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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30 건 검색)

숲속 작은 유럽정원으로 산책 떠날까···제이드가든 봄꽃 만발
숲속 작은 유럽정원으로 산책 떠날까···제이드가든 봄꽃 만발
2024. 04. 09 13:42 레저/여행
꽃물결원에 튤립이 만개해 있다. 제이드가든 제공 숲속의 작은 유럽 ‘제이드가든’에 벚꽃, 튤립, 목련꽃 등 봄꽃이 활짝 폈다. 춘천에 위치한 제이드가든은 수도권보다 벚꽃이 1주일가량 늦게 개화하고, 60여 종의 벚나무 품종이 개화 시기가 조금씩 달라 가장 오랫동안 벚꽃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한 4월 초중순에는 흰색, 분홍, 노랑 등 다양한 색상의 꽃이 피는 100여 종의 목련 및 진달래보다 더 진한 분홍빛의 털진달래를 함께 볼 수 있다. 제이드가든은 약 10만㎡ 규모에 약 4000여 종의 식물이 이루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수목원이다. 유럽풍의 프라이빗 가든을 콘셉트로 2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원을 주제로 식물과 정원 문화, 가드닝, 클래스, 푸드 등 다양한 웰니스를 경험할 수 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수목원으로 14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제이드가든에서 가장 화려한 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원은 ‘꽃물결원’이다. 오솔길을 따라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된 꽃물결원은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튤립이 만개해 포토스폿 1순위로 통한다. 연분홍의 벚나무로 시작되는 입구를 지나면 네덜란드에서 직수입한 20여 종 5만구의 튤립과 조팝나무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제이드가든 전경 제이드가든은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봄맞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이드가든 도슨트’는 가드너와 함께 정원에 숨겨진 이야기와 철학 및 식물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다. 4월 23일부터 5월 23일까지 한 달간 매주 화, 수, 목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또한 5~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숲 체험 클래스 ‘꿀벌원정대’도 운영된다. 꽃이 만개한 정원을 누비는 꿀벌을 콘셉트로 가드너와 함께 북 리딩, 동작 놀이, 만들기 등이 진행된다. 정원에서의 자연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정서 발달 및 자연 친화적 태도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클래스는 4월 20일부터 5월 26일까지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각각 약 80분간 운영된다. 춘천 브런치 명소로 유명한 ‘살롱제이드’는 제이드가든 내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로 봄 시즌 스페셜 메뉴를 새롭게 선보인다. 직접 재배한 허브류와 강원도의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비건, 논비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는 ‘새우 그린 파스타, ‘버섯 크림 리소토’, ‘사과 브리치즈 샌드위치’ 등으로 춘곤증을 느끼고 입맛이 떨어지는 봄철에 활력을 제공한다. 제이드가든은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정원을 보다 편하고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드라이빙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프리미엄 정원 카트를 타고 제이드가든 정상까지 돌아볼 수 있어 아이 동반 가족 및 보행약자,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고객에게 인기가 높다.
크루즈, 정원, 온천··· 일본에서 즐기는 오감 벚꽃 체험
크루즈, 정원, 온천··· 일본에서 즐기는 오감 벚꽃 체험
2024. 04. 02 12:56 레저/여행
벚꽃이 만개한 아만 교토 전경. 아만 제공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일본 전역은 핑크빛 벚꽃으로 물든다. 고급리조트 아만이 일본에서 핑크빛 벚꽃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프라이빗 크루즈를 타고 도쿄 도심 벚꽃놀이 아만은 화려한 도심에서 로맨틱한 벚꽃 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아만도쿄를 추천했다. 아만 도쿄는 세계적 수준의 다이닝과 스파 시설을 갖춘 아만 최초의 도시 콘셉트 호텔이다. 도심 속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오테마치 숲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탁 트인 창을 통해 후지산을 비롯한 도쿄의 대표 랜드마크를 한눈에 즐길 수 있어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본 전통 건축 양식을 모던하게 재해석해서 전통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아만 도쿄 프라이빗 벚꽃 크루즈 . 아만 제공 아만 도쿄에서는 벚꽃 시즌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아만도쿄는 봄을 맞아 벚꽃이 가득한 스미다 강을 따라 프라이빗 크루즈를 타고 로맨틱한 도쿄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크루즈에서는 벚꽃 리미티드 에디션 샴페인과 피크닉 세트가 별도로 준비되며 크루즈 노선은 두 가지 중 선택이 가능하다. 두 노선 모두 강변에 촘촘히 벚나무로 채워져 프라이빗 피크닉을 즐기며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여유롭게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에는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 아래 도시의 낮이 밤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달콤한 낭만을 누릴 수 있다 . 33층에 위치해 약 30m의 압도적인 층고와 통창으로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더 라운지 바이 아만은 벚꽃 시즌 한정 세 가지 특별한 칵테일을 선보인다. 아만 도쿄 사쿠라 칵테일 교토 숨은 명소에서 여유롭고 호젓하게 즐기는 꽃놀이 교토는 일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 지역으로, 매해 벚꽃 시즌이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아만 교토는 교토 중심부에서 도보 거리에 위치해 도쿄의 주요 벚꽃 명소와의 접근성이 우수하다. 아만 교토는 섬유 박물관의 정원으로 처음 고안된 만큼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선사한다. 봄에는 초록이 우거진 숲과 다양한 꽃이 피어난 풍경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아만 교토 파빌리온의 인테리어 또한 여유롭고 호젓하게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각각의 파빌리온은 계절의 기운이 가득한 숲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큰 창이 나 있어 자연의 품에서 평화롭게 휴식할 수 있다. 아만 교토에서는 3 월부터 투숙객 대상 아만 교토의 비밀 정원에서 시작해 리조트 인근의 벚꽃 명소를 자전거를 타고 누빌 수 있는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아만 교토 팀이 추천하는 벚꽃 루트로 인적이 드문 숨은 벚꽃 명소를 보는 프로그램이다. 벚꽃이 휘날리는 온천 스테이, 아만네무 프라이빗한 야외 벚꽃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아만네무 츠키 빌라 객실. 아만 제공 벚꽃잎이 휘날리는 야외 온천에서 특별하게 벚꽃을 감상하고 싶다면 아만네무가 제격이다. 일본 미에현 아고만 기슭 이세시마 국립공원 내에 있는 아만네무는 평화를 의미하는 아만과 일본어로 ‘기쁨을 나누다’라는 의미인 네무가 합쳐져 이름 그대로 평화와 기쁨을 나누는 공간을 추구한다. 아만네무는 아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온천 리조트로 일본 전통 온천 료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어 두 개의 큰 야외 공용 온천 파빌리온과 더불어 전 객실 온천수가 공급되는 전용 욕조를 갖췄다. 츠키 빌라에서는 객실 내 야외 온천 욕조에서 프라이빗하게 야외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아만네무는 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머무는 동안 자연 그 자체 내에서 머무르는 느낌을 준다. 산책길에 마주하는 귀여운 야생동물과 머리가 개운해지는 맑은 공기, 쏟아질 듯 촘촘한 밤하늘 별들이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보여준다. 그중 야외 온천은 아만네무를 대표하는 자랑거리로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바람에 하늘 위 구름이 천천히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특히 완연한 봄 야외 온천 가에 심어진 벚나무에서 흩날리는 벚꽃잎이 낭만을 더한다. 리조트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는 이 지역 대표 벚꽃 명소인 요코야마 전망대가 위치한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부터 벚나무가 늘어서 있고, 전망대 꼭대기에 도착하면 오직 봄에만 볼 수 있는 핑크빛으로 물든 이세시마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만네무에서는 전담 가이드와 함께 요코야마 전망대를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는 액티비티 또한 갖추고 있어 리조트 안팎으로 벚꽃을 특별하게 즐기기 좋다.
에르메스 후손, 정원사에게 17조 유산 남기나?
에르메스 후손, 정원사에게 17조 유산 남기나?
2023. 12. 21 14:43 화제
에르메스 창업자의 5대 후손인 니콜라 푸에슈가 자신의 정원사를 입양해 유산을 남길 절차를 밟고 있다. 스위스 르비앙 퍼블릭 캡처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창업자 5대 후손인 니콜라 푸에슈(80)가 자신의 정원사이자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직원을 법정 상속인으로 삼기 위한 입양 절차에 들어갔다. 그는 독신이며 유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어 모든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었다. 스위스 매체 트리뷴 드 제네바에 따르면 푸에슈는 자신의 재산 120억 유로(약 17조 원) 중 적어도 절반을 정원사에게 남길 계획이다. 에르메스 창업자 후손의 재산을 물려받을 정원사는 모로코 가정 출신이며 현재 51세로 알려져 있다. 당초 푸에슈의 재산이 기부될 예정이던 이소크라테스 재단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재단 측은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속 계약의 일방적인 취소는 무효이며 재단은 설립자와 논의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2011년 푸에슈가 설립한 이 재단은 ‘건강한 디지털 공공 공간’을 위해 노력하는 공익 저널리즘과 시민 사회 단체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푸에슈는 실크 스카프와 가죽 가방으로 유명한 브랜드 에르메스의 지분 5.7%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 이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르메스의 가치는 거의 2,110억 유로(약 301조 원)에 달했으며, 푸에슈의 지분 가치는 약 17조 원에 달한다. 이달 초 발표된 블룸버그의 연간 자산 순위에 따르면 에르메스 가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가문이다.
순천만국가정원, 미디어아트 더한다
순천만국가정원, 미디어아트 더한다
2023. 04. 30 17:35 문화/생활
순천만국제습지센터 내 미디어아트체험관에 미디어아트가 설치됐다. 순천만국가정원에 상호 반응형 콘텐츠인 미디어아트가 설치된다. (재)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2022년 체험형 관광 융복합 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개발한 실감형 체험콘텐츠를 순천만국제습지센터 내에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구축했다고 27일 밝혔다. ‘생명의 땅, 순천만에 살다. 놀다’라는 주제로 총 5개 테마로 구성된 콘텐츠는, 순천만과 순천만국가정원의 대표적인 상징물과 자연물을 활용한 디지털 정원, 디지털 순천만, 움직이는 순천만 사진갤러리, 디지털 수중정원, 디지털 자연현상이다. 해당 콘텐츠는 관람객과의 상호 반응형 콘텐츠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순천만국제습지센터 내 미디어아트체험관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홍보관에는 순천만과 순천만국가정원의 실사 홍보영상과 애니메이션 홍보영상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국가정원을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인용 원장은 “순천만국가정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실감 체험 콘텐츠를 통해 눈으로만 즐기는 단순한 경험에서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전남의 관광·문화자원을 첨단기술과 접목하여 도민과 관광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업으로 구축된 실감체험콘텐츠는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들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박람회가 끝난 이후에도 상시적으로 전시할 계획이다.
#순천만국가정원#미디어아트#주말나들이
도심 속 정원에서 건강하게…메이필드호텔, '더 큐' 오픈
도심 속 정원에서 건강하게…메이필드호텔, '더 큐' 오픈
2022. 08. 18 14:20 레저/여행
메이필드호텔 서울 더 큐 전경 팬데믹 이후 초록의 자연은 위로이자 휴식이다. 도심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레스토랑이 문을 연다. 메이필드호텔 서울은 18일 유러피안 퀴진 레스토랑 ‘더 큐(The KEW)’를 리뉴얼 오픈한다. 호텔 측은 “지난 2년간 이어진 팬데믹으로 확장된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호텔의 강점인 조경과 문화 콘텐츠를 시설의 리뉴얼과 접목하고 이탈리안 한정 메뉴를 유러피안 퀴진으로 확대해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식물원인 영국의 ‘큐 왕립 식물원’을 모티브로 네이밍한 ‘더 큐’는 60여년 간 가꿔온 약 10만㎡의 넓은 부지에 ‘숲속 온실 정원’이란 콘셉트로 싱그러운 그린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소나무, 이팝나무가 둘러싸인 푸른 전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호텔 조경사가 직접 재배한 식물을 이용한 플랜테리어와 화이트 앤 우드 톤의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세련되면서 따뜻한 느낌을 더한다. 미식의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았다. 셰프의 노하우와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모던 유러피안 퀴진은 ‘더 큐’의 강점이다. 약 20만㎡에 달하는 호텔 직영 농장에서 파종부터 수확까지 관리하고 엄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팜투테이블 레스토랑을 지향하는 만큼 다채로운 미식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런치 및 디너 다이닝 코스를 비롯해 단품 메뉴, 제철 식재료를 반영한 시즌 메뉴, 마리아주로 좋을 다양한 와인과 샴페인 등이 준비됐다. 오픈을 기념해 프랑스 고급 샴페인 로랑페리에를 65% 할인된 9만8천원에 제공하는 ‘샴페인 인 더 가든’ 프로모션도 9월 30일까지 진행된다. 로버트파커의 와인 구매 가이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로랑페리에는 영국 왕실이 인정한 프리미엄 샴페인으로 시트러스와 화이트 플라워 향이 느껴져 다이닝 메뉴와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운영시간은 오후 12시부터 3시,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다.
메이필드호텔
[정원 여행자] 전북 전주 - 따끈한 구들 위로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정원 여행자] 전북 전주 - 따끈한 구들 위로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2015. 12. 02 17:18 레저/여행
잘생긴 기와지붕을 얹은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 위풍당당한 ‘호남제일문’을 통과하는 짧은 찰나, 전주 사람도 아니거늘 고개가 빳빳해졌다.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오목대에 올라 검푸른 기와의 도도한 물결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러했다. 전주 땅을 밟는 순간,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이야기한 ‘꽃심’이라도 지핀 것일까. 이 고장의 근거 있는 자부심에 동화된 채 종내 식지 않는 흥으로 걷고, 마시고, 기웃거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고속도로를 통한 여행길이라면 톨게이트는 해당 여행지의 첫인상이 된다. 사실, 그 첫인상이 강렬한 도시는 많지 않다. 운전자가 아닌 이상 졸다 지나치기 십상이며, 모든 톨게이트가 해당 도시의 상징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주는 다르다. 한옥 기와지붕을 맵시 있게 올린 톨게이트가 보일 때쯤 여행객은 비로소 전주에 왔음을 실감한다. 현판의 힘찬 서체도 근사하다. 한글이 반포된 이후 서민들이 쓰던 글씨체라 하여 ‘민체’라 이르는 서예가 여태명씨의 글씨다. ‘전주’ 현판은 입구와 출구의 글씨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입구 현판은 ‘전주’의 자음을 작게, 모음을 크게 쓰고, 출구 현판은 자음을 크게, 모음을 작게 썼다는 것. ‘자음은 아들을, 모음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고향으로 들어올 때는 어머니의 큰 사랑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나갈 때는 자식들이 크게 돼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면 전주시의 관문인 ‘湖南第一門(호남제일문)’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으로 유명하며, 현판의 한자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글씨다. 호남제일문이란 이름은 전주가 전라감영의 문, 호남평야의 첫 관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 전주에 설치된 전라감영은 1896년까지 전라남북도를 포함해 제주도까지 통할하는 관청이었다.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시조인 전주 이(李)씨의 고장으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옹골찬 도시다. 왕복 5차선 대로를 가로지른 위풍당당 호남제일문은 그 유서 깊은 자부심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육교의 기능도 겸하니 한번 올라가볼 만하다. 느릿느릿 걸으며 산책하기에 좋은 운치 있는 전주 한옥마을 풍경.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자 오목대로 향했다.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성계가 귀경길에 들러 잔치를 벌였다는 이 언덕은, 그가 개국의 꿈을 내비침으로써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700여 채의 한옥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룬 풍경 앞에 감탄을 삼킨다. 때론 침묵으로 감탄사를 대신해야 할 때가 있다. 깊고 푸른 바다를 만났을 때가 그렇고, 도도한 검은 기와의 물결을 마주할 때도 그러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는 1990년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반발했던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지금의 한옥마을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1 호남 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전동성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2 전동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3 대하소설 「혼불」을 남긴 전주 출신 최명희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 4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완판본문화관. 꽃담 너머 이야기를 기웃거리며 「삼국사기」 중 백제 위례성의 새 궁실을 묘사한 문구인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전주의 문화와 전통, 의식주를 아우르는 미학이다. 톨게이트부터 시작된 ‘전주다움’은 발길 닿고 눈길 닿는 족족 온전히 그러했다. 국내 현존하는 향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보존된 전주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마당에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도 만날 수 있는데, 벌레가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이 반듯하게 자라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향교엔 꼭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주향교 앞의 완판본문화관은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곳이다.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판본을 이르는 ‘완판본’은 서울의 ‘경판’과 함께 조선시대 목판인쇄의 양대 산맥으로 통했다. 목판인쇄 및 제본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의 기법으로 책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야기를 품은 작은 골목길로 이어진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보폭으로 완성하는 여행지다.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발길 닿는 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 마음을 얹으면 족하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 여염집을,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최명희문학관 앞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전주를 ‘꽃심을 지닌 땅’이라 했다. ‘꽃심’은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꽃의 마음’, 혹은 ‘꽃의 힘’으로 풀어도 충분하리라. 아름다운 우리말로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그려낸 「혼불」은 그가 17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으로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라고.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간’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릴 수는 없는 일. 적어도 한 시절을 기울여 읽어야 할 소설이다. 최명희문학관까지 왔다면 바로 이웃해 있는 부채문화관과 교동아트센터를 함께 둘러볼 만하다. 경기전과 전동성당도 가깝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창건된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란 뜻을 담고 있다. 경기전에서 궁궐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전동성당은 매우 인상적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물감보다는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세월을 입은 건축물들은 동서양의 차이를 넘어 아름답게 낡아가는 속성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친김에 보폭에 탄력을 실어 남부시장까지 걸었다. 조선 3대 시장으로 통했을 만큼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 재래시장에 색다른 재미가 깃들었다는 소문을 들어온 터였다. 시장 2층에 형성된 ‘레알뉴타운’ 청년몰이 그것.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20여 곳의 이색 점포들은 전통의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1·3 남부시장 2층에 조성된 청년몰.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이색 점포가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 유수한 명창들의 판소리 공연이 열렸던 학인당 본채 거실. 일제강점기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기능했다. 4 한옥마을의 정신적 중심지인 전주향교의 대성전. 샘이 깊은 집에서의 하룻밤 여행객에게 해가 짧은 겨울은 언제나 아쉽다. 더욱이 전주처럼 볼 곳 많은 도시라면 뉘엿거리는 해가 입 속에서 닳아 없어지는 알사탕처럼 아깝기만 하다. 하지만 또한 다행인 것이, 전주에서의 한옥 숙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한옥마을엔 숙박이 가능한 한옥 체험관과 한옥 게스트하우스, 한옥 민박 시설이 100여 곳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학인당에 방을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고택 문화재이기도 한 학인당은 1905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연인원 4,280명이 참여해 지은 집으로, 한강 이남 민가 중 가장 화려한 고택으로 손꼽힌다.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 도입한 예로 본채 건물의 내부 구조는 창덕궁 희정당과 비슷하다. 건물 구조는 전통 한옥 양식을 취했지만 유리 여닫이문을 두르고 내부 생활공간을 서재,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 등 양옥 형태로 구성해 생활의 편리를 추구했다. 개량형 한옥의 모습을 지닌 학인당은 근대 한옥 구조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건축사 학술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인당은 국내 최초의 한옥 국악 공연장으로도 유명하다. 학인당의 건립자 인재 백낙중은 국악과 소리를 아꼈던 인물.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 경연이 조선 말 중단된 것을 안타까이 여긴 그는 본채의 넓은 대청을 판소리 연희장으로 제공, 국악인들을 초청해 꾸준히 공연을 열며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도록 후원했다. 그의 아들 백남혁 역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일제강점기 때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학인당을 제공했다. 임방울, 박녹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 등 유수한 소리꾼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소리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학인당은 광복 후, 김구 선생 등 정부 요인의 전주 방문시 영빈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본채 큰방의 명칭이 ‘백범지실’인 이유도 그 때문.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본채 큰방도 숙박 체험공간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학인당에서 또 하나 주목할 곳은 정원이다. 소나무와 돌과 연못을 배치한 정원은 여느 전통 한국식 정원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이면엔 비밀스러운 샘을 간직하고 있다. 연못 한쪽에 조성된 이끼 낀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만나게 되는 아담한 박우물이 그것. 땅 밑에 있다 하여 땅샘이라 부른다. 학인당 본채를 지을 당시 발견한 우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그와 같이 독특한 구조를 고안해냈다고. 기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 본채 뒤에 조성되는 데 반해 학인당은 본채 앞에 정원을 조성한 것이 특징인데, 이 오래된 우물을 지키기 위한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물은 흐르고 샘은 솟아야 조화로운 법. 먼저 자리 튼 물길을 위해 사람이 비켜 선 사려 깊은 조경 원칙과 마주하니, 정원이 꼭 인위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샘은 여름에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해 예부터 자연 냉장고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여름이면 수박 같은 과일을 띄워놓는 운치를 누린다 하니, 샘을 지킨 복록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듯싶다. 학인당의 종손은 초겨울이라 정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며 아쉬워했지만 샘솟는 이야기가 야윈 풍경을 충분히 갈음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잘생긴 한옥에서 머무는 하룻밤은 가만가만, 선비 걸음으로 깊어갔다. 잠들기 아쉬운 밤, 시간이 사위어드는 풍경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따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고 바스락거리는 홑청에 싸인 솜이불을 코까지 끌어다 덮으니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모처럼 꿈 없는 잠을 잤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 충남 서천 -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고
2015. 11. 05 15:02 레저/여행
어제의 해가 잠겼던 바다 위로 떠오른 오늘의 해를 본다. 바람에 수런대는 갈대밭에서, 가창오리떼를 기다리는 금강하굿둑에서, 포구를 바라보는 동백 숲에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의 하루를 가만히 흘려보낸다. 이즈음의 헛헛한 속을 가라앉히려거든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자연의 조화 속에 기댈 따름이다. 백제 유민의 눈물로 빚었다는 달디단 소곡주 한 잔도 매우 유용하다. 국내 4대 갈대밭 중 하나인 신성리갈대밭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인근 주민들이 갈대를 꺾거나 게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을 잃고 헤맸다는 옛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서천의 해 지는 풍경은 어디나 아름답다. 금강하굿둑에서 가창오리떼를 기다리다 문득 마주해도 좋고, 낙조 감상을 위해 작정하고 오른 동백나무 숲 동산에서 바라봐도 좋다. 바다와 강을 물들인 붉은 낙조는 어느 곳에서 보든 여운이 길다. 해 뜨는 풍경 또한 그 못지않다. 서해에는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바닷가 작은 마을들이 있다. 당진 왜목마을과 서천 마량포구가 그 대표 주자로, 세밑 세시엔 해넘이와 해맞이를 위해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꽤나 북적인다. 마량포구는 바다 쪽으로 꼬리처럼 튀어나온 땅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동남쪽으로 치우친 비인만을 안고 있어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완전무결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남쪽으로 많이 기우는 동짓날을 중심으로 50일 전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적기다. 해 지는 서해에서 해 뜨는 풍경을 보려거든 이처럼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시절이어야 한다. 예부터 민간에선 동지를 설 다음 가는 작은설로 대접해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했다. 중국 주나라에선 광명이 부활하는 날이라 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태양의 부활’이란 의미가 부여된 것은, 동지를 정점으로 그다음날부터 낮이 점점 길어지는 까닭이다. 간당간당 두 장 남은 올해의 달력을 만지작거리며 속이 헛헛해올 때면 어둠의 정점을 찍고 부활하는 태양의 힘을,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자연의 법칙을 되새겨볼 일이다. 인디언 달력을 빌리자면, 강물이 얼고 기러기 날아가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11월 아니던가.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 땅을 찾는 이유도 그래서다. 마량포구는 동남쪽으로 치우친 비인만을 안고 있어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동백 같은 해가 지는 포구로 일출과 일몰로 유명한 마량포구지만, 포구 뒤편 야트막한 동산 자락을 에워싼 동백나무 숲도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500년 수령의 마량리 동백 숲은 서천8경 중 1경으로 손꼽힌다. 오랜 숲답게 당연히 전설도 깃들어 있다. 500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가 꿈꾸길, 바다 위에 떠 있는 꽃무리를 잘 번식시키면 마을이 번영하리란 계시를 받았다는 것. 실제로 바다에 나가 발견한 붉은 꽃을 건져 심었더니 마을엔 내내 풍어의 기쁨이 이어졌다고 한다. 마량리 동백은 4월 중순경에야 절정을 이루는 춘백(春栢)이라 이즈음엔 꽃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진초록 이파리들 속에 드문드문 붉은 꽃이 눈에 띄었다. 철모르고 핀 저간의 사정이야 꽃만이 알 일이지만 맵찬 바람을 버티는 동백이, 앙다문 입술을 부르르 떠는 그 붉은 결기가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동백 숲을 뒤에 두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백정은 서천의 일몰 명소다. 누각에 오르면 동해처럼 망망한 서해 바다가 펼쳐진다. 너른 바다 위의 한 점 바위섬과 꺼져들기 전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는 낙조가 말을 아낀 선시(禪詩) 같다. 동백이 툭-툭- 지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에 이 숲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다. 숲에선 해 같은 꽃이 지고 바다 위에선 꽃 같은 해가 질 터인즉. 1 동백 숲을 뒤에 두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백정은 서천의 일몰 명소다. 2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숲 위에 자리한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3 서천군의 대표적 특산품인 한산세모시의 맥을 잇고자 건립한 한산모시관. 4 감미로운 술맛에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취기가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일명 ‘앉은뱅이술’. 동백 숲 인근 홍원항은 식도락 여행의 필수 코스다. 큰 방파제와 줄지어 늘어선 어선의 규모만으로도 이 고장의 중심 어항임을 알 수 있는 홍원항은 계절마다 대표 메뉴를 갱신하며 낚시꾼과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3, 4월엔 주꾸미, 5월엔 광어와 도미, 9, 10월엔 전어인 식인데, 바다에서 나는 제철 별미로 1년 내내 축제가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성한 해산물이 쉼 없이 나는 서면 앞바다의 위상은 김에서 또 한 번 방점을 찍는다. 충남 생산량의 86%,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서천의 특산품으론 한산세모시와 한산소곡주를 빼놓을 수 없다. 희고 맑은 색감에 섬세한 결을 지닌 한산세모시는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 여름철 옷감으로 으뜸이다. 한산소곡주는 백제의 궁중 술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번 맛을 보면 일어나지 못한다 하여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도 불린다. 소곡주는 달고 짙고 끈끈하다. 술이 꿀맛이다. 술잔에 흘러내린 술이 손가락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술을 마시다 말고 손가락을 쪽쪽 빨았을 정도다. 찹쌀로 빚은 술이라 달기도 하거니와 엿기름가루도 들어간다. 여기에 생강, 국화, 고추가 독특한 향미를 더해 달아도 질리는 맛은 아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자면 이 정도 단맛은 필요했겠구나 싶다. 술맛에 반해 과거를 놓친 선비, 도둑질을 하려다 술에 취해 붙잡힌 일화 등 소곡주에 얽힌 옛날이야기들을 안주 삼아도 즐겁다. 한산모시관과 소곡주 양조장은 한산면에 바로 이웃해 있다. 주꾸미, 전어, 광어 등 1년 내내 해산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홍원항. 두루 둥글게 품어내는 생명의 정원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밭은 영화나 드라마가 유독 사랑하는 촬영지다. 멜로든 액션이든 스릴러든, 갈대밭이 소화 못할 장르는 없다. 연인이 걷고 있다면 더없이 애틋하고, 쫓기는 이의 다급한 뒷모습에선 날 선 긴장감을 부추기는 배경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과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야간 수색 작전 중 우연히 만나는 장면의 배경도 늦가을의 갈대밭이었다. 충남 서천군 신성리의 금강변 갈대밭이 바로 그곳.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슬픈 연인, 무혁(소지섭 분)과 은채(임수정 분)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부터 가족과 연인, 출사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할 만큼 진경을 자랑한다. 한산면 면소재지에서 강경 쪽으로 300m가량 지나 삼거리에서 금강 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3km쯤 가다 보면,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하구 변에 펼쳐진 갈대밭을 조망할 수 있다. 탐방객들을 위해 조성한 갈대공원은 전체 갈대밭 면적의 2, 3%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소중한 생태자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어른 키를 웃도는 갈대가 양옆으로 도열한 2km 남짓한 산책길은 갈대소리길, 철새소리길, 갈대문학길, 솟대소망길, 영화테마길 등 다양한 테마로 조성돼 산책의 묘미를 더한다. 1 해마다 희귀종의 겨울 철새와 탐조객들이 모여드는 금강하굿둑. 조류생태전시관에서 금강과 철새의 생태를 학습한 뒤 탐조에 나서는 것이 좋다. 2 주꾸미, 전어, 광어 등 1년 내내 해산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홍원항. 3 어른 키를 웃도는 갈대가 양옆으로 도열한 2km 남짓한 산책길은 솟대소망길, 철새소리길, 갈대문학길 등 다양한 테마로 조성돼 있다. 갈대밭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앞에 놓고 느꼈던 먹먹함을 경험해본 일이 있다면, 드넓게 펼쳐질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갈대밭의 미학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조망하자면 흡사 망망대해처럼 보이는 게 광활한 갈대밭의 멋이다. 면적 10만여 평에 이르는 신성리 갈대밭은 규모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새들의 보금자리는 사람에게도 이롭다. 민물과 바닷물의 적당한 교차로 튼실하게 자란 신성리 갈대는 서천의 특산품인 갈꽃비의 재료가 되는데, 수수비와 달리 갈꽃의 부드러움이 섬세한 먼지까지 쓸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갈대밭에 사는 게라 하여 이름 붙은 ‘갈게’는 껍질이 얇고 무른데다 맛이 좋아 장에 내다 팔면 꽤 쏠쏠한 수익원이 됐다고 한다. 다양한 용도로 마을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신성리 갈대밭은 외지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겐 한 자락 소중한 쉼이 되고 추억이 되며, 또 누군가에겐 생계와 생존의 요긴한 수단이 된다. 두루 둥글게 품어내는 이 땅을 생명의 정원이라 이름해도 좋겠다. 해마다 겨울이면 금강하굿둑엔 각양각색의 철새들이 찾아든다. 큰고니, 청둥오리, 검은머리갈매기, 재두루미 등 혹한을 피해 쉬지도 먹지도 못한 채 날아온 손님들이다. 이즈음 금강하굿둑을 서성이는 탐조객들은 기다림의 목적이 같다. 짙은 황혼녘, 일순간 먹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 가창오리떼의 장엄한 군무가 그것. 해가 다 지도록 가창오리떼는 감감무소식이었지만, 저무는 하늘에 선명한 흰 금을 그은 비행운과 쇠기러기떼의 V자 편대비행이 교차하는 순간을 만났다. 사람의 비행이 남긴 궤적 위로 새떼의 비행이 겹쳐진다. 공존은 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임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Tip 국립생태원 2013년 금강하구 인근에 오픈한 국립생태원은 축구장 90여 개 규모에 4,500여 종의 살아 있는 동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생태 전시·연구의 요람이다. 국립생태원의 랜드마크인 에코리움에선 한반도 생태계를 포함해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한눈에 관찰,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야외에도 습지생태원, 고산생태원, 사슴생태원 등을 갖추고 있다. 문의 041-950-5300, www.nie.re.kr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 강원도 홍천 - 다시, 시월 봄날
[정원 여행자] 강원도 홍천 - 다시, 시월 봄날
2015. 10. 05 16:03 레저/여행
그 계절의 풍미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 다음 계절로의 환승이 못내 껄끄럽다. 복잡한 지하철 환승로에서 갈아타야 할 노선을 더듬거리다 우두망찰하는 격이랄까. 어느 날 문득, 잎도 열매도 다 떨군 빈 가지에 허를 찔리지 않으려거든 울긋불긋 열꽃 피운 가을 숲을 너끈히 걸어볼 일이다. 하복, 동복, 춘추복의 구분처럼 봄과 가을은 종종 한 묶음이 된다. 격하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이 이들을 묶는 가장 흔한 이유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은 두 계절 모두 참 좋은 시절이라는 것. 카뮈의 말마따나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꽃은 남녘에서 하루에 30km 속도로 북상하고, 단풍은 북녘에서 하루에 20km 속도로 남하한다. 내 집 문 앞까지 번지도록 가만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무르익었다는 발원지로 지레 달려가는 마음은 봄과 다를 바 없다. 꽃놀이처럼 단풍놀이 역시 타이밍이 관건이며, 좋은 시절은 늘 야속하리만치 짧다. 사나운 바람에 가을비라도 내리면 별안간 겨울이 될 터. 10월에 돌아온 두 번째 봄날, 서둘러 가을꽃 마중을 나서야 하는 이유다. ‘붉을 홍(紅)’이 아닌 ‘넓을 홍(洪)’을 쓰건만, 홍천(洪川)의 첫인상은 붉다. 군 전체 면적의 84%가 산지다 보니 눈길 닿는 곳마다 물오른 단풍이 지천이다. 홍천은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3배에 달하는 넓이에, 강원도 총 면적 중 10.7%를 차지한다. ‘동서 300리’라 부를 만큼 좌우로 길쭉하게 뻗어 있어 동쪽과 서쪽의 기후가 5℃ 이상 차이 나고, 심지어 말씨가 다를 정도다. 강릉, 양양과 맞닿은 동쪽 지역은 영동 지방 사투리를 쓰고 가평, 양평과 맞닿은 서쪽 지역은 경기도 말씨에 가깝다는 것. 넓은 땅은 강마저 길게 품고 있어 산을 넘고 강을 따라 깊어가는 가을로의 여정을 만끽할 수 있다. 단풍 반, 사람 반으로 북적이는 관광지가 버겁다면 한적한 시골 마을과 홍천강을 끼고 걷는 개야리 에움녹색길을 눈여겨보자. 강물소리길, 갈대숲길, 밤나무길 등으로 이루어진 7.5km 남짓한 트레킹 코스로, 아직 덜 알려진 때문인지 호젓한 산책이 가능하다. ‘에움’은 ‘사방을 빙 두르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여행자센터로 리모델링한 폐분교와 가을걷이 중인 농촌 풍경이 정겹다. 깨 타작이 한창일 때라 어딜 가나 탁-탁- 도리깨질 소리에 고소한 깨 냄새가 진동한다. 1·2 호젓한 트레킹을 원한다면 개야리 에움녹색길을 걸어보자. 강변을 따라 정겨운 시골 마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3 노란 융단이 깔린 숲길은 포근포근하다. 가을꽃 단풍은 발밑에서 한 번 더 활짝 만개한다. 공작의 깃털처럼 아찔한 추색 국내 명승지는 대개 오래된 절을 끼고 있게 마련이라,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반드시 천년 고찰을 만나게 된다. 홍천의 9경 중 하나인 공작산 수타사도 그러한 경우.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창건된 고찰로, 오랜 역사에 걸맞게 월인석보(보물 745호)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두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처럼 산자락을 뻗어 내린 공작산은 이름만큼이나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공작이 알을 품은 듯한 ‘공작포란형(孔雀抱卵形)’ 명당에 자리 잡은 것이 수타사다. 어쩐지 아늑하더라니, 풍수를 몰라도 땅의 기운은 몸이 절로 감지하는 모양이다. 수타사 단풍은 단청보다 화사하다. 이토록 짙고 노골적인 빨강이 절을 에워싸도 되나 의아할 지경이다. 신라의 여승 설요는 스물한 살 봄날,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 아, 이 젊음을 어찌할 꺼나’라는 시 한 줄을 남기고 환속했다던가. 산에 불을 놓은 듯 아찔한 추색(秋色)이 수행자의 단정한 마음에 도깨비불처럼 번질까 저어되는 가을 산사다. 흔히들 단풍을 표현할 때 “곱게 물들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울긋불긋한 색소가 더해져 단풍잎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엽록소가 빠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붉고 노란 제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라 한다. 뜨거운 광합성의 여름, 초록이 들끓는 생장의 계절을 지나 본래 자아로 돌아온 단풍은 얼마나 위풍당당한가. 일찍이 시인 백석은 저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보고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라고 예찬한 바 있다. 가을볕에 붉게 익은 중년의 얼굴도 청춘의 홍안 못지않다고 우겨볼 따름이다. 수타사를 한 축에 두고 초승달처럼 휘어진 형태의 공작산 생태숲은 자생화원, 수생식물원, 생태관찰로 등 알토란 같은 구색을 갖추고 있다. 미리 숲 해설 프로그램을 신청해 보다 적극적으로 숲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공작산 생태숲을 통과해 수타사 계곡을 끼고 걷는 산소길은 이름 때문인지 유독 공기가 청량하게 느껴진다.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침엽수에서, 또 물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생성된다고 하니 계곡을 따라 걷는 산소길이 제 이름값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울울창창 하늘 높이 치솟은 잣나무와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든다는 마가목, 옅은 바람결에도 파도 소리를 내며 온몸을 떠는 은사시나무 등 가을 숲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오솔길을 걷노라면 길동무가 없어도 적적하지 않다. 산소길은 계속해서 계곡 상류로 이어지지만 출렁다리에서 계곡을 건너 다시 수타사로 내려갈 수 있다. 출렁다리 아래로는 ‘귕소’라 불리는 웅덩이가 있다. 이곳 말로 소나 말의 여물통을 ‘귕’이라 하는데, 바위가 움푹 파인 모양이 여물통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수타사에 가까워질 즈음, 박쥐굴을 통해 용이 승천했다는 용담을 볼 수 있다. 제철은 아니지만 수타사 앞의 연지도 아름답다. 가슬가슬 말라비틀어진 연잎으로 가득한 못은 풍성한 빛과 색의 향연 한 축으로 이 계절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소멸의 풍경이다. 가장 눈부신 날은 속절없는 붕괴의 서막. 절정에 이른 단풍을 바라보며 이런 시구절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닳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김사인, ‘화양연화’ 중에서) 1.2 해마다 가을이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공작산의 붉은 단풍이 곱게 늙어가는 천년 고찰 수타사를 에워싼다. 3.4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소길은 산 좋고 물 맑은 홍천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노란 비가 내리는 천년의 정원 홍천의 동쪽 끝, 오대산 자락과 인접한 내면 광원리엔 10월 한 달만 개방하는 은행나무 숲이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공원도 아닌 사유지로,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 때면 그런 장관이 다시 없다. 30여 년 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봉약수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근방으로 이사를 온 부부가 있었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온 아내의 쾌유를 빌며 남편은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둘 심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묘목은 아름드리나무가 됐고, 아내는 건강을 되찾았으며, 가을마다 노란 비가 내리는 숲에 대한 소문은 군을 넘고 도를 넘어 퍼져나갔다. 남편은 부부의 정원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축복과도 같은 풍광을 널리 공유하고자 한 것. 은행나무 보시 혹은 회향인 셈이다. 숲의 주인이 왜 하필 은행나무를 심었는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것은, 그것이 은행나무이기 때문이다. 암수 딴 그루인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다. 20년 전의 판타지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도 은행나무는 천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의 매개체였다. 66세의 괴테는 35세 연하의 젊은 연인에게 은행잎 모양에 자신의 마음을 빗댄 시로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는 수타사 용담.‘둘로 나누어진 한 생명체인가 /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것일까 / (중략) / 그대는 내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 내가 하나이면서 둘임을.’ (괴테, ‘은행나무 잎’ 중에서)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은 나무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 이유도 그 때문. 이산화황과 미세먼지 등 오염 물질의 흡수력이 뛰어난데다 생장이 빠르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까닭이다. 인류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는 소철,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은행나뭇과에 하나뿐인 나무로, 지구상에 오로지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한다. 2억 년 이상을 그렇게 단독자로 살아왔다. 10월 첫 주에 70% 정도 물들고 둘째 주 중·후반이면 절정을 이룬다지만, 은행나무 숲은 잎이 져도 장관이다. 노란 카펫이 깔린 숲길을 사박거리며 걷노라면, 노란 벽돌길을 따라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도로시가 된 기분이다.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피는’ 꽃이 동백만은 아닌 모양이다. 발밑에서 주워 책갈피에 간직하는 것도 가을꽃, 단풍의 멋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노란 비가 쏟아진다. 팔랑팔랑 수천수만의 노랑나비 떼가 날아든다. 정지 화면처럼 고요한 백발노인의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은 은행잎을 바라본다. 은행나무의 꽃말은 ‘장수’라고, 다가가 속삭이고 싶었다. Tip 삼봉약수&삼봉자연휴양림 천연기념물 제530호로 지정된 삼봉약수는 은행나무 숲에서 멀지 않은 삼봉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철분, 망간, 불소, 탄산 등이 함유돼 위장병, 빈혈,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3대 약수로 손꼽힌다. 삼봉자연휴양림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열목어와 도롱뇽, 반딧불이도 볼 수 있을 만큼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한옥, 캐빈, 야영장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통영 바다는 사시사철 제철이다
2015. 09. 01 17:37 레저/여행
다도해의 비경과 항구도시의 활기 속에, 시인 유치환은 우체국 창문 앞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화가 이중섭은 눈길 닿는 풍경마다 화폭에 담으며 일생의 역작들을 쏟아냈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통영에선 싱싱한 활어회 한 점도 시가 되고, 그림이 됐다. 사철 푸른 바다가 지핀 정념이었다. ‘동양의 나폴리’란 수식어를 낳은 통영운하는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답다. 통영의 별미 도다리 쑥국은 봄이 제철이라지만 통영은 사시사철 제철이다. 바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리 푸르고, 그 앞에서 붕붕 설레거나 돌연 아득해지는 마음은 소년이건 노인이건 다를 바 없다. 바닷가에선 손을 맞잡고 같은 수평선을 바라보다가도 서로 다른 그리움을 더듬게 되는 순간이 흔하다. 하여 바다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빛은 되도록 외면하는 편이 좋다. 깍지 낀 손으로도 닿을 수 없는 먼 마음에 괜스레 서운해지지 않으려거든 말이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통영2’ 중에서) 해안 산책로가 아름다운 이순신공원은 한산도 앞바다를 조망한다.통영 출신도 아니건만 시인 백석은 통영에 대한 시를 세 편이나 남겼다. 시인이 한때 마음에 품었던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호리낭창’한 소녀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삶의 활기와 한려수도의 비경이 어우러진 항구도시의 유려함은 시정(詩情)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리라. 통영의 아름다움에 반한 예술가로는 화가 이중섭도 빼놓을 수 없다. 1년여 통영에 머무는 동안 이중섭은 유독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초가가 있는 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복사꽃이 핀 마을’ 등이 그가 화폭에 담아낸 통영이다.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황소’와 같은 대표작도 통영에 머물던 시절에 탄생했다. 사실 통영은 예술과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시인 유치환·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통영에서 나고 자란 예인들을 손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또 예부터 통영자개, 통영갓, 통영소반의 명성을 떨쳐온 명품 생활 공예 산지이기도 한데, 통영이 낳은 작가는 이 땅의 탐미적인 취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 바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 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됐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고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눈길 닿는 곳마다 일렁이는 쪽빛 통영 공예의 발전사를 짚기 위해선 먼저 지명의 유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영(統營)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준말로, 삼도(충청·전라·경상도) 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의 본진을 뜻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통영 앞바다 한산도에 설치한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사람과 물자가 몰리는 전쟁은 공예 발달의 단초가 됐다.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통제영 부속기관으로 들어섰던 각종 공방들은 전쟁이 끝난 뒤 부채, 장석, 가죽, 철물, 고리짝, 목가구, 나전칠기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냈다. 산양일주도로를 달리다 휴식을 취하기 좋은 달아공원은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하다.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 전경. 통영운하를 사이에 두고 여객선터미널과 강구안, 남망산조각공원, 동호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명에 이미 충무공의 정신이 깃든 고장인 만큼 통영엔 이순신 장군 유적지가 숱하다. 한산대첩의 무대인 한산도 제승당,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이었던 세병관 등이 그것. 1603년 6대 통제사로 취임한 이경준이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자 지은 세병관은 조선 수군의 본영다운 위풍당당한 기운이 인상적이다. 남다른 규모의 거대한 현판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데, 힘찬 필체로 새긴 ‘세병관(洗兵館)’은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 중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라는 뜻을 지닌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이름이다. 출입문의 이름 또한 ‘창을 거둔다’라는 뜻을 지닌 지과문(止戈門)임을 감안할 때, 평화에 대한 염원을 실은 건물이라 하겠다. 최근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이순신공원엔 높이 17.3m의 장군 동상이 한산도 앞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서기엔 영 아까운 곳.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 산책로는 시간을 내어 꼭 한 번 걸어볼 만하다. 쪽빛 바다와 초록이 짙은 잔디밭, 잘 정비된 목책로가 어우러진 풍광이 평화롭다. ‘공원’이라 이름한 통영 시내 관광지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본다. 횟집이나 펜션 이름으로 흔한 이른바 ‘바다 정원’인 셈. 짙은 수목의 향기 속에 바다 조망의 프리미엄이 더해졌으니, 공원 산책만 해도 통영 여행의 본전은 뽑은 셈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 잡은 공원은 일출과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일출 감상엔 미륵산 전망대와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남망산국제조각공원이 적격이다. 미륵산 전망대에선 섬 너머 섬이 끝없이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데, 맑은 날엔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꿈길 드라이브 60리’라 불리는 산양일주도로 중간에 위치한 달아공원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떠오르는 해도 지는 해도 하늘과 바다, 섬과 섬 사이를 붉게 물들이는 것은 동일하건만, 낙조는 어둠으로 이어지기에 더 잔영이 깊다. 세상 끝에 이른 듯 장엄한 풍경이 바다를 무대로 펼쳐진다. 담벼락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수놓인 동피랑 마을에선 할매 바리스타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시인을 키운 건 8할이 바다다 볼거리가 지천인 통영은 먹을거리도 지천이라, 통영 여행의 참맛은 식도락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으로 치자면 전라도라 일컬어지는 통영인즉, 경상도 음식 별 볼 일 없다는 말이 쑥 들어갈 것이다. 일단, 소매물도와 욕지도 등의 섬 여행을 위해 여객선터미널에 새벽같이 도착했다면, 터미널 앞 서호시장 쪽에 늘어선 충무김밥 집에 들러볼 일이다. 속 재료 없이 맨밥을 김에 둘둘 만 심심한 김밥에 아삭한 섞박지와 매콤한 오징어무침을 곁들인 충무김밥은 단연 통영이 원조다. 풍요로운 술자리를 경험할 수 있는 다찌집도 놓치면 아쉽다. “통영을 알려면 다찌집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통영의 술 문화를 대표하는 다찌는 술 한 병을 시킬 때마다 새로운 안주가 한 상 가득 깔리는 통영식 술집이다. 다찌의 매력은 해산물 뷔페라 할 풍성한 상차림인데, 선도 좋은 해산물을 골고루 맛보는 즐거움에 술병을 줄 세우기 십상이다. 다찌집이 남긴 숙취는 시락국과 졸복국이 책임진다. 장어를 푹 고아 시래기를 넣고 끓인 시락국과 엄지만 한 졸복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담뿍 넣어 맑게 끓인 졸복국은 해장의 아침으론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자 통영의 고유한 별미 중 하나다. 통영 특산물인 굴 요리와 활어 도매 전문 시장인 중앙시장에서 뜨는 싱싱한 활어회도 두루 만족스럽다. 중앙시장 뒤편으론 ‘통영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동피랑이 자리하고 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탈을 이르는 말.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 벽면엔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물고기가 날고, 꽃이 핀다. ‘할매 바리스타’들이 아메리카노와 식혜를 내는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강구안의 풍경도 볼만하다. 강구안 문화마당에선 거북선을 구경할 수 있다. 포구와 마주한 골목길 곳곳에서 이중섭의 그림과 윤이상의 악보를 형상화한 조형 작품, 백석의 시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선 수군의 본영답게 힘찬 건축미를 자랑하는 세병관은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자 지은 건물이다. 푸른 바다와 함께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남망산국제조각공원은 일출 명소로 손꼽힌다.통영의 야경 명소는 운하다. 길이 1,420m, 너비 55m로 통영반도 남단과 미륵도 사이를 흐르는 통영운하는 그 아래로 해저 터널을 품고 있다. 운하를 가로지른 무지개 모양의 통영대교는 야경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많다. 다리 위의 오색 조명과 도로변의 가로등불이 바닷물에 아롱이는 풍경은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의 근거가 된다. 개인적으로 통영은 그 숱한 예인들의 고향이기 이전에 내 아버지의 고향으로 먼저 다가오는 곳이다. 아버지와 함께 통영을 찾았던 어느 봄날. 충렬사 옆에 자리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는 60년 전의 교가를 흥얼거렸다. 무려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의 노래였다. 통통하게 살 오른 도다리와 향긋한 쑥이 기막힌 조화를 빚어내는 도다리 쑥국 한 그릇씩을 싹 비우고 항구를 걷던 중이었을 게다. 말 수 적은 아버지가 웬일인지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린 여길 나폴리라 불렀다. 학생모를 일부러 빼뚜름하게 쓰고, 교복바지 뒷주머니엔 늘 하모니카를 꽂고 다녔지. 하모니카로 못 부는 노래가 없었어. 그때 난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지.” 강구안 골목길 곳곳에서 이중섭의 그림과 윤이상의 악보를 형상화한 조형 작품, 백석의 시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북선을 구경할 수 있는 강구안 문화마당. 강구안은 육지로 바다가 들어와 형성된 항구를 뜻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은 아버지, 그 늙은 소년의 옆모습을 훔치다가 문득 이런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통영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시 한 줄, 그림 한 점, 노래 한 가락을 품고 있다, 라는. 그리고 그들의 시심(詩心)을 키운 8할은 ‘바다’라고 확신했다. 이 땅에선 전쟁 중의 장수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를 짓지 않았던가. 짙푸른 바다와 별처럼 흩뿌려진 섬 무리를 조망하노라면, 시퍼런 칼날 위에도 동백처럼 붉은 정념이 절로 지폈으리라. 통영의 시인 김춘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소회와 함께 그의 문학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요즘도 나는 화창한 대낮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환청이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것은 답답하다. 나는 자주자주 바다를 꿈에서만 보곤 했다. 바다, 특히 통영(내 고향) 앞 바다- 한려수도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시인 김춘수) Tip 통영 문학 기행 산양읍에 자리한 박경리기념관은 달아공원과 연계해 들러볼 만하다. 고인의 대표작인 「토지」 친필 원고와 유품 전시실,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실, 책과 작품에 관한 논문 등을 모아놓은 자료실을 갖췄다. 시인 유치환을 기리는 청마문학관은 강구안에서 멀지 않은 정량동 망일봉 기슭에 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문학관 안엔 청마의 육필 원고와 그가 무려 5,000여 통의 연서를 바쳤던 이영도 시조 시인의 저서가 눈길을 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시구절을 이끌어낸 청마의 뮤즈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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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여행자] 경남 창녕 - 새들은 우포에 와서 잠든다
[정원 여행자] 경남 창녕 - 새들은 우포에 와서 잠든다
2015. 08. 03 16:16 레저/여행
초록이 꿈틀대는 생명의 늪은 하늘과 뭍과 물의 생물들을 끌어당기고 품어낸다. 아무리 작고 약해도 한낱 미물이라 업신여기는 법이 없다. 자라풀은 자라풀대로, 논우렁은 논우렁대로, 늪에 깃든 생명체들은 제 쓸모와 살아갈 이유가 자명하다. 1억4,000만 년의 시간이 고인 원시 정원에서, ‘누군가 막 꾸다 만 꿈’을 만났다. 느릿느릿 장대로 밀면서 나아가는 거룻배는 우포늪의 시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우포늪의 생성 시기는 약 1억4,0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생성 시기와도 같은 중생대 백악기, 까마득한 공룡의 시대로부터 비롯된 셈이다. 우포늪을 ‘생태계의 고문서’이자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일컫는 이유도 그 때문. 황동규 시인은 우포늪을 두고 “돌을 던져도 시침(時針)이 보이지 않는 곳”, “누군가 막 꾸다 만 꿈같다”라고 노래했다. 뭍도 물도 아닌 늪은 바꾸어 말하면 뭍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한 셈인데, 이 모호함은 불가해한 신비와 유연한 상상력을 끝없이 부추긴다. 여름날 우포늪엔 마름, 자라풀, 개구리밥 등의 수생식물로 진초록 융단이 깔린다. 늪은 품이 넓다. 뭍에 사는 동식물과 물에 사는 동식물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생명들을 모두 품어내니 가히 ‘생태계의 자궁’이라 불릴 만하다. 늪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수심 3m 이하의 호수와 비슷한 물웅덩이. 호수-늪-소택지(沼澤地) 순의 변천 과정에서 보면 노령기로 간주된다. 얕아서 침수식물이 바닥으로 무성하고 바람에도 물이 섞인다. 실지렁이가 풍부해 영양분이 많은 편이다.’ 장재마을의 무성한 왕버들 군락은 원시 자연의 멋을 선사한다.과학적 지식의 덤덤한 나열 속에, ‘바람에도 물이 섞인다’라는 문장에 꽂혀 몇 번이고 되뇌었다. ‘수심이 얕아 바람에 의해서 물이 교란되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물이 정체되는 일이 거의 없다’라는 설명이 뒤를 이었지만, 그 문장은 이미 ‘늪은 바람과도 몸을 섞는다’로 번역돼 입력됐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지만 늪지대의 물은 썩지 않는다. 늪에 깃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가열한 움직임 때문이다. 이파리를 수면 위로 펼치고 뿌리를 수중에 뻗거나 묻은 수생식물들은 물속 오염 물질을 빨아들이는 한편, 광합성으로 획득한 산소를 공급한다. 더욱이 야트막히 고인 물은 옅은 바람결에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즉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 이유다. 개구리밥, 생이가래, 마름 등의 부유식물들이 그린 카펫을 펼쳐놓은 수면 위로 왜가리와 백로가 날아든다. 새들은 작은 물고기와 논우렁을 사냥하는 중이다. 새들의 먹이가 되기 전에 논우렁은 플랑크톤을 포식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늪은 정지 화면처럼 고요하지만,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오래도록 지켜보면 꽤나 부산하고 치열한 생명의 움직임을 목도할 수 있다. 창녕박물관 인근에 펼쳐진 교동·송현동 고분군. 옛날 6가야 중 하나인 비화가야 왕들의 묘역이다. 득음 못한 소리꾼의 한풀이 절창을 듣다 우포(소벌)·목포(나무벌)·사지포(모래벌)·쪽지벌을 총칭하는 우포늪은 창녕군 낙동강가의 4개 면(유어면·이방면·대합면·대지면)에 걸쳐 펼쳐져 있다. 총면적은 70만 평, ‘우포늪생명길’이라 이름 지은 탐방로는 12km 남짓하다. 탐방에 앞서 우포늪생태관을 먼저 둘러볼 것을 권한다. 현장감 있는 영상과 입체 모형,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1,000여 종에 달한다는 우포늪의 동식물들과 습지 생태를 예습할 수 있다. 그 계절에 만날 수 있는 대표 생물군 몇 종류의 이름만 알고 가도 보이는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생태 해설을 요청해 해설사와 함께 걷는 것도 좋겠다. 줄, 창포, 매자기 등 그저 ‘물풀’이라 통칭하던 물가 식물들의 고유한 이름을, 늘 헷갈리는 억새와 갈대의 확실한 구별법을 알려준다. 말끝마다 물음표를 달고 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저건 뭐예요?”를 연발하며, 답으로 돌아온 나비잠자리, 꼬리명주나비, 야관문, 흰뺨검둥오리 등의 이름을 새기는 시간이 꽤 행복하다. 간혹 풀숲이 급박하게 쑤석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사람 발자국 소리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고라니일 가능성이 크므로 조용히 지나쳐주자. 콩알 같은 고라니 똥이 흔한 길이다. 관룡사는 창녕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관룡산의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여름날의 우포는 원시적인 생명력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눅진하게 녹아내릴 듯 짙은 초록이 수면 위에, 물가에, 천지간에 가득하다. 포플러나무 잎사귀는 바람과 수다라도 떨듯 쉼 없이 팔랑이고, 물가를 따라 도열한 버드나무 군락은 수면 위로 침묵처럼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때가 맞으면 늪을 뒤덮은 진초록 융단 가운데 이따금 꽃을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마름은 하얀 꽃을, 가시연꽃은 자줏빛 꽃을, 노랑어리연꽃은 이름처럼 노란 꽃을 피운다. 한여름, 우포의 주인공은 가시연이다. 온몸에 가시가 돋친 가시연꽃은 자생지가 10여 군데뿐인 희소 식물로, 국내 식물 중 잎이 가장 크다. 잎의 지름이 크게는 2m에 달할 정도. 8월 말경, 가시투성이 잎을 뚫고 아기 주먹만 한 꽃송이를 밀어 올리는데, 귀하게 틔운 꽃도 꽃이지만 너른 잎을 펼쳐 늪을 완전히 점거한 풍경이 장관이다. 밤이 되면 새들은 우포에 와서 잠든다.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와 같은 여름 철새들의 해 질 무렵 저공비행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저들에게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가 있겠지만, 안식처로 깃드는 날갯짓은 유유자적하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퍽이나 요란하다. 왜가리가 평안도에서 ‘왁새’라 불리는 이유도 그 울음소리 때문이라 한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소설 제목처럼, 꾀꼴꾀꼴 울어 꾀꼬리요, 뻐꾹뻐꾹 울어 뻐꾸기이며, 왁왁 울어 왁새다. 영상과 입체 모형,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우포늪의 동식물들과 습지 생태를 공부할 수 있는 우포늪생태관.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 중 그 유명한 첫 구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의 으악새를 두고 ‘억새’다, ‘왁새’다 하는 주장이 대립한 적이 있다. 으악새가 억새의 경기 방언이기도 한 터라 슬피 우는 으악새란 가을바람에 물결치는 억새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왁새를 가락에 맞춰 으악새라 불렀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일단 왜가리 울음소리가 왁왁, 듣기에 따라 ‘으악으악’으로 들릴 수 있고, 2절의 첫 구절이 ‘아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인 것만 봐도 새 이름으로 대구를 이루는 게 아귀가 맞지 않느냐는 해석이다. 바람결에 풀어 헤친 억새 울음소리건, 봄에 왔다 가을에 떠나는 철새 울음소리건 구슬프긴 마찬가지니, 주체가 풀이든 새든 차진 노래 가사임은 분명하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왜가리 울음소리가 궁금하다면, 배한봉 시인의 ‘우포늪 왁새’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우포로 오길. 여름 우포에선 득음 못한 소리꾼의 환생, 왁새의 한풀이 완창을 흔히 감상할 수 있다. 죽은 왕의 무덤은 산 자의 정원이다 창녕은 우포늪을 통해 생태 여행의 메카로 잘 알려졌지만,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유적과 문화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고(最古)의 목선(木舟)이 출토된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 유적지를 비롯해 고인돌과 고분, 진흥왕 척경비, 석빙고, 관룡사 대웅전과 같은 문화재들이 도처에 산재한다. 창녕박물관은 역사 유적 탐방의 출발점이다. 고분군에 관한 복원과 전시로 특화된 박물관인데, 1,500여 년 전 16세에 순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의 인골을 복원한 ‘송현이’가 눈길을 끈다. ‘송현이’는 인골 출토 지역인 송현동의 지명을 이용해 보다 친근하게 부르고자 붙인 애칭. 관습과 신분의 굴레에 묶여 성장판이 채 닫히기도 전에 산 채로 묻힌 1,500년 전 순장 소녀의 사연은 애처로움을 넘어 참혹하다. 박물관 인근에 펼쳐진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이 고분군은 옛날 6가야 중 하나인 비화가야(比火伽耶) 왕들의 묘역으로, ‘비화’는 빛벌, 즉 ‘빛이 좋은 들판’을 뜻한다. 빛 좋은 들판, 그중에서도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작은 동산 규모로 솟은 봉분 사이로 손을 맞잡은 연인이,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어머니가 지나간다. 어느 도시에서나 옛 왕들의 무덤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정원이 되게 마련이다. 생전에 누린 영화와 권세로도 모자라 무덤 속까지 진귀한 보물과 백성들을 산 채로 끌고 들어간 권력자들의 비정한 탐욕을 읽어내기엔 잘 가꾸어진 잔디와 꽃밭과 산책로가 지극히 평화롭다. 이렇게도 업보를 갈음하는가 싶다. 물결치듯 이어지는 고분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기울어가는 햇살이 미끄럼을 타는 적요한 오후다. 해오라기, 백로, 쇠물닭 등 여름 철새가 날아들어 늪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 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배한봉, ‘우포늪 왁새’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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