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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게요, 희망버스(2022. 03. 04 14:55)
2022. 03. 04 14:55 사회
“37년입니다. 검은 보자기 덮어씌운 채 어딘지도 모른 채 끌려간 날로부터,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이 지났습니다.” 2011년 10월 8일 당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제강점기보다 길다는 37년 동안 김진숙 지도위원만은 해고자로 남아야 했던 공장. 그가 복직하던 지난 2월 25일.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마지막 희망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입학식 날 교복이 없고 육성회비가 없어 쫓겨나던 한 소녀가 열다섯 살에 병든 어머니를 두고 가출해 해운대 백사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아침저녁으로 신문배달을 하고, 낮 시간에는 다방을 돌며 땅콩을 팔고, 하얀 벽 위로 새까맣게 기어오르던 빈대에 물어뜯기는 기숙사에 살며 미싱을 밟기도 하고, 화진여객 122번 버스안내양으로 배차주임과 기사들에게 삥땅을 빌미로 한 알몸수색을 당하기도 하다 마침내 스물한 살에 ‘금의환향’의 꿈을 안고 한진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던 눈물겨운 곳이었습니다. 나래비로 선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어 그들 모두가 소금꽃나무 같던, 그 소금꽃나무에서 황금이 주렁주렁 열렸지만 그 나무들은 단 한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었다던 곳이었습니다.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을 공업용수에 말아먹던 공장. 다친 동료들 문병 다니고 죽은 동료들 문상 다니는 시간이 잔업 다음으로 많았던 공장. 어용노조는 멀쩡히 살아 있는 조합원들 할머니, 할아버지, 자녀들까지 서류상으로 죽여 상조비를 갈취해 가던 공장이었습니다. ‘그곳은’ 그에게만 가혹하지 않았다 그런 어용노조와 회사에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유인물 150장을 복사해 동료들에게 나눠줬다는 까닭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경찰청 대공분실에 세 번 끌려갔다 온 후 ‘경찰 조사를 받는 자’라는 까닭으로 해고된 후 37년 동안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그에게만 가혹하지 않았습니다. 1991년 공안분실로 끌려갔던 박창수 당시 노조지회장이 의문사로 돌아오고, 2003년 고공농성 중인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아이들에게 ‘힐리스’ 운동화를 사주겠다던 김주익 당시 지회장이 끝내 목을 매달아야 했던 공장. 세월이 흘러 청년노동자 최강서가 다시 조합 사무실에 자신의 목을 걸어야 했던 피눈물의 공장이었습니다. “놀라지 말고 책상 위 편지를 봐라.” 2011년 1월 6일. 김주익과 곽재규 열사를 다시 솔밭산에 묻고, 그 아픔에 8년 동안 방에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던 당신이 처음으로 목욕탕엘 다녀온 후, 새벽 2시 혼자 배낭을 메고 벗인 김주익이 목을 매달았던 85호 크레인으로 다시 오르기 위해 3시간 동안 쇠톱으로 비상문의 자물쇠를 숨죽여 잘랐다는 공장이었습니다. 2011년 6월 11일 밤 11시. 고 백기완 선생이, 문정현 신부님이, 고 박창수 열사 아버님이, 고 박종철 열사 아버님이 그런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긴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가던 공장이었습니다. 무슨 신념이 굳은 이들만 넘어가던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먼 전라도 순천에서 당신의 사연을 듣고 가게 문에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 님을 응원하러 갑니다”라는 쪽지를 적어 붙이고 가게에 남아 있던 빵을 모두 챙긴 후 네 살짜리 아이는 안고, 초 4학년과 중 1짜리 아이들 손을 잡고 동네빵집을 하던 한가족이 함께 담장을 넘던 공장이었습니다. 멀리서라도 손 한번 흔들어주고 싶다고 하이힐을 신고 왔던 여성이 간신히 넘던 공장이었습니다. 인형극 연습과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포기한 인천의 ‘기차길옆공부방’ 초등학생 연수와 한세가 같이 담장을 넘던 공장이었습니다. 94일, 67일 단식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김소연·유흥희도 넘고,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으로 해고된 이남신·홍윤경도 넘고, 1000일 넘게 투쟁 중이던 재능교육 유명자와 그 친구들이 넘고, 지엠대우 비정규직 황호인과 그의 친구들이 넘고,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당시 크레인 점거로 2년 살다 나온 박정훈도 넘고, 당시 6년째 해고 생활이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이인근·김경봉도 넘고, 열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왔던 쌍용차 정리해고자 김정우·문기주·이창근·김득중·윤충열·김성진이 넘고, 현대차 울산·전주·아산공장 비정규직들이 넘고, 공장에서 쫓겨나 비닐하우스에서 투쟁 중이던 영동·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넘고….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며 ‘재벌’이라는, 그들의 사병인 ‘용역깡패’라는, ‘16개 중대의 공권력’이라는, ‘국가기간방위산업체’라는 높다란 담장을 일거에 뛰어넘어 당신을 구하러 갔던 공장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동이 터 오는 아침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며 춤추고 노래하던 수많은 사람들로 해방구가 됐던 공장이었습니다. 최호철 작가 해방과 연대와 소망의 버스 그렇게 출발한 희망버스는 김진숙 당신만을 위한 희망의 버스가 아니었습니다. 희망버스는 2022년 4월 2일 세종시에서 다시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들을 찾아가기 위해 또 다른 희망버스를 논의·준비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양심이 불의를 이기고, 용기가 공포를 이기고, 연대가 고립을 이기고, 지혜가 무지를 이기고, 나눔이 독점을 이기고, 평등이 착취를 이기고,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이해와 공감과 존중이 차별을 이기고, 춤이 거드름을 이기고, 노래가 호령을 이기고, 웃음이 권위를 이기는 세상을 꿈꾸는 해방의 버스였습니다. 지난 수십년 가혹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광풍 아래에서 추풍낙엽처럼 잘려나간 수백만 정리해고자들의 아픔과 현대판 노예에 다름 아닌 1100만 비정규직들의 절망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달리는 연대의 버스였습니다. 모든 사회적 풍요로움을 자본가와 특권층 일부가 독점하는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사회를 넘어 이 땅 모든 이들의 삶이 조금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평등하기를 바라며 달리는 간절한 소망의 버스였습니다. ‘희망버스는 체력전버스’라며 잠이 모자라 얼굴이 모두 떠가던 중앙기획단 동지들이 있긴 했지만, 기획자가 따로 있고, 집행부가 따로 있는 버스가 아니었습니다. 수원, 평택, 안산, 부천, 안양, 성남, 여주, 의정부, 고양, 인천, 원주, 춘천, 태백, 영월, 강릉, 속초, 천안, 서산, 청주, 충주, 제천, 대전, 광주, 순천, 전주, 군산, 대구, 창원, 울산 등 전국에서 이 버스를 제안하고, 조직하고, 함께 타는 무수한 기획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희망의 비행기’를 타고 온 분들이 계셨고, 경기 마석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 봉고버스’를 몰고 오던 분들이 계셨습니다. 중증장애인용 전동휠체어를 모두 실어야 해서 ‘희망의 트레일러’를 준비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퀴어버스’ 기획단이 따로 있었고, ‘인디뮤지션’ 버스를 기획하던 분들, ‘반값등록금 버스’를 기획하던 청년학생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희망이 현실로 변하는 5시간을 위해” 달리겠다는 청소년영의정버스 기획단이 있었습니다. ‘농민버스’를 준비하던 농민들이 있었고, ‘교수학술버스’, ‘보건의료인버스’, ‘철거민버스’, ‘모두의 인권을 위한 무지개버스’ 기획단도 따로 있었습니다. ‘촛불시민버스’, ‘어린이책작가버스’를 준비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군산에서 500인분의 밥차를 끌고 오겠다 하니, 청주 희망버스에서는 200인분의 희망의 묵밥과 연대의 연김밥을 가져오겠다 했습니다. 부산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5000인분의 어묵탕을 준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전국 팔도에서 가져온 음식과 물품을 모아 나눔과 연대의 마당을 열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책작가들은 전국의 해고노동자 자녀들의 이름과 나이, 성별 등을 사전에 확인해 필자들의 편지글을 담은 동화책 2000여권을 싣고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버스만 탔던 것도 아닙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울산에서 부산까지 행진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은 ‘소금꽃 찾아 천릿길-희망의 도보행진’으로 평택에서부터 부산까지 걸었습니다. 유성기업 해고자 가족들은 ‘희망의 기차편’을 띄우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씩 휴가를 내고 한진중공업 정문을 지키던 평범한 시민들이 계셨습니다. 서울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64시간 릴레이 촛불행진에 나서던 노동자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사람 없는 새벽 시간에 서겠다고 해서 밤 12시 이후 아침 7시까지 신청자가 제일 많기도 했습니다. 20일 만에 <CT 85>라는 기념비적인 사진집을 출간해준 사진가들과 출판사가 있었고, 그렇게 보름 만에 <깔깔깔 희망의 버스> 책을 내주던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이 모든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나눠줄 희망의 종이배 1만개를 접기도 했습니다. 2차 희망버스 참가자가 2013년 10월 26일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자들에게 보내는 손편지를 쓰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탄압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달렸죠 이런 희망버스를 막기 위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1차 16개 중대, 2차 93개 중대, 3차 86개 중대, 4차 114개 중대, 5차 90개 중대, 6차 90여개 중대 등 전국의 전경부대를 끌어모아 공안탄압에 나섰습니다. 당시 경찰청장이던 조현오와 부산경찰청장이던 서천호 등이 나서서 위법하게 희망버스를 ‘훼방버스’, ‘빨갱이버스’ 등으로 음해하는 댓글 공작부대를 비밀리에 꾸렸음이 박근혜 탄핵 후 경찰청 과거사인권침해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져 뒤늦게 구속기소 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당시 정부는 희망버스를 차단하기 위해 전국의 버스 회사들을 협박하고, 총 110명의 승객을 연행하고, 350여명의 승객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지만 희망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1차 때는 담을 넘었고, 2차 ‘희망의 휴가’ 때는 1박2일 동안 내내 내리던 폭우와 10t 넘게 쏘아대던 최루액을 넘었고, 3차 ‘가을여행’ 때는 영도로 들어가는 다리 3개를 전면폐쇄하고 어버이부대를 앞세운 야비한 탄압을 넘었고, 4차 ‘인왕산 등반대회’ 때는 서울로 진격해 청와대 뒷산을 타고 넘었고, 5차 때는 ‘1만여명의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훼방 놓는 국제 망신버스’라는 공세를 국내 영화인들의 희망버스 지지와 영화제 측도 준비 못 했던 5개 국어로 된 희망버스 홍보 브로슈어로 넘었고, 6차 때는 전국노동자대회+희망버스 부산 공동 개최라는 특별한 결의로 정부와 자본, 보수언론의 총체적인 공세를 넘어 지치지 않고 달렸습니다. 세계 언론에 김진숙과 희망버스 투쟁을 알려 전 세계의 핍박받는 노동자 민중 시민에게 큰 희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연대의 힘으로 당시 세계 금융의 중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1% 금융자본에 맞선 99%의 저항운동’으로 시작해 전 세계 140여개 도시로 퍼져 나가던 아큐파이 운동 전체 총회 자리 연대사를 먼 한국의 조선소 크레인 위에 고립돼 있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하는 진기한 풍경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공할 연대와 투쟁이 14년 만에 재벌총수를 국회 청문회장에 세우고, 끝내 정리해고자 전원 복직이라는 사회적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했습니다. 그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쌍용자동차 앞 ‘희망텐트촌’으로, 연대투쟁에 나선 ‘희망의 뚜벅이’들로, 강원도와 김해로 향하는 ‘생명의 버스’로, 강정으로 향하는 ‘희망의 비행기’로, 진주의료원 폐쇄에 반대하는 ‘보건희망버스’로, 핵 없는 사회를 바라는 ‘밀양 희망버스’로, 거제도 조선산업공장 비정규직 우선해고에 반대하는 버스로, 삼척 동양시멘트 비정규직을 응원하는 ‘동해희망버스’로, ‘유성기업 희망버스’로, ‘스타플렉스 희망버스’로, 부산 생탁 비정규직 응원버스로, 근래 코로나19에 대응한 ‘드라이브스루 희망버스’ 등으로 수없이 진화하며 그 희망의 씨앗들이, 열매들이 더 널리 퍼지기를 소망해왔습니다. 한국사회에 평범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희망의 정치노선’이 생기기를 기원해왔습니다. 그런 눈물겨운 시간들이 쌓여서인지, 지난 2월 25일 다음과 같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으면서는 한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도 우리도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단 한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꿨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 등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지역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살아온 그 억울한 이름들을 이제나마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케이오,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표지 이야기
[독자댓글]964호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 外를 읽고
[독자댓글]964호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 外를 읽고(2012. 02. 28 17:34)
2012. 02. 28 17:34 오피니언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 선거정치에서 이 문제는 아예 의제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주의 주인들은 이런 정보가 일반에 알려지면 대중들이 저항하고 나서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_트위터 wlrwl1 벌써 20명이 넘는 죽음… 어서 빨리 2차 희망버스를~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_트위터 gulljin BBK 김경준씨 가족 “편지 공개 후 보복당하고 있다” 김경준씨의 옥중 심경을 적어봅니다. 요즘 언론에 나오는 내용들이 실제와 다른 점이 많아 갑갑해 합니다. 기획입국설 관련 가짜편지 고소 건으로 검찰 조사를 두 번 받았습니다. ‘나꼼수’의 내용이 상당 부분 맞지만 김경준씨 본인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_트위터 bbkbooks 김경준씨와 그 가족들은 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MB 임기 중에 발버둥쳐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MB의 임기가 끝났을 때가 적기가 될 것이다. 먼저 BBK로 여론몰이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건들이 터져나올 때 다시 BBK를 이슈화시키면 진실을 규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_다음 necrophilia 냄새가 폴폴 납니다. 계속 BBK 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조만간 팍 터질 기미가 많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정말 끝장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그분께서 기죽지 않고 연설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조금만 더 인내해 보렵니다. _다음 doldul-2 “‘새누리 텃밭’ 부산 2030 민심 어떨까”를 읽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영남권 민심이 변해야 살 수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것인가? 영남권의 무조건 지지가 지금의 현실을 만든 공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영남 사람들도 정치권의 노리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증명해야 한다. 영남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_경향닷컴 rornfl0305 “‘하레 크리슈나!’ 힌두교를 아시나요?”를 읽고 다른 사회적 사안과 달리 한국 사회가 종교에 관용이 있다고 한다. 툭하면 집에 찾아오고 길거리에서 따라오면서 전도하는 특정 종교 신도들의 영향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굳이 강요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멘…. _다음 옥동자 다른 종교보다는 좋아 보이네요. 지방이라 가보진 못했지만 힌두교 사원에 가보고 싶네요. _다음 HAHAHA
독자의 소리
[표지인물]“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2012. 02. 22 11:41)
2012. 02. 22 11:41 사회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은 희망버스 기획단의 주역이다. 이들이 옥살이를 마치고 보석 허가를 받아 ‘제한적 자유’의 몸이 됐다. 5차에 걸친 희망버스는 85호 크레인에서 싸우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살려냈다.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라며 두 사람은 제2, 제3의 희망버스 운동을 호소하고 나섰다. 5차에 걸친 희망버스는 85호 크레인에서 300일 넘게 싸우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52)을 살려냈다. 한진중공업 사측도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지난해 11월 18일의 일이다. 같은 날 희망버스 기획단의 주역인 송경동 시인(46)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44)은 오랜 수배생활을 마치고 옥살이에 들어갔다. ‘85’일에서 하루 부족한 84일이 지난 2월 9일, 부산지법은 두 사람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다. 보증금 2000만원을 납입하고 주거지 거주 등의 조건도 덧붙였다. 이들의 자유는 ‘제한적 자유’인 셈이다. 송경동 시인(왼쪽)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이 희망버스의 상징인 깔깔깔 스카프를 들고 서 있다. | 정지윤 기자 석방되던 날 송 시인은 부산구치소 앞에서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15일은 쌍용자동차 투쟁이 시작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 21명이 사망했지만, 사측은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복직시키지 않았다. 지난 16일, 송 시인과 정 실장은 서울 정동의 민주노총 건물을 찾았다. 두 사람은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희망버스 기획단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만나 제2, 제3의 희망버스 운동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희망뚜벅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송경동(이하 ‘송’)_ 석방되던 날에는 부산에 있었고, 금요일에 바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토요일에는 1박2일로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를 다녀왔습니다. 법원에서 저희를 풀어주면서 거주지에 머물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쌍용차 투쟁에 가지 말라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진우(이하 ‘정’)_정확히 말하자면 이틀까지는 다른 곳을 가도 괜찮습니다. 법원에서 3일 이상 거주지를 벗어나면 허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나요. 송_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환자였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 참가했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구속된 이후 경찰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음주에 병원에 가서 정확히 진단을 받고, 길면 한 달 정도 병원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정 실장 모두 목디스크 증상도 발견됐습니다. 정_ 저는 감옥에 갇힌 건 이번이 처음인데, 세 달 가까이 좁은 독방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오니까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300일간 크레인 농성을 마친 뒤 땅멀미를 하셨다는데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석방된 다음날 당에서 하는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라는 제의가 있었는데, 어지럼증 때문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건강검진을 조만간 받으러 갈 생각입니다. 송_ 그래도 석 달간 금연은 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두 분 모두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지만 옥살이에 익숙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적응하기가 힘들진 않았나요. 정_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 상황에 쉽게 복종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방에 갇혀 끼니 때마다 문 아래로 870원짜리 식사가 들어옵니다. 어느 순간 이런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사식이 아닌 구치소에서 넣어주는 밥은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몸무게가 10㎏ 정도는 빠졌습니다. 송_ 제가 있던 공간은 누우면 딱 한 뼘 정도 공간이 남는 독방이었습니다. 문이 하나가 있고 창가에 변기가 하나 있는 구조였습니다.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난방도 잘 되지 않아 추웠습니다. 사실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습니다. 길게 옥살이를 할 줄 알고 감방에 도배를 하려고 했습니다. 휴식시간에 다른 방을 보는데 도배가 되어 있어 새집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걸 보고 도배용 편지지와 풀을 엄청 사뒀는데, 시작도 못해보고 석방이 됐습니다. 2월 16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방문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실장을 반기고 있다. | 김문석 기자 희망을 노래하다가 좁은 독방에 갇히게 됐는데 풀이 죽지는 않았나요. 송_ 희망버스에 오르신 여러분들이 계셔서 기가 죽지는 않았습니다. 희망버스 시민들이 매주 우리가 갇힌 부산구치소를 찾아와 우리 둘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변기 뒤에 나 있는 창에 귀를 바싹 대면 작게나마 문화제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만큼 옥살이에 힘이 되어준 것은 없었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정_ 마침 우리가 감옥에 있는 기간에 크리스마스, 연말, 설날이 끼어서인지 많은 분들이 편지도 보내주시고 사식도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에 사신다는 30대 주부가 보내준 편지가 기억에 납니다. 자신이 희망버스에 한 번도 참가를 하진 못했지만, 여러분과 뜻을 같이한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옥에 갇히기 전부터 몇 달간 수배생활을 한 것으로 압니다. 송_ 수배기간 중에 특히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배생활을 하던 지난해 9월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여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꼭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장례식을 치르는 그 바쁜 와중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가 우리가 머무르던 곳에 여러 차례 찾아와 찜닭도 사주고 좋은 말씀 많이 하고 갔습니다. 정_ 전태삼씨에게 ‘어머님 산소도 못가보고 죄송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희에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바로 어머님의 산소다’라시며 여러 차례 격려해 주었습니다. 전태삼씨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소선 어머님의 49재를 마치고 남은 소주 2병을 송경동·정진우에게 먹여야 한다며 직접 들고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송_ 그분뿐만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에게 꼬막, 더덕, 고기 등을 보내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수배자가 된 몇 달 동안 노숙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만 한정된 사건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대의식을 만들어준 측면도 있습니다. 정_ 한진중공업 투쟁이나 희망버스가 독립적으로 조명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시민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송 시인의 책 에 나온 것처럼 희망버스만큼 사회적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억압받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희망버스도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석방된 이후 송 시인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에 희망버스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의 상징적 존재인 김진숙 지도위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희망버스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고 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송_ 지금의 한국 사회는 900만 비정규직 시대, 생계형 자살이 만연한 시대에 들어서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 때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절박한 망루가 상징처럼 서서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이 끝나고 방향을 쌍용차로 틀자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했는데, 사실 6개월 정도 희망버스 투쟁을 하면서 다들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법적 제재를 받는 등 공권력이 거세게 탄압을 하면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좀 망설이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_ 한진중공업 투쟁 때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트위터를 통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통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투쟁 당사자와 일반 시민들 간에 동질감이 만들어졌습니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때 노동운동 진영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모았지만, 이 투쟁에 참여하려는 운동진영 바깥의 사람들과 심정적인 접점을 만들어주는 게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송_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을 만나서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쌍용차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상당히 긴 기간 크레인에서 외롭게 싸웠고, 희망버스에 처음부터 수만명이 몰린 것은 아닙니다. 21명의 죽음과 정리해고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쌍용차에도 한진중 때처럼 많은 시민들이 투쟁에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희망텐트가 쌍용차 공장 앞에 섰습니다. 희망뚜벅이는 쌍용차뿐만 아니라 1500일간 투쟁하고 있는 재능교육 농성장, 인간다운 노동을 요구했던 유성기업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두 분이 보기에는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통해 새로운 체제, 새로운 사회운영 원리가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야 할 것 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_ 지금 정치권은 앞다퉈 분배의 정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새누리당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제도권 정당의 변신은 일반 시민들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이 내세우는 말이 최소한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2015년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의 문제에 우선 나서야 합니다. 쌍용차, 재능교육,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모든 노동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말해야 합니다. 송_ 정권교체가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15년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경제권력에 의한 종속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동안 정권을 맡았던 새누리당, 민주당으로부터 근본적인 반성과 패러다임 전환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8년 촛불항쟁, 2011년 희망버스처럼 아래로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동에 나선 결과입니다. 언론도 그렇고 다들 총선과 대선에 어떤 당이 승리할지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표지인물표지 이야기
[시민사회 중계석]‘희망버스’ 이어 ‘희망시국대회’
[시민사회 중계석]‘희망버스’ 이어 ‘희망시국대회’(2011. 08. 16 19:06)
2011. 08. 16 19:06 사회
지난 8월 11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김진숙 지도위원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서울 덕수궁 앞에서 30일째 단식농성을 해오던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가 건강상의 문제로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한 끼만 굶어도 배가 고파서 힘들다는 범인(凡人)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려 90끼 가까이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그들은 일방적인 정리해고가 없는 세상, 노동자·서민들도 최소한의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간절히 염원했지만, 정부·여당과 한진중공업 측은 정리해고는 당연한 것 또는 철회할 수 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8·20 희망시국대회 선포 기자회견. 이 자리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왼쪽 세번째부터),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두 전 대표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마지막 순간에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출석한 국회 청문회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야5당과 시민사회가 연대해 강력히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야 5당과 시민사회가 더 굳건한 연대와 각오로 나서야 합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및 농성사태는 그 자체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이미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가 불안한 일자리와 해고에 위협받고 극심한 민생고에 시달리는 대다수 국민들 모두의 문제가 돼버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양극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생중심·노동존중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야 5당과 시민사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책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민주당과 손학규 대표가 더욱 더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동문제와의 소통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노동문제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될 사안이기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은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증인 출석을 주창하는 등 ‘청문회 쟁점 흐리기’와 ‘조남호 회장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조 회장의 해외 도피 의혹을 따지자고 하는데, 왜 그 문제에 항의하여 고공농성 중인 사람을 불러서 추궁하려 하는 것인지, 한나라당은 스스로 반(反)노동적 재벌대기업당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청문회는 단순히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들어보자는 자리가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야기한 재벌대기업의 책임을 규명하고, 특히 이 정부 들어 노골화되고 있는 반노동, 친재벌 정책과 기조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는 청문회여야 합니다. 정부·여당의 개과천선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만큼 우리 국민들이 무서운 힘을 보여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와 시민사회의 뜻있는 인사들이 나서서 ‘희망버스’의 정신을 계승한 ‘8·20 희망시국대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4차 희망버스가 예정되어 있는 8월 27일 전인 8월 20일에 서울광장에서 수만여 노동자·시민들이 참여하는 희망시국대회를 열고 한진중공업 사태의 평화적 해결,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친재벌 기조를 폐기할 것을 호소하고 촉구할 예정입니다. 최근 많은 뜻있는 이들이 이 불안한 일자리의 시대, 인간의 자기실현이 부정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행동에 나서고 있고, 그 정점에 220일 가까이 높디높은 크레인에서 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김진숙 위원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녀의 안위가 걱정돼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됐지만, 사실 그 문제가 다른 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각성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희망버스’ 운동이 범국민적 이슈가 됐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 사태를 통해서 끊임없이 일자리의 불안이 확대되는 시대에 맞서 일자리의 안정과 삶의 안정이 최우선시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다같이 한 마음 한 뜻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8·20 희망시국대회와 8·27 4차 희망버스(서울), 한진중공업 사태의 평화적 해결과 진정한 삶의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시민사회가 호소드립니다. 안진걸
시민사회 중계석
[표지이야기]‘희망버스’는 무엇을 묻고 있나
[표지이야기]‘희망버스’는 무엇을 묻고 있나(2011. 08. 10 17:45)
2011. 08. 10 17:45 사회
ㆍ시민 자발적 참여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파장의 의미 “횟수가 거듭될수록 희망버스는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 송경동 시인 등과 함께 희망버스 아이디어를 함께 구상한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은 “(희망버스는) 우리 안의 여러 가지 궁금증과 우리가 넘어서야 할 것들에 대한 담론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7월 31일 새벽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풍등을 날리고 있다. / 김문석 기자 희망버스는 참가 인원과 이슈의 폭발력, 양 측면에서 부피를 키우며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희망버스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의 부피도 덩달아 커졌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부문에 두루 걸치는 그 질문은 해석·성찰·의문·반론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희망버스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기존 사회운동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등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운동이었다. 시민들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조직운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신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조직운동과 시민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운동에 참여하는 주체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직업적인 활동가와 일반시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며 “희망버스를 통해 서로 분리돼 있던 조직운동과 시민이 하나로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관점에선 2008년 촛불집회는 이 같은 만남을 예비한 사건이었다. “한국적 인도주의 발현 또는 인도적 실천”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정치가 삶의 영역으로 하강해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생활정치, 삶의 정치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기존의 이념적 문제들보다 점화력이 높은 정치적 쟁점으로 변하는 흐름이 보인다”며 “시민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삶에 닥칠 수 있는 문제들이 집약된 하나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희망버스 현상을 “한국적 인도주의 발현 또는 인도적 실천”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적 인도주의란 “사회적 공공성을 바로세우려는 욕망”을 지칭한다. 사회 시스템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시민들이 자발적 참여를 통해 바로잡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는 일을 일종의 선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과는 궤를 달리한다”며 “상식적이고 공정한 시민사회 형성이라는 우리 사회의 과제를 실천하는 데 희망버스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희망버스 현상이 조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 교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 자체적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희망버스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가 사측과 타협안을 만들고 뒤로 빠져 있는 동안 오히려 시민들이 사측에 압력을 가하면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 운동이 민주화 이후 노동권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조직 중심 노동운동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그간의 조직중심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문제에 소홀했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갈수록 위축됐다. 노동조합이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면서 생긴 공백을 시민들의 연대가 메우고 있다.” 희망버스를 통해 표출되고 있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은 제도권 정당을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 5당은 지난 8월 3일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 정책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파장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얼마 전 처음으로 한나라당 토론회에 다녀왔다. 상당히 전향적인 이야기들이 나왔다. 아직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까지는 아니지만 정책위나 개별 의원들 차원에서는 노동문제와 관련한 전향적 안들이 상당수 나오고 있다”며 “선거용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여권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는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문제의식이 제도권 정당 움직여 희망버스가 내걸고 있는 구호의 실현 가능성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지난 8월 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김진숙 위원과 희망버스의 아름다운 정신은 이해합니다만, 진보의 대안도, 미래도, 희망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가 경영할 나라는 조직노동만을 위한 나라도, 노동만을 위한 나라도 아닙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8월 3일 창비 주간논평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그런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다”라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기본적으로 시장투쟁이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는 속에서 실현 가능한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노동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 연대라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시민들이 한진이라는 재벌문제에는 비판적이지만 노동문제 자체에 대해서까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노동문제에 대한 가치관이나 의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아직 무리”라고 말했다.  진보개혁 진영이 재벌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해야 한다고 보는 그는 조선일보가 8월 1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자본주의 4.0’ 기사를 주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8월 1일 시리즈를 여는 기사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비정규직·중소기업·빈민 등 각 분야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규정한 후 후속 기사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 등을 집중 조명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재벌이 지갑을 풀어야 한다는 시혜적 차원의 접근”이라며 “한진중공업 문제가 재벌개혁 담론으로 공론화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기존 정치논리로는 포섭되지 않는 희망버스 현상을 보면서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설적으로 희망버스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파장이 보수언론조차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희망버스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커다란 에너지가 형성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 에너지는 여당, 야당, 조직운동, 정리해고는 철회할 수 없다고 보는 진보개혁 진영 일부의 빈곤한 상상력 등 모든 부분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섣불리 한계와 방향을 말하기보다는 희망버스가 던지는 질문에 더 주목하자는 얘기다.
표지 이야기
[신간 탐색]시민들은 왜 희망버스에 탔나
[신간 탐색]시민들은 왜 희망버스에 탔나(2011. 07. 19 16:18)
2011. 07. 19 16:18 문화/과학
지난 7월 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걸어서 구미에서 대구까지 갔다. ‘소금꽃 찾아 천릿길’ 도보행진에 참가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하룻동안 동행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은 걷는 동안 내내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에는 ‘정리해고 없는 세상 깔깔깔’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행진 중 만난 여학생들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학생들은 ‘깔깔깔’ 웃었다. 깔깔깔 기획단 지음·후마니타스·1만원 그날, 해고자들은 절망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찾기 위해 걸었다. 해고자들은 9일 동안 400여㎞를 걷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곳에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시각, 전국에서는 7월 9일 부산으로 가기 위한 195대의 희망버스가 막바지 출발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는 쌍용차 해고자들이 부산에 도착한 날, 그러니까 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에 들어가던 날 인쇄됐다. 이 책은 속성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6월 25일에 기획한 책이 불과 10일 만에 나왔다. 이렇게 급하게 책이 나온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책을 기획한 ‘깔깔깔 기획단’은 희망의 버스를 기획한 바로 그 사람들이니 말이다. 책의 1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지난 1월 6일 크레인에 오른 후 쓴 글들이다. 2부는 송경동, 홍세화, 김여진, 미류씨 등이 시민들에게 희망버스에 동참해줄 것을 권하는 글들이다. 3부는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다녀온 시민들이 여기저기에 남긴 글들이다. 왜 50대 여성 해고노동자가 크레인에 올라가 몇백일을 버티고 있는지, 왜 평범한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갔는지 책으로 기록함으로써 더 많은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 셈이다. 시민들의 지지를 요청하는 책인 만큼 희망버스를 먼저 탔던 시민들의 사정을 들어보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세 아이의 아빠인 강병택씨는 빵장사를 하는 사람이다. 6월 11일 그는 가게 앞에 ‘김진숙님을 응원하러 갑니다’라고 적은 쪽지를 붙이고 가족과 함께 희망의 버스를 탔다. 같은 동네 다른 가족들도 동행했다. 강씨는 “평화롭고 즐거운 여행”이었다며 “타인의 아픔에 공명해 누구랄 것 없이 눈물 흘리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적으로 모는 정부와 사측은 도대체 어떤 살벌한 공동체를 원하는 걸까요? 누구의 정부일까요?”라고 묻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한진중공업 비해고자의 아내는 해고자들과 함께하겠다는 남편을 막지 못했다. 남편은 “니한테는 진짜 미안한데, 내 그 사람들하고 끝까지 가볼란다”라고 말했다. 그 며칠 후 희망버스가 왔다. 아내는 버스를 보고 “절망 가운데 죽을 것 같았던 하루하루에 희망의 빛줄기를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겁니다. 당신들이 누군가의 큰 희망입니다”라고 썼다. 7월 30일, 세 번째 희망의 버스가 또 다시 부산으로 떠날 예정이다.
신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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