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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 복지’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 병원 문턱 높이나(2024. 10. 14 06:00)
- 2024. 10. 14 06:00 사회
- 정부,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 추진…빈곤층 의료비 부담 늘어날 듯 참여연대, 빈곤사회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월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김정수씨(가명·57)는 무릎 퇴행성 관절염으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정형외과를 찾아 주사치료나 물리치료를 받는다. 김씨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라 의료비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의료급여제도(노동능력 유무에 따라 1·2종 구분)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제도다. 무상은 아니고, 일정 금액을 본인이 부담한다. 1종 수급자는 의원(1차 의료기관)에 가면 1000원, 병원(2차)에 가면 1500원, 상급종합병원(3차)에 가면 2000원을 낸다. 약국에서 약을 지으면 500원을 낸다. 그런데 정부가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를 이 같은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겠다고 지난 7월 25일 발표했다. 의원에 가면 진료비의 4%, 병원에 가면 6%, 상급종합병원에 가면 8%를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2종 수급자는 1차 의료기관에서만 1000원 정액이고, 나머지는 정률제로 본인부담비를 냈는데 모두 정률제로 통일한다. 수급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의료비 부담이 늘 것이라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10월 7일 시작한 제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료급여 개편을 두고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빈곤층 의료비 부담 증가” 수급자들의 부담은 얼마나 늘까.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기초법공동행동)이 김씨의 2023년 의료이용 기록에 정률제를 적용해 보니, 김씨의 연간 본인부담비는 4만7000원에서 18만4590원으로 늘어났다. 의원에서 물리치료까지 포함된 진료를 보고 1000원을 냈는데 정률제가 적용되면 26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수급자들의 건강관리를 유도하기 위해 월 6000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지원한다. 수급자가 건강생활유지비를 다 쓰지 않고 남기면 현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정부는 정률제로 개편 시 본임부담이 증가할 수 있기에 ‘보호장치’로서 건강생활유지비를 2배(1만2000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씨의 경우 지난해 연간 7만2000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받아, 본인부담금을 상쇄하고도 2만5000원을 받았다. 건강생활유지비가 2배로 뛰면 연간 14만4000원을 받지만, 김씨는 4만590원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의료비만 보면 1년간 2만5000원 남던 것이 4만590원 부족한 것으로 바뀐다. 연간 4만590원이면, 한 달 3400원 정도다. 큰 액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김씨 같은 수급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지난 10월 7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에서 만난 김씨는 “무릎이 아파서 걷기도 힘들고 계단 같은 곳은 숨이 너무 가쁘다”며 “병원비가 오르면 부담이 되긴 하는데 그렇다고 병원을 안 갈 수는 없어서 다른 걸 조금 덜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생계급여로 월 71만3102원을 받는다. 주거급여 수급자여서 주거비로 목돈은 안 들지만, 임대주택 관리비를 비롯해 식비·통신비 등 생활비로 71만여원은 늘 빠듯하다. 그는 식재료가 비싸기도 하고 혼자 밥 먹기가 힘들어 “하루 한 끼 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 잃어버린 휴대폰 기기값을 갚아야 해서 100만원을 따로 모아야 한다. 내년도 생계급여가 76만5444원으로 오르지만,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르고 의료비도 더 늘 수 있다. 김씨는 올해 3월부터 우울증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 최근엔 두통이 심해서 신경외과도 자주 찾는다. 한 번에 먹는 약봉지가 3~4개다. 기초법공동행동이 지난 8월 김씨를 포함해 수급자 16명의 2023년 총의료비를 정액제일 때와 정률제로 바꿨을 때를 비교 분석했더니 이들의 연간 의료비는 평균 9만3319원, 최대 34만9791원 증가했다. 건강생활유지비 인상안을 적용했을 때는 16명 중 6명이 본인부담이 증가하며 그 금액은 평균 13만5000원이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수급자 A씨는 지난해 척추증, 안검염, 담낭 결석, 만성복합치주염 등 9개 증상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연간 본인부담비는 11만6500원(정액제)이었다. 정률제로 개편하면 46만6291원(정률제)으로 증가하는데, 인상된 건강생활유지비를 받아도 32만2291원을 본인이 부담한다. ■정부는 왜 정률제로 바꾸려 할까 의료급여제도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와 함께 도입됐다. 2001년 이후엔 기초생활보장제 틀 안에서 운용되는 사회보장제도다.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국고(국비+지방비)로 의료비를 지원한다. 2007년 한 차례 개혁했다. 무상 제공에서 외래 진료 시 일부 본인부담(정액제)으로 바꿨다. 의료급여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 개편안을 발표했을 때 사회 각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일었다. 복지부는 2007년에 정한 정액 본인부담비가 17년째 유지되는 상황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의료급여 예산은 2007년 4조2000억원에서 올해 1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물가와 생계급여, 진료비 등이 상승했음에도 의료급여 본인부담비는 동일해 수급자의 비용의식이 약화했다며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생계급여는 정해진 급여액을 지급하지만 의료급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서 수급자가 제한없이 이용할 수 있다. 적정 이용을 관리해야 하는 제도의 구조적 특성이 있다”며 “수급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의 특성이 그러므로 개편을 통해서 합리적 의료이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자 간 형평성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1인당 진료비가 3.3배 많고, 외래 이용 일수도 1.8배 많다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다. ‘수급자들의 생활비 수준을 봤을 때 의료비 증가가 부담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복지부는 수급자 중 외래 이용이 많은 상위 9%(약 7만3000명)만 의료비가 증가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국회 복지위에 제출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받은 이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외래 이용 상위 1%(월평균 22.6일)의 경우 의료비 부담이 월 6900원 증가한다. 복지부는 건강생활유지비를 2배 인상하면서 수급자 다수는 오히려 환금액이 늘고, 본인부담상한제(월 5만원 초과 시 초과금액 전액 환급)와 같은 보호장치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많아야 월 6900원 는다는데, 그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닐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수급자 중에는 10원 단위로 생활비를 나눠 쓰는 분들도 있다”며 “정액제일 때 의료비가 얼마가 들지 예측할 수 있지만, 정률제로 바뀌면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수급자들이) 의료이용을 덜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도 “심리적으로 병원 문턱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라며 “본인부담금상한제가 있더라도 선지불 능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병원을 가기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당장은 정부 말처럼 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수 있지만, 수가(의료행위 대가)가 인상되면 (진료비 대비) 정률제니까 당연히 본인부담비도 늘어나게 돼 있다. 4%라는 부담비율도 올릴 수 있고, 건강생활유지비도 (예산에 따라) 바꿀 수 있다”며 “공공부조인 의료급여제도 틀을 흔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했다. ■“공공부조 틀 깨는 것…‘약자 복지’는 어디로” 다음으로는 ‘의료급여 수급자가 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교했을 때 과다 의료이용을 하는 건 사실 아닌가’라는 질문.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면, 지난 10년간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진료비 총액 증가 추이는 각각 1.99배와 2.07배로 차이가 없었다. 두 집단 간 1인당 진료비에서 격차가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수급자는 높은 고령화율·만성질환 및 장애 보유율, 낮은 소득·교육 수준 등 건강에 불리한 집단적 특성이 있어서 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교하려면 (통계) 보정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면서 “또 의료이용 빈도, 서비스 강도를 결정하는 것에는 의료 제공자(의료기관)의 판단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의료급여 정률제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수씨와 종종 병원을 동행하는 주장욱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의료서비스는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당사자로서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할 때가 많다”며 “지적장애가 있다든지 의료이용 판단을 할 때부터 취약한 분들이 있을 텐데 그분들의 사례를 면밀히 (정부가) 들여다보지 않고 소수의 과다이용자 몇 명의 사례를 일반화해 수급자의 의료이용을 ‘비용 덩어리’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미충족의료(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 경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진료비가 많이 드는 비급여 진료는 받기 어렵고, 의료서비스 강도가 높은 2·3차 의료기관도 덜 이용한다. 건강 상태가 짧은 시간에 개선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1차 의료기관만 길게 자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다음 ‘왜 지금일까’라는 질문. 복지부는 제도의 합리적 운용을 위한 고민은 수년 전부터 지속해왔으며, 2023년에 나온 제3차 의료급여 기본계획(2024~2026년) 등에 정률제를 적용하는 계획을 담았다고 밝혔다. 정성식 연구원은 “(3차 의료급여 기본계획·보건복지 백서 등을 참고해 비교한 결과) 2007년 개혁 때와 비교해보면 당시 의료급여 대상자를 차상위층으로 넓히면서 2006년 연간 총진료비가 전년 대비 20% 이상 급증세를 보였다”며 “반면 2018~2022년 5년 동안 의료급여 총진료비는 연평균 7.3% 증가했고, 이는 건강보험 총진료비 증가세(연평균 7.2%)와 유사하다. 그렇다고 2007년 개혁 때처럼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는 과다 의료이용 사례로 ‘물리치료를 많이 받는 사례’를 제시했다. 정성식 연구원이 2021년 한국의료패널 데이터로 정률제 개편 시 수급자의 비용부담 변화를 분석했더니, 물리치료 외래 이용의 부담(수급자 1종·1차 의료기관 이용)은 2.6배 증가한 반면 비물리치료 외래 이용의 부담은 3.5배 증가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률제 개편을 추진하려는 정책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정성식 연구원의 의견이다. 지난 10월 7일 국회 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서미화 의원은 “2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의료급여 취약계층”이라며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느냐”고 질의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당사자 의견 수렴은 하지 않고)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논의를 했다고만 답했다. 김선민 의원은 “물론 수급자 중 1%의 경우엔 극단적인 사례가 있지만 관리 대상은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곤층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발상’이라는 두 의원의 질의에 조규홍 장관은 “본인부담비를 경감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의료급여 수급자 중에 본인부담 예외 대상(아동·임산부·산정특례자 등)이 있는데, 이 대상군을 넓힐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 개편은 법 개정 사안은 아니다. 복지부가 의료급여법 하위법령을 변경하면 추진할 수 있다. 복지부는 국정감사를 비롯해 시민사회,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올해 연말까지 정책을 보완한 후 내년부터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급자 당사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률제 개편안의 보완이 아닌 철회를 촉구한다. 이들도 불필요한 의료 남용을 줄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기관 관리와 같은 다른 정책을 선행해볼 수 있을 텐데, 왜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한 예산부터 줄이려는지”(전은경 팀장) 묻는다.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줄어드는 세수를 빈곤층의 의료접근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메우면 안 된다”(정성철 활동가)고 말한다. “수급자들의 미충족의료 경험을 고려하면 오히려 보장성 강화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정책”(정성식 연구원)이라고도 한다. 일관된 물음은 이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철학은 약자부터 두텁게 보호하는 ‘약자 복지’가 아니었습니까.”
- “장애복지 받으려면 비루해져…정부가 돌봄 부담 같이 져야”(2024. 05. 20 06:00)
- 2024. 05. 20 06:00 사회
- 발달장애인 부모, 정병은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 인터뷰 정병은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장애인 복지 체계와 돌봄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복지는 그게 누구든 사람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복지는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 방식이다.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증명을 해야 하고 비루해져야 한다.” 사회학자 정병은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인권과 장애, 선거를 연구해왔다. 2022년에는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50세 이상 부모들을 면접조사해 그들이 가진 돌봄 불안을 연구했다(‘성인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50+부모의 고령화와 노후준비’).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스물일곱 살 아들을 홀로 키워온 워킹맘이기도 하다.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장애인 복지의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피부로 체감했고, 이를 주제로 연구도 진행했다. 현실과 이론을 두루 섭렵한 드문 연구자인 셈이다.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정 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아무리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녀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고 해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도 늙고 병들 수밖에 없다. 부모가 돌볼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걸 기정사실로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부모들이 너무 힘들다’, ‘지원 인력이 있어야 한다’ 10년 넘게 이야기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어느 자리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살해 후 자살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 ‘장애인 가족과 비장애인 가족 간 동반자살율에 차이가 있는지’를 묻더라. ‘그런 통계는 한국사회에 없다’고 답했지만, 비장애인들은 이런 문제에 호기심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인 부모들은 공통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장애인 가족들은 눈총을 맞고 살아간다. 다수가 집 밖에 나가기 힘들어한다. 그렇게 되면 고립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에 계신 부모님이 많다.” 50세 이상의 장애인 부모들은 대다수가 불안과 우울, 번아웃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장애인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정 연구원의 자녀도 활동지원을 받고 있나. “월 90시간 지원을 받고 있다.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워서 한동안 이용을 못 했다. 대부분의 활동지원사는 중년 여성이다. 중년 여성들은 생계를 목적으로 일하는 분이 많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임금인데 월 90시간은 그분들에게도 너무 적다.” -활동지원사업의 문제는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다. 일단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의 심사 평가 기준이 달라야 하는데 기준이 하나뿐이다. 예컨대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발달장애인은 옷을 입을 수는 있지만, 특정 옷에 대한 집착으로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를 입고 나갈 수 있다. 두 번째로 활동지원사 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 현재 40시간 교육을 받는데 ‘장애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시간이 8시간이다. 장애유형만 15가지고 개개인의 상황은 다 다른데 8시간 만에 장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세 번째로 활동지원에 대한 평가와 인력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끝으로 활동지원사의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활동지원은 충분한가. “6년 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았다. 재활병원에 계시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어머니가 중증이라 노인 장기요양보험 1등급을 받았는데 장애인 복지와 노인 복지서비스가 차이가 크다는 걸 느꼈다. 요양보험 등급이 나오는 순간 의료용 침대 등 필요한 것들이 체계적으로 지원됐다. 매일 1시간씩 방문간호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지원인력이 바뀔 때도 보호자가 요청할 필요 없이 기관에서 대체인력을 바로 매칭해줬다. 장애인 복지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의 활동지원사가 3번 바뀌었는데, 매칭이 안 돼 내가 필요한 사람을 구해서 활동지원사로 등록을 시켰다.” -장애인 복지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비극이 일어나는 가정을 보면 생계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문제다. 장애인 정책은 복지는 보건복지부, 교육은 교육부, 취업은 노동부 등 분절적으로 운영된다. 장애 사실을 국가에 알리는 장애인등록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생애주기별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국가가 알려주진 않는다. 부모가 일일이 알아보고 신청해야 이용할 수 있는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찾아 먹는다’는 표현을 너무 싫어하지만 그렇게 하게 만든다. 부모의 정보력 여하에 따라 장애가 있는 자녀의 삶이 좌우된다.” -신청해도 충분히 지원받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큰 틀에서 신청주의에 선별주의다. 장애인 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것과 관련 있다. 활동지원사업만 해도 국민연금공단 관계자가 심사 평가를 까다롭게 한다. 의사소통이 되는 장애인에게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해서 걸러내기도 한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 안내 등을 하는데, 그것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부정수급 안내도 한다. 기본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야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심사 때 ‘못 해요, 우리 애는 못 해요’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 방식이다.” -가족의 돌봄 부담을 국가가 나눠질 방법은 없나. “미국은 일정한 나이까지 독립하지 못하는 최중증 장애인의 가족에게 독립비용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원한다. 국가가 할 일을 가족이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일정 연령이 넘어선 장애인은 사회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연구를 위해 만났던 50세 이상의 장애인 부모 대다수가 불안과 우울, 번아웃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심각한 경우는 암이나 공황장애도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한 번도 가지 않을 도로와 다리를 닦는데 내가 낸 세금도 쓰인다. 그것이 사회이고, 사회적 합의다. 효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 표지 이야기
- [우정 이야기]가스 안전·복지 정보도 배달합니다.(2024. 03. 13 06:00)
- 2024. 03. 13 06:00 경제
-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가운데), 박경국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왼쪽), 이호중 대한 LPG 협회장(오른쪽)이 5일 정부세종청사 우정사업본부 회의실에서 에너지 복지 취약계층의 가스안전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우정사업본부 제공 일주일에 여러 차례 내 집 앞을 오는 우체국 집배원이 가스 안전까지 챙겨준다면 어떨까. 앞으로 전국 도서지역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우정사업본부가 이런 사업을 시행한다. 우체국 집배원이 가스 안전을 점검해 사고를 예방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일 한국가스안전공사 및 대한 LPG 협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집배원이 도서지역 에너지 복지 취약계층 가스 안전 실태를 점검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사업은 육지와 단절돼 LP가스를 주 연료로 사용하는 도서지역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집배원은 복지 정보 등이 담긴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때 가스 사용 실태를 함께 살피고 고장 사실을 발견하면, 즉각 그 결과를 가스안전공사에 전달한다. 신고를 받은 가스안전공사는 이후 현장에 출동해 안전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한다. 2022년 시작한 우체국 복지등기 서비스는 집배원이 복지 정보를 담은 등기우편물을 복지 사각지대 가구에 배달하면서, 해당 가구의 생활 전반과 건강, 안전 등을 살피는 우체국 자체 공익사업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 등의 도서지역 8900여 세대를 대상으로 집배원이 가스 실태를 점검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가스 누출 등 총 5건의 위험사례를 발견해 긴급 조치가 이뤄졌다. 복지등기 우편요금에 들어가는 예산은 LPG 수입사(E1·SK가스)가 조성한 기금으로 충당한다.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은 “가스 안전 서비스를 통해 전국 도서지역에 거주하는 에너지 복지 취약계층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라며 “앞으로 정부 기관으로서 소명 의식을 갖고 공적 역할 강화를 위한 사업을 지속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3월 6일 연 최고 2.0%(세전 기준) 금리 혜택을 주는 ‘우체국 My 파킹통장’을 5만 계좌 한정으로 특별판매하기 시작했다. 파킹통장은 입출금이 자유롭고 매일 잔액의 1000만원까지 기본금리(연 1.6%)에 우대금리 연 0.4%포인트가 추가 적용된다. 1000만원 초과금액도 우대조건을 충족하면 저축예금 기본금리(연 0.15%)에 우대금리 0.4%포인트를 추가해 최고 연 0.55%를 이자로 받을 수 있다. 1인 1계좌만 가입할 수 있는 이 상품은 지난해 3월 첫 출시 당시 14일 만에 완판되며 큰 호응을 얻어 2차 판매까지 진행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번 3차 특별판매를 기념해 잇다뱅킹과 연계한 ‘파킹통장과 함께하는 봄맞이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내달 말까지 잇다뱅킹에서 파킹통장에 가입한 고객을 추첨해 커피 쿠폰(400명)과 우체국쇼핑 상품권(400명)을 제공한다. 또 파킹통장과 달달하이(high) 적금 또는 우체국펀드에 가입한 고객을 추첨해 케이크 쿠폰(100명), 아이스크림 쿠폰(150명), 커피 쿠폰(200명)을 제공한다. 파킹통장에 30일간 300만원 이상을 예치한 고객에게는 추첨을 통해 골드바 10g(5명), 다이슨 에어랩(10명), 우체국쇼핑 상품권(60명), 백화점 상품권(100명)을 제공한다.
- 우정이야기
- [우정이야기]편지 배달하며 실태조사 ‘찾아가는 복지’(2023. 10. 20 10:44)
- 2023. 10. 20 10:44 경제
-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오른쪽)과 윤종진 국가보훈부 차관이 지난 10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류보훈 복지우편서비스’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가 국가보훈부(보훈부)와 전국 보훈대상자에게 ‘일류보훈 복지우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지난 10월 17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일류보훈 복지우편서비스는 우체국 집배원이 보훈대상자를 수시로 찾아 실질적으로 필요한 복지 혜택을 확인해 보훈부에 회신하는 방식이다. 보훈부가 대상자를 선정해 제작한 우편물을 우본에 등기로 발송하면 집배원이 수취인에게 우편물을 배달하고 복지 실태를 조사한다. 수취인이 작성한 조사서는 집배원과 우본을 통해 보훈부로 보내져 복지 혜택 제공을 위한 자료로 사용된다. 보훈부는 2015년부터 보훈대상자의 생활과 복지 등을 조사하는 ‘국가보훈 대상자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시행 중이지만, 대상자의 약 1.7%인 1만여가구를 표본으로 한 ‘평균적’ 실태조사여서 개인별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본과 보훈부는 이번 업무협약으로 보훈대상자 개개인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올 연말까지 부산 중구와 사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 1000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부터 대상 지역과 가구를 확대하기로 했다. 조해근 우본 본부장은 “우편서비스를 활용한 국가보훈대상자에 대한 예우와 복지 강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면서 “향후 국민이 필요한 공적 역할을 확대하는 등 적극 행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종진 보훈부 차관은 “일류보훈 복지우편서비스는 국가유공자 고령화에 따른 건강과 생활 문제 등 필요한 보훈복지서비스를 현장에서 파악해 즉시 대처함으로써 고독사와 사회적 고립 등의 위기에 세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건강한 노후를 보내면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본과 보훈부는 지난 4월 6·25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복을 집배원이 참전유공자 5만1000여명에게 전달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우본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등기우편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가구에 복지사업 안내정보를 담은 등기우편을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방식이다. 집배원이 위기 의심가구의 안부 등을 확인해 지자체에 전달하고, 지자체는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지원한다. 복지등기우편서비스는 지난해 7월부터 부산 영도구, 전남 영광군 등 8개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했다. 우편물 6279통을 발송해 622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등록 신청, 긴급생계비 신청, 통신 요금 감면 등의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4월부터 서비스 대상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우본은 올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혜택도 제공 중이다. 자립준비청년 215명을 선정해 연말까지 매달 30만원의 식비를 지원하고, 카드 사용 실적을 모니터링해 위기 징후가 보이는 청년을 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해 관리하고 있다.
- 우정이야기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7)복지제도를 뛰어넘는 기부문화를 보고 싶다(2023. 06. 02 11:29)
- 2023. 06. 02 11:29 사회
- 일본인 작가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을 읽어본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우동가게 주인이 가난한 세 모자에게 베풀어주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의 이야기지요. 살을 에듯이 추운 어느 해 섣달그믐날 밤 허름한 옷차림의 부인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북해정’이란 우동집에 들어와 우동 1인분을 시킵니다. 세 모자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가게 주인이 우동 1인분을 더 담아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후 매년 섣달그믐날 밤이 되면 가난한 세 모자는 이곳을 찾았고, 주인은 1년 중 가장 바쁜 날임에도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따뜻하게 챙겨줍니다. 세 모자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별도의 식탁까지 마련해 두었답니다. 그러다 세 모자의 방문이 끊기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장성한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부축하고 다시 북해정을 찾아와 이제는 우동 3인분을 시킵니다. 그리고 북해정 주인의 따뜻한 인심과 격려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돼서 성공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논란이 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조금 신파조지만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잘살게 된 것에 비해 마음은 더 각박한 요즈음 우리가 꼭 다시 읽어보면 좋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지난 2020년 3월 11일 울산시 남구는 익명의 주민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직접 만든 면 마스크 120장을 수암동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사회적 약자 돕는 공동체 만들어야 유교에서는 인간 본성을 네 가지(四端)로 보고 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중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장 먼저 내세웁니다. 타인의 어려움에 함께 아파하고 배려하는 마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이런 측은지심 같은 고귀한 인간의 본성이 언제부턴가 물질과 경쟁에 가려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온갖 고난을 몸으로 겪어낸 조부모 세대의 헌신적 희생과 그 자녀들인 베이비붐 세대의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압축성장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이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잘살게 된 것만큼 마음도 풍요로워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장의 고속열차에서 이탈하고 뒤처져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터라 ‘한번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에서 배태된 물질적 욕망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본성을 흐리게 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진 각국은 질병, 사고, 실업, 노후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 약자를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이념 아래 ‘복지국가’로 진화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압축 성장한 경제 기반 위에서 어느 정도의 복지제도를 구축했습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힘든 사람들을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더욱 확대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이념과 정치 투쟁의 결과인 현대 국가의 복지제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싶습니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가려져 있던 우리 내면의 측은지심을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지나는 사람이나 힘든 동네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적선하던 우리 선조의 훌륭한 DNA를 끌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배려로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런 소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기대해 봅니다. 아쉽게도 우리 기부문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영국 자선지원재단(CFA)의 세계기부지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지수가 세계 119개국 중 88위라고 합니다. 하위권에 놓여 있습니다. 국세청과 미국 비영리단체인 기빙 USA(Giving USA) 등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최근 20년간 우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율은 0.6~0.8%로, 1.9~2.2%인 미국에 비해 많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기부지수인 ‘자원봉사’와 ‘낯선 사람에게 도움 제공’ 순위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물론 기부지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검토해 순위선정의 합리성에 이견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기부문화가 우리나라의 위상과 비교해 열악하므로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는 자세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직원들이 지난 5월 2일 사내 산책길에 설치된 나눔키오스크에 모바일 사원증을 태깅하며 기부에 참여하는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지도층의 자발적 기여 확산돼야 물론 지금처럼 경쟁이 심하고 물질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기부문화 활성화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과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우리 사회는 사려 깊은 지도층의 더 많은 자발적 기여를 요구합니다. 이들의 솔선수범이 불러올 반향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간단체와 기업의 자율적 참여 증가도 공동체 구성원의 공감과 배려를 활성화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릴 때부터 기부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교육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첨단기술을 잘 활용하는 아이디어 발굴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5월 가정의 달을 ‘나눔의 달’로 정하고 첨단기기를 활용한 나눔(기부) 캠페인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키오스크 화면에 회사가 후원하는 아동의 사연을 띄워주고 사원증을 갖다 대면 1000원씩 기부되도록 해 어려운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참신한 이벤트였습니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보았던 대형마트 계산대의 디지털식 기부 권유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사회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고 가족이 해체되며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미래사회에서 더 요구되는 덕목인 듯합니다. 개체화된 사회에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고 잠시 눈물짓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공감과 배려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일으켜 세워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잘 활성화된 기부문화는 이런 사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회자본입니다.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는 이런 사회자본이 많을 때 구현 가능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복지제도’라는 인공의 빛과 ‘활성화된 기부문화’라는 자연 햇살로 더 환하고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우리나라 세계기부지수 순위와 키오스크 기부 관련 기사를 읽고 꾸며본 단상입니다.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
- [우정이야기]복지 살피는 등기 배달 전국 확대(2023. 03. 31 11:22)
- 2023. 03. 31 11:22 경제
- 독거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노후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집배원들이 ‘등기우편물’ 배달에 나선다. 집배원들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담긴 등기우편을 각 어르신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어르신들의 주거상황을 직접 살펴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는 ‘복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우정사업본부 ‘복지등기우편서비스’ 포스터 /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지난해 7월 부산 영도구 등 8개 지자체에서 시범운영한 ‘복지등기우편서비스’를 4월 3일부터 전국으로 본격 확대·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등기우편은 지자체가 위기징후 가구나 독거가구 등을 선정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동봉된 등기우편물을 매달 1~2회씩 발송하는 서비스다. 집배원은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해당 가구의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체크리스트(위기가구 실태 파악 항목)를 작성해 지자체로 회신한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각 가정의 상황을 파악하고, 결과에 맞춰 공공·민간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등 지원을 결정한다. 우본은 “이번 사업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돼온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이나 신촌 모녀 사망사건 등 위기가정의 비극적 사고나 고독사 등 유사사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본은 부산 영도와 전남 영광, 서울 종로·용산·서대문, 강원 삼척, 충남 아산, 광주 북구 등 8개 지역에서 해당 사업을 시범운영했다. 당시 모두 6279통의 우편물을 발송해 622가구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장애인 등록 신청, 긴급생계비 신청, 통신요금 감면 등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았다. 공공서비스 지원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지원이 필요한 254가구는 민간 지원기관과 연계해 생필품 및 식료품 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실제 부산 영도구 주민 A씨는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됐다. 집배원 B씨가 평소 A씨에게 독촉장과 고지서 등이 자주 발송되는 것을 체크리스트에 적어 지자체에 전달하면서 지자체가 A씨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영도구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은 A씨가 받아온 실업급여가 종료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건강까지 악화돼 병원치료 중인 상황을 확인했다. 행정복지센터는 A씨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각종 신청절차의 진행을 도왔다. A씨는 “막대한 의료비 지출로 부담감이 큰 상황에 퇴사 후 실업급여까지 종료되면서 생계유지가 막막한 상황이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과 지자체 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우본은 또 시범에 종이로 작성했던 체크리스트의 불편함을 개선해 앞으로는 집배업무용 PDA에 직접 기입할 수 있도록 전자시스템화했다. 그동안 우편으로 회신했던 자료를 파일 형태로 곧바로 보낼 수 있게 돼 신속·정확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우편요금의 75%를 우체국공익재단 예산으로 지원하고, 생필품 지원도 추진하는 등 더 많은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 우정이야기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2)국세청 복지세정관리단 출범에 부쳐(2022. 12. 30 14:55)
- 2022. 12. 30 14:55 경제
- 40년 전의 일입니다. 엄혹했던 1980년대 초에 대학에 들어가 경제학 원론을 들으며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 경제학 대가들의 사상과 이론을 배웠습니다. 모두가 생소하고 경이로웠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창시자인 앨프레드 마셜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마셜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차가운 머리(Cool head)와 따뜻한 마음(Warm heart)’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함축된 4개의 단어에서 받았던 감동은 긴 세월이 지나서도 바래지 않고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셜이 언급한 지배 엘리트의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기득권층에게 유효한 권고입니다. 그가 의도한 세상이 사회권 강화와 복지제도 확대로 실현돼 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한 시민이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세금 납부 고지서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졸업하고도 한참 뒤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긴 고시공부로 열정은 식고 가슴도 메말랐습니다. 그런 저에게 새 출발의 문을 열어준 국세청에서 세원관리, 세무조사, 직원교육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모든 업무가 중요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근로장려금 지급업무가 기억에 남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열정을 다해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근로장려금과 코로나19 근로장려금은 간단히 말해 저소득층 가정에 얼마나 일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금전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면 그 금액에 비례해 지원금도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는 달리 생계를 도와주면서 노동도 장려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도 도입을 논의하던 2000년대 초에는 시기상조라는 염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행정상 집행이 어려울 수 있고,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사회보험제도를 충실히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지요. 이러한 염려를 극복하고 2006년에 도입됐습니다. 3년간 준비과정을 거쳐 2009년에 아시아 최초로 시행하게 됐습니다. 당시 운영 주체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각종 지급근거 자료의 접근성과 업무역량 등을 고려해 국세청이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이때부터 국세청이 세금징수 외에 복지업무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근로장려금 지급은 시행 초인 2009년 59만가구 4537억원을 시작으로 2021년 497만가구 5조700억원으로 규모가 계속 커졌습니다. 시행 13년간 2926만가구에 25조6000억원을 지급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근로장려금이 기초생활보장 대상도 아니고 사회보험 혜택도 적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사회안전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세행정포럼에서 김창기 국세청장이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소득지원국장으로 2020년 하반기에 부임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유능한 동료들과 업무를 집행하고 개선사항을 살펴보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회를 더 생산적이고 안정된 삶의 터전으로 만든다는 자부심도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던 때였습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지요. 특히 자영업에 대한 광범위한 영업 제한으로 소규모 자영업자와 종사자들은 생계까지 염려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는 적절한 보호를 제공할 수단이 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에 긴급하게 대응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금융·세제지원을 확대했습니다. 국세청도 당연히 정부합동대응팀에 참여했고, 제가 일하던 소득지원국도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복지제도 전반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제적 약자 지원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최선의 복지정책을 수립·집행해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선배 세대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사명감과 리더십을 발휘해 4대 보험인 건강보험(1977년 도입·1989년 확대), 산재보험(1964·2000), 국민연금(1988·1999), 고용보험(1995·2000)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2000)를 도입·확대하면서 사회의 기초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 이 외에도 기초(노령)연금(2008·2014), 노인장기요양보험(2008), 근로장려금(2009), 학자금대출(2010), 무상보육(2013) 등을 도입했습니다. 선배들의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이 조화를 이루면서 서구 선진국에서 150여년에 걸쳐 이룩한 복지제도를 50여년 만에 구축하게 된 것이지요. ‘소득 파악’이 중요한 이유 한편 전례 없는 재난 발생은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재난이 계속 생길 수 있어 이에 대해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발생으로 상시적 소득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확한 소득을 적시에 파악해야 그것을 지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타의 복지정책을 합리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정부에서도 이런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세청에 소득파악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세부 업무를 추진했습니다. 그해 연말까지 이와 관련해 진행된 모든 일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근로장려금 업무를 하면서 우리 복지제도의 전개를 살펴보고, 미래 복지정책의 초석을 세우는 과정도 생생히 보게 된 것이지요. 소득지원국에서 짧았지만 소중했던 시간을 보내고 2021년 초에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해 연말에 퇴직했습니다. 정든 국세청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최근 전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제가 몸담았던 소득지원국이 소득자료관리단(소득파악태스크포스가 2001년 정식조직화됨)을 흡수해 복지세정관리단으로 개편된다고 합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국세청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전국이 얼어붙었습니다. 추운 겨울은 계절의 순환에 의해 저절로 물러나지만, 우리 마음의 온기는 서로의 관심과 사랑으로만 피어오른다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새해에는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주요 정책을 결정할 힘을 가진 국세청 사람들의 더 많은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
- [김유찬의 실용재정](14)월세 거주자 주거복지가 우선이다(2022. 10. 21 11:08)
- 2022. 10. 21 11:08 경제
- 부동산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시장을 부양하기보다는 그간 급등한 가격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받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 가계부채가 줄고 소득과 부동산가격이 안정적인 관계를 찾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는 주택정책 영역에서 가지지 못한 이들의 주거복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구성원들, 즉 인적자원의 충실성에 달려 있다. 주거복지가 허술한 나라에서 충실한 인적자원 형성은 불가능하다. 주거복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다주택자와 1주택자로 구분해 생각하는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1주택자를 더 우대하는 것이 서민복지의 방향에 서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선 세입자들의 비중이 크다. 베를린의 경우 전체 거주자의 80%가 세입자다. 서울의 경우 세입자 가구가 절반에 가깝다. 서울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매물 소개 게시판 / 김정근 선임기자 주택정책,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나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거주자들의 대부분이 자가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주택정책의 초점은 1주택자 지원에 쏠려 있다. 서울에 자산하위 40%가 세입자이고 자산상위 10%가 다주택자이며 그 중간에 50%가 1주택자라면 정부의 정책은, 그리고 주거복지에 투입되는 재정지원의 규모는 하위 40%인 세입자들에게 3분의 2 정도가 집중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어떠한가. 다주택자에 비해 1주택자에게 제공하는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차별적 혜택 규모를 생각해보자. 이 차별적 혜택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는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 규모 이상으로 세입자들에게 재정지원을 주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서는 주거복지의 영역에서 역방향의 재분배 정책이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며 부양가족이 있는 월세 거주 가구주들에게 주거보조금을 확대해 지급해야 한다. 주거복지를 위해 세제와 임대차법 등의 규제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과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지방분권화가 잘 이뤄진 나라들처럼 질 좋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한 수준으로 공급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공공영역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또 민간 임대주택자에게도 주거의 공공성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민간임대주택사업자들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고려하면서 수익창출 욕구를 적절하게 억제하도록 여건 마련과 규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종합부동산세제가 그다지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 2가지를 들자면 하나는 임대사업자들에게 제공한 세제 특혜가 지나쳐 이 통로를 이용한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수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생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1주택자 보호가 지나쳐 강남의 똘똘한 1채로 투자가 집중되는 바람에 가격을 상승시키고 주변으로 확산하면서 전반적인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1주택자와 다주택자에 대한 차별적인 세율구조를 폐지하고 부동산 가액을 중심으로 단일한 세율구조로 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주택자를 1주택자와 동일하게 과세 취급하는 것에 대해 보는 측면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보유한 부동산 가액의 합을 기준으로 동일한 누진세율체계로 과세하는 것이 정책적 측면의 필요성을 떠나서도 공평할 것으로 판단된다. 5억원 가치의 부동산 4채를 가진 사람이 20억원 가치의 부동산 1채를 가진 사람보다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후자는 20억원 가치의 부동산이 제공하는 실물적 혜택을 임대소득세를 의식하지 않고 온전하게 향유하는 반면에 전자는 5억원짜리 한 채가 제공하는 실물 혜택만을 누리며 다른 3채로부터 발생한 임대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월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원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자료에서 “무주택 임차인의 실질적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공공 임대주택의 공급과 질적 혁신과 함께 민간 등록임대제도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민간임대사업, 규제와 지원 어떻게 다주택자들이 민간임대주택의 공급자라는 측면에서 임대시장 안정화 관점에서 적절한 수준의, 그러나 과하지 않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임대시장에서 민간임대주택사업자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이 주택임대차법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주거복지에서 중요하다. 일반 전월세는 계약갱신청구권 적용으로 1회만 5% 이내로 증액을 제약하나 등록임대주택은 10년 의무기간 내내 5% 이내로 증액이 제한받으며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문제는 갭투자인데 임대주택사업자들이 시장여건의 변화에 따라 갭투자자로서 양도차익을 목적으로 주택을 매집할 여지는 대출규제를 통해 차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는 전세보증금과 대출금액을 함께 고려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중심으로, 동시에 세입자에 대해서는 전세금 대출을 총부채상환비율(DTI) 중심으로 규제하는 경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갭투자의 가능성을 대출규제로 차단한다면 세제에서 이들에게 제공할 적절한 인센티브 수준을 잘 정의해야 한다. 양도소득세, 취득세, 임대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이 해당하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양도소득세가 가장 중요한데, 임대사업자들에게 양도차익 확보의 기회를 주면서까지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적 고려는 잘못 고안된 것이다. 양도차익을 노리는 민간임대사업자는 단기적으로 가격상승의 가능성이 보이면 기존의 주택을 구매하면서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신규 임대주택 공급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임대주택, 즉 사업용 자산의 경우 과세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법인의 경우도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한다면 마찬가지로 대우해야 한다. 일반법인의 주택보유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율은 높게 하더라도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하는 법인 및 개인사업자가 보유하는 임대부동산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대출규제가 잘 지켜진다면 갭투자로 부동산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대소득세는 현행 제도가 높은 수준의 필요경비율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인센티브는 필요없다고 판단된다. 취득세의 경우 사업자산의 취득이라고 보면 취득세 중과세율 적용을 제외하는 조치는 필요해보인다.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주거의 공공성을 위해 수용해야 하는 규제의 내용에 비춰 양도소득세 혜택이 없다면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이상의 혜택을 제공한다면 결국 정책이 이들을 투기꾼으로 유도하는 꼴이 된다.
- 김유찬의 실용재정
- [우정이야기]‘복지등기’ 배달하며 위기가구 지킨다(2022. 10. 21 11:07)
- 2022. 10. 21 11:07 경제
- 이 집에 사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해보인다. 집 앞에 우편물, 독촉장, 압류 등 우편물이 쌓여 있다. 집 주변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벌레가 보인다. 쓰레기 또는 술병도 많이 보인다. 부재중임에도 불이나 TV가 켜져 있다. 복지등기우편 체크리스트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체국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복지등기우편의 ‘체크리스트’다. 집배원이 직접 위기 의심가구의 안부 등을 체크해 지자체에 전달한다. 집배원이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회송 봉투에 담아 보내면 지자체는 내용을 검토한 뒤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위기가구 지원에 나서는 방식이다. 복지등기 사업은 이처럼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가구에 주기적으로 복지 정보를 담은 등기우편을 집배원이 배달하면서 이뤄진다. 지자체에서 위기 징후가 있는 가구에 매달 1~2회씩 등기 우편물을 발송한다. 집배원은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해당 가구의 주거환경과 생활실태 등을 파악한다. 복지등기 우편물에는 ‘복지 사업 안내문’이 담겨 있다. 우체국은 위기 대상 가구의 상당수가 실제 거주지와 등록 주소지가 다르다는 점에서 복지등기우편 아이디어를 냈다. 등록 주소지와 다른 곳에 머물고 있으면, 위기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확인이 어렵다. 복지 공무원 또한 한정돼 있어 현장방문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 읍·면·동 공무원 1명당 적게는 65명에서 많게는 260명의 위기가구를 담당한다. 반면 집배원은 집마다 자주 방문할 수 있다. 우체국의 장점이다. 우체국이 집배원을 통해 1차 위기도 조사 역할을 맡는다면, 우체국 공익재단은 등기 비용을 지원한다. 주요 대상가구는 단전·단수나 공과금 체납 등으로 위기상황이 의심되는 가구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기초생활수급 탈락·중지 가구, 긴급 복지 신청탈락자 또한 대상 가구에 포함된다. 우체국은 지난 7월 부산 영도구를 시작으로 복지등기 시범사업을 확대했다. 전남 영광군, 서울 종로구·용산구, 강원 삼척시, 충남 아산시도 복지등기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다. 종로구는 광화문우체국 소속 집배원 102명을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했고, 위기가구 발굴 교육도 실시했다. 이달부터는 서울 서대문구도 복지등기우편 시범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27일 서대문우체국 소속 집배원 85명을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한다. 집배원들은 위기가구 발굴 실무 교육을 받는다. 복지등기 사업은 지난 8월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제8차 디지털 국정과제 연속 현장 간담회’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복지등기 사업을 확대하면 집배원 충원 등 새로운 과제도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집배원을 복지등기 사업에 투입하면 이들의 업무량 또한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2018년 발표한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2017년)이다.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노동시간보다 693시간 더 많은 수치다.
- 우정이야기
-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참상(2022. 08. 26 15:26)
- 2022. 08. 26 15:26 사회
- ㆍ‘국가 범죄’ 인정까지 35년… 이젠 비극 멈출까 지난 8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피해자 박순이씨의 손을 최승우씨가 잡고 위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때는 형제복지원이나 나라를 원망하기보다 아버지랑 할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왜 내를 안 찾았나.” 최승우씨(53)는 1986년 10월 집으로 돌아왔다. 4년 만의 귀가였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최씨가 1982년 갑작스레 사라진 후 할머니는 실종신고를 했다. 어디서도 그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두 살 터울 남동생마저 종적이 묘연해지자 집에 비상이 걸렸다. 최씨의 원망과 달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수용생활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막연한 추측에 의지해 형제가 갇혀 있던 형제복지원을 찾았다. “내 자식 있는 거 안다. 안 내보내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난동을 피운 끝에 최씨 형제를 되찾았다고 했다. 사실이야 어떻든, 최씨에게는 누구라도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형제는 실종 전과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봤고, 폭력을 배웠다.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 최씨가 열일곱 살, 동생은 열다섯 살이었다. 귀가 첫날 바라본 부산 송정의 바닷가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해안선을 따라 철조망이 늘어서 있었고, 사이사이 무장한 군인들이 보였다. 최씨는 두려웠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선 자칫하면 또 잡혀간다’고 생각했다. 기껏 돌아온 집을 제 발로 다시 나갔다. 비극이 계속됐다. 한동안은 잘 곳이 없어 부산 동천강 인근에서 동생과 노숙을 했다. 여자친구를 만나 정착을 꿈꾸던 때도 있었다. 둘 사이의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최씨가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여자친구 집에서 알게 됐다. “부랑아 출신은 안 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아이는 입양 보내졌고, 여자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때 한국을 떠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밤이면 악몽이 찾아왔다. 중학교 1학년 최씨가 경찰관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에 인계된 날, 형제복지원 중대장에게 맞아 머리가 터지던 날, 하루가 멀다고 성폭행을 당하던 날, 이빨이 깨지고 생니가 뽑히던 날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으려 밤새워 마시다 보니 알코올 중독이 됐다. 툭하면 경찰과 싸워 교도소도 들락거렸다.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동생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말대로 그의 삶은 “온전치 않았다.” 최씨의 갈 곳 없는 원망을 오랫동안 짊어져야 했던 아버지는 지난해 숨을 거뒀다. 최씨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그간의 빗나간 원망을 사죄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었구나, 국가가 잘못했구나 하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가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근식 위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국가가 빠르게 대처했다면 그의 삶은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국가가 나서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지난 8월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를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 사실이 드러나 원생 3000여명이 퇴소조치된 지 35년, 1960년 형제복지원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부산에 최초로 설립된 지 62년 만이었다.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첫 번째 권고사항을 읽어내려가자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순이씨(51)는 얼굴을 감싸쥐고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잡혀간 박씨는 형제복지원에서 7년을 살았다. 또 다른 피해자 연생모씨(54)는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었다. 연씨는 중학생이던 1983년 낡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관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에서 4년을 보냈다.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연씨는 사람이 많은 곳이나 공간이 협소한 곳에 가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연씨는 몸을 떨면서 “제일 시급한 게 트라우마 치료입니다. 치료할 수 있도록 길 좀 열어주십시오. 몸이 마비가 오고 떨려서 미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은 군인 출신 박인근(2016년 사망)이 설립한 민간 사회복지법인이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일부 민간인들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국가가 묵인 또는 방조한 ‘국가범죄’라고 봤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창범씨의 어린시절 사진. 국민학생이던 박씨는 1984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가 2년 만에 한쪽 눈이 실명된 채 돌아왔다. 박씨 어머니 제공 학생과 아동들의 시설 수용에 공권력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상당수의 피해자가 경찰의 손에 붙들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 최승우씨도 1982년 봄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최씨의 가방을 뒤져 빵과 우유를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훔친 게 아니냐”며 절도범으로 몰아갔다. “학교에서 줬다”는 최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길로 최씨는 형제복지원에 보내졌다. 최씨는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해도 사법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형제복지원에 보냈다”고 했다. 불법 단속과 감금의 근거를 제공한 건 정부였다. 내무부는 1975년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라는 훈령(통칭 내무부 훈령 제410호)을 제정한다. 이 훈령에 따르면 시·군·구청과 경찰이 합동으로 구성한 부랑인 단속반은 부랑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어떤 형사 절차도 없이 무기한 강제수용할 수 있다. 법령도 아닌 훈령으로 시민의 신체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경찰 등에 부여했다. 더 큰 문제는 부산시가 손이 많이 가는 부랑인 단속 권한을 형제복지원에 넘기면서 발생했다. 부산시는 1975년 형제복지원과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해 형제복지원이 직접 부랑인을 단속할 수 있도록 했다. 원생이 많을수록 더 많은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형제복지원은 마구잡이로 학생과 아이들을 잡아갔다. 왜 피해자들은 돌아가지 못했나 코앞으로 다가온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은 부랑인 단속 강화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1981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국무총리실로부터 ‘걸인이 늘고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후 “88년 올림픽 개최 이전 서울 거리에 걸인이 없도록 하라. 걸인 중 정상적인 사람이 40%가 된다는데 대공적 용의점이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부랑인 몰이가 시작됐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향직씨(51)는 중학교 1학년 때인 1984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 그날은 가출했던 이씨가 마침 장을 보러 거리에 나온 아버지에게 붙들린 날이었다. 이씨 아버지는 번잡한 부전시장에서 이씨가 또 도망을 갈까봐 “이노마 순 꼴통이니까 감옥에 보내라”며 이씨를 파출소에 맡겼다. 화가 나서 한 얘기였지, 파출소에서 잠깐만 이씨를 봐달라는 얘기였다. 아버지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부탁을 받았던 경찰이 근무를 교대했고 파란색 운동복에 완장을 찬 형제복지원 사람들이 파출소에 들어왔다. “오늘 뭣 좀 있었요?”라는 그들의 말에 한 경찰관이 “저기 뭐가 있긴 한데” 하며 이씨를 가리켰다. “그 안에 가서는 알려진 대로 허구한 날 맞고 기합 당하고.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귀가 후에 물으니 아버지는 “(경찰들이) 아가 도망갔다는데 어데서 찾노”라고 했다. 진실화해위가 1985년 신병인수인계대장과 1986년 부랑인수용일보를 분석한 결과, 2년간 부랑인 단속·인계에 관여한 경찰·공무원은 최소 300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경찰은 2700여명이었다. 당시 부산시 경찰의 총 정원이 5808명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부산 경찰의 절반가량이 부랑인 단속에 관여한 셈이다. 전폭적인 국가의 지원 속에 형제복지원은 규모를 급속히 불렸다. 형제복지원을 거쳐간 입소자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명에 달한다. 이 기간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한 해는 1984년으로 수용자가 4355명에 달했다. 1987년 1월 촬영된 부산 형제복지원의 전경. 당시 수용자 폭행 치사 사건이 발생하며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왜 피해자들은 돌아가지 못했을까. 형제복지원이 완전히 사회와 차단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학생이던 이상명씨(49)는 1985년 여름 형제복지원에 인계됐다. 이씨는 “‘집에 보내달라’는 소리 자체가 ‘나 좀 때려달라’는 소리다. 집에 편지를 쓰게는 해준다. 그런데 편지가 집으로 안 갔다”고 했다. 군인 출신 박인근이 세운 형제복지원은 군대처럼 움직였다. 실질적인 관리자는 중대장이었다. 소대별로 소대장이 있었고, 그 아래 서무 1명, 조장 3~4명이 있었다. 1986년 기준으로 48개 소대에 각각 60~90명의 원생을 배치했다. 이씨는 “소대에서 누구 하나가 잘못하면 소대장이나 서무가 중대장한테 깨지고 온다. 그러면 조장들이 문제된 애를 부직포 같은 것으로 말아놓고 85명한테 때리라고 한다. 단체로 안 맞으려면 때릴 수밖에 없다. 나도 곡괭이 자루로 100대 가까이 맞아서 아직도 왼쪽 다리를 전다”고 했다. 수용자 최소 657명 사망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1975~1988년까지 형제복지원에서는 최소 657명의 수용자가 사망했다. 기존에 확인된 사망자 552명보다 100여명가량 많다. 맞아 죽는 사람도, 병에 걸려 죽는 사람도 많았다. 한 소대에 많게는 90명씩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전염병에 취약했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의 결핵사망률(0.014%)에 비해 29.2배 높았다. 피해자 설수영씨(54)는 1974년 여섯 살 때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설씨는 “피부병을 앓는 애들이 늘어나니까 피부병에 효력이 있다며 드럼통에 소금물을 받아놓고 차례대로 들어가 씻게 했다. 멀쩡한 애들도 다 옮았다”고 했다. 약물로 수용자들을 통제하려 한 흔적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이 1986년 1년간 클로르프로마진(일명 CPZ·조현병 증세 완화제)을 25만정 구입하는 등 향정신성의약품인 바리움, 달마돔 등을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약물은 형제복지원 내 정신요양원 수용자들뿐 아니라 이른바 ‘근신소대’ 원생들에게도 처방됐다. 형제복지원은 자신들의 통제에 반항하는 수용자들을 근신소대로 분류해 따로 관리했다. 실종 가족을 찾으려는 시도는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형제복지원이 수용자의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잘못 기재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 찾아와도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기재와 부실한 자료 관리는 현재도 피해회복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생년월일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용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국가손해배상 청구에 나서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한다.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향직씨는 “입소카드를 만든 것도, 관리한 것도, 분실한 것도 모두 대한민국이다. 왜 이제 와서 피해자들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실종자가 형제복지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왔을 때는 가족에게 거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 최모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왜 아버지를 돌려주지 않느냐’고 묻자 아버지를 데려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며 200만~300만원을 요구해 모시고 나오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형제복지원장 박인근이 1987년 1월 국고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고보조금 받고 노동력도 활용 형제복지원 측은 부랑인 수용을 이유로 국고보조금을 받는 한편, 수용자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며 재산을 불렸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을 동원해 산을 깎아 수용시설을 세우는가 하면, 돈을 받고 수용자들을 건설현장에 파견했다. 복지원 안에 낚싯바늘공장, 봉제공장 등을 들여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복지원 측은 임금을 모아 수용자들이 시설을 나갈 때 자립적금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받았다는 수용자는 많지 않다. 복지원 내 봉제공장에서 2년간 근무했던 이향직씨는 귀가 후 아버지와 함께 형제복지원을 찾아가 14만원을 받아냈다. 이씨는 “당시 사회에 나와 봉제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때 첫 월급이 딱 14만원이었다. 2년 동안 일한 대가를 한 달치 월급만큼 준 것”이라고 했다. 형제복지원이 문을 닫은 뒤에도 피해자들과 가족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박창범씨(50)는 초등학생이던 1984년 겨울방학 때 실종됐다가 1986년 겨울 피투성이가 돼 돌아왔다. 멀쩡했던 아이는 한쪽 눈이 실명됐고, 다리를 절었으며, 지적장애 증상을 보였다. 하루에도 여러 번 불안증상을 보였고, 밤에 불을 끄면 잠을 자지 못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나중에야 아들이 형제복지원에 있었음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10대였던 박씨가 50대가 될 때까지 30여년간 그를 돌봤다. 박씨 어머니는 “살아 나온 사람 중에 아들이 제일 심한 것 같다.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가는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을 알고도 묵인했다. 1982년 2월 피해자의 가족 A씨가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형제복지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도리어 A씨를 무고죄로 구속기소했다. A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87년에는 또 다른 피해자의 아버지 B씨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부산시 공무원들과 안기부가 회유해 고소를 취하했다. 문제가 불거지고도 단죄는 없었다. 검찰은 1987년 살인죄가 빠진 특수감금, 횡령 등 혐의로 박인근을 기소했지만, 대법원은 3차례에 걸친 상고심 끝에 횡령 혐의 등만 일부 인정해 박인근에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벌금도 없었다. 2018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박인근의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로 본 대법원 판단에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이를 기각했다. 피해자 이상명씨는 “원장이나 전두환이나 우리한테 사과 안 하고 죽어버렸다. 해결이 안 되니까 사람이 미치겠다”고 했다. 3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진실화해위의 조사는 미완이다. 정부가 권고대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놓을지부터 미지수다. 진실화해위 권고에는 강제력이 없다. 박인근 일가에 대한 재산 환수를 권고사항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막판까지 논의했지만, 이번 결정에서는 빠졌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진실규명이 전체 신청자 544명 중 191명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오는 12월까지 추가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받아 조사결과를 순차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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