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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박찬욱의 와 바흐의 푸가 양식(2016. 06. 14 10:31)
- 2016. 06. 14 10:31 문화/과학
- 4분도 채 안 되는 소품에서도 바흐는 4개의 길을 엇갈리며 서로 닮아가는 푸가의 비범한 변주를 보여주는데, 박찬욱 감독의 를 음악에 오버랩한다면 푸가의 진행이라고 할 만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를 봤다. 같이 본 사람이 말했다. “이젠 좀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오는, 정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 그 순간은 동의했다. 새봄에 본 새 영화들은 다 일그러지고 파탄 나는 영화들이었다. 나는 박찬욱 감독이 흩뿌려놓은 이미지와 대사들 중에서 그가 여러 편의 자기 영화에서 반복하는 말, 즉 ‘이야기’에 관한 단서를 찾고자 했다. 는, 이제야 아 그런가 하고 깨닫게 된 독자도 있겠지만, 늙은 ‘제니’가 이제는 죽어버린 자기 엄마 ‘이금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조다. 이야기! 그렇다. 그래서 이야기가 파편적이고 플래시백의 연속이고 툭 툭 끊어진다. 그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성우 김세원의 목소리다. 이에 대하여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대담을 하면서 박찬욱 감독은 “금자는 이미 늙어 죽은 지 오래이고 늙은 제니가 자기 딸이나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기분이라면 역시 늙은 여자 목소리여야 되고. 그리고 너무 감상에 빠지지 않는, 담담하게, 마치 자기 엄마 얘기가 아닌 것처럼 그렇게 들려주지만, 마지막에 그것이 엄마에 대한 ‘얘기’라는 게 밝혀졌을 때, 앞에서 담담하게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찡해질 만한 그런 목소리”(2005년 8월 516호)를 위해 성우 김세원씨를 캐스팅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 어쩌면 ‘이야기’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초반, 어떤 사나이가 15년 만에 아파트 옥상으로 ‘석방’된다. 저 멀리 또 다른 사내가 있다. 그는 막 뛰어내려 죽으려고 하는 참이다. 석방된 자는 떨어지려는 자를 붙들고 말한다. “조금 있다가 죽어라.”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조금 있다 죽으라고 명령하는가. 자기의 ‘이야기’, 15년 동안 갇혀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15번 앨범과 쇼스타코비치. 네 명의 인물이 교차하며 변주되는 얘기 의 마지막 대목에서도 ‘이야기’에 대한 강박이 보인다. 하정우의 실패한 계략을 듣던 조진웅이 ‘이야기’를 재촉하면서 말한다. “이야기는 과정이 생명이 아닌가, 이 사람아.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이야기! 그렇다. 어떤 점에서 는, 그리고 영화에서 충분히 ‘알 만한 사람’인 박찬욱 감독의 많은 영화들은 ‘이야기’, 즉 “어떤 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할까?” 하는 이야기다. 이를, 손석희가 뉴스에서 묻는다. “요즘 영화가 보통 2시간이 넘어간다. 감독들이 그만큼 옛날에 비해서 할 이야기가 많아진 것일까?” 이에 박찬욱 감독은 “어떤 경우는 그럴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경제적으로 압축적으로 말하는 법을 잘 못 배워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이번 영화 의 경우는 “친절하게 얘기하느라고, 주인공이 넷이나 되니까 그 사람들 얘기를 하나하나 보살피느라고 길어졌다“고 대답했다. 친절하게?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변화를 주고 거기에 유머를 더한다든가 새로운 뉘앙스, 또는 다른 시각에서 본다든가, 반복은 반복이되 변주되는, 그러면서 발전되는” 구조를 선택함으로써 “플롯을 못 따라오는 사람은 안 생기도록, 그렇게 친절하게, 그 덕분에 영화가 재미없다는 사람은 있어도 못 따라가겠다는 사람은 없는” 작업을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흐의 이야기 방식을 빌린 것인가. 바로크 시대의 정교한 변주 양식, 푸가 말이다. 공교롭게도 는 네 명의 인물이 교차하며 변주되는 이야기인데, 푸가 양식 또한 대체로 그러하다. 바흐의 현묘한 푸가 양식을 최대한 단순하게 압축하여 들려주는 일명 ‘리틀 푸가’ BWV 578번 푸가를 들어보면 기본적으로 2성 진행인데, 2성이 각각 두 갈래로 뻗어가면서 4개의 길이 펼쳐진다. 목적지는 같되 그 과정이 엇비슷하면서도 현묘하게 엇갈리는 4개의 길을 따라 연주자는 양손을 다시 4등분하여 4개의 자아가 4개의 길을 교차하고 엇갈리고 부딪치고 어긋나고 뒤섞이면서 달려간다. 4분도 채 안 되는 소품에서도 바흐는 4개의 길을 엇갈리며 서로 닮아가는 푸가의 비범한 변주를 보여주는데, 박찬욱 감독의 를 음악에 오버랩한다면 푸가의 진행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 포스터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일급의 사진가이며 안목 높은 음악광이기도 한 박찬욱은 앞서 말한 정성일과의 대담에서 바흐를 언급한다. “바흐가 예술적 자의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의무적으로 매주 칸타타를 쓰고 그랬지만, 은밀히 작품 속에 자신 이름의 스펠링을 딴 음을 새겨넣고 그러는 식의 자의식도 있는 사람인데,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바흐, 거기에 가장 끌린다. 근면한 사람으로서.” “이젠 좀 정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 내 생각에, 그러나 나는 박찬욱 감독이 바흐의 푸가, 즉 모든 요소들이 견제와 균형을 이뤄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되 궁극으로는 조화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런 작품을 너무 일찍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예컨대 박찬욱의 푸가는 바흐를 지향하기보다는 쇼스타코비치를 변주하는 방향으로 연주되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체인스모커였고 술을 많이 마셨다. 1955년에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1958년에는 뇌졸중에 걸려 오른팔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정권 아래에서 그는 예전과 같은 직접적 검열이나 압박을 더 이상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국가 음악가’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목에 걸고 다니는 늙은 광대처럼 지내지는 않았다. 1975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쇼스타코비치는 끝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되새김질하는, 험한 시대를 어쩌면 요령껏 잘 살아남았다는 자책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의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1997년도 다큐멘터리 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독재자 스탈린에 저항한 작곡가이며, 스탈린의 지속적인 탄압이 쇼스타코비치를 더욱 위대한 작곡가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과연 탄압에 저항한 작곡인가, 하고 그는 끝없이 자문하였고, 고통스런 자답의 음악을 마지막 순간까지 썼다. 그 증거가 30여분 동안 아다지오로 지속되는, 한 숨 같은, 넉 대의 악기 곧 4개로 분열된 자아가 끝없이 스치고 엇갈리고 할퀴고 어루만지는 현악 4중주 15번이다. ‘독립 예술영화’가 아니라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지평 위에서 작업하는 감독에게 강력하게 주문해도 될지 모르지만,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영화’보다는 좀 더 불친절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친절한 영화는 그의 권리이지만 불친절한 영화 또한 그의 의무다. 굳이 영화관 바깥의 화탕지옥 같은 세상을 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그는 다 아는 자이며 그가 말한 “친절한 영화”, “대중영화” 같은 말들은 일종의 러시아식 ‘유로지비’(성스러운 바보) 같은 말이기도 하다. 를 박찬욱 감독은 짐짓 “친절한 영화”라고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러한 영화이면서도, 파국이 없지 않고 기이한 장면이 없지 않으며 어딘가 뒤틀린 대사가 없지 않다. 유로지비의 감각이다. 그래서 오히려 예리한 눈으로 꿰뚫어보는 관객은 감독의 공식 인터뷰와 달리 “이제는 좀 정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말로, 스크린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감독의 복화술을 독한 것이다. 그러니 더 불친절해도 무방하다. 영화 속 대사로 말한다면 “이야기는 과정이 생명이 아닌가,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 [문화]박찬욱의 ‘박쥐’ 감미로운 공포(2009. 05. 07)
- 2009. 05. 07 문화/과학
- 장르의 제도와 형식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파격적 작품 박찬욱 감독의 신작 는 개봉 전부터 꽤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는 공공연히 이 작품이 10년 이상 공을 들인, 자신의 최고작이 될 거라고 말했다. 뱀파이어 신부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장르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의 B급 영화적 취향이 다분히 반영된, 파격적인 형식이 나올 거라는 짐작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공개된 작품은 관객의 허를 찌른다. 예상 외로 진중한 작품이다. 긴 상영시간 속에 이야기 또한 대단히 완만한 속도로 진행된다. 관객들의 불평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는 박찬욱의 그 어떤 영화보다 파격적이며 전작들을 다시 검토할 필요성을 느낄 만큼 색다르다. 개봉 첫날, 한 번의 관람만으로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곤란할 지경이다. 급격한 변형의 형식을 간파하는 것이 관건이다. 박찬욱은 에서 자신의 영화를 이끌어왔던 몇 가지 강박적인 테마들, 이를테면 살인, 복수, 도덕, 구원 등의 테마를 무차별적으로 전시하고는 재빨리 하나의 테마에서 다른 테마로, 하나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뱀파이어의 공중제비처럼 재빨리 건너뛴다. 뒤죽박죽처럼 보이지만 장르의 기대를 배반하고 벗어나는 것이 요체다. 장르의 제도와 형식의 구속에서 재빨리 빠져나가는 작품이란 말이다. 지극히 자유로운 영화라는 말이다. 에로틱하면서 시적인 장면 이야기의 전개는 복잡하지만 틀은 단순하다. 신부인 상현(송강호)은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사망을 지켜보는 일로 괴로워하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해 참여한다. 치명적인 죽음이 예고된 이 실험에서 상현은 실험 도중 사망한다. 그런 그가 우연히 뱀파이어의 피를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그의 부활은 영묘한 치유력이 그에게 있다는 소문으로 번지고 광신적인 신도들이 그를 따른다. 그러다 옛 친구이기도 한 강우(신하균)의 병을 고쳐달라는 라여사(김해숙)의 의뢰로 상현은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강우의 아내인 태주(김옥빈)를 만나고 그녀의 은밀한 매혹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대략적인 개요만 보더라도 는 뱀파이어 공포영화라기보다 치정 멜로물에 훨씬 근접해 있다. 상현과 태주의 정념을 몸으로 표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당했다. 에서 얼핏 보였지만, 박찬욱의 영화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탈적인 순간들을 지켜본다는 것은 의외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순간이 타인의 몸에 대한 갈망을 포함한다면, 이는 뱀파이어의 존재론적 본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의 피를 자신의 몸 안으로 흡입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뱀파이어의 존재성이 타자의 몸을 향한 열망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는 그런 점에서 에로틱하면서도 감미로운 공포가 흐르는, 매우 시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갖고 있다. 유머러스한 순간도 많다. 송강호가 분한 뱀파이어 신부는 송곳니를 드러내는 일도 없고, 목을 깨물어 피를 빨아들이는 전통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는 링거액 튜브를 이용하거나, 보조기구를 동원해 피를 보충한다. 종종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인 의식과 동반되기도 한다. 가령, 교통사고로 죽음 직전에 처한 남자의 고해성사를 치르면서 그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 먹는다. 피를 먹는다기보다 몸의 분비물인 고름을 빨아먹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는 하나의 장면으로 해석되길 거부하는, 이런 모순적인 충돌들을 대량으로 전시한다. 이 영화는 ‘복수 삼부작’보다는 와 맥을 같이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는 마치 구로사와 기요시가 에서 그러했듯이 모든 장르를 공존시키고 변주하는 기이한 실험으로 이채롭다. 블랙코미디를 기조로 하면서 뱀파이어 공포영화, 실험 영화, 범죄 치정극, 활극을 거쳐 멜로드라마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개별 장르의 유희 규칙을 넘어서는 것만 아니라 총체로서의 장르를 넘어서는 정의 불가능한 작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런 장르적 변형을 손쉽게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스의 영화에서 엿보이는 유희성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당한 평가는 아니다. 차라리 초현실주의적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뱀파이어와 신부, 상현과 태주, 상현의 수도원과 태주의 일본식 적산가옥 등, 다양한 충돌과 기이한 만남이 에는 즐비하다. 이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친숙한 사물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충격을 만들어내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의 기법을 활용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태주가 거주하는 집의 내부 공간과 배치 방식은 이런 모순적인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식 가옥의 외관과 한국의 전통 복식, 러시아 보드카와 중국식 마작, 어둠과 빛의 충돌이 이곳에 집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의 전반부는 종교적 희생과 구원, 영생과 관련한 문제가 다뤄진다. 고아원에서 성장했던 상현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와 그들의 영적 구원을 거두는 신부가 되는 일 사이에서 결국 신부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로 하여금 치유의 백신 실험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러한 동기는 그러나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험을 거쳐 죽음에서 부활로 이끌린 상현에게 부여된 다른 과제가 중요한 문제로 출현한다. 그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죽음이란 문제는 죄의식의 문제와 겹친다. 이를테면, 뱀파이어로서 상현은 윤리의 명령이나 종교적인 소명에서 떨어져, 선악의 피안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 뱀파이어에게 살인이나 강간미수는 법적·윤리적인 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성립을 위해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자살을 원하는 자를 도와 편안한 죽음을 이끌어내고 죽어가는 자에게서 피를 보충해 살아갈 수 있다. 박찬욱의 전작에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동반한 살인의 순간이 변모하는 지점이다. 다양한 충돌과 기이한 만남 즐비 장르의 변형형식, 기법의 데페이즈망만큼이나 인물들 또한 행위의 변경을 이뤄내려 한다. 상현과 태주는 일종의 미치광이적인 기획을 세우는데, 그 하나는 스스로 다른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숭고할 정도의 초월적인 기획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힘으로 환경과 대결하려는 영웅적 행위다.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이들은 인간을 넘어선 ‘포스트 휴먼’ 혹은 ‘비인간’들이다. 이들의 최종적 선택은 숭고와 영웅성을 넘어선 자살 혹은 순교로 이끌린다. 뱀파이어를 죽음으로 이끄는 빛은 사실상 모든 것을 복구해주는 정신의 빛이다. 와 의 백색의 눈, 혹은 의 백색 폐쇄병동을 넘어서 에서 박찬욱은 백색의 순수한, 내재적인 정신적 빛을 찾아 나선다. 감미로운 결말이다. 김성욱
- [새책]박찬욱의 몽타주 외(2005. 12. 27)
- 2005. 12. 27 문화/과학
- 박찬욱의 몽타주 이른바 ‘복수 3부작’이라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감독 박찬욱이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영화 속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박찬욱 감독 또한 ‘공동경비구역 JSA’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영화평론가,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 등으로 전전하면서 어려운 시기도 보냈다. 이 책은 박찬욱 감독의 숨은 모습들도 보여준다. 평론집 ‘박찬욱의 오마주’가 함께 출간됐다. [박찬욱 지음, 마음산책, 1만 원] 사요나라 BAR 영국인 게이샤 메리와 일본 야쿠자 와타나베의 사랑이 중심이 된 작품이다. 냉소와 순애보를 동시에 지닌 와타나베의 메리에 대한 사랑이 아름답다. 작품의 분위기는 매우 암울하다. 어둠이 깃든 뒷골목의 ‘사요나라 바’가 주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울한 작품 분위기를 두 사랑이 밝게 비춰준다. 와타나베와 메리의 사랑, 그리고 다른 쪽에 있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사토의 사랑이 그것이다. [수잔 바커 지음, 은하랑 옮김, 길산, 1만4800원] 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 ‘책읽기’가 입시를 위한 불가피한 ‘공부’로 전락해버리고 독서교육마저 입시도구로 전락해버릴 위험을 안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책은 경종을 울린다. ‘인디고 아이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느낌을 토론한다. ‘인디고 아이들’이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이 ‘행복한 책읽기’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셈이다. [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지음, 궁리, 1만8000원] 최후의 템플기사단 지난 7월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새로운 역사 스릴러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5년 하반기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작가는 13세기 중세와 현대를 넘나드는 구성을 갖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종교의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작가는 흥미로운 역사 스릴러물을 통해 어려운 철학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레이먼드 커리 지음, 한은경 옮김, 김영사, 전2권, 각권 8900원] 페스트 절제된 언어와 문체 실험을 통해 색다른 작품을 발표해온 최수철이 5년 만에 내는 장편소설이다. 의식의 분열, 언어의 해체, 자아와 세계의 관념적인 관계…. 최수철 하면 떠오르는 이러한 요소들을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자살’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자살이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파급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삶과 죽음이 끈끈하게 얽혀 있다. [최수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전2권, 각권 9500원] 키다리 아저씨 드라마 작가인 예랑이 자신의 경험에 비춰 사랑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여정을 시 형태의 독백어조로 그려낸다. ‘키다리 아저씨’란 이 시대 대부분의 여성이 동경하는 남성상을 의미한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미소지어주며, 언제 어디서든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남자를 말한다. 그런 남자라면 분명 사랑에 빠지고 싶겠지만 과연 그런 남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의문이다. [예랑 글, 권신아 그림, image, 1만 원]
- 신간
- [유인경이만난사람]박찬욱 감독(2005. 08. 30)
- 2005. 08. 30 사회
- “무명시절엔 잘 나가는 감독들 씹으면서 참아냈어요” “내 친구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봤는데 재미없다더라. 친철하지도 않대.” “그런데 왜 개봉 12일 만에 300만 명이나 본 거야? 얼마나 재미없는지 보러 가자.” 카페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던 대학생 커플은 곧바로 영화관으로 떠났다. 이제 젊은이들에게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스타일리시한 문화활동’으로 여겨진다. 작가 김수현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그렇게 광고를 자주 하고, 그토록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는데 그 정도 관객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매스컴들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을) 못마땅해했다지만 그 어떤 비평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은 이 시대의 아이콘이며 브랜드임에는 틀림없다. 각박한 세상에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코미디도 아니고, 가슴이 촉촉해지는 로맨스영화도 아니고, 연인끼리 보러갔다가 ‘어머 무서워’라고 비명을 지르며 자연스럽게 껴안을 수 있는 공포영화도 아닌 작품. 피비린내나는 살인과 폭력이 난무해 보고 나면 심신이 불편해지는 그의 영화를 왜 사람들은 굳이 극장까지 달려가 돈을 내고 보는 걸까. 또 왜 국제영화제에서는 갖가지 상을 주고 해외영화평론가들까지 찬사를 퍼부을까.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그가 왜 그토록 ‘복수’에 매달리는지, 또 돈도 잘버는 부르주아 영화감독이 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했고 효순·미선양의 압사사건에 항의삭발까지 하는 등 사회활동에 열심인지 그에겐 참 궁금한 게 많다. 복수는 끝났다 박찬욱 감독(42)은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는 끝이 났다고 했다. 1992년 가수 이승철 주연의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 ‘3인조’ ‘심판’ ‘쓰리몬스터’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감독했지만 6편의 장편영화 중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등 복수 3부작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겨 복수 전문(?) 감독으로 여겨진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되었고 ‘올드보이’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그는 ‘… 금자씨’가 올해 베니스 영화제 공식경쟁부분에 초청되어 세계 3대 영화제 레트카펫을 모두 밟게 됐다. ‘올드보이’가 칸을 비롯, 국내외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쓴 덕분에 그는 국민훈장도 받았다. 미국 유명 영화전문 인터넷 사이트 ‘에인트잇쿨뉴스’에선 영화사 속 거장 50명을 대상으로 최고의 감독을 뽑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며 박 감독을 ‘50대 거장’에 포함시켰고 ‘뉴욕타임스’는 그를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 견줄 만큼 뛰어난 감독’이라고 격찬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노골적으로 그를 좋아한다고 밝혔고 밀라 요요비치 등 유명스타들이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내고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연출제의가 쏟아진다. 아주공대 학장을 지낸 아버지, 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큰아버지 등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서강대 철학과를 무사히 졸업했으니 집안·학력 콤플렉스도 없을테고 외국계은행에 다니던 유능한 아내에 귀여운 딸, 파주 헤이리의 근사한 집 등 ‘신으로부터 하염없이 축복받은’ 그가 왜 그토록 ‘복수’에 매달릴까. “꼭 지독한 가난이나 배신 등 트라우마가 있어야 복수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처음 영화계에 입문해서 ‘공동경비구역 JSA’로 주목받기 전까지는 고생도 많이 했고 분노도 많았어요.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니 밥벌이를 해야 해서 영화사에서 월급쟁이를 하며 영화포스터도 만들고, 자막번역 등 잡일도 했죠. 최근엔 인터뷰 기회가 많은데 제 자신이 동전만 넣으면 노래가 나오는 주크박스처럼 질문에 척척 대답을 하는 게 지겹고 피곤하다가도 데뷔작을 만들었을 때 한번도 인터뷰를 못 당했던 걸 기억하면 ‘이것도 호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인터뷰에 응합니다.” 국내외 영화평론가들, 아주 지적이며 현학적인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그리스 비극처럼 신의 의지·농간에 움직이는 나약한 인간들, 그러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지켜보다 마음을 바꾸는 신들처럼 그의 영화는 항상 관객들의 예상을 배반하고 반전한다. 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하는 햄릿처럼 항상 선택과 도덕적인 딜레마에 고민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그의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유머 감각이 묻어나는’ 복수극에 담긴 철학이 일맥상통한다는 것. 쉽게 말하면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숨기고 싶은 원죄의식을 건드려 우리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자꾸만 궁금해져 보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죄짓고 살면서도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복수, 들키지만 않는다면 총·칼로 죽여 응징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속죄하려 하고,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존경받고 싶어한다. 그는 사회적 금기인 사적(私的)인 ‘복수’를 주제로 모순덩어리인 인간심리를 비틀고 헤집어서 영화로 만든다. 그리고 복수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올드보이’에선 오대수(최민식)에게 책임을 덮어씌워 우진(유지태)이 미치지 않고 생활했으며 금자(이영애)에겐 복수가 (살해당한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속죄의 수단으로 13년의 감옥생활을 버티게한 삶의 원동력이란 것. 하지만 결국 복수는 해결책도 행복의 방법도 아님을 알려준다. 그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 했건, 그가 세상에 품은 원망이 무엇이건 박찬욱 감독은 복수시리즈 덕분에 부와 명예를 얻었으며 ‘세계적 감독’으로 인정받아 그를 몰라봤던 이들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했다. 어리석은 이들은 진짜 복수를 하다가 감옥에 가거나 죽기도 하는데 예술적인 복수는 결과도 아름답다. 진지함과 유머는 그의 힘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예술세계에만 함몰해 있지는 않다. 류승완 감독과 함께 미군장갑차에 압사한 효순이·미선이를 추도하며 주한미군에 항의해 삭발도 했고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당당히 밝히고는 매달 당비를 꼬박꼬박 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명예 해외봉사단장으로 지난 7월 위촉되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해외봉사도 할 예정이다. 모교인 서강대를 비롯, 성균관대·이화여대 등 대학의 특강에도 참석해 영화인을 꿈꾸거나 영화에 관심 많은 학생들에게 경험담도 전해주고 영화 이야기도 나눈다. “오랜 백수생활 끝에 영화감독이 되어 2번의 작품이 다 망했을 때도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잃지 않았다”며 “자신의 일에 대해 오만함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견디라”고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우리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선과 우려에서 만들어졌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걸 해결해줘야 할 ‘공권력’이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 무책임하고 엉성한 공권력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대신, 그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나서서 응징하고 벌한다. 다른 한국영화들과 달리 그의 영화는 ‘권선징악’을 표방하지 않는다. 예전엔 우리가 워낙 순진해서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영화를 보며 ‘착한 사람이 언젠가는 잘 될거’란 믿음과 위안을 받았지만 이젠 착한 사람이 잘 살기 더 힘들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그런 메시지는 오히려 영화의 현실감을 해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시선에서 보면 가난뱅이는 부러워하는 것이 많아 삐뚤어지는 경향이 지배적인데 반해 부자는 아쉬울 게 없어 더욱 착해져요. 착한 성격마저 부자들이 독점하는 세상이 슬퍼요. 우리 사회의 계급갈등은 심각하지만 쉽게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계속 직시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이처럼 확고한 사회의식으로 무장되고 진지하기만 한 감독이라면 도무지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다행히도 그는 철학도답게 진지하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그의 작품, 특히 잔혹한 복수극에도 유머는 달콤하게 스며 있다. 분단이란 거대한 비극을 그리면서도 북한군(송강호)을 통해 유머러스하고 따스한 기운을 잃지 않았던 ‘공동경비구역JSA’, ‘친절한 금자씨’에선 ‘어느 지각없는 감독은 이걸 영화할 것이다’라며 감독 자신마저도 망가뜨리는 유머감각을 자랑한다. 하긴 산소 같은 여자, 천사같이 해맑고 꿋꿋한 장금이, 항상 신비한 이미지를 보여준 이영애에게 험하게 살아온 살인범 금자 역을 맡긴 것은 얼마나 유머러스한 발상인가. 그 어떤 위기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우아하게 말하는 이영애가 교도소 안에서도, 전도사에게도 특유의 소곤소곤한 말투로 상스런 소리를 지껄이는 장면은 너무 진지해서 우습다. 그 우스꽝스러움을 통해 인간 이영애가 갖고 있는 복잡한 내면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그 오랜 무명시절을 어떻게 참아냈냐는 질문에 “동료들과 술 마시면서 당시 흥행이 잘되던 감독들의 작품을 ‘내가 발가락으로 찍어도 그보단 잘 만든다’ 는 등 마구 ‘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나 말보다 그의 유머감각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이다. ‘가훈’에 관해 그가 쓴 글(경향신문 2002년 10월 12일자)을 보자. “종팔이(딸의 애칭)가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궁리끝에 떠오른 한마디 ‘미워도 다시 한번!’. 얼마나 좋은가. 식구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박터지게 싸우고 나서도 돌아서서 조용히 이렇게 읊조릴 수 있다면. 그런데 그 말은 영화제목만이 아니라 거창고등학교 어느 교실의 급훈이란 걸 알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훈을 표절할 수는 없는 일… 몇 시간 후 마침내 나는 이런 문장을 백지에 적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아니면 말고’ 나는 말했다. 뭐든지 멋대로 한번 저질러 보는 거야. 그랬는데 분위기 썰렁해지면 그때 이말을 쿨하게 중얼거려주는 거지. 종팔이는 정말 좋아했다. 본래 아이들이란 늘 멋대로 한번 저질러보고 싶어 미치는 인종 아니던가. 하지만 역시 어른들은 달랐다. 이튿날 종팔이는 선생님께서 ‘세상에 뭐 이딴 가훈이 다 있냐’며 새 걸 받아오든가 아니면 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어오라셨다고 전했다. 나는 한번 정한 가훈을 무를 수는 없다면서 이렇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덧붙였다. -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세상에는 의지만 갖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쩔 것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 아닌가. 이 아빠도 ‘복수는 나의 것’으로 네 친구의 아빠(곽경택 감독)가 만든 영화 ‘친구’를 능가하는 흥행신기록을 세우고 싶었으나 끝내 이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성적으로 끝마쳐야 했을 때 바로 그렇게 뇌까렸던 것이다. ‘아니면 말고…’-” 작품성만이 아니라 흥행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양심적인(?)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은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밝고 명랑한 정신병자 소녀와 청년의 사랑 이야기란다. 살인자에 이어 정신병자라…. 하긴 우리 모두 마음속으론 살인미수범이고 이상한 이가 많으니 사회 전체가 정신병동 아닌가. 나이 들어서 제작자에게 손 벌리지 않고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모은다는 박찬욱 감독. 나이 들어도 그 유머 감각과 미모가 변치 않기를 친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 유인경이 만난 사람
- 박찬욱 감독은 뮤지션?(2004. 06. 17)
- 2004. 06. 17 문화/과학
- 영화감독 중에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많다. 아니 영화나 드라마감독 대부분은 상당한 음악적 수준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적 실력이 상당한 인물이 많은데 이번에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대종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감독이 그런 예다. 그는 음악평론가를 해도 좋을 만큼의 음악적 지식과 직관력이 출중한 감독이다. 92년께 박찬욱 감독이 흥행에 참패한 첫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에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록가수 이승철이 주연을 맡고, 신재홍과 박광현이라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영화음악을 맡았다. 영화는 느와르식의 멜로액션극이었지만 당시로는 드물던 록음악이 많이 사용되어 참신했다. 필자는 그 무렵 박찬욱 감독을 언젠가는 대성할 신인감독이라는 컨셉으로 방송에 모셨는데,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마치 뮤지션처럼 록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깊이를 보여주었다. 천재적 음악가 이승렬과의 조우 그런 그가 이후 [공동경비구역JSA]를 내놓았을 때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왔고, 이제[올드보이]로 칸영화제와 대종상을 휩쓰는 기사를 보고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영화라는 정신적, 체력적 소모량이 엄청난 작업을 즐기는 듯한 그의 내공 깊은 곳에는 항상 음악의 샘이 흐르는데, 그 마르지 않는 샘은 얼마 전 이승렬이라는 천재적 음악가를 만나 더욱 충만해졌을 것이다. 필자가 이런 저런 리서치에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뮤지션을 뽑아달라는 청을 받으면 꼭 거론하는 뮤지션이 바로 [유엔 미 블루]다. 2인조 록밴드였던 이 불우한 밴드는 90년 초반 2장의 앨범을 내고는 사라져갔다. 너무 앞서가는 길은 외로운 법, 그들의 음악은 우리 현실에 너무 앞서갔고, 대부분의 선각자들처럼 뮤지션만이 알아주는 뮤지션이었다. 그중 한 명이 이승렬이고 그가 최근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솔로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뮤직비디오를 박찬욱 감독이 만들었다. 박감독은 명감독으로 등극한 후 여러 인기가수로부터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나 영화에 전념하겠다고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이승렬의 비디오는 자청해서 실비만 받고 만들었다. 이유는 팬이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음악을 그토록 사랑하는 박감독이 뮤직비디오에 관심이 없을 리 없고,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음악은 다루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에 전념하겠다'는 훌륭한 거절방식 아닌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는 김수철이라는, 국악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음악인이 있었고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에는 강근식과 이장희라는 그 시절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버티고 있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기 마련이고, 이런 천재들의 만남에서 잉태되는 작품은 과연 어떨까. 박찬욱과 이승렬의 만남이 또한번 한국영화나 음악에 큰획을 긋는 명작으로 탄생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구경모[SBS라디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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