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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9 건 검색)

겨우내 불어난 체중 어쩌나…보건복지부 ‘저염·저당·저지방’ 캠페인
겨우내 불어난 체중 어쩌나…보건복지부 ‘저염·저당·저지방’ 캠페인
2024. 03. 04 14:33 화제
코로나19 거치며 국내 비만율 급증 4일 ‘비만 예방의 날’ 맞아 보건복지부·전국 지자체, 건강 식생활 합동 캠페인 체중감량에 도움이 되는 채소와 과일, 견과류. 성큼 봄이 다가온 3월, 높아진 기온만큼 겨우내 불어난 뱃살이 신경 쓰이는 시기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3월 4일 ‘비만 예방의 날’을 맞아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비만을 줄이기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한다. ‘덜 짜게, 덜 달게, 덜 기름지게’를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캠페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염, 저당, 저지방 식생활을 인증할 수 있는 사진과 요리법을 공유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가볍게캠페인, #덜짜게캠페인, #덜달게캠페인, #덜기름지게캠페인 등 해시태그와 함께 1주 차는 저염, 2주 차는 저당, 3주 차는 저지방 식단과 조리법을 공유하면 된다. 캠페인은 다음 달 24일까지 진행되며 추첨을 통해 스마트워치를 비롯해 블루투스, 드럭스토어 상품권 5만원권, 네이버페이 1만원권이 제공된다. 전국 각 지자체에서도 4월30일까지 비만 예방을 위한 온·오프라인 합동 캠페인을 운영한다. 222개 기관이 참여해 지역 주민에게 건강 식생활 메시지 확산을 위한 홍보자료를 나눠주고 퀴즈 이벤트 등을 마련한다. 출처-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24 한눈에 보는 신비영 통계자료집>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만율은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급상승했다. 성인 비만율은 2019년 33.8%에서 2022년 37.1%로 3.3%포인트 상승했고 같은 기간 아동·청소년 비만율(학생건강검사)도 15.1%에서 18.7%로 3.6%포인트 높아졌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국민의 식생활도 비만율을 높이는 쪽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들의 주 3회 이상 패스트푸드 섭취는 2019년 25.5%에서 2022년 27.3%로 증가한 반면 우유, 채소, 과일의 매일 섭취는 모두 줄어들었다. 성인의 경우 아침 식사 결식률과 지방 과잉섭취는 증가했고, 과일·채소 섭취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24 한눈에 보는 신비영 통계자료집> 보건복지부는 최근 5년간의 국내 비만 실태와 관련 현황을 담은 ‘한눈에 보는 신비영(신체활동ˑ비만ˑ영양) 통계자료집’을 발간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공식 홈페이지(www.khepi.or.kr/kp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만비만예방의날보건복지한국건강증진개발원
영국 보건사회복지부가 발표한 ‘치매 예방 생활습관 십계명’
영국 보건사회복지부가 발표한 ‘치매 예방 생활습관 십계명’
2023. 07. 17 06:38 건강
영국 보건사회복지부가 발표한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 습관 ‘십계명’은? 치매만큼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슬픈 질병은 없다고 한다. 치매의 시작인 인지장애의 징후는 치매 진단을 받기 수십 년 전에 처음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자.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 어느 정도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말이다. 영국 보건사회복지부가 발표한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 습관 ‘십계명’을 눈여겨보자.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 습관 십계명 1 충분한 수면은 뇌 수축을 막는다 최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은 질 좋은 수면 시간과 인지 능력이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50세 이상 9천 명의 수면 패턴을 10년 동안 추적했다. 평균 6시간에서 8시간의 잠을 잔 50·60대가 6시간 이하로 잠을 잔 사람에 비해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추적 관찰 결과 긴 수면을 취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짧은 낮잠’도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일과 육아의 압박으로 매일 밤 적정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중년에게 30분 정도 낮잠을 자라고 권한다. 연구진은 약 30분간의 낮잠은 정상적인 수면 주기를 방해하지 않고 뇌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수면이 뇌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중년 이후 성인이 하루 7시간에서 8시간 사이를 자는 수면 패턴은 뇌에 매우 좋다. 최근 몇 년간 연구에서 꾸준히 입증된 사안이다. 수면은 뇌의 처리 속도, 반응 시간, 시각적 기억과 인과관계가 있다. 모두 뇌 수축을 멈추는 생활 습관이다.” 2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자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뇌 건강에 매우 해로운 요소 중 하나다. 2022년 신경학 저널의 한 연구는 외로운 60세에서 79세 사이의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3배 더 높다고 밝혔다. 사회적 참여의 부족이 뇌의 크기를 정상보다 훨씬 더 큰 비율로 축소시켜 지시를 계획하고 기억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신경과학 교수 바바라 사하키안은 “사회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대화와 자극을 통해 뇌의 신경망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는 뇌를 손상시킬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라고 언급했다. 3 초가공 식품을 피하자 초가공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치매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2022년 발표된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따르면 비만은 치매의 주요 위험 요소로 지정됐다. 비만은 고혈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뇌의 연약한 혈관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4 음주는 초기 치매를 부른다 알코올 섭취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통계에 따르면 초기 치매 환자의 약 10%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 규칙적인 음주는 뇌의 뉴런과 혈관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5 노년까지 일하자 50대와 60대에 걸쳐 꾸준히 일하는 사람은 일찍 은퇴한 사람보다 인지 저하가 늦다. 인지 예비력이 늘기 때문이다. 인지 예비력이란 평생 쌓은 경험으로 생긴 뇌세포들 사이의 네트워크로 이것이 높을수록 치매 위험에 노출되어도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노년까지 꾸준히 일할수록 뇌의 인지 예비력은 늘어난다고 말한다. 악기 연주는 운전할 때와 같은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보니 뇌에 큰 자극이 된다. 6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 새로운 악기를 배우거나 어렸을 때 연주했던 악기를 다시 해보는 것만으로 뇌는 자극이 된다. 올해 발표된 연구에서 6개월 동안 피아노 레슨을 받은 60대와 70대 성인이 기억 저장과 의사 결정을 돕는 뇌 부분인 소뇌의 부피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악기 연주는 운전할 때와 같은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보니 뇌에 큰 자극이 된다. 7 규칙적으로 운동하자 뇌의 크기는 40세 이후부터 10년 간격으로 약 5%씩 줄어들고 70세가 넘으면 급격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뇌에 산소를 불어 넣는 규칙적인 운동은 뇌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산소는 새로운 뇌세포의 생성 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걷기, 달리기, 수영, 자전거 모든 신체 활동이 좋다. 적극적인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뿐만 아니라 근력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영국 바이오뱅크의 통계 연구에 의하면 근육량이 더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12% 낮다. 8 운동 중 헤딩은 금물 2023년 3월 스웨덴 남자 축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축구선수가 비선수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1.5배 더 높았다. 공을 헤딩하는 동작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외상성 뇌 손상 또한 인지능력 저하의 위험 요소로 알려져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축구선수의 치매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도록 하자는 캠페인을 지지했다. 9 난청이 시작됐다면 빠른 치료를 다양한 연구에서 중년 이후 청각 능력은 뇌 건강과 연결되어있다. 난청이 치매를 부른다는 이야기다. 일부 과학자는 뇌를 손상하는 요소들이 달팽이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측했으며 또 다른 과학자들은 청력 손실로 인해 자극이 부족해지면 청각 피질(소리를 처리하는 뇌의 부분)이 줄어들고 서서히 퇴화한다는 주장을 편다. 청각이 약해졌다고 느껴진다면 보청기 등 보조기구를 이용해 적응하는 등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시각과 마찬가지로 약해진 청각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청각 자극을 받아 사회적으로 덜 고립됨으로써 인지 능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 치매 시작됐다면? 초기 단계에 적극적으로 치료하자 미국 식품의약처는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을 위한 새로운 약, 레카네맙이라고 불리는 약을 승인했다. 치료제는 아니며 일시적으로 인지 능력의 저하를 막는 약이다.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알츠하이머와 다양한 치매 약물 연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치매의 한 형태인 자가면역성 치매는 현재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5~6년 안에 새로운 치매약이 속속 나올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치매의 조기 진단과 원인 분석이 빠를수록 치료나 예방도 빨라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사회복지사 엄마 박은숙 소장과 딸 이은양의 현장 체험기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사회복지사 엄마 박은숙 소장과 딸 이은양의 현장 체험기
2014. 05. 27 17:14 육아/교육
처음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출장 가는 바람에 집 비우는 일이 다반사여서 막연하게 ‘바쁜 일’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일터에 가본 딸은 깜짝 놀랐다. 무척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월급은 받고 일하세요?’예요(웃음). 사회복지사란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어떤지 질문만 봐도 알 수 있죠.” ‘패션이 참 근사하다’라는 감탄을 인사로 대신했더니 ‘월급은 받느냐’는 질문보다는 낫다며 웃어 보이는 사회복지사 박은숙(45)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교육센터 소장. 멋진 원피스를 보며 월급을 받고 있음을 눈치챘다고 농을 던지니 “아웃렛에서 샀다”라며 재치 있게 응수했다. 유쾌한 사람임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직종 중 하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게 현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의 아이는 어떨까. 오늘 함께 출근한 박 소장의 딸 이은양(15)에게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 학교폭력 예방하는 사람? 뭐 하는지 사실 잘 몰랐는데요. 오늘 나오는 길에 엄마가 급하게 설명해주었어요(일동 웃음).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상담할 때도 ‘어머니, 뭐 하시냐’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캡 교육 하시는데요’라고 답했더니 그게 뭐냐고 되물으시던걸요?” 이은 양의 거침없는 ‘폭로’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흥미진진한 인터뷰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은양은 우스갯소리로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는 ‘중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매라고 해도 믿을 만큼 꼭 닮은 외모와 단정한 단발머리에서 풋풋함이 물씬 풍긴다. ‘나도 이제 알 만한 것은 다 안다’는 식의 사춘기 특유의 시크함도 매력을 더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캡 교육하시는 분이라고?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 캡 교육이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동폭력예방(CAP: Child Assault Prevention) 프로그램이다. 이은양은 잘 모른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 명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로 엄마의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박 소장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교육센터 소장으로 아동폭력 예방 마스터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 벌써 20년째 사회복지 분야라는 외길만 걸어온 정통파이자 베테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엄마 박은숙으로 돌아갔을 때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일이 바빠 외동딸임에도 육아의 상당 부분을 친언니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엄마로서 한 일이 많지 않다며 딸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 모를 정도였어요. 언니가 아니었다면 일도,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거예요. 일하는 여성 모두가 가지는 고충이죠. 더욱이 제 일은 출장이 많아요. 무엇보다 집을 자주 비우는 게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죠.” 이은양의 불만도 언제나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바로 엄마의 일터에 같이 가면서부터. “엄마가 봉사 시간 점수를 준대서 가게 됐다”라며 딸이 입을 떼자, 엄마가 이에 질세라 “네가 한 게 없으니 (점수를) 줄 수 없었지!”라며 서둘러 해명부터 한다. 보기 좋게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모습에 생기가 돈다. “자원봉사 하러 엄마 일하시는 곳에 두 번 정도 가봤어요. 출장도 따라가봤고요. 정말 바쁘게 일하시더라고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하시고요. 저는 엄마가 강의할 때 뒤에 서 있기만 하는데도 정말 힘들었거든요. 엄마가 출장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지만 놀다 오는 게 아니고 이렇게 힘들게 일하다 오시는 구나, 알게 됐어요.” 일터에서 본 엄마의 모습은 무척이나 멋졌다고 한다. 특히 “소장 사무실이 따로 있는 걸 보고 높은 사람 같아서 더 대단해 보였다”라는 중2다운 대답도 잊지 않는다. 멋진 점을 알았으니 이번엔 다른 점이 궁금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자녀로 느끼는 점 말이다. 이은양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귀가 단속”이라고 했다. 귀가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하게 야단을 맞기도 한단다. 박 소장은 이를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20년 동안 8년은 복지관에서, 나머지 12년은 아동 폭력 문제에 관한 일을 했어요. 그중 7년 정도 재단에서 하는 실종 아동 문제를 맡았거든요. 당시 딸아이가 두세 살 무렵이었는데… 매일같이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만 만나다 보니까 그게 참 힘들었어요. 딸아이의 귀가 단속뿐 아니라 어디를 혼자 보낸 적이 없어요.” 착한 일 너머 전문적인 일, 사회복지사 매일 아픈 사람만 보는 의사, 죄 지은 사람만 보는 판검사는 정말 힘든 직업이다. 그렇다면 매일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사회복지사는 어떨까. 박 소장은 “정말 전문적인 영역임과 동시에 고강도의 업무를 감당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사회복지사들뿐 아니라 복지재단이나 공익재단에서 일하는 분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좋은 일 하시네요~’ 하는 인사말이에요(웃음). 궁극적으론 좋은 일, 꼭 필요한 일임은 맞지만 전문성이 결여돼서는 할 수 없어요. 좋은 일이란 말 속에는 전문성은 없고 봉사의 의미만 포함된 느낌이 들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거든요.”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다른 종교 단체의 봉사와는 구분된다. 단순 퍼주기식 지원은 하지 않는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도움도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봉사의 마인드가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대상자의 독립과 자립을 목표로 하며 공익성과 객관성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무엇보다 프로 의식이 중요하다고 박 소장은 강조했다. 전문가로서 자신의 지식과 역량, 기술을 대상자를 위해 제공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정부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공조할 일이 많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박 소장의 얘기에 동석한 다수의 재단 직원들이 공감을 표했다. 직업적인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문적인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단순 헌신 봉사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폄하가 불편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사회복지사로 일한 과거를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실종 아동 관련 업무를 보던 때였어요. 그 부모님들이 원하는 건 딱 한 가지뿐이잖아요. 아이를 찾아주는 것이요. 어떨 땐 힘들어 하는 부모님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울기도 했어요. 그것밖에 해드릴 일이 없는 때도 있었지요.” 박 소장은 사회복지사란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늘 밝은 것만 본다고 해도 힘든 게 일이고, 삶이다. 그런데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만 만나다 보니 아무래도 업무에 쏟는 에너지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아동폭력 예방교육 중에 있었던 일인데요. 참가한 아이들이 각자 소감을 말하거나 쓰면서 마무리하거든요. 교육 중에는 별 반응이 없던 한 아이가 소감문에 ‘이 교육이 처음에는 무척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 사건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라고 썼더라고요. 아마도 성폭력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정말 뭉클하고 보람되더군요.” 다른 꿈을 꾸지만 엄마 열정 꼭 배울 터 박 소장은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됐을까. ‘착한 사람들’만 간다는 사회복지학과 출신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 또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보니 정말 착한 아이들이 많이 와 있긴 하더라고요(웃음). 어려서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사회학과에 진학하려 했어요. 그런데 저를 잘 아는 지인이 사회복지학과를 추천하시더군요.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면서요.” 처음엔 의료 사업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병원에서 실습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메인이 의사일 수밖에 없는 업무에 한계를 느끼고 복지관 현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전히 출장은 잦고,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엄마이지만 모녀 사이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엄마의 일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다 큰 딸이 든든하게 곁을 지키고 있는 덕분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출장으로 집에 안 계시는 게 정말 싫었는데요. 이제는 오히려 좋아요.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고, 휴대전화도 안 뺏기니까요(일동 웃음). 엄마의 좋은 점이요? 사회복지사이고 전문 상담가이니만큼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그리고 매일 아침 고데로 제 머리를 손질해주시는 거요. 며칠 전에 출장 가셨을 때 머리 손질을 못하는 바람에 내내 머리카락이 뻗쳐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이은양의 답이 끝날 때마다 큰 웃음이 터져 나와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할까, 기다려질 정도였다. 사회복지사가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딸은 엄마를 돕는 일에도 제법이다. 그러나 아이의 장래희망은 엄마와 같은 사회복지사는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지금은 미술학원에 다니며 보다 구체적으로 진로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길이지만 엄마의 열정과 직업의식만큼은 꼭 닮고 싶다고 했다. 딸의 꿈을 들은 엄마의 꿈도 궁금했다. “제가 올해로 마흔다섯이에요. 정년까지 15년가량 남았죠. 꿈이라기보단 두 가지 고민이 있어요. 남은 시간 동안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어떤 다른 꿈을 꿀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중이고요. 또 전문가로서 역량과 기술을 키우기 위해 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은양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더니 “우리 엄마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아, 지루해”였단다. 가장 큰 웃음이 터졌다. 박 소장은 뒷목을 잡는 시늉을 했다. 누가 이 위풍당당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당해낼 수 있으랴. 현장을 즐겁게 만들어준 고마움에 찬사를 보낼 뿐! 표현하지 않는 아이들이 위험하다? 아동폭력 예방 전문가 엄마가 알려주는 필수 정보 1 고자질과 말하기의 차이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폭력에 대해 어른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잘 믿지 않거나 고자질로 여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자질’은 그저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곤란하고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말이고, ‘말하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안전하고, 씩씩하고, 자유로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고자질과 말하기는 그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명확한 차이점을 알려주어야 한다. 2 “안 돼요”, “싫어요” 말하는 법 배우기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녀가 어른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이로 크길 바란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순종적인 성향은 교묘한 속임수를 쓰거나 폭력적인 어른을 만나게 되면 아이를 더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따라서 어른이라 해도 다 옳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아이들을 이용하고 해를 가하려는 어른에게는 “안 돼요”, “싫어요”라고 말하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평상시 폭력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다. 3 ‘안전하지 않은 비밀’에 대한 정의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가하는 어른들은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라는 말로 ‘비밀’을 강요한다. 그러나 비밀에도 종류가 있다. 아이 몰래 깜짝 파티와 축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아이를 두렵게 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만드는 안전한 비밀이다. 그러나 아이를 겁에 질리게 하고 무섭고 두렵게 만드는 것은 안전하지 않은 비밀이다. 따라서 ‘안전하지 않은 비밀’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얘기해서 도움을 받도록 알려주어야 한다. 4 만일(If)… 게임 ‘만일…’ 게임은 아이들이 위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돕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때를 잘 살펴보자. 저녁 식사 시간, 취침 시간 혹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이 게임을 하기 좋은 때다. 아이가 질문을 하거나 친구 이야기를 할 때도 좋은 기회다. 아이에게 상황을 설정해 “만일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답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아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도록 하고, 칭찬과 지지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동이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다. 5 신뢰할 수 있는 어른 만들기 아이들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가 갖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믿을 수 있는 어른, 털어놓은 비밀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든든한 어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 가정에서 적어도 한 명씩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생각해보도록 도와주자. 일일 사회복지사 체험 후기 이은(15) “솔직히 지금까진 엄마 직업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했어요. 엄마가 일하는 곳과 강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아동 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요. 가끔은 교육 때문에 엄마의 출장이 많아 불편할 때도 많았죠. 그런데 그동안 다른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많은 노력을 했고,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알게 돼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저는 지금 에티오피아의 아동을 돕고 있어요. 아직은 학생이라 후원할 여건이 안 돼서 제 스스로 후원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대신 도와주고 있지만요. 얼마 전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느낌이 새로웠고 뿌듯했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엄마로 인해 제가 어른이 되면 더 많은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어요. 그런데 엄마처럼 사회복지사가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전 아빠를 닮아 그림을 꽤 잘 그려요. 그래서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랍니다. 어른이 되면 저도 제 딸과 이 코너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rofile 박은숙 소장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교육센터 소장. 아동폭력예방(CAP) 마스터 트레이너이자 사회복지사로 정부 부처 및 전국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아동폭력·학교폭력 예방법에 대한 강의를 펼치고 있다.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CAP 교육은 학대, 유괴,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권리침해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아이들이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있다.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박재찬 ■자료 제공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
워킹맘을 위한 2011년 새로운 복지정책 가이드
워킹맘을 위한 2011년 새로운 복지정책 가이드
2010. 12. 06 17:27 문화/생활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1년부터 향후 5년간 75조8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새로운 대책들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직장 내 보육시설 강화와 보육료 지원, 육아휴직급여 정률제 도입 등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일과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보완한 점은 이 시대 워킹맘들에게 가장 큰 희소식이다. 내년부터 새롭게 바뀌는 출산·육아 관련 복지정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 1 육아휴직급여 정률제 도입 육아휴직급여를 현재 월 50만원의 ‘정액제’에서 육아휴직 전 임금의 40%로 지급하는 ‘정률제’로 변경한다. 이에 따라 직장 여성의 육아휴직급여는 월 50만원에서 최대 월 100만원까지 늘어난다. 다만 복귀 인센티브 적용으로 실제 수령액이 5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50만원을 지급하고, 50만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복귀 후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 2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도입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이 근로시간 단축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법제화됐다. 단축제를 이용한 근로자에게는 육아휴직급여의 일부를 근로시간 단축 비율에 따라 지급한다. 주 40시간 근로자가 10시간을 단축하면 육아휴직급여액의 4분의 1을 급여로 받는다.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면 임금을 주는 대신 나중에 육아기에 사용토록 하는 ‘근로시간 계좌제’도 신설된다. 임신기간 중 산전후 휴가 분할 사용도 허용된다. 육아휴직시에는 건강보험료 경감이 현행 50%에서 60%로 확대된다. 배우자의 출산휴가에 있어서도 기존의 무급 3일에서 유급 3일로 바뀌며 필요한 경우 5일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추가기간에 있어서는 무급을 적용한다. 3 체외수정 시술비 단계적 확대 난임 부부 지원을 위한 체외수정 시술비 1회당 지원 금액은 지금의 150만원에서 2배로 늘어나고 최대 3회까지 지원하고 분만 취약 지역에 대한 의료 지원도 강화된다. 또 현역 입영 대상자뿐 아니라 현역병도 배우자가 아이를 낳으면 상근예비역으로 편입돼 육아를 돕도록 했다. 4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도입 보육시설 평가인증 등급화와 연계하고 우수 시설을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으로 전환해 서비스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공공형은 국공립 보육시설에 준하는 운영비 지원, 보육료 수납, 취약 보육 등 관련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도록 한다. 또 보육시설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개해 평가 결과를 재정 지원과 연계함으로써 전반적인 서비스의 개선을 돕고, 보육시설 운영시간을 직장인 엄마들의 근무 시간을 고려해 반일제, 종일제 등으로 다양화한다. 5 영아 돌봄시장 제도화 돌봄 인력 자격 기준 설정 및 관리 강화 등을 통해 비용 부담 능력과 이용 의사가 있는 중산층 맞벌이 가정을 위해 어린 자녀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정 내 돌봄 서비스를 확충할 계획이다. 또한, 취학 아동들을 위해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시장을 조성한다. 6 다자녀 가정 지원 확대 다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자녀 교육비와 양육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쏟아진다. 공무원이 3명 이상 자녀를 낳으면 정년퇴직 후 최대 3년까지 재고용할 수 있다. 민영주택 특별공급 비율도 지금의 3%에서 5%로 늘리고, 주택 구입자금 대출 이자율도 4.7%에서 4.2%로 추가 인하된다. 내년 이후 출생하는 둘째 자녀부터는 고교 수업료를 전액 지원하고 둘째 이상 대학생 자녀는 국가장학금을 우선 지급한다. 자녀가 둘인 가정은 현행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셋 이상은 현행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다자녀 세제지원이 2배 늘어난다. 7 전문계 고등학교 무상교육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 전원은 입학금과 수업료를 정부에서 받게 된다. 전문계 고등학교 재학생 26만3천 명에게 1인당 연평균 120만원 정도인 입학금과 수업료 전액을 지원한다. 내년 소요 예산 3천159억원은 국비와 지방비를 절반씩 부담해 마련한다. 전문계고 학생의 산업현장 연수, 전문계고-전문대 연계 프로그램, 국외 인턴십 등 취업 지원에도 51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일·가정 양립 위한 결혼에 대한 부담 완화 1 신혼부부 주거 부담 경감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근로자와 서민의 전세자금대출 소득요건이 기존 3천만원에서 3천500만원으로 완화된다. 2013년부터는 4천만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추진한다. 국민주택기금에서 주택구입자금과 전세자금을 대출할 때는, 현재 세대원 전원이 6개월 이상 무주택기간을 유지해야 했던 것과 달리 신혼부부에 대한 무주택 기간 제한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 기존에는 국민임대주택이 미임대되었을 때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입주자를 모집했지만 이제는 신혼 부부에게 입주 우선권을 부여하도록 한다. 2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 보호 일과 가정을 모두 건사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에 대한 지원책도 보완됐다. 비정규직 고용보험 가입이 확대되는가 하면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 간 합의시 육아휴직 기간만큼 계약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또 임신·출산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고 이를 실천하는 우수 기업에는 조달 물품 입찰 적격 심사시 우대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한다. 3 직장 보육시설 설치기준 완화 직장 내 보육시설 설치기준도 완화된다. 어린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재해대비시설 설치시에는 3층 이하로만 제한됐던 현행과 달리 4층 이상도 허용되며, 2차선 이내 도로를 횡단해 이용하는 경우 인근 놀이터로 인정하기로 했다. 직장 내 보육시설 설치 의무를 지키지 않은 기관이나 기업 명단도 정기적으로 공표된다. 또 경로당, 주민자치센터, 아파트 내 도서관과 같이 지역사회의 유휴시설을 활용한 ‘공동육아나눔터’가 설치·운영될 계획이다. 4 보육료 전액 지원 대상 확대 내년부터 월 소득이 450만원 이하인 가구가 영유아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길 때 보육료 전액을 정부가 낸다. 정부는 우선 영·유아 무상보육 지원 대상을 현재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258만원에서 450만원 이하로, 맞벌이 가구는 498만원에서 600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해 대상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까지는 전체 보육 가정의 50%에 보육료가 전액 지원됐지만 내년부터는 70%의 가정이 전액 지원을 받게 된다. 보육 비용은 17만~38만원으로 연령이 낮을수록 많다. 또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양육수당’의 경우 대상을 현행 ‘0~1세, 월 10만원 지급’에서 ‘0~2세, 월 10만~20만원 지급’으로 인상한다. 이때, 0세는 월 20만원, 1세는 월 15만원, 2세는 월 1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은 전체 가구의 6.5% 정도인 차상위계층까지로 한정된다. 다문화가정 아동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한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워킹맘 서비스 아이돌보미 수요자의 가정으로 찾아가서 돌봐주는 서비스다. 일하는 엄마들이 보육시설 외에 긴급·일시 자녀 돌봄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새로 일하기 센터(새일센터) 일하고 있지만 이직을 꿈꾸는 워킹맘이나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재취업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취업상담, 직업훈련, 취업연계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의 여성포털 위민넷(www.women.go.kr), 여성가족부(02-2075-4500)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취재 협조 /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가족부 인턴으로 값진 나날 보내는 이지선
보건복지가족부 인턴으로 값진 나날 보내는 이지선
2009. 08. 07 17:02 화제
나날이 녹음이 더해가던 7월의 어느 날,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씨가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행정인턴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9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지만 절망을 딛고 일어나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기적을 보여준 그녀. 그녀와의 만남은 한여름의 푸르름만큼이나 상쾌했다. 한 달간의 인턴생활, 한국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관심 토요일 오후 올림픽공원은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붐볐다. 에너지 가득한 사람들 사이로 어느새 그녀가 곁에 와 선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살굿빛 블라우스, 예쁜 목소리의 그녀는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예정보다 늦어진 인터뷰 때문에 그 다음에 잡혀 있던 병원 예약 시간이 위태위태하다.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닌데요, 뭘. 다음에 가면 돼요.” 걱정 말라며 환하게 웃는 그녀는 영락없이 성격 좋은 옆집 아가씨다. 사고가 난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2008년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방학 동안 한국의 장애인정책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는데 운 좋게 보건복지가족부와 연이 닿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항상 한국에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국의 장애인정책이 궁금했는데 그걸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보건복지가족부잖아요. 방학 동안만이라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편지를 썼는데 감사하게도 받아주셨어요.” 7월 한 달간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서 일하며 국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미국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을 찾아내는 게 그녀의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시설의 30%가 100명 이상의 장애인을 수용하고 있어요. 미국에 비하면 장애인들의 거주 시설이 너무 대형화되고 지역사회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에요. 마치 격리 수용된 것 같은 느낌이죠. 그렇게 되면 장애인들의 자기 결정권이 약해지고 개개인의 복지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현재 정부가 장애인 4명당 1명의 교사가 붙는 그룹 형태의 시스템을 계획 중인데 제가 하는 일은 그 시스템이 잘 도입될 수 있도록 준비 과정을 돕는 일이에요.” 미국의 장애인 시설은 지역사회에 완벽하게 융화되어 있다. 그녀는 동네에서 자신에게 상담을 받던 장애인 학생을 만났는데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어 놀란 적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느니, 집값 떨어진다느니 하는 문제로 반대할 일이다. “장애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선진국 역시 그러한 진통을 겪었어요. 우리나라는 그런 문제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아직 많이 부족해요. 장애인 문제에 있어 미국이 어떻게 국민을 교육하고 사회 인식 변화를 이루었는지 역시 제가 연구해야 할 과제예요.”딸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으신 어머니, 가족은 기적의 자양분 그녀에게 인터뷰는 낯설지 않다. 2000년 사고 이후 2003년 KBS-2TV ‘인간극장’을 통해 전국에 알려져 그동안 수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해왔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받는 질문이 그 커다란 절망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던 2000년 7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친오빠와 함께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자가 낸 6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중화상을 입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화마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흔적을 남겼고 엄지를 제외한 여덟 개의 손가락은 한 마디 이상 짧아졌다.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한 여대생의 인생이 급커브를 트는 순간이었다. 힘들었던 기억을 묻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마음을 알았는지 이내 “그렇다고 전 국민이 모두 제 이야기를 아는 건 아니잖아요” 하며 웃어 보인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제가 사고를 당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우신 적인 없어요. 보통 “너 이제 어떻게 사니, 큰일이다” 이런 말을 할 것 같은데 항상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러셨어요. 당시에 저는 제 상황을 잘 몰랐거든요. 아파서 누워 있기만 했으니까요.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정말 괜찮은가 보다.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이면 좋아지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제 병실에 들어와서 울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빠가 단속을 했던 거였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때 저를 보고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다들 웃으면서 저에게 괜찮다고 하셨죠.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웃어준 게 되게 고마워요.” 가족과 친지들의 응원으로 힘든 병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섰을 때는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맞서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얼굴이 없어진 상태로 내가 나를 증명할 길이 없어진 거잖아요. 예전에 내가 사람들에게 받았던 평범한 시선과는 전혀 다른 시선들을 느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미웠죠. 어른들도 애들이랑 똑같아요. 길에서 한 번 지나친 사람이 다시 와서 보고 가요. 노골적인 시선이나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감정 표현은 불편하죠. 얼마 전에도 가게에서 계산하시던 분이 저를 보고 한참이나 안쓰러워하시더라고요. 안타까워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 순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저는 그나마 알려졌으니까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정말 힘드시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제는 웬만해선 흘깃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에게는 “신기하니? 이리 와서 만져봐” 하고 먼저 손을 내밀 정도다. 10년 가까운 시간, 40번이 넘는 수술을 받는 동안 매끄럽게 다듬어진 건 그녀의 외모뿐 아니라 마음이었다. “지금도 사고 당시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당시에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어리둥절했고 나중에는 기억이 너무 생생해 무서웠고, 되도록이면 떠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방송에 나가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 얘기를 많이 했던 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저의 사고에 대해 얘기하면서 부정적이고 피하고 싶은 마음을 해소했다고 생각해요. 저에겐 상담이었던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된다. 고난의 계곡이 깊으면 축복의 산이 높다고 했던가, 그때는 너무 깊은 계곡에 있었기에 산이 높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난이 없었으면 지금의 기쁨이 있었을까 싶다. “그 모든 게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를 덜 사랑하셨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책을 내고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있었겠어요. 지금은 그 기쁨의 산이 뭔지 알아요.”5년간의 유학생활, 한국은 언젠가 돌아올 곳 인터넷에서 그녀의 직함은 작가다. 2003년 「지선아, 사랑해」와 2005년 「오늘도 행복합니다」 두 권의 책을 낸 그녀에게 작가라는 직함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더니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병원에 있을 때부터였다.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손에 대해서는 완전히 절망하고 있었는데 누가 병원에서 심심할 때 보라고 노트북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를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런 상황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고요. 그렇게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이 나오게 된 거예요.” 그녀는 병상에서 글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며 ‘여기서 살아 나가면 나와 같은 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일상에 돌아올 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퇴원 후 일본으로, 미국으로 그녀는 공부를 위해 바다를 건넜다. “맨 처음 일본에 갈 때는 치료 목적이었어요. 일본에서는 유학생이 한 달에 70만원 이상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거든요. 치료를 받으면서 일본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우연히 미국 여행을 갔는데 그게 계기가 됐어요. 일본에서는 치료 때문에 아픈 기억이 너무 많았거든요. 일본 말만 들어도 병원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가게 됐죠.” 그렇게 떠난 미국은 그녀에겐 또 다른 세상이자 도전이었다. “그전까지 한국에서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잖아요. 사고를 당한 후에도 방송에 나오면서 많은 분들이 박수 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환경이었는데 한순간에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 떨어진 거예요. 미국에선 공부에 있어서 장애인이라고 절대 봐주지 않아요. 거기에다 영어도 못했으니 언어장애까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하루 종일 긴장해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올 때는 발이 안 떨어질 정도로 녹초가 됐죠. 지금도 완벽하게 적응한 건 아니지만 처음 유학 왔을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2004년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작년에 전공을 바꾸며 뉴욕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겼다. 재활상담학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바꾼 건 한국에 돌아올 일을 생각해서였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좀 더 큰 틀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재활상담은 1:1로 이루어지잖아요. 상담이라는 것이 굉장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이미 그쪽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전문가들이 계셔서 장애인들을 위한 환경 기반을 닦으려면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재활상담과 사회복지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전혀 달라요.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하고 일은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가장 중요한 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미국에서의 학비와 생활비는 책을 통해 들어오는 인세와 장학금으로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선씨는 부르주아인가 봐요’라는 글을 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이다. “저희 집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유학을 생각할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자동차보험이 아니었다면 치료받기 힘들었을 거예요. 화상 치료가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요. 불을 만지는 직업이 보험 가입이 까다롭고 특히 어린이 화상 치료비는 정말 비싸요. 아이들은 화상으로 피부가 굳어버리면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거든요. 미국의 경우 16세 이하의 어린이는 무료로 화상 치료를 받는데 우리나라는 전체 화상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수술 여섯 회뿐이에요. 제도 마련이 시급한 부분이죠. 정말 중요한 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든 것보다 그것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는 것,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거예요.” 언젠가 한국에 들어와 자신이 할 일을 위해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재를 잘 보내는 일이다. 여름방학 동안 인턴직을 잘 수행한 후 미국에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리고 ‘올해 안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서른 중반에는 시집을 갈 수 있지 않겠냐’며 연애까지 올해 계획에 덧붙인다.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말, 정말 맞는 말인데 언제부터인가 안 예쁜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 되어버렸어요. 외모를 중시하고 마치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외모만큼이나 마음의 모양을 가꾸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한국의 장애인정책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한국에서 할 일을 위해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제가 사고를 당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우신 적인 없어요. 보통 “너 이제 어떻게 사니, 큰일이다” 이런 말을 할 것 같은데 항상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러셨어요. 당시에 저는 제 상황을 잘 몰랐거든요. 아파서 누워 있기만 했으니까요.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까 정말 괜찮은가 보다.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이면 좋아지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제 병실에 들어와서 울지 않으셨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한 아름다운 나라 이상준 원장
2008. 03. 12 화제
‘한류’ 열풍으로 우리나라 드라마, 가요 등의 대중문화가 해외에 널리 퍼지면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은 ‘대중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의료 분야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 최근 강남에 위치한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는 ‘의료 분야 한류’의 주역으로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준 대표원장을 만나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었다.‘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지난해 말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가 의원급 병원으로는 최초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정부에서 일반 병원에 장관상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월 중순,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 이상준 대표원장을 만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최근 몇 년 사이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 환자들이 급격히 늘었다”면서 “우리 병원이 외국인 환자 비중이 커서 ‘한국 의료를 세계에 널리 알린 공’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지난 1년 동안 병원을 찾은 외국인 수가 무려 1천 명이 넘는다고 하니, 외국인들에게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을 진료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이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외국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기본적인 의사소통 문제와 예약, 병원을 찾아오는 과정, 진료, 사후 서비스까지 전 과정에 걸쳐 전담 직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외국인을 위해서 ‘동시통역’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치료 후 다시 병원을 찾기 힘든 외국인 환자들은 호텔 등 숙소까지 찾아가서 직접 치료해주기도 했다는 것. 이 때문인지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왔다가 치료를 받고 돌아간 외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이제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 해마다 30%씩 외국인 환자의 비율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입소문’때문. 이 원장은 환자들이 의사에게 신뢰를 갖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들에게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병원이나 의사가 최고죠. 자기 돈 내고 치료를 하면서도 의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환자’ 입장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고 환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의료진의 이 같은 정성은 종종 외국 환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부모와 두 딸이 방문한 적이 있다. 의사인 큰딸은 치료 계획 없이 동행했는데, 가족들의 진료를 지켜보면서 의사에 대한 신뢰가 생겨 본인도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는 것. 이들은 “의료진의 치료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며 치료를 위해 다시 한국을 방문하기로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의료 관광’ 활성화해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고 있는 이상준 대표원장‘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의 진료 분야는 각종 주름, 주근깨, 검버섯, 점, 색소 질환, 지방 이식, 비만, 흉터, 쌍커풀, 제모까지 다양하며, 각 분야별로 세분화된 전문의를 두고 있다. 의료진의 세분화는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연구 성과 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각 분야별 전문의들이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각종 학회 활동이나 논문 발표 수가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특히 세계적인 학회지나 미국과 유럽 등의 국제학술대회에도 지속적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병원 의료진들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000년 명동에 처음 개원한 병원이 지금은 강남, 잠실, 신촌, 분당 등 여러 지점을 운영 중이며, 특히 중국에도 북경점과 스마오점 두 군데가 진출해 있는 상태다.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 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0~70대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곳이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원장은 “피부과, 성형외과 등 20명의 의료진과 2백여 명의 스태프들이 만들어내는 협진 시스템이 다른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병원에는 피부과, 성형외과 두 개 분야의 선생님들이 모두 있거든요. 그래서 환자가 각 분야에서 적절히 도움을 받아 최고의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물론, 환자들의 반응도 매우 좋습니다.” 이 원장은 앞으로는 해외에서 환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나 태국 등이 의료 허브 전략을 택하면서 세계적인 의료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심장 수술, 척추 수술 등을 자랑할 정도로 앞선 의료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통해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의료 허브 도시가 되는 거죠. 이에 대해 서울시나 정부에서 적극 나서서 의료 관광에 대한 인식을 높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의료 관광이 활성화 되면 외국 의사들과 교류도 많아지고, 국가 이미지도 향상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 원장은 ‘의사로서의 꿈’과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해요. 환자들이 저를 신뢰한다고 느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앞으로도 환자가 믿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게 상이나 유명세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의료진들이 학문적으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죠. 매순간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는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훈
‘새생명복지회’ 독거노인 자원봉사 현장
‘새생명복지회’ 독거노인 자원봉사 현장
2007. 02. 13 화제
외로운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새생명복지회 회원들. 이들은 ‘어머니 사랑의 마음으로’라는 모토 아래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지난 12월 말, 독거노인들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서울 송파구 관내 독거노인 여섯 집을 방문했다. 특히 이번 봉사에는 배우 김보성이 함께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겨울나기’ 활동 펼쳐 루체비스타, 소복이 쌓인 눈, 크리스마스 등 눈에 보이는 화려한 풍경이 겨울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겨울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불기 없는 단칸방에서 쓸쓸히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소외된 이웃, 바로 독거노인들이다. 그나마 거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공공근로로 받은 월 40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연탄 한 장 마음 놓고 뗄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힘과 용기가 되는 가족조차 없는 그들이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요즘과 같은 추운 겨울. 사단법인 새생명복지회(회장 장길자)가 이들 독거노인을 위해 집수리와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말, 회원 60명과 배우 김보성(41)이 자원봉사에 참여해 서울 송파구 관내 독거노인 여섯 가정을 방문했다. 오치숙(100) 할머니를 비롯해 김순이(85), 이옥자(82)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먼저 거동이 불편해 하기 힘들었던 집 안 청소를 하고 도배와 장판을 시공했다. 겨울에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따뜻한 온기다. 낮아진 천장과 허물어질 듯한 벽을 보수하고 웃바람으로 인한 추위를 막는 데 힘을 보탰다. 회원들은 길 사정이 좋지 않은 골목길을 통해 연탄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독거노인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며 미소를 지었다. 특히 이번 봉사활동에는 복지회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김보성도 참여해 뜻을 더했다. 평소 호탕한 성격으로 잘 알려진 그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것이 진짜 봉사네요! 그동안 여덟 군데 이상의 봉사단체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몸으로 성심을 다한 건 처음입니다. 회장님 이하 회원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마지막으로 각 가정마다 쌀과 연탄 그리고 종합선물세트를 직접 전달하며 독거노인들을 위로했다. 복지회 관계자는 해마다 이·미용 봉사, 위안 잔치, 떡 배달, 김장김치 전달, 난방비 등 독거노인을 위해 지원을 해왔다고 전했다. ‘효’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라며 새생명복지회의 활동이 주변에 전해져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새생명복지회는 ‘어머니 사랑의 마음으로’를 모토로 지금까지 다양한 계층에 폭넓은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추위와 질병은 독거노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주위의 무관심이다. 진정한 봉사는 마음이다. 차갑고 외로운 손 한번 보듬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에게는 환한 웃음과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 정리 / 이유진 기자 ■자료 제공 / 새생명복지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 받은 탤런트 정선경
2006. 10. 01 연예
“연예인과 봉사활동을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탤런트 정선경이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2년 동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예계 봉사단체인 ‘따사모’의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그간 다양한 단체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이제 더욱 효율적인 봉사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각오가 남다르다. 졸업식에서 만난 정선경과의 직접 인터뷰.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정선경(35)의 표정은 여느 새내기 대학생보다 더 밝고 생기 넘쳤다. 오늘이 바로 일과 병행해온 지난 2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수료하고 학위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선경은 언론 매체의 취재 요청도 거절하고 조용히 학위 수여식에 참석했다. 본지 기자에게도 인터뷰에 난색을 표하다, 일부러 찾아온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남들도 다 하는 공부인데 저라고 특별한 게 있나요? 그냥 조용히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어서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 아무도 부르지 않았어요.” 정선경은 지난 2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교에 출석해 개근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소위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연예인 대학원생들과 달리 배움에 확고한 뜻이 있었다. 졸업식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다른 학생들과도 거리낌없이 담소를 나누며 기념 촬영을 하는 등 평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다. “다른 힘든 점은 없었는데 드라마 ‘서동요’를 찍을 때 지방 촬영이 많았어요. 부여 로케와 출석을 병행하다 보니 수업을 빼먹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방송 스케줄을 조정했어요.” 더욱이 올여름,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월드컵 경기도 그녀는 보지 않았다. 학교 수업시간과 경기시간이 겹쳤기 때문에 관람을 포기한 것. 대단한 학구열이 아닐 수 없다! “마침 학교 가는 시간에 토고전이 시작됐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를 택했죠. 뭐, 등교하는 차 안에서 만큼은 열렬하게 응원하며 가긴 했어요(웃음).” 이날 정선경은 학위와 함께 장학금을 기탁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도 받았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았단다. 현재는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예 봉사 모임인 ‘따사모’의 멤버이기도 하다. “저희 어머니가 복지회 활동을 꾸준히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릴 적부터 자연히 봉사에 관심이 있었죠. 좀더 이론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일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제야 학위를 받게 됐네요.” 그녀는 힘들게 학교를 다닌 만큼 오늘이 더없이 기쁘다. 열심히 배운 것을 실전에 활용할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대도 된다. 연기자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봉사활동과 연계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제가 하는 일이 연기니 앞으로 연기자와 봉사활동을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사회복지 이론을 토대로 적절한 인물들을 적재적소의 홍보대사로 추천할 수도 있구요.”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은 그녀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연기자 봉사활동의 선두에 설 정선경의 모습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열정 하나 각종 일간지에 보도된 대로 그녀는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열애 중이다. 소속사에 따르면 그는 정선경과 동갑내기, 재일교포 출신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알려졌다. 편안한 인상의 소유자인 그는 정선경과 함께 주로 골프를 치며 데이트를 즐겨왔단다. 일부 언론에서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라 보도하며 ‘10월 결혼설’ 기사를 냈지만 그녀는 일단 부정했다. “아직까지는 좋은 친구예요. 결혼 추측성 기사가 나긴 했지만 다 잘못된 말이랍니다.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그런 사이라고 할까요? 그냥 예쁘게 지켜봐주세요.” 정선경은 구체적인 결혼설은 부인했지만 좋은 만남을 갖고 있음은 확인해주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과 취향이 비슷하고 잘 통하기 때문에 즐거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랑 동갑이고 혈액형도 같은 O형이라서 그런지 취미도 같고 취향도 비슷해요. 아! 그 사람도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했답니다(웃음).” 정선경은 덧붙여 두 사람 모두 나이가 있는 만큼 결혼 여부가 정해지면 곧장 숨김없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봉사에서 얻는 기쁨뿐 아니라 핑크빛 결혼 소식으로 여자로서의 행복도 만끽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굿네이버스’와 함께한 정선경의 네팔 이야기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져온 정선경이 소원 하나를 풀었다. 지난 8월 6일,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네팔로 일주일간 난민 어린이를 위한 자원봉사를 다녀온 것이다. 해외 자원봉사는 바쁜 방송 스케줄에 쫓기다 보니 엄두도 못 내던 터라 그녀에겐 더욱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SBS-TV 드라마 ‘나두야 간다’ 촬영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일찌감치 봉사활동 일정을 잡은 터였다. 네팔에 방문해 난민들이 모여 있는 샹글라·버티켈 어린이집과 버티켈 초등학교의 네팔 어린이들을 만나 격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아이들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펼쳤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 스스로 예쁜 추억을 갖고 왔어요”라며 자원봉사는 언제나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우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특히 그녀는 기숙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을 씻기고 밥을 먹여주는가 하면 빨래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정신을 발휘해 함께 간 봉사자들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복지활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정선경이 앞으로 또 어떤 좋은 일로 우리 사회 본보기가 돼줄지 그녀의 행보에 주목하자. 새싹 같은 아이들의 환한 얼굴처럼 그들 땅의 꿈도, 미래도 환하길 바랍니다. 네팔 외 해외 17개국에 후원으로 도움을 주실 분들은 굿네이버스(02-338-1124, http://4child.org)로 참여 바랍니다. 1~3 네팔 어린이 학예회에 함께 참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정선경. 4 구호품인 운동화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5 어린이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고 있는 정선경. 6 굿네이버스 봉사단과 현지 네팔인들. ■글 / 이유진 기자 ■ 사진 / 박형주 ■ 자료 제공 / 굿네이버스
[손숙이 만난사람]①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인재근 부부
2005. 12. 01 화제
고단한 삶이지만 품을 수 있는 세상이 있어 살 만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그 사람’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궁금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알고 싶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궁금합니다. 이달부터 연극배우이자 전 환경부 장관인 손숙씨가 매달 ‘그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레이디경향 독자들을 대신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첫 번째 ‘그 사람’은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부부입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人) 사이를 ‘터’서 내면을 바라보는(view) 것이 ‘인터뷰’라고. 일견 말장난 같지만 일리가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끼리 만나는 자리엔 진솔한 웃음과 따뜻한 눈물꽃이 피어난다. 인터뷰하는 이와 인터뷰당하는 이의 진심이 만난 자리에는 ‘믿음’이라는 열매가 맺힌다. 연극배우 손숙씨가 아름다운 열매 맺기에 나섰다. “내조, 외조가 따로 있나요? 부부라기보다는 동지입니다” 손숙이 만난 첫 번째 사람은 최근 화제가 된 ‘숟가락 연하장’의 주인공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부부다. 김근태 장관은 ‘정치계의 신사’라는 별명답게 ‘클린 지수’(청렴도) 수위를 달리는 공직자다. 그러나 고문의 어두운 그림자, ‘김 진지’로 대변되는 딱딱한 이미지가 자신에게나 대중에게나 적잖은 부담이 되어 왔다. 편견은 실효성 없는 의견이라고 했던가. 고생한 사람 같지 않게 말갛고 하얀 얼굴, 점잖은 말씨에 배인 따뜻함, 아내의 이름을 친구처럼 불러대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분명 그의 모습이다. 모 방송 출연 이후 미니홈피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며 흐뭇해 하는 부부. 방송을 통해 김장관 부부가 좋은 뜻을 위해 기증한 숟가락 연하장은 천만 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첫아들 낳고 결혼식 다시 올린 사연 손숙(이하 손) 와, 이게 얼마 만이에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김근태(이하 김) 오랜만에 손숙 선배를 만났는데 포옹이라도 한 번 해야지요. 손 하긴 요즘 연상의 여자가 인기라면서요. 사모님도 계신데 괜찮으신가 모르겠네.(웃음) 인재근(이하 인) (웃음) 신경 쓰지 마시고 하세요. 손 두 분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신 거예요? 인 지금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이신 최영희 선배가 저희 과 선배거든요. 그 선배 부부가 중매쟁이였죠. 학교 다닐 때부터 그 선배가 “너 연애하지 마라, 연애하지 마라” 그랬어요. 신랑감 있다고. 손 김장관님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어떻던가요? 인 도피 중이던 시절이었어요. 첫인상이 좀 우울해 보여서 퇴짜를 놓을까 말까 하다가 같이 (민주화)운동하는 입장에서 측은지심으로 살려준 거죠.(웃음) 술도 잘 못하는 이가 매운탕 한 그릇을 시키더니 소주를 벌컥 벌컥 몇 잔 마시고는 “나랑 결혼하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든 도끼 들고 쫓아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손 결혼을 두 번이나 하셨다면서요. 김 1978년 당시 도피 중이었기 때문에 처가 식구들만 모여서 식사하는 정도로 결혼을 했지요. 10·26이 일어난 다음 1880년에 세상으로 나와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다들 결혼을 두 번씩 했어요.(웃음) 손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겠어요. 결혼을 하니 뭐가 좋던가요? 김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게 용기를 갖게 만들더군요. 다른 한편으로는 ‘야, 이제는 먹고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10·26 이후 취직 좀 해보려고 의료보험연합회에 면접하러 갔다가 싸움만 하고 돌아왔어요. 면접관이 유신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기에 꾹 참았는데, 또 긁더군요. 그래서 폭발했죠. 집에 돌아와 보니 몇 달 전 태어난 아들아이가 자고 있어요. 그 앨 보면서 자신이 참 한심하더군요. 손 ‘좀 참을 걸’했겠어요? 김 참을 걸은 아니고… 참을 수는 없었구요. ‘이제 어떡하나’ 하는 거였지요. 손 그래서 뭐 먹고 사셨어요? 인 여사님이 돈을 버셨나요? 김 제가 피신할 때는 인재근씨가 도시산업선교회에 나갔습니다. 옥살이를 마치고 80년대 후반기부터 그곳에 제가 나가면서 역할을 바꿨죠. 손 아내를 인재근씨라고 호칭하세요? 김 기분이 나면 ‘재근아’ 그러고, 보통은 ‘인재근’ 그러죠. 인 저는 김근태씨라고도 하고 누구 아빠 하기도 하고. 화나면 ‘김꼰대’ 그래요.(웃음) 애들도 어려서부터 그렇게 들어서인지 그냥 엄마라고 안하고 인재근 엄마 그래요. 맏이인 아들은 지금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딸애는 대학 졸업하고 얼마 전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어요. (남편이) 딸을 어찌나 예뻐하는지 꼭 자기만 딸 있는 거 같아요. 시집도 안 보낼 거래요. 딸애도 아빠 앞에서는 듣기 좋으라고 시집 안 간다고 하는데 제가 슬쩍 “너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 치고 갈 거지?” 했더니 “물론이죠!” 하더라구요. 한 박자 느린 남편이 불러준 ‘사랑의 미로’ 손 감옥에 계실 때 ‘사랑의 미로’를 생일 선물로 불러주셨다면서요? 인 1985년 남영동(전 안기부 대공분실)에서 혹독하게 고문당하고 서울구치소로 옮겨졌는데, 그해 겨울 제 생일을 맞았어요. 면회실에서 저한테 생일선물로 노래를 불러줬죠. 김 당시 이근안씨한테 고문을 받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윤동주가 이렇게 해서 옥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시인도 아니고 여기서 옥사하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며 중심을 잡았지요. 아내에게 ‘나 지금 괜찮다, 흔들리지 않는다’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그 노래가 약간 트로트 비슷해서 나한테는 통 안 맞는데 그땐 그게 기분이 또 맞더라구요. 인재근은 깔깔대고 웃고…. 인 그때는 울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참았어요. 노래도 못하면서 노래 선물을 한다고 그러냐면서…. 손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들 키우면서 많이 힘드셨지요? 인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죠. 그래도 아이들이 그래요. 아빠 없었어도 그 역할을 엄마가 확실히 해줬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한 달에 한 번씩 기차 타고 아빠 만나러 갈 때면 꼭 소풍 가는 것 같았대요. 아이들 만날 때는 특별 면회가 됐거든요. 아빠도 아이들 만나는 날이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멋을 다 내고 나오는 거예요. 목욕도 하고 머리도 곱게 빗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랑 딸기우유, 초콜릿 같은 걸 사서 보따리에 담아서 나오죠. 아들은 노래를 워낙 잘해서 아빠한테 노래 불러드리고 우리 딸은 고무줄의 여왕이라 아빠 앞에서 고무줄 묶어놓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손 완전히 영화네. 그림이 그려지네요. 인 애들이 착하게 잘 커주었어요. 사춘기도 잘 넘어가고. 엄마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 얼마나 사이좋게 지내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교육인 것 같아요. 손 정치인으로서 김장관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인 동전의 양면 같은 구석이 있어요. 김장관은 항상 한 박자 느려요. 그런데 그걸 뒤집어 보면 굉장히 신중하고 진지하고 겸손한 면을 볼 수 있거든요. 손 부부싸움 할 때도 한 박자 늦으세요? 인 부부싸움 할 때는 저한테 공격을 받으니까 일단 방어부터 하지요. 우리도 남들처럼 사소한 일로 잘 싸우곤 해요. 저번에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찍고 나서도 한판 싸웠어요. 그날 ‘어머나’하고 ‘찬찬찬’을 같이 불렀는데 잘 모르는 노래를 정했다고 나무라더군요. 저도 몇 번 들어보기만 했지 잘 모르는 노래였는데 비서관들이 정해주기에 그러마 한 거였어요. ‘인재근이는 매사에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다가 대형사고 칠 거’라고 공격하대요. 거기서 제가 화가 났어요. 내가 대형사고 친 게 뭐 있냐고, 그까짓 노래 좀 못 부르면 어떠냐고, 이날 이때까지 대형사고 친 사람이 누구냐 그랬죠. 마누라 눈에 눈물 빼고 그런 사람이 누구냐 그랬더니 그냥 거기서 깨갱 하더라구요.(웃음) 손 화해는 어떻게 하세요? 인 보통 화해는 남편이 먼저 해요. 만약 제가 골난 상태로 남편을 출근시키면 다시 뛰어들어와요. 인재근, 나를 이렇게 내보내도 되는 거냐고 막 항의해요. 그럼 저는 너무 우스워서 막 웃어버려요. 손 정치인들 부인 중에 큰손도 적잖은데, 인여사님 혹시 재테크 해본 적 있으세요? 인 제가 돈하고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는 돈하고 인연이 없는데 괜히 돈 따라 다니다가 추한 꼴 보이지 말고 그냥 오는 돈이나 잘 붙잡고 잘 먹고 잘 살자.(웃음) 손 오는 돈은 좀 있으시구요? 인 (남편을 가리키며)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월급 타오잖아요.(웃음)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하기까지 손 이근안씨 잡힌 직후에 장관님을 제 방송에 모셔다가 인터뷰를 했었는데 기억나세요? 그때 용서가 되냐고 했더니 용서가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 처절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는데 그후에 직접 면회를 가셨잖아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잠시 한숨) 뭐… 복잡합니다. 여주교도소에 있던 동지 두 명을 작년 추석에 면회하러 가기로 돼 있었어요. 근데 그 전날 거기 이근안씨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거길 갔다가 그냥 돌아오면 가십거리 되기 딱 좋은데 그렇다고 면회하고픈 마음은 안 들고, 괴롭더군요. 감옥에서 맞는 명절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가기 전에 이근안씨한테 면회할 용의가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더니 면회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음날 장영달 의원이 저처럼 그곳에 면회를 갔다가 전날 제가 이근안씨 만나고 간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그래서 언론에 알려진 거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데 착잡하더군요. 그때는 내게 그렇게 군림했는데 신세가 역전되니 무척 작아 보여요. 그 전에는 항공모함처럼 커 보였는데… 용서를 구한다고 말은 하는데 제 상처가 커서 그랬는지 마음에 와닿질 않더군요. 진실한 마음이라면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려야 하는 게 아닌가, 단순히 가석방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고… 손 저라도 용서하기 참 어려울 것 같아요. 김 마음을 달랬지요.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냐 아니냐 하는 걸 판단하는 건 내 권리는 아닌 것 같다, 그걸 따질 권리는 신한테만 있는 것 같다, 신의 권리에 개입하기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그 말이라도 받아들이자 하고. 심정이 하도 복잡해서 그날 밤 잠을 잘 못 이뤘습니다. 손 현실 정치에서 ‘아, 정말 이건 아니다, 정치하기 싫다’ 싶은 적도 있으셨죠? 김 그럼요. 정치하는 데 떳떳하지 않은 돈을 쓰고 받고 거래하고 하는 게 전 좀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돈이 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서 돈과 조직, 지역연고 같은 것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걸 실감했죠. 그걸 막을 수는 없었고, 그래서 양심선언이라는 방법으로 자해를 했던 겁니다. 손 그랬죠. 참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권 주자로 회자되는 입장에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현실정치에서 선거가 가능할까요? 김 쉽진 않지만요. 한국에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정권 재창출도 불가능하다 하는 걸 뒤집었잖아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두 번이나 이뤄졌으니 세 번째 기적도 가능하지 않나 하는 기대를 갖습니다. 손 언제쯤 당으로 돌아가실 계획이신가요? 김 장관으로서 국민연금법 개정 문제라든지 식품안전 문제라든지 현안이 많습니다. 김치 때문에 전국민이 불안해 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식품안전체계를 확실히 좀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것까지는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손 1년 4개월의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스스로 잘했다 생각하시는 건 어떤 게 있으신지요? 김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올리고 의료수가를 얼마나 올릴 건지를 둘러싸고 협상이 늘 결렬돼 왔어요. 왜 결렬됐냐 하면 (협상 당사자가) 협상을 결렬시키고 선명하게 주장해야 자기 조직으로 돌아가서 뽐낼 수가 있거든요. 타협하자고 그랬어요. 결국 세 번의 타협에 성공했어요. 최저생계비도 두 번 합의했구요. 이걸 국민들이 기억해주시면 공무원들이 더 잘할 수 있는데…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손 국민들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일에는 박수도 쳐주셔야죠. 김 손숙씨가 박수치라고 하시면 박수 좀 많이 쳐주실 것 같은데요.(웃음) 손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언제 만나도 항상 ‘내 자리’를 지켜가시는 두 분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오늘 레이디경향 독자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근태(58) 경기도 부천 출생. 중3 되던 해에 5·16 군사쿠데타로 교직을 그만두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며 소위 ‘KS’(경기고 서울대) 마크를 달았다. 대학 시절 고(故) 조영래 변호사, 손학규 경기지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로 꼽히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국가 내란 음모사건 혐의로 유신 정권이 끝날 때까지 7년 동안 수배자 생활. 이후 80년대 신군부 정권에 맞서 민청련을 결성,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된 혹독한 세월을 보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 독일의 함부르크 재단이 선정한 세계의 양심수. 1992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 지지활동을 시작으로 1995년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중앙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정직성, 언행일치, 품성, 지성 등을 기준으로 투표·선정하는 ‘백봉신사상’ 4회 수상. 현재 거론되는 대권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클린 지수’를 자랑하지만 낮은 대중성이 최대 약점이다. 인재근(52) 이화여대 사회학과 재학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졸업 후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부평의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상담 간사, 민가협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옥에 있는 남편을 ‘외조’했다. 남편의 고문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뉴욕타임즈 등 외신을 통해 진실을 폭로하고 세계인권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1987년, 남편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 특유의 포용력과 친근함으로 재야 인사들 사이에서 남편보다 더 인기가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단법인 사랑의친구들 운영위원,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이사,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고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고문, 한반도재단 이웃사랑나누기자원봉사단장 등 왕성한 대외 활동중. 정리 / 박연정 기자 사진 / 손경현
손숙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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