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20 건 검색)
- “후보 미지지”…WP·LA타임스 흔든 재벌사주의 손(2024. 11. 04 06:00)
- 2024. 11. 04 06:00 국제
- 해리스 지지하려다 돌연 취소…트럼프 눈치 보기 관측 후보들은 기성 언론보다 팟캐스트 등에 더 자주 출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연합뉴스 현직 대통령(조 바이든)의 재선 도전 포기, 부통령(카멀라 해리스)의 대선후보 직행, 대선후보(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두 차례 암살 시도. 오는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전례 없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언론 보도 측면에서도 올해 대선은 이전과 달랐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36년 만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작성해놓고도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반대로 사설 게재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하는 대선 TV 토론이 단 한 차례 열린 가운데 후보들은 기성 언론보다 팟캐스트 등 새로운 매체에 더 자주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NYT와 달리 WP “지지 후보 선언 않겠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9월 30일 해리스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편집위원회 명의로 올린 ‘대통령을 위한 유일한 애국적 선택’이란 글에서 “유권자들이 그와 정치적 의견차를 갖고 있더라도 카멀라 해리스만이 유일하게 애국적인 대통령 후보”라며 “해리스는 필요한 대안 그 이상”이라고 밝혔다. 진보성향인 뉴욕타임스의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은 예견된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27일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 토론 이후 민주당의 패색을 우려하며 ‘바이든 사퇴’ 여론을 사실상 주도하기도 했다. 역시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워싱턴포스트도 당연히 뉴욕타임스의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됐다. 워싱턴포스트는 1976년 이후 1988년 대선을 제외하고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해왔다. 그런데 지난 10월 25일 윌리엄 루이스 워싱턴포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향후 어떤 대통령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즉각 워싱턴포스트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 편집위원회가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했지만, 베이조스가 게재를 반대해 발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후폭풍은 커졌다. 이 신문 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로버트 케이건 오피니언란 편집장을 비롯해 논설위원들이 줄줄이 사임했다. 독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공영 라디오 NPR에 따르면 지난 10월 28일까지 워싱턴포스트 유료 구독자 총 250만명(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 합산) 가운데 8%인 20만명 이상이 구독을 취소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베이조스는 “특정 신문의 대통령 지지 선언은 선거의 향방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런 지지 선언은 해당 매체가 편향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인상만 만들 뿐”이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라는 의혹은 “향후 대가를 계산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억만장자 소유 언론의 결정은 우연일까 베이조스의 입장 표명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해리스 후보 지지 사설 게재가 무산된 시점에 베이조스가 이끄는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 경영진들이 트럼프 후보와 회동한 사실도 보도됐다. 베이조스가 대선 결과에 따라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지지 선언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워싱턴포스트와 비슷한 시점에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도 대선후보 지지 선언을 중단했는데, 이 역시 2018년 이를 인수한 사주 패트릭 순시옹의 입김이 작용했다. 마리엘 가르자 LA타임스 편집장은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 초안을 작성하던 중 순시옹으로부터 이를 철회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폭로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캘리포니아주 최대 신문인 LA타임스 역시 구독 취소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한 워싱턴포스트와 LA타임스의 결정은 언론의 정치 성향 표명 관행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뒤늦게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후보 ‘눈치 보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월간지 ‘디애틀랜틱(The Atlantic)’은 “그동안 두 신문이 트럼프가 공직에 확실하게 부적격하다고 보도해온 점에 비춰 해리스 지지 보류는 순전한 비겁함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타이밍’을 문제 삼았다. “신문들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저항하는 대신 그에 맞추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킨다”고도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이끈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사설의 독립성을 존중하지만 대선을 12일 앞두고 나온 이번 결정은 그간 신문이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 제시해온 수많은 보도 증거를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후보들 팟캐스트 인터뷰 활발…유권자 맞춤형 공략 한편 이번 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은 기성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기보다 인기 팟캐스트에 자주 출연하는 경향을 보였다. 팟캐스트가 후보들의 메시지 창구로 주목받게 된 것은 선거캠프가 특정 유권자 집단을 겨냥해 지지를 호소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부동층 유권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트럼프 후보는 투표 참여도는 낮지만 트럼프 후보 지지 성향이 높은 젊은 남성들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재생산 권리 보호를 내건 해리스 후보는 여성들이 즐겨듣는 팟캐스트를 선호했다. 흑인 남성들에 영향력이 큰 샤를라마뉴 다 갓이 진행하는 라디오쇼 브렉퍼스트 클럽에도 출연했다. 과거 확고한 민주당 지지층이었으나 최근 민심 이반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흑인 남성 표심을 붙들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 현대카드 ‘아워 타임페이스’ 발간···서체 ‘유앤아이’의 변화 기록(2024. 08. 28 10:49)
- 2024. 08. 28 10:49 경제
- 현대카드가 발간한 아카이빙북 ‘아워 타임페이스’ 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는 지난 8월 20일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의 20여년간 변화를 기록한 아카이빙북 <아워 타입페이스(Our Typeface)>를 펴냈다고 8월 28일 밝혔다. 유앤아이는 2003년 현대카드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기업 전용 서체다. 현대카드는 “유앤아이는 이후 네이버의 나눔서체 시리즈, 배달의민족의 한나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등 기업 서체 개발 붐을 이끈 시초로 평가받는다”고 밝혔다. 신용카드 업계 후발주자인 현대카드는 신용카드업을 상징하는 신용카드 플레이트 모양을 소재로 유앤아이를 개발해 CI(Corporate Identity·기업이미지 통합)와 광고 등에 활용했다. 그 결과 이제 현대카드라는 기업명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서체만으로도 현대카드임을 알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대카드는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유일하게 유앤아이의 외부 사용을 허락했는데, 시리즈 내내 현대카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청자가 현대카드의 서체를 알아차렸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아워 타입페이스>를 통해 유앤아이는 국내 최초의 기업 전용 서체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서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독자들이 현대카드 디자인의 진짜 저력은 참신한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다음 타임톡 한 달, 실시간 소통? 글쎄(2023. 07. 07 11:29)
- 2023. 07. 07 11:29 경제
- ㆍ사용자 의견 없이 ‘뉴스댓글 24시간 후 삭제’ 전격 도입 ㆍ분서갱유 논란 속 “주목도 축소” “옳은 의도” 평가 분분 지난 6월 8일 카카오다음 측은 뉴스댓글을 실시간 소통의 공간으로 바꾸겠다며 타임톡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공지했다. /다음뉴스 공지사항 캡처 “문의하신 사항에 대해 물어보니, 그게 의도적으로 구현한 것은 아니고, 딱히 오류도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채팅 서비스에서도 위로 스크롤할 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7월 6일 기자와 다시 통화한 서은샘 카카오PR팀 매니저의 말이다. 기자가 문의한 건 카카오다음이 뉴스댓글을 폐지하고 새로 도입한 ‘다음 타임톡’ 댓글을 읽을 때 ‘불편사항’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채팅창 형식으로 바뀐 댓글을 읽는 도중 누군가 새로 댓글을 등록하면 화면이 ‘리프레시’되면서 읽던 댓글을 끝까지 못 읽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시 찾아보면 읽던 댓글은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이 과정을 서너 번 겪다 보면 더 이상 댓글을 읽을 의욕이 사라진다. 결국 타임톡 댓글 읽기를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의문은 이것이었다. 분명 어떤 효과를 노리고 이런 형식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했을 텐데, 이런 ‘불쾌한 경험’을 끌어내리라는 점을 알고서도 개편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카오다음의 사내 회사인 다음CIC는 이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걸까. 기자가 접촉한 관련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두고 대체적으로 “댓글을 읽는 것을 방해하는 수준은 기술적 에러로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강정수 미디어스피어 이사)고 밝혔다. 기자와 통화한 카카오다음 측은 그러나 의도적으로 구현한 것도 아니고, 기술적인 오류도 아니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다음 타임톡, 카카오판 분서갱유? 카카오다음이 ‘타임톡’을 전격 도입한 건 지난 6월 8일이다. 이 날짜 공지에서 카카오다음 측은 타임톡을 “실시간 소통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댓글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라고 규정하며 “보다 많은 이용자가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밝힘과 동시에 세이프봇 활동을 강화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선택옵션이었던 세이프봇을 모든 댓글에 전면 적용해 욕설과 같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선 넘은 댓글을 안 보이게 한 조치다. 그럴 수 있다. 정작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가장 핵심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개편에서 두 번째 항목으로 들고 있는 “24시간 후 타임톡 종료”다. 그러니까 댓글을 단 후 24시간 후에 댓글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6월 8일을 기점으로 과거 포털 다음에 송고된 기사에 달린 모든 댓글까지 일괄적용됐다. “다음뉴스에 달린 사용자 댓글을 불편해하는 정권을 의식한 카카오 측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위 공지를 보면 “지난 5월 한 달간 사전 공지해드린 바와 같이”라며 카카오다음 측은 이 개편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사전에 예고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달 전인 5월 3일 공지를 보면 “세이프봇을 한층 강화함과 동시에 게시판 방식의 댓글 공간을 실시간 소통에 초점 맞춘 새로운 댓글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을 준비 중”이라고만 했지, 그 새로운 댓글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24시간 후 댓글을 삭제하는 타임톡’이라고 밝히진 않고 있다. 많은 기존 뉴스댓글 사용자들이 비난하는 ‘24시간 후 댓글 삭제’는 6월 8일 공지를 기점으로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전격 도입된 것이다. 타임톡 운영 한 달. 다음 측이 밝힌 ‘실시간 소통 확대’나 ‘보다 많은 이용자가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밝히’는 단계에 접어들었을까. 7월 6일 오후 다음뉴스(news.daum.net)에 들어가 제일 상단에 배치된 기사들을 접속해봤다. 제일 상단에서부터 다섯 번째까지 기사에 달린 타임톡 댓글의 총수는 1개였다. 그나마 댓글이 달리는 기사는 다음 메인 화면에 큐레이션된 기사들이다. 7월 6일 오후 2시 44분 현재 다음 메인 화면 가장 상단에 배치된 ‘GS건설, 1666채 다 허물고 다시 짓는다’ 제목의 머니투데이 기사를 클릭해봐도 타임톡 댓글 수가 191개에 불과했다. 타임톡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한 감소다. 댓글을 읽어봐도 댓글을 다는 포털 독자들 사이의 ‘실시간 소통’이라기보다는 과거 댓글처럼 기사, 정확히 말하면 기사 제목에 대한 의견이 대부분이다. 타임톡 개편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다음 뉴스에 달리는 댓글성향에 불편함을 느낀 권력 외압에 카카오다음 측이 자발적으로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0월 13일,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 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당시 공권력에 대화내용 및 이용자 정보 제공의혹을 받았던 다음카카오의 해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카카오 측 “고객센터 등을 통한 의견 취합 중” 카카오다음 측은 “타임톡 도입 한 달 전후 자사 뉴스페이지에 대한 PV(페이지뷰)나 UV(순방문자 수) 수치 변화를 밝힐 계획은 없다”고 했다. 앞서 7월 5일 통화한 서은샘 카카오PR팀 매니저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서비스 초기라서 아직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전후 이용자 증감 추이나 이용행태에 대한 자료 공개는 이르다고 판단한다.” -5월부터 사전공지했다고 하는데 한 달 전인 5월 3일 공지에는 24시간 후 댓글 삭제 도입은 밝히지 않았다. “우리가 사전 공지한 내용은 어쨌든 댓글을 개편하고 소통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용시간은 보도자료에서도 밝힌 것처럼 기사 발행 후 댓글 서비스 이용시간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24시간이라고 설정한 것이다. 자세한 데이터 문의를 한 분도 많은데 대외비라 공개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딱히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진 않을 예정이다.”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공지가 일방적이지 않나. 댓글 정책 변경에 대한 불만이나 문제 제기를 받는 창구가 없다. “현재 베타 서비스인 만큼 이용자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예컨대 CS센터(고객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그런 의견을 받아 서비스는 개편하려 하고 있고, 6월 중순엔 기사에 달린 타임톡 개수를 포함하는 것을 도입했다. 이용자들의 의견은 확인하고 반영하고 있다.” -공지에 댓글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씀하신 CS센터와 같은 문의처나 e메일도 따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용자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말씀드린 것처럼 CS센터뿐 아니라 기사에 남긴 타임톡 댓글에 달린 정책변화에 대한 의견도 보고 있다. 뉴스 이용자 소비행태도 보고 있고, 정책이나 기능은 테스트하고 있다.” -댓글 삭제를 타임톡 이전 과거 기사까지 일괄 적용한 근거는 무엇인가. “타임톡을 오픈하면서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댓글 관리 정책 일원화 차원이었다.”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용자 관점에서 서비스를 개편한 게 맞나. 하다못해 댓글 개편에 대한 이용자 설문이라도 해서 데이터에 근거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려 한다. 현재까지 자체 서베이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단순하게 말한다면 결국 사용자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것 아니겠나.” 이원재 카이스트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쓸데없이 댓글을 남겼다가 고소당하는 사람들도 부담이겠지만, 그 과정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회사도 부담이었으리라는 분석이다. “카카오다음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양대 포털뉴스라고 하지만 트래픽 기준으로 나누면 네이버가 90%, 다음이 10%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적은 데 비해 사회적·정치적 제제는 네이버 수준으로 받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사업자의 시각에서 뉴스댓글은 ‘계륵’ 같은 것이다. 카카오톡처럼 채팅창 형식으로 개편하고 부담되는 주목도를 줄이는 게 오히려 이익일 수도 있다.” “포털 입장에서 뉴스댓글은 계륵”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타임톡 개편 후 효과나 실태를 분석하려고 하더라도 24시간 후면 사라지기 때문에 바깥에서 평가하기가 어렵다”라며 “하다못해 라면 파는 회사도 한 달에 한 번씩 시장 조사를 하는데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회사가 그런 데이터 조사를 안 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이용자다. 이용자들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고 어떻게 개선하기를 원하는지 의견 수렴하는 과정이라도 보여줬다면….” 개편과 관련한 소통 부족을 꼬집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접촉한 한 전직 다음커뮤니케이션 고위 임원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한마디로 서비스 기획의 실패다. 카톡을 주력플랫폼으로 하는 회사이다 보니 ‘톡’을 활용한 댓글 서비스를 하면 잘되지 않을까 생각한 듯하다. 댓글과 채팅은 근본적으로 속성이 다르다. 아마 내부적으로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 인사도 개편 후 뉴스댓글란의 변화를 보며 ‘이 개편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누군가 기획자가 오버했구나’였다. 개선을 했어야 하는데 개악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정치적 의도라기보다 기획 무능에서 비롯된 ‘오버’라고 본다.” 네이버의 경우 데이터랩을 통해 일별 총 작성자 수 및 댓글 수, 본인삭제 건수 등을 공개하고 있다. / 네이버 데이터랩 비판적인 의견만 있지는 않았다. 6월 8일 타임톡 개편 직후 상당수의 IT 전문가들이 다음 측의 댓글 정책변화를 두고 ‘해볼 만한 시도’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성규 블루닷 CEO는 “새로운 댓글 정책이 도입된 것이 일부 이용자들의 댓글이 과대대표되거나, 사생활 침해 및 인격 모독, 혐오표현 등 부적절한 댓글을 어떤 식으로든 줄여나가겠다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러 관련 논문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것처럼 전체 사용자의 2% 안팎만 댓글을 다는데 이들의 의견이 ‘추천 수’나 ‘인기순’ 등 여러 형태로 계속 노출되면서 읽는 독자들에게 마치 그것이 여론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특히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뉴스를 많이 소비하는 정치집단은 이것이 국민 여론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언론을 통해 재확산되면서 여론 왜곡구조가 심화했다. 다음의 뉴스댓글 정책변화가 실제 효과를 냈냐 안 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할 문제다. 실제 댓글이라는 사용자 참여를 통해 건강한 공론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상적(ideal)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뉴스댓글이 인터넷 공론장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한 적이 있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다. 댓글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전체 사용자의 고작 1~2%에 불과한데 이걸 보고 정치권이나 언론사가 재분석해서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포털이 한국사회 민주주의에 뭔가 이바지하려면 새로 시작한 이 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여론 왜곡구조 개선 노력은 필요 김경달 네오터치포인트 대표는 “그동안 뉴스댓글이, 이를테면 ‘네이버는 빨간색(편집자 주: 국민의힘 지지 성향인 보수 진영이 압도적), 다음은 파란색(민주당 지지 성향인 진보진영이 압도적)’이라는 식으로 정파적 공간으로 변질됐다고 인식돼온 게 사실”이라며 “댓글 이슈를 다룰 때 뉴스 생산과 유통형식의 변화 문제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언론사들이 포털에 기사를 보낼 때 이른바 낚시질, ‘후킹’을 잘해 클릭을 많이 유도하면 잘한 것으로 평가 기준을 바꾸면서 보수 신문·경제지 중심으로 아예 포털댓글용 기사생산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향도 댓글 문제와 함께 고민해야 할 ‘뉴스유통 환경’의 변화라는 지적이다. “포털 플랫폼들이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키워나갈 것인가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 그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개편 직후 밝힌 것처럼 댓글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 비중을 옮기는 관점의 변화가 보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말 개선의 의지가 없었다면 포털로서는 그냥 가만히 뒀을 거다. 그게 제일 돈이 안 드는 방법이니까.” 김 대표는 “개편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당장은 비판받거나 욕먹을 상황이 많더라도 카카오다음 측이 이를 극복해 긍정적 시너지를 냈으면 하고 바랐다”라면서도 “다음 측도 바꾸게 된 취지를 꾸준히 알리고 뉴스가 더 건강하게 소비되도록 선순환 참여유도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대목이 있다. ‘뉴스댓글 노출 24시간 제한’이 소통의 왜곡구조, 예컨대 슈퍼댓글러의 댓글 공간 독점 같은 현상을 막을 순 있을까. 적어도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횡행하던 ‘댓글 전쟁 화력지원’ 요청 같은 글들에서 다음뉴스링크가 빠진 건 사실이다. 어차피 24시간 뒤면 사라질 운명의 댓글들이므로 공을 들여봐야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부터 양대 진영의 주된 댓글 전장은 ‘다음’이 아닌 ‘네이버 뉴스’였다. 다음은 ‘특정 진영의 시각으로 기운 무대’라는 평가가 이미 지배적이었다. 김 대표는 “과거 미국에서 나온 SNS 서비스 중 스냅챗 같은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메시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부담이 줄어 특히 10대 청소년층이나 젊은 세대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라며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을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남들의 시각에 연연하지 않고 댓글을 달도록 하는 장치로 (카카오 측에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효과를 가져왔을까. 강정수 미디어스피어 이사는 “관건은 뉴커머, 즉 댓글정책 변화 이후 새로 유입된 뉴스소비자가 있는지, 아니면 과도하게 댓글을 달아온 고관여층의 비율이 여전히 높냐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편 한 달이 지났지만 젊은층 참여가 늘었다든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른 목소리가 나타난 낌새는 아직 포착되지 않는다. 댓글 등에 올라온 반응을 보면 “이제는 다음뉴스에서도 떠나야 하나”는 식으로 정책변경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많다. 카카오다음 측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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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물 전성시대]킨 -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2022. 07. 29 14:16)
- 2022. 07. 29 14:16 문화/과학
- 1976년 <패턴마스터>로 데뷔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당시 SF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가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백인 남성 작가들이 백인 남성 캐릭터를 앞세우던 SF계에서 그는 흑인이면서 또 여성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돼 독보적인 성취로 이어졌다. 그는 2006년 5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문화와 미국 역사에 판타지를 덧대 인종과 젠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권력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SF 장르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천착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개인의 배경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이를 부추겼던 낯설고도 익숙한 환경이 무척 이채롭게 그려졌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 비채 1979년작 <킨>은 타임 슬립과 미국 노예제도를 결합한 그의 대표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80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로 강제로 소환된 흑인 여성 다나는 느닷없이 엄혹한 노예제의 희생자가 된다. 갑자기 과거로 가게 되는 이유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루퍼스라는 백인 남자아이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자신이 그곳, 그 시간대로 옮겨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처음 타임 슬립했을 때도 물에 빠진 루퍼스를 구해 인공호흡으로 겨우 살려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이의 부모란 작자들이 ‘검둥이(nigger)’라는 차별적인 언사와 함께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총에 맞기 직전 다나는 원래의 1976년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후에도 이 일은 반복된다. 이번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다음에는 어떨까. 심지어 금세 돌아올 거라는,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다. 실제로 다음엔 남편 케빈과 함께 과거로 간 다나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노예로 생활한다. 게다가 노예주에게 가죽 채찍을 맞고 극도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케빈을 남겨둔 채 홀로 현대로 소환된다. 다나는 8일 후 다시 과거로 가지만 그사이 케빈은 그곳에서 무려 5년을 버텨야 했다. 다나를 위협하는 건 노예제가 상징하는 명백한 폭력만이 아니다. 위생 개념이라고는 없어 언제고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는 음식을 섭취하는 위험과 배고픔을 저울질한다. 그럼에도 가장 큰 고통은 루퍼스와의 애증관계에서 찾는 게 옳다.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먼 조상임을 곧 깨닫는다. 루퍼스가 강제로 범한 노예 앨리스 역시 족보에는 그의 부인으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니 현대의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루퍼스를 지켜야만 할 테고, 지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고 있는 ‘권력자’ 루퍼스에게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루퍼스는 이 시대 다른 백인 남자들과 다르지 않아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뭐든 소유하려 한다. 다나의 마음까지도. <킨>의 타임 슬립은 노예제를 그대로 체험하는 듯한 감각으로 왜 이 시스템이 사람을 그토록 옭아맬 수 있었는지 그 효율적인 심리 감옥을 현대인의 시선에서 들여다보게끔 이끈다. 나아가 현대인인 다나가 루퍼스에게 느끼는 증오와 애착이 상충하며 만들어내는 갈등은 단순히 시대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타락과 공포, 용서와 복수까지 아우르며 내내 인간의 충동과 이성을 저울질한다. 그렇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에는 이기적인 인간의 저열한 지배욕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여러 위기와 갈등으로 그려낸 서스펜스와 애증의 드라마 모두 시대의 비극을 넘어선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유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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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007 노 타임 투 다이」 007시리즈는 이미 하나의 장르다(2021. 10. 01 15:21)
- 2021. 10. 01 15:21 문화/과학
- 사실 ‘마초’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인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클라크 게이블이나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이지 않았는가. 제목 007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영국 상영시간 163분 장르 액션 감독 캐리 조지 후쿠나가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라미 말렉, 라샤나 린치, 레아 세두, 아나 드 아르마스 개봉 2021년 9월 29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유니버셜픽쳐스 아아, 이걸로 끝인가. 근래에 보기 드문 최고의 몰입감을 안겨준 영화였다. 뻔한 장르적 클리셰의 총합이지만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눈물이 핑 돈다. 청소년 시절 숀 코너리, 로저 무어와 함께 성장한 필자에게 그들을 대체할 다른 제임스 본드는 생각지도 못했다. 피어스 브로스넌도 마찬가지.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뭔가 달랐다. 맷 데이먼 주연의 본시리즈로 첩보액션물의 현실성이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시점에서 그는 등장했다. 벌써 15년 전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아마도)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제목은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 대충 중의적으로 번역한다면 ‘죽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액션과 볼거리가 몰아친다’ 정도의 약장사격인 제목이겠지만, 희망을 섞어 번역한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전 세계 영화계에 몰아닥친 PC주의의 광풍으로 007 주인공도 ‘정치적 올바름’에 맞게 흑인 여성으로 바뀐다는 소문이 돈 것은 2년 전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여성 러샤나 린치가 살인면허 007 코드네임을 받는다는 정보가 회자됐다.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의 새 007시리즈의 주인공은 러샤나 린치가? 글쎄.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을 위해 다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화 자막이 다 올라간 후 딱 한문장으로 메시지가 나온다. ‘노 타임 투 다이’의 중의적 의미 대부분의 007 영화는 본시리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다. 이번 영화 한편만 보더라도 독자적으로 감상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전작 <007스펙터>(2015)와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한번쯤 봐두는 것이 좋다. 영화는 전작에서 미스터 화이트의 딸로 나온 마들렌의 어린 시절 사건에서 시작한다. 007시리즈에서는 매번 2~3명의 본드걸이 나오는데, 드디어(!) 제임스 본드가 안착하는 것은 마들렌이다. 마들렌은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호숫가의 집에서 여자아이를 홀로 기르고 있는데, 본드는 첫눈에 아이의 파란 눈이 자신을 닮을 것을 안다. 간략하게 스토리를 리뷰하자. M16은 비밀리에 헤라큘리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나노로봇에 암살대상의 유전자형을 집어넣어 소리소문없이 접촉한 사람만 골로 보내는 획기적인 암살방식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난 지 꽤 시일이 흘렀으니, 유전자 매칭 살인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올 법도 하다. 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살인에 유전자를 활용한다는 것이 한사람만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이 기술이 흘러들어간다면 특정 가계(家系) 사람들만 전멸시킨다던가, 아니면 나치가 꿈꿔왔던 ‘최종해결’에 굳이 가스실 같은 것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M16의 연구실을 급습한 스펙터 조직이 이 기술을 탈취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조직의 수장 M은 비밀에 부치고 이제는 은퇴해 자메이카의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제임스 본드를 찾는다. 흑인 여성배우의 007시리즈 만들어질까 뭐 이런 스토리는 몰라도 좋다. 영화는 시작장면부터 어찌 보면 클리셰 덩어리인 추격신을 보여준다.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슈퍼카와 오토바이 추격신, 자동소총, 급히 피하는 사람들… 그냥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여기에 코로나19로 당분간 보기 힘들어진 휴양지의 멋진 풍광까지. 생각해보면 007시리즈는 이미 하나의 장르다. 영화 초반에 헤어진 마들렌만 유일무이한 본드걸일 리 없다(전작에서도 모니카 벨루치가 제2의 본드걸로 나오지 않았던가!). 스펙터 본거지 잠입신에서 CIA 요원으로 ‘3주밖에 훈련하지 않았다’고 하는 팔로마라는 신참여성 요원이 파트너로 나온다. 이 역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조이역을 맡았던 아나 드 아르마스가 맡았다. 사실 ‘마초’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인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클라크 게이블이나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이지 않았는가. 제임스 본드 없는 007시리즈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직 차기작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 흑인 여성배우 러샤나 린치 주연의 007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상이 안 된다. 이번 편에 캐릭터를 잡은 것을 보면 그저 M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공작 머신인데. 블로펠트역 열연한 악역 전문배우 크리스토프 왈츠 경향자료 ‘감옥 안에서 어떻게 원격으로 스펙터 회합을 주재하지?’라는 궁금증의 해답은 의안이었다. 블로펠트는 원격으로 접속된 의안을 통해 시공을 넘나들 수 있었다. 눈알에 대한 집착은 전작에서 스펙터의 악당 Mr. 힝스의 특기였다. 조직원의 눈알을 뽑는 그의 괴력이 인상적이었는지,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블로펠트는 본드를 붙잡고 그의 눈알을 뽑으려고 했다. 원래 영화에 대한 정보가 처음 나왔을 때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블로펠트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는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배역이 추가됐다. 뭐, 이번 편에서는 최종판 빌런 사핀의 ‘음모’로 한쪽 눈이 없는 채로 독살되니 다음에 다시 출연할 리는 없겠지만. 독일·오스트리아 국적의 연기파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의 존재를 알린 영화는 아무래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의 나치 친위대(SS) 한스 란다 대령역이다(사진). 물론 주인공 레인 중령을 선한 역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는 순수악에 빙의된 듯한 미친 연기력으로 악역을 수행했다. 지난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이 영화와 관련한 대담에서 왈츠의 캐스팅을 두고 “왈츠가 왈츠(waltz)를 추며 내 앞에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역으로 무려 27개 영화상을 휩쓸었다. 타란티노와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2012)에서 장고역의 제이미 폭스와 함께 현상금 사냥꾼 닥터 킹 슐츠역으로 다시 합을 맞췄는데, 테리 길리엄의 <제로법칙의 비밀>(2013)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아직 주연으론 영화제 상을 받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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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 극장전]잇츠 역주행 타임! OTT의 영화 ‘발굴’(2021. 10. 01 15:21)
- 2021. 10. 01 15:21 문화/과학
- <특별시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박철웅 감독 연출에 김갑수, 조한선, 고 서민우, 유민 등의 탄탄한 주연에 차예련과 진경 등이 받치는 조연과 특별출연진도 출중했다. 무엇보다 상업영화 중에서 서울 강남의 대표적 빈자촌, 타워팰리스 옆 구룡마을을 배경으로 재개발과 강제철거 문제를 배경으로 삼은 희소성에 주목할 만했다.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한 / 씨네라인Ⅱ 영화는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10년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그랑프리, 2011년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 등 호평을 받으며 국내 개봉을 준비했지만 그후 소식이 끊어졌다. 배급사의 계산결과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대중에게 검증될 기회를 끝내 얻지 못한 채.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시장은 세계 5위권 규모로 성장했고, ‘1000만 영화’가 속출했다. 하지만 개봉 시기 극장 흥행에 한정된 수익구조는 성장 절벽으로 우려됐다. 하지만 그 대안인 ‘2차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동 시기 미국이 1차 시장 대비 2차 시장이 1.5~2배 규모로 확장된 것과 대조적이다. DVD 소장문화나 VOD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구매는 불법 파일에 밀려 자리 잡지 못했다. 케이블채널과 IPTV가 그나마 안착했지만 수익배분구조 논쟁이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멀티플렉스 구조의 원래 장점이던 ‘한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 선택권 보장’은 어느새 스크린 독과점 논쟁으로 변질됐다.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추고도 개봉 시기나 대진 운에 따라 ‘폭망’하는 영화들이 속출했고, 제작-배급사는 점점 안전 지향으로 동어반복 양산형을 내놓게 된다. 악순환이다. <특별시 사람들>은 ‘환상의 영화’로 소수 영화애호가에게만 거론되곤 했다. 그러던 중 네이버 VOD 서비스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내 2021년 9월 13일부로 넷플릭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라인업에 추가됐다. 예전 VOD 서비스가 건당 결제인 데 비해 기존 넷플릭스 이용자라면 호기심으로라도 영화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기구한 운명의 영화는 완성된 지 10여년 만에 ‘환상종’에서 벗어났다. ‘역주행’이란 표현이 가요계에서 유행 중이다. 첫 공개 당시 인기를 얻지 못했어도 진가를 알아본 이들의 지지로 재기 기회를 얻는 곡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레이브걸스의 앨범 <롤린>이 대표적이다. 영화계에도 아주 유명한 사례가 있다. <쇼생크 탈출>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지만 2차 시장 성공으로 입소문을 타 재개봉을 거쳐 ‘현대의 고전’으로 칭송받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극장가 관객이 90% 급감했다고 한다. 그 관객은 어디로 갔을까? 해당 시기에 OTT 시장은 활성화됐고, 국내외 서비스 간 힘겨루기 경쟁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가 소개되고 자체 제작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틈새시장에서 재평가돼 ‘패자부활전’을 노리는 영화도 늘어간다. 시장의 특정 영역은 쇠퇴 중이지만 새 영역 개척 중에는 뜻밖의 기회도 열릴 터다. <특별시 사람들>은 지금 봐도 만족스러운 수작이다.
- 방구석 극장전
- [신간]스펜딩 타임 外(2021. 05. 07 11:19)
- 2021. 05. 07 11:19 문화/과학
- ㆍ문화권마다 다른 시간 활용 차이 <스펜딩 타임> 대니얼 해머메시 지음·송경진 옮김 해피북스투유·1만8000원 부자든 빈자든 하루에 주어지는 시간은 24시간으로 같다. 그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람이 모인 사회와 국가, 문화권마다 서로 다르게 시간을 활용하는 차이도 나타난다. 노동경제학과 시장경제학 분야의 권위자인 저자는 지난 50년 동안 여러 다른 문화권에 걸쳐 시간 사용의 패턴과 부의 상관관계를 추적 연구했다. 국적과 계급, 성과 인종, 나이와 지위 등 최대한 수집 가능한 시간 사용 데이터를 모아 어떤 요인이 경제적 성과를 좌우하는지 꼼꼼히 살펴본 책이다. 제한적 자원인 시간을 쓰는 다양한 모습에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저자는 좀더 쉬운 이해를 위해 사건, 그래프 등을 동원해 근거를 덧붙인다. 눈에 띄는 부분은 누구나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몸을 씻는 등의 필수적 활동에 들이는 시간을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가 부와 가난의 격차를 벌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부자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는 데 투입해도 남들보다 더 많이 버는 능력 덕분에 필수불가결하게 써버려야 하는 시간도 선택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렇게 절약한 시간을 노동과 여가에 다시 투입함으로써 부와 삶의 질은 더욱더 높게 유지되는 것이다. 반대로 따져보면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며 하루 몇끼를 언제 먹을지 등의 작은 결정이 시간 활용의 차이를 불러 건설적이거나 또는 파괴적인 영향을 삶에 미칠 수도 있는 셈이다. 시간에 쫓기며 살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단순히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지갑 속 주머니 사정 못지않게 순간순간 느끼는 삶의 만족도까지 초라해지는 이들이라면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작지만 유효한 개선점을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은 없는 시민 | 강남규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두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신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담았다. 두 정치집단의 기득권을 위해 시민 전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양보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시민 스스로가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퀘이커 지혜의 책 | 로버트 로렌스 스미스 지음 박기환 옮김·사월의책·1만6000원 가시적인 형태의 교회도, 성직자도, 예배도 없는 독특한 개신교 교파인 ‘퀘이커’ 교도들의 소박하고 평화로운 가르침을 소개하며 각자의 양심을 돌아보게 한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 침묵 속의 진리, 말이 아닌 행동, 비폭력과 봉사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대화 | 김도연 지음·김사겸 구술·잎새달·1만7000원 문화불모지로 불렸던 부산을 영화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의 입을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전후, 영화비평의 개념이 막 자리 잡던 1950년대와 서서히 한국영화가 양산되던 1960년대 이후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의 역사와 비화를 들을 수 있다.
- 신간
- [시네프리뷰](2020. 09. 24 16:40)
- 2020. 09. 24 16:40 문화/과학
- ㆍ유부녀를 사랑했던 것은 구조대원이었을까 제목 에브리타임 아이 다이(Every Time I Die)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8분 장르 스릴러 감독 로비 마이클 출연 드류 폰테이로, 마크 멘차카, 미셸 마세도 외 개봉 10월 개봉 예정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모쿠슈라픽쳐스 ㈜모쿠슈라픽쳐스 신체를 집으로 은유하고 실제 주인은 영혼이다, 라는 믿음은 서구·기독교 문명에만 고유한 것일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다시 어린아이로 환생한다고 믿는 티베트 불교의 교리가 대표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굳건히 신봉되어온 ‘믿음’이다. ‘죽음 이후의 삶(Life after death)’이라는 형용모순은 인도 출신 의사 디팩 초프라가 주창한 이래 제도권에 근접한 권위를 얻고 있다. 물론 과학은 공식적으로 환생이나 내세, 심지어 임사체험조차 환각의 범주를 넘어선 실재 현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샘에게 일어난 일은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다. 전장에서 돌아온 타일러는 자신의 아내 미아가 긴급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처제의 남편 직장동료인 샘과 바람이 난 것을 알아차린다. 따져 묻던 그는 호숫가에서 샘을 죽인다. 우발적 살인이다. 음, 바람피웠다고 죽을 일까지는 아니지. 시간이 경과한 후 눈을 떠보니 사랑하던 미아의 언니 포피의 얼굴이 들어온다. 몇시간 전에 나는 죽었는데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살펴보니 팔목엔 자신에게 없던 문신이 있다. 거울을 보니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직장동료 재이의 몸속으로 샘의 영혼이 들어간 것이다. 샘은 미아와 포피에게 피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린다. 샘을 우발적으로 죽인 타일러는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또 다른 사건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알리바이를 만들어뒀건만 재이는 마치 살인현장을 본 것처럼 말한다. 타일러의 두 번째 범죄. 재이를 죽이고 자아분열증에 사로잡힌 것을 괴로워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다가 다시 눈을 뜨는 주인공. 이번에는 누구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죽었지만 다시 빙의되어 살아나는 영화 제목이 <내가 죽을 때마다(Every Time I Die)>인 이유다. 참신하다기보다 TV시리즈 <환상특급(Twilight Zone)>의 긴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분위기는 음산하고, 우울하고 착 가라앉은 괴로움이다. 미아, 그러니까 전장에 파견된 군인을 둔 유부녀와 샘의 사랑은 애당초 이뤄지기 힘들었다. 샘은 어린 시절 실랑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동생을 결국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던 여인이 자신을 떠나 전 남편에게 돌아가면서 그 트라우마의 방아쇠(트리거)가 당겨졌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는 괴로운 꿈과 함께 자신의 부모가 지우려 했던 동생에 대한 기억은 낡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양철상자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버려도 버려도 상자는 그의 곁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스릴러 장르 형식을 띠지만 특유의 싸늘한 공포와는 거리가 멀다. 띄엄띄엄 플래시백의 형태로 제시하는 그 어린 시절 사건 후 샘은 동생의 인형에 집착하거나 동생 옷을 입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 부모들은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갔고, 의사는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며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앞으로는 정상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동생 죽음의 죄책감 때문에 빙의한 걸까 그런데 샘이 죽은 뒤, 재이에게 빙의(憑依)되어 있는 샘은 진짜다. 타일러도 눈치를 채고, 나중에는 그의 연인이었던 미아조차 믿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은 맨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을 사라라고 주장했던 어린 시절 샘의 주장은 정말 죄책감 때문에 생긴 잘못된 믿음일까.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사라에게 있었던 일’이 묘사된다. 죽어가는 샘이 목격하듯, 죽음 직후에 하늘 구석엔 먹구름이 끼고 가운데는 흰빛이 자리 잡는다. 심정지된 사라의 가슴에 의료진이 전기 충격기를 가져다 대자 그쪽으로 빨려가던 ‘사라’가 다시 내려와 천장에 머무른다. “언제나 너를 지켜줄게”라는 오빠의 약속을 기억한 사라의 영혼은 천장을 둥실둥실 흘러가 오빠에게 간다. 그게 첫 시작 장면에 묘사된 어린 시절 오빠가 겪었던 ‘동생이 오빠가 부르는 환청’이었다. 사라가 그때부터 오빠에 빙의되어 있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갔을 것이다. 샘의 동료 재이의 얼굴이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바로 전에 리뷰한 <아무도 없다(Alone, 2020)>의 연쇄살인마역을 맡은 배우 마크 멘차카다. 1975년생 배우로 이제 40대 중반의 중견배우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TV시리즈에 출연해 그리 알려지진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샘인데, 영화의 크레딧 순서에서는 제일 먼저 마크 멘차카가 나와 있다.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편영화 분량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다중인격’ 빌리 밀리건의 경우 경향 자료 사진 F44.8.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통계분류(ICD) 10차 개정판상 이 질병분류번호다. 흔히 DID로 줄여 읽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더 대중적인 언어로는 ‘다중인격’을 지칭하는 병의 분류번호다. 다중인격 장애 환자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지만 실제 학계에 보고된 발병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14년 사망한 빌리 밀리건의 사례가 유명하다. 1977년 오하이오대학 주변에서 성폭행 용의자로 체포된 뒤 심문과정에서 자기 안에 각기 다른 24명의 인격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극영화 <23 아이덴티티>(2017)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다. 이 정신 질환 분류를 인정하기에 가장 큰 딜레마는 당사자가 다른 인격이 자신 안에 있고, 어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원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체라는 주장을 과연 수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미국정신의학회의 표준 분류체계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1994년 제4판 이전에는 해리성 장애로서 다중인격을 인정하지 않았다(2013년에 나온 5판 이후에는 ‘빙의’나 ‘귀신들림’까지 광범위하게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빌리 밀리건 케이스를 매스컴이나 학계가 주목한 것은 실제 그런 주장을 범행을 일으킨 당사자와 변호인이 했고, 결국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최초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다룬 책 <빌리 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는데, 막상 출소 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려진 것이 없는 모양이다. 빌리 밀리건은 59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자신의 삶을 다룬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주위에 공언했지만, 실제 영화화까지 이뤄지진 않은 것 같다. 워낙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앞서 샤말란식의 극화가 아닌 실제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나옴직도 한데 아직은 안 만들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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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노래]재니스 조플린 (2020. 06. 19 15:22)
- 2020. 06. 19 15:22 문화/과학
- ㆍ어린 내 영혼을 뒤흔든 처절한 목소리 Summertime, time, time, Child, the living’s easy Fish are jumping out And the cotton, Lord, Cotton’s high, Lord, so high Your daddy’s rich And your ma is so good-looking, baby She’s looking good now, Hush, baby, baby, baby, baby, baby, No, no, no, no, don’t you cry don’t you cry! 사람의 음악적 감수성은 주로 10대에 형성된다. 내 경우는 그게 1970년대였다. 80년대 이후 나온 노래 중에도 왜 좋은 곡이 없겠는가마는, 이미 굵어진 머릿속을 뚫고 들어올 만큼 강렬한 음악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는 팝송의 시대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건너온 사이키델릭, 블루스,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의 자장(磁場)이 미군 부대의 담장을 넘어 서울의 소년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는 그런 음악을 전수해 주던 스승들이 여럿 계셨다. 1977년 어느 날, 고물 전축으로 카펜터스를 듣던 중학생에게 형님이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LP 한 장을 툭 놓고 가며 “한번 들어나 봐라”라고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신세계였다. 그 뒤로 “딴따라질할 거면 일찌감치 나가서 기술이나 배우라우”라는 이북 출신 아버지의 눈을 피해 미친 듯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충격은 조금 더 지나 찾아왔다. 우연히 FM에서 재니스 조플린의 <서머타임>을 들은 것이다. 아, 이것이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리인가. 사람의 영혼이 어디까지 찢기면 이런 목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당시의 전율과 충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팔등의 솜털이 한 가닥씩 쭈뼛하고 치솟는 느낌이다. <서머타임>은 조지 거슈윈이 1935년 발표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오프닝을 여는 서정적인 곡이다. 조수미를 비롯해 세계적인 소프라노들이 지금도 즐겨 연주한다. 미국인에겐 ‘민요’나 다름이 없던 고전을 재니스 조플린이 처절하고 끈적이는 블루스로 바꿔 불렀다. 물론 당시 나는 그런 배경을 몰랐다. 흐느적대던 기타 전주 뒤에 튀어나온 그의 목소리는 내게 “아이야, 너는 왜 태어났니, 왜 이렇게 살고 있니”라며 그냥 영혼을 찢어버렸다. 곡이 끝나도 한동안 거기서 벗어나질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즉시 청계천으로 달려가서 손에 잡히는 그의 모든 음반을 사서 듣고 또 들었다. 다른 곡들도 하나같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한동안 미치다 보니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주신 책값은 대부분 조플린의 얼굴이 실린 음반 재킷으로 변해 책상 아래로 몰래 자취를 감추었다. 특히 ‘조플린 인 콘서트’ 음반은 소리골이 다 닳도록 들었다. 어차피 공연을 직관하기는 불가능하고, 비디오도 없고, 사진이라도 보려면 명동 골목을 뒤져서 비싼 외국잡지를 사던 시절이다. 대신 공연실황은 그의 호흡과 멘트, 밴드 멤버들이 중간에 악기를 튜닝할 때 나오는 전기 잡음까지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나는 비록 우드스톡이나 몬테레이 같은 공연장에 없었지만 대신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으면 조플린 누나가 나만을 위해 황홀한 절창(絶唱)을 들려주었다. 지금 유튜브에서 너무나 쉽게 보는 그의 모습은 바로 예전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것들이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이제 나는 다른 가수의 평화로운 <서머타임>도 많이 듣는다. 그래도 사진 속 동그란 선글라스 너머로 처연한 미소를 짓던 제니스 조플린의 표정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 내 인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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