부 장관 0순위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2007년 대선에서 이 전 시장이 대권을 잡는다면’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명계남·문성근씨가 노 대통령 당선 후 정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며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이 유 교수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만약 기회가 되면 당분간 연극 활동과 학교 일을 접고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문화재단 일을 시작하면서 제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정치 한복판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문화예술계를 위해 맡은 일인데 하다 보니 정치적인 행위가 된 거예요. 기왕 일을 할 바에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재직 중인 중앙대 박범훈 총장과 문화부 장관 후보로 함께 거론돼 총장께 면구스럽기는 하지만, 되고 안 되고는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거잖아요. 제가 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국가를 위해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유 교수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 교수와 이 당선인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를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열성적으로 좋아해 출연자들을 수시로 불러 밥을 사면서 이 당선인과도 안면을 트게 됐다.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로 발전한 것은 1989년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을 모델로 만든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 계기였다. 이 드라마에서 유 교수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이후 유 교수는 이 당선인이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에 잇따라 출마 선언을 할 때마다 지척에서 도왔다. “제가 이 당선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먹은 일은 꼭 하고, 뱉은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또 소탈하기 때문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뒤끝이 크게 없어요. 적어도 헛폼으로 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예요. 물론 젊은 나이에 대기업 CEO를 하면서 풍상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몸에 밴 게 있겠죠. 그래서 이 당선인을 깊게 이해하는 사람은 가까워질 수 있지만 모르면 굉장히 싫어할 수 있어요.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당선인은 훗날 임기 5년 동안 대한민국을 확연하게 변화시킨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서울문화재단 일을 하면서 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런 분이기에 새 정부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 거예요.” 때가 때이니만큼, 요즘 유 교수를 둘러싼 화두는 장관 입각설이지만, 한 껍질만 벗기고 들여다보면 유 교수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도 드물다. 그는 누구보다 연극을 사랑하고 존재에 감사하며 나눔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극에 눈을 뜬 것은 큰형인 유길촌 유씨어터 대표(68)의 영향이 컸다. 고려대 극회와 극단 자유에서 잔뼈가 굵은 형 덕분에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연극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적 계기는 한성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퇴계로의 서울침례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연극을 준비하는데 형이 연극을 한다는 이유로 유 교수에게 연출과 연기를 맡긴 것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이 지금의 유 교수를 만든 ‘결정타’였다. “연극이 전부로 느껴졌어요. 아예 공부는 접어두고 연극을 한다며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무전여행을 다녔지요. 하지만 정작 형님은 제가 연기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어요. 1년 재수 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하자 첫 입학금은 내주셨지만 좋아하지 않으셨죠.” 입대를 앞두고 유 교수는 MBC 신인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 제대 후를 생각해 ‘적’(籍)이라도 두자는 심사에서다. 재미있는 것은 응시자가 많아 여러 반으로 나눠 면접을 보는데 하필이면 당시 MBC PD로 근무하던 큰형 유길촌씨가 그가 들어간 면접실에 있었던 것. “이년헌 감독님과 형님, 그리고 또 한 분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계셨어요. 형님이 저를 보시더니, ‘저 아이는 내 동생인데, 없던 걸로 하겠다’고 하셨죠. 다른 두 분이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게라도 해야지’라고 만류하자 형님은 ‘그러면 나는 심사하지 못하겠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어요. 그런데 합격한 거예요.” 형제는 10년이 흐른 후에야 같은 작품을 했다. 이미숙·이혜숙씨가 출연하고 유 교수가 ‘숙종’으로 분한 ‘장희빈’이다. 연기자 생활을 하며 유 교수는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6개월간의 엑스트라를 거쳐 1974년 김수현 드라마 ‘강남가족’에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출연한 후 두 번째 작품인 ‘복녀’부터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작품 외 ‘불새’와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등을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꼽는다. 하지만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그는 연극을 쉰 적이 거의 없다. 그는 TV 드라마로 한창 인기를 얻던 1995년 극단 ‘유’를 창단한 데 이어 2004년 봉평에도 야외극장인 달빛극장을 만들었다. 현재 영화와 방송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수로, 주진모, 공형진 등이 극단 ‘유’에서 배출됐다. 연극판에서 활동하다가도 영화와 TV 드라마에 캐스팅돼 인정을 받으면 미련 없이 배고픈 연극무대를 떠나는 배우들의 세태와 대조를 이루면서 유 교수의 연극무대 완전 회귀는 ‘희한한 일’로 치부됐다. 그는 방송으로 번 돈을 ‘밑 빠진 독’과 같은 연극에 쏟아 부었다. 이유는 단지 “연극이 좋기 때문”이다. 유 교수에게는 남다른 치열함이 있다. 천성적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언젠가 연기에 필요할지 모르는 승마, 스킨스쿠버, 현대무용 등을 배우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또 학문에 대한 목마름으로 1984년 진학한 대학원에서 습득한 연기이론은 현장 경험과 함께 10년 후 그가 대학교수로 강단에 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는 마라톤과 걷기 전도사기도 하다. 지금도 웬만한 거리는 걷고 조금 바쁘다 싶으면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지난해 7월엔 ‘우리 땅 걷기’라는 국토 종단을 전남 해남에서 서울 청계 광장까지 했다. 최근엔 ‘서울 문화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 교수는 “숨어 있는 서울의 이야기를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1차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서울 성곽 답사. 지난 1월 1일엔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여대 입구역에서 출발, 혜화문에서 성북동, 삼청동, 숙정문으로 해서 세검정, 인왕산을 걸어 사직공원 옆으로 내려왔고, 19일엔 남대문을 거쳐 남산에 오른 후 타워호텔, 광화문, 동대문, 이대부속병원, 낙산공원, 한성대역을 거쳐 혜화문까지 20여㎞를 걸었다. “일본대 예술학부 객원연구원으로 10개월간 유학하면서 걷기의 중요함을 깨달았어요. 일본 도쿄에선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배낭을 맨 채 걸어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어디 가세요?’ 하고 물으면 ‘우리는 오늘 박물관 가는 날이야’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도쿄에는 그런 상품이 많아요. 그것을 목격하면서 ‘서울에 돌아가면 내가 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인터넷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매주 토요일마다 나름의 유적지를 걸으면서 이를 실행하고 있지요. 서울 문화지도를 만든 다음에는 지방으로 내려가 한국 문화지도를 완성할 계획이에요. 한 10년 걸리겠죠. 이 일만은 제가 설령 장관이 된다고 해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는 “걷기를 통해 우주의 광활함과 자연의 위대함, 존재의 미미함,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과 나눔의 기쁨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국토 종단이 끝나자마자 광고 출연료 1억 원을 일산 국립암센터에 주저 없이 기부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다. “우리 국토를 걸으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했어요. 전 우리 땅이 그렇게 넓은 줄도 몰랐거든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정(情)도 잊을 수 없어요. 그동안 제 잘난 맛에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세상에, 제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쳤어요. 평생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런 그는 “훌륭한 문화정책은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물질적 지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국민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갖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우리 국민은 더불어 사는 한국인의 문화를 상당부분 상실했어요.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고 하고, 없는 사람은 피해의식과 함께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매도하죠. 그러다 보니 사회가 황폐해졌어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써도 소용이 없어요. 비정규직을 2년 후 정규직으로 만드는 법도 결과적으로는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잖아요. 하지만 가까운 예로 청계천 복원을 보세요. 일부에서는 토목공사니 인공구조물이니 하면서 비난하지만, 전 청계천 복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확신해요. 지금도 그곳에 가면 물장구치며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볼 수 있잖아요. 정신적·정서적으로 여유가 생겨야 남도 돌아볼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해요.” 그는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돌아온 답은 세르반테스가 풍자소설 ‘돈키호테’를 통해 남긴 명언이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벽을 잡자.” 유 교수는 “이를 내 인생의 모토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타협과 포기가 빠르고 투지와 야망이 부족해요. 풍차를 보고 무조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무모함도 없지요. ‘돈키호테’에 나오는 이 문장은 용기와 도전의식, 꿈, 희망을 가지라는 얘기예요. 우리 젊은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에요.” 청담동 집까지 걸어가겠다며 손을 흔들며 총총히 사라진 유 교수가 머문 공간에는 어느새 서늘한 저녁바람이 몰고온 어스름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내 인생을 흔든 시련 유 교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을 수 없는 어려움을 두 번 겪었다. 하나는 해외에서 연극 ‘햄릿’을 공연하느라 아버지의 임종은커녕 빈소도 지키지 못한 일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할 때 한 신부가 그를 수소문해 전해준 아버지의 임종 소식. 하지만 다음 일정인 독일로 향해야 했기에 그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무대에 선 이상 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를 떠날 수 없는 게 배우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배우가 된 것에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일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그를 괴롭힌 사건이다. 본격적으로 연극에 투신하기로 결심하면서 최저 생계비 조달을 목적으로 몇몇 사람과 함께 주유소 사업에 손을 댄 게 화근이 됐다. 6개월 후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손을 뗐지만 그로부터 4년 후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터졌다. 동업자들이 부도를 내고 달아났는데 다 정리된 것으로 알았던 서류 중 한 장이 남아 있는 바람에 그의 재산이 가압류된 것이다. 40억 원짜리 소송에 휘말린 유 교수는 대법원까지 간 후에야 승소할 수 있었다. 유 교수 인생의 최대 고비가 된 사건이다. 유 교수는 “그동안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약력 ▲1951년 서울 출생. 미동초등학교, 한성중·고등학교 졸업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사·석사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 ▲극단 유 대표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2008년 1월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상근자문위원 ▲1974년 MBC 탤런트 공채 6기 ▲TV드라마 ‘전원일기’ ‘장녹수’ ‘2김시대’ ‘야망의 세월’ 등 출연 ▲영화 ‘연산일기’(1987) ‘김의 전쟁’(1992) ‘불새’(1997) ‘가능한 변화들’(2004) 출연 ▲연극 ‘햄릿’ ‘문제적 인간 연산’ ‘홀스또메르’ ‘택시드리벌’ 등 출연
아주 특별한 인터뷰
[문화]유인촌 “연기할 때가 가장 편안해요”(2005. 12. 13)
2005. 12. 13 문화/과학
2년 만에 무대서는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18일까지 ‘어느 말의 이야기 - 홀스또메르’공연 지난 11월 30일 서울 삼성동의 한 빌딩. 시간은 저녁 9시를 훌쩍 넘어 사무실 불은 이미 꺼진 곳이 많았지만 건물 지하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우렁찬 노랫소리는 밤의 적막을 깨기에 충분하다.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간 지하 2층에 마련된 연습실. 20여 명의 젊은 배우들이 포효하는 속에서 어느덧 50대 중반인 유인촌(54)이 “푸르르… 푸르르…”하는 말울음소리와 함께 흐느끼고 있다. 주먹을 말아쥔 채 앞으로 한껏 굽은 손등, 느리긴 하지만 반복적인 뒷발질,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것처럼 보이는 피곤한 표정… 영락없이 늙고 병든 말이다. 그가 “자네들도 알아야 해. 언젠가는 늙는다는 것을”이라고 서글프게 말하는 이 장면은 젊은 말들이 늙고 지친 얼룩말 홀스또메르를 괴롭히는 부분이다. 2003년 이어 4번째로 홀스또메르 역 극단 유와 유시어터 대표, 그리고 서울문화재단 대표인 유인촌이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12월 9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어느 말의 이야기-홀스또메르’다. 잡종 얼룩말이라는 이유로 거세되고 천대받는 홀스또메르의 파란만장한 역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반추케 하는 톨스토이 중편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말의 회상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등을 인간과 대비해 보여주고 짐승보다 더 초라하고 추악한 인간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유인촌은 1997년 2000년 2003년에 이어 4번째로 홀스또메르가 됐다. 몸짓과 소리 등 모든 면에서 인간이 아닌 말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보다 육체적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힘들지. 하지만 연극 자체가 힘든 거야. 특히 이 작품은 땀의 예술이거든. 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연기해야 하고 소리도 폐부로부터 올라오는 통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훈련을 많이 해야 해. 게다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드는 형식이어서 배우로서는 만만찮은 작품이야. 사실적이면서 서사적이고. 영상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무대언어로만 보여줄 수 있어 연극적 재미가 매우 풍성하지. 내가 애착을 많이 갖고 있고 늙어서도 할 연극이야.” 초연 때부터 음악극 형식의 연극이었지만 요즘 뮤지컬이 붐을 이루면서 장르구분을 연극 대신 뮤지컬로 했다. “얼룩말 홀스또메르는 짐승이라는 이유로 인간에게 이용만 당하다 도살돼 들판에 버려지지. 살코기는 들개와 늑대의 먹이가 되고 뼈는 농부가 농사짓는 데 활용하지. 반면 부자인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한때 그의 주인은 술과 여자, 도박에 절어 살다가 늙어서 추해지지. 그를 불쌍히 여겨 사람들은 시신에 멋진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혀 훌륭한 관에 넣지만 그는 결국 죽어서도 아무 쓸모 없는 존재인거야. 톨스토이가 말년에 집착한 화두인 무소유에 대한 통찰이 느껴져.” 단원들과 어우러져 연기를 하고 있을 때 유인촌은 자유로워 보인다.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날개를 펴고 창공을 훨훨 나는 느낌이다. 지난해 5월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 출범과 함께 대표직을 맡고 있는 그는 실제로 “극장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고 말한다. 최근엔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연기이론서 ‘유인촌, 연기를 가르치다’(세종서적)를 펴내기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직은 행정일을 하는 거잖아. 솔직히 행정보다는 연기하는 게 좋지. 재단 대표직을 맡고 한동안 갈등하다가 그래도 임기 동안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뛰었는데 이렇게 후배들과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또 가기 싫어지네(웃음).” “정치는 애초부터 내 분야가 아니야”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된 것도 그런 인연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이 시장이 만약 2007년 말 대선을 통해 대권을 잡는다면 단연 문화관광부 장관 0순위는 그가 될 것이라는 게 문화예술계의 시각이다. 덧붙여 그 역시 ‘정치적 야망’이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분석과 함께. 하지만 그는 “정치는 애초부터 내 분야가 아니다”라고 고개를 흔든다. “어떤 분들은 크게 보면 정치권에 진출해 문화예술계가 잘되도록 힘쓰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하시지만 난 천성적으로 배우가 좋아. 서울문화재단 대표직을 수락한 것은 이명박 시장이 워낙 일을 잘하고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이 시장과 같은 분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서울시의 문화행정을 돕고자 한 차원이야. 물론 대선 때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야겠지. 그런데 그 이상 가는 건 원치 않아. 명계남씨와 문성근씨도 정치하겠다고 안 나서잖아. 그게 잘하는 일이고 나도 그럴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재단 대표로 1년6개월 간 몸담으면서 그가 일궈낸 성과는 눈부시다. 행정가로서의 뚝심과 추진력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는 한 해 6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수장으로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제도부터 바꿨다. 골고루 나눠 먹기 식의 예산 집행을 ‘선택과 집중’으로 바꾼 것. 될성부른 나무에 다년간 지원하는 체제다. “모두 하고 싶었지만 욕먹을까봐 못했던 일이야. 그러나 나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잖아. 시민단체, 예술단체, 공무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토론하고 설득했어. 이젠 다 납득하지. 난 가능하면 서울시의 작은 공간 하나하나도 친환경적인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싶어. 서울시 모든 놀이터도 산학협력하에 보다 창의적인 놀이터로 바꿀 계획이야.” ‘하이! 서울’ 축제를 비롯해 서울은 어느새 증가하는 문화공간만큼 문화이벤트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물론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최근엔 서울문화재단이 청계광장 조형물을 세계적 팝아티스트인 미국의 클라에스 올덴버그에게 맡기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한 게 논란이 됐다. 작가의 선정 절차와 기준, 작품 시안 등의 결정이 폐쇄적으로 이뤄졌다는 문제 제기다. 유인촌은 “시에서 시립미술관에 작가를 추천해 달라고 해 백남준씨를 포함해 네 명의 아티스트를 추천받은 후 선정한 것이고 서울시 미술장식품 분과위 심의도 거친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우리 작가를 왜 안 쓰냐는 비판도 있는데 그런 국수적인 시각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배우는 사회의 축도이므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문화공간을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미술관, 사진스튜디오, 공연장 등이 공존해 화가, 배우, 작가, 대안예술가 등이 함께 어우러져 토론도 하고 예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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