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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R&D 예산 GDP 4%까지 확대…파괴적 혁신 위해”(2023. 11. 10 17:16)
- 2023. 11. 10 17:16 문화/과학
-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부 차관·에롤라 연구위원회장 인터뷰 핀란드는 전자·통신 등 첨단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09년 GDP의 3.73%에 달하던 R&D 지출은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19년 2.8%로 줄었다. 2013년 노키아의 몰락이라는 위기도 있었다. 부침을 겪고 다시금 혁신국가 대열에 오른 핀란드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R&D 지출을 늘리고 있다. 2021년 12월 R&D 지출 비중을 2030년까지 GDP의 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후 예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국가 R&D 예산을 2023년 24억유로(약 3조3600억원)에서 2030년 43억유로 늘리는 연구개발 자금에 관한 법안은 올해 초 발효됐다. 지난 10월 31일 핀란드가 연구개발 지출을 늘리기로 한 배경을 방한한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과 파올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회장을 만나 들었다. 레이코이넨 차관은 핀란드대학 개혁 과제를 추진 중이며, 동시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유럽의 고등교육·연구 분야 업무를 맡아왔다. 에롤라 회장은 헬싱키대학의 입자물리학 교수이자 핀란드 고등과학 분야 연구비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인 연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핀란드 교육·과학 분야에서 최근 성과는. 레이코이넨 “핀란드는 초등부터 고등 교육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 위치에 있다. 핀란드 교육 정책은 기본적으로 동등과 공평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아동교육에서부터 초등·중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중등 교육과정을 마치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직업 교육을 택하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든 스스로 진로를 결정한다.” 에롤라 “과학의 경우 거의 모든 연구 분야에서 전 세계 평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무선통신, 컴퓨터 사이언스 같은 핵심 기술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 혹은 최고 수준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다.” -R&D 예산을 증액하려는 이유는. 레이코이넨 “내년부터 연구개발과 혁신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리기로 했다.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로 현재 의회에 예산 관련 실무 그룹이 있다. 9개 정당이 소속돼 있는데 모두 핀란드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핀란드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서 느리게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정책을 의회에서 만들 때 2030년까지 최소한 GDP의 4%를 할당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의대 쏠림 현상이 핀란드에서도 있는지. 레이코이넨 “의약 분야 같은 경우 임금이 높고 안정적이라 여학생들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균형 있게 참여하길 원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위기라고 보지도 않는다. 여학생이 이 분야를 선호하는 건 일종의 현상이다. 그대로 두지는 않고 기술과 과학 분야에 더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갖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에롤라 “우리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의 영문 첫 글자의 조합)의 중간에 A(예술·ART)를 넣어서 스팀(STEAM)이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의 발전에는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기초과학·이공계 쪽에 오도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여학생들만의 STEAM 관련 모임을 만들도록 돕는 식으로 독려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파울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의장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R&D 투자를 위한 법안도 마련했다. 레이코이넨 “GDP의 4% 중 3분의 1은 공적 세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민간기업에서 제공한다. 산업계와 의회가 동의하는 부분은 기초연구 분야와 혁신연구 분야의 균형을 잘 맞춰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기초연구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다. 둘 사이 균형에서 고등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기초연구나 혁신을 이끄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에롤라 “국가 R&D 계획의 핵심은 기초연구를 통해 파괴적인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파괴적인 혁신이 있어야 민간 분야에서 생산성을 계속 개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인재를 만드는 게 과학의 역할이다. 특히 단순히 핀란드 인재만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도 핀란드 안으로 끌어들여 이들이 과학 발전과 혁신에 기여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R&D 예산을 배정하나. 에롤라 “연구회는 매년 약 5억유로 예산을 경쟁 지원 제도를 통해 지원한다. 지원자의 15% 정도가 선정을 받는데 전체적으로 80%가 고등교육기관에 속한 연구기관이나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20%는 대학을 비롯한 다른 연구기관에 가는 데 응용 분야가 지원을 받기도 한다. 지원자가 핀란드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소나 대학은 핀란드 안에 있어야 한다. 실제 작년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원한 금액의 50% 정도가 핀란드 국적이 아닌 하지만 핀란드대학이나 기관에 속한 연구자들에게 지급됐다.” 레이코이넨 “교육 연구지표를 활용해 각각의 대학에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지 결정하고, 연구자 개인이 아닌 해당 대학에 블록 형태로 지원한다. 연구위원회가 주는 5억유로의 경우 교육부의 관할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정말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에 한해 지원한다.” -연구개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에롤라 “현재의 국제적 흐름은 ‘책임 있는 연구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이라는 평가방법이다. 관련한 국제 연합체도 있다.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중점에 두고 평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우리도 이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평가할 때 중점에 두는 것은 수치나 정량적인 평가가 아니다. 연구한 내용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정량적인 지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핀란드에서 연구성과를 평가할 때 평가지표로 논문 게재 수를 쓰는 것은 금지됐다. 연구제안서를 쓸 때 연구자의 이력서에 논문을 몇 건 썼다가 아니라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상세하게 적는 방식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연구자의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에롤라 “교육부는 교육지표와 연구지표를 바탕으로 해서 블록으로 금액을 할당한다. 대학이 원한다면 하나의 분야나 혹은 10개 분야에 얼마든지 재량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금액을 할당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연구 분야는 균형 잡힌 연구가 이뤄지도록 최소한의 쿼터를 두고 있긴 하지만, 연구자의 재량권이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10년 후 어떤 분야가 더 유망할지 현재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자율성은 더 중요하게 보장해야 한다.”
- 표지 이야기R&D예산
- 핀란드 교통통신부 장관 “디지털 강자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2023. 02. 03 11:25)
- 2023. 02. 03 11:25 경제
- ㆍ티모 하라카 장관 인터뷰 세계행지수 1위 국가, 2021~2022년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이행 1위 국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 1위(2021년 평화기금 취약국가지수)인 나라. 1위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나라, 핀란드가 이룬 성취다. 핀란드는 올해에도 한국이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을 하나 추가했다.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 스코어카드’에서 미국과 함께 공동 1위로 ‘혁신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티모 하라카 핀란드 교통통신부 장관이 지난 1월 31일 주간경향과 만나 핀란드가 혁신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한국은 여기서 26위를 기록했다. CTA의 평가항목 중 다양성과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핀란드는 B와 A를 얻은 반면, 한국은 D와 F를 받았다. 다양성은 인종적 다양성, 전체 인구에서의 이주민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등을 평가한다. 미세먼지 등 열악한 대기환경도 한국의 점수를 떨어뜨렸다. 조세시스템의 경쟁력을 평가한 항목에서만 핀란드와 한국이 모두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C)를 받았다. 핀란드의 인구는 550만명으로 한국의 10분 1 정도지만, 전자·통신 등 첨단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가 탄생한 나라로도 유명하다. 2013년 노키아가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오히려 세계적인 혁신국가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는 2019년 4차 산업 공동대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티모 하라카 교통통신부 장관을 만나 핀란드가 세계적인 혁신국가가 된 비결과 한국과의 협력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월 29일 ‘팀 핀란드’(핀란드 무역대표단)를 이끌고 방한한 그는 이날 헬싱키로 돌아갔다. 2박3일 동안 3개 부처 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고, 여러 기업·연구기관을 방문하며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호텔을 나서는 그의 손엔 K팝 스타 ‘뉴진스’의 앨범이 들려 있었다. K팝의 인기가 굉장하다면서, 딸에게 줄 선물로 샀다고 했다. 다음은 하라카 장관과의 일문일답. -방한 성과를 평가한다면. “정부 대표만이 아니라 핀란드의 연구기관과 기업까지 포함한 팀 핀란드와 함께 방한했다. 5G 및 6G, 양자 기술, 그리고 우주·위성 분야 이렇게 세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단이 방문했다.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연구기관을 방문해 협력 분야를 논의했고, 난 한국의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과기정통부와 장관급 회담을 했다. 방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CTA는 핀란드를 혁신국가 1위로 꼽았다. 한국에 비해 다양성과 사이버 보안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요소가 중요한 이유는. “다양성과 혁신은 상호 연관이 돼 있다. 조직 내의 다양성이 풍부하면 혁신이 배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 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실제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는 굉장히 역동적이다. ‘슬러시(SLUSH)’라고 불리는 스타트업 관련 세계 최대 행사가 헬싱키에서 열리기도 한다. 사이버 보안도 혁신과 관련이 있다. 핀란드는 심지어 사이버 보안이 이슈로 거론되지 않던 1990년대부터 네트워크 보안에 크게 집중했다. 한국처럼 핀란드도 기술이 굉장히 발전된 나라인 데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일부 특정국(러시아)으로 인한 위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파트너다. 양국 간의 무역량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통적으로도 양국 간의 학생, 전문가 교류가 굉장히 활발하다. 올해는 특히 양국 수교 50주년이라 이를 축하하고자 한국을 방문했다. 기술 선진국으로서 양국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 방안을 찾고 싶었다.” -한국 정부와는 어떤 논의가 오갔나. “일단 몇 개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과는 5G·6G와 같은 디지털 기술과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그리고 사이버 보안과 양자컴퓨팅, 우주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모두 양국이 강점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야다. 한국의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에어택시’라고 부르는 미래 모빌리티를 흥미롭게 느꼈다. 미래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에서 6G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리라 보고 협력하자고 했다.” -핀란드에서 6G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에선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온다. “오울루대학은 세계 최초의 6G 연구 프로그램인 6G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1000개의 기업·연구기관이 동참하고 있다. 노키아는 전자·통신업체, 소프트웨어 기업을 망라한 ‘헥사X’라는 유럽연합 차원의 6G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미래를 논의하는데 시기상조라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6G는 연구개발 단계다. 미래를 대비해 한국과 핀란드 그리고 마음을 같이하는 여러 민주국가가 국제포럼에 참여해 6G 표준을 정립하는 데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그리고 2027년에 열리는 ‘세계전파통신회의’가 굉장히 중요한 논의의 장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과 핀란드 모두 모바일 통신 기술의 강자다. 한국은 5G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했다. 핀란드는 두 번째 국가였다. 또한 핀란드는 세계 최초의 6G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한 나라다. 두 나라 모두 차세대 통신망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나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양국의 전략적인 협력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티모 하라카 핀란드 교통통신부 장관이 지난 1월 31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만나 양자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 국토교통부 제공 -인구가 많지 않은데도 양자 기술이나 뉴스페이스 같은 첨단분야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비결은. “인재 확보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2019년 6월 장관 임명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과 핀란드 사이의 인재 교류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이었다. 하지만 인재 확보는 곧 기업 확보임을 이내 깨달았다. 우주·위성 분야 그리고 양자컴퓨터와 관련해서 외국 회사들이 핀란드로 거점을 이전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언어와 기후가 조금 달라도 핀란드의 역동적인 생태계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았다. 이렇게 핀란드 내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키운 결과, 우수한 인재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 이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만든 양자 분야 회사인 ‘컨트롤옥스(QuantrolOx)’도 핀란드의 양자 커뮤니티, 양자 기업들과 더 가까이 있기 위해서 회사를 핀란드로 이전했다.” -한국 정부가 특히 관심을 보인 양자 기술 분야가 있는지 궁금하다. “양자 전문가가 아니라 자세한 답변은 어렵지만, 양자 컴퓨터 개발 경쟁에 뛰어든 나라는 굉장히 많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양자 컴퓨터라는 매우 효과적인 컴퓨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이를 통해 다른 나라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다. 대표단에 함께하는 IQM이 개발하는 양자컴퓨터를 원하는 수요도 굉장히 많다. 한국도 그 수요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핀란드가 혁신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라면. “핀란드에서는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의 협력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팀 핀란드가 한 예다. 민간과 공공의 이런 끈끈한 유대 협력이 성공 비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정부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일하는 문화다. 일례로 디지털과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핀란드 내에서 3개의 부처(교통통신부·고용경제부·재무부)가 함께 담당한다. 세 부처가 모든 의사결정을 공동으로 하고, 수평적으로 일하는 것이 또 다른 중요한 비결이다.” -교통통신부 장관으로 3년 반 정도 일했다. 성과를 평가한다면.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겪으면서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세 가지 전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일단 향후 12년을 내다보는 국가 차원의 교통 계획을 수립했다. 의회가 한마음으로 협력했다. 그래서 정부가 바뀌어도 시민과 기업 모두 2032년까지 이 국가교통계획이 연속성 있게 추진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성과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장기 전략 마련이다. 교통과 정보통신(IT) 분야가 기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2030년까지 교통 부문 탄소 배출량을 절반가량으로 줄이는 장기 전략을 내놓았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야심 찬 기후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장기 전략이다. 세 번째 성과는 디지털 컴패스(Digital Compass) 전략이다. 디지털 컴패스 전략은 2030년까지 유럽의 디지털 전환을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이다. 디지털 기술로 숙련된 인재, 안전하고 성능이 뛰어나며 지속가능한 디지털 인프라, 비즈니스의 디지털 전환,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를 포괄한다. 핀란드가 이런 전략을 내놓은 첫 번째 국가라는 사실에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핀란드는 항상 무엇을 하더라도 선두주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6G·양자·우주(첩보위성을 포함) 기술을 콕 집어서 찾아온 이유는. “핀란드가 세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기술이 굉장히 진보한 나라에서도 이런 부문에선 핀란드의 역할이 있다고 봤다. 정부는 군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공급망의 차원에서도 보안에 굉장히 집중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전직 프로그램이 발달했다고 들었다. “인력을 재교육하는 방법으로 ‘리스킬링’(Reskilling·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과 ‘업스킬링’(Upskilling·현재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있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부분에서 철수하면서 기존 인력이 새로운 분야로 많이 창업에 나섰다. 이는 비즈니스 전체를 리스킬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리스킬링과 업스킬링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성적인 다양성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낮다. 이를 높이려고 한다.”
- 핀란드 IQM 창업자 “양자컴퓨터 기술, 한국엔 새로운 기회”(2023. 02. 03 11:25)
- 2023. 02. 03 11:25 경제
- ㆍ쿠앤 엔 탄 인터뷰 핀란드의 양자컴퓨터 개발 기업 IQM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쿠앤 엔 탄이 1월 3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양자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기둥으로 불린다. 양자물리는 분자와 원자, 전자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에서 적용되는 물리 법칙이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하는 ‘중첩’과 서로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는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동시에 다른 입자의 상태도 결정된다는 ‘얽힘’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의 많은 부분이 이런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도체와 레이저, 양자점 디스플레이, GPS 위성에서 쓰는 원자시계 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이후 양자컴퓨터의 개념이 등장하고, 21세기 들어 구글과 IBM 등 거대기업이 초기 단계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면서 지금은 새로운 양자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의 특성을 연산에 활용한다. 여러 변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서 신약 개발, 신소재 개발을 위한 시뮬레이션 등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암호화 알고리즘(RSA)을 풀려면 기존 컴퓨터로 수만~수억년 이상의 천문학적 시간이 걸리지만 양자컴퓨터로는 수초 만에 풀 수 있어 군사, 금융 보안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각국이 양자컴퓨터를 전략기술로 육성하는 이유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회사로 핀란드의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 회사 IQM을 들 수 있다. 핀란드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헬싱키 인근 에스포에 본사를 둔 IQM은 지난해 7월 월드펀드(World Fund) 등에서 1억2800만유로(약 172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누적 투자 규모로 유럽 내 양자컴퓨터 분야 회사 중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다. 월드펀드는 유럽 최대규모의 기후펀드로 연간 최소 100메가톤(Mt)의 온실가스 절감 효과가 있는 기후기술에만 투자한다. 핀란드 무역대표단의 일원으로 지난 1월 29~31일 방한한 IQM의 공동창업자인 쿠앤 엔 탄(Kuan Yen Tan)은 3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양자컴퓨터가 기후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회사와 양자 프로세서 제조, 현대기아차 등과는 배터리 최적화를 위한 협업을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업의 계기는. “회사의 공동설립자는 4명으로 미코 모토넨(Mikko Mottonen)이라는 사람이 주도했다. 알토대학교와 핀란드 국책 연구기관인 VTT 기술연구소의 공동 교수이기도 하다.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기업에 판매하는 회사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게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거절할 수 없는 완벽한 제안이었다. 당시 대학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매우 느리다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연구를 하는 것과 그 결과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정말로 큰 차이가 있다. 기술력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원도 필요하다. 그때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거대한 구조 때문에 일이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인적·물적 자원과 속도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었다. 모토넨 교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게 우리가 이 일을 함께 시작하게 된 이유다. 2018년 4월에 설립했는데 종잣돈 단계의 투자금을 받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렸다.” -반도체 기술이 양자컴퓨터 칩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나. “양자컴퓨터를 구동하는 건 양자 칩이다. 양자 칩 제조 자체만 보면 필요한 과정의 80%는 삼성의 파운드리에서도 볼 수 있는 기술이다. 물론 초전도 양자컴퓨터와 같은 양자 칩을 만들 때 필요한 소재는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반도체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아니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기계는 양자 칩 제조에 사용하는 기계와 매우 유사하다. 삼성전자가 양자컴퓨팅에 집중한다면 출발점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IQM의 양자컴퓨터를 어디에 쓸 수 있는가. “우리 회사는 이미 ‘온프레미스’(클라우드 서비스가 아닌 현장에 물리적으로 설치해 고객의 접근성을 완전히 보장하는 방식) 제품인 5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컴퓨터는 실제 고객의 연구개발(R&D) 목적으로 사용된다. 우린 핀란드의 CSE라는 슈퍼컴퓨팅 제공업체와 함께 양자컴퓨터를 ‘루미 슈퍼컴퓨터’ 센터에 연결했다. 루미 슈퍼컴퓨터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세계 3위)다.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통합하는 연구가 중요하다. 양자컴퓨터는 오늘날의 고전 컴퓨터를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지금의 그래픽 카드가 클래식 컴퓨터에서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가속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의 통합이 필요한데 현재는 아직 구현된 사례가 없다.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IQM은 이미 회사 내부에서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시험 중이다. 올해 이 컴퓨터를 VTT와 독일의 슈퍼컴퓨팅 센터인 LRZ에 제공할 계획이다. 특정 문제 해결에 특화된 양자 ASIC(특정 용도용 집적회로)와 칩도 공동설계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의 고유한 특징인 중첩과 얽힘을 사용해 다수의 패턴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3개의 큐비트(양자비트)를 탑재한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2의 53승, 즉 약 1경까지의 패턴을 중첩하고 그 상태를 변화시켜 계산할 수 있다. 현대의 컴퓨터는 중첩상태를 나타내는 1경개의 진폭과 위상을 모두 기록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나하나 계산해야 한다. 최첨단 슈퍼컴퓨터로도 어려운 작업이다. 현재 50큐비트 정도의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 우위’를 누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다케다 ??타로·2021.11) 참고). 큐비트는 서로 다른 두 상태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양자계(분자·원자·전자 등)로도 만들 수 있다. 빛과 자기장으로 이온 혹은 원자를 포획하는 이온 덫(트랩),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든 초전도 회로에 극초단파를 가해 전류를 중첩상태로 만드는 초전도 루프와 실리콘 조각에 전자를 넣어 극초단파로 전자의 양자 상태를 제어하는 실리콘 양자점 등이 이용된다. -VTT와 54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2024년 54큐비트 양자컴퓨터를 VTT에 인도할 예정이다. 54큐비트는 칩 자체에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큐비트가 54개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컴퓨터가 트랜지스터 개수가 많을수록 더 강력하듯 양자컴퓨터도 큐비트가 많을수록 (확장성 면에서) 좋다. 하지만 품질(계산의 정확성)도 매우 중요하다. 큐비트가 많아도 품질이 낮으면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54큐비트라면 양자우위가 가능한가. “슈퍼컴퓨팅 성능이 개선되고 있지만 54큐비트는 여전히 양자 우월성을 달성하는 데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턱이 아니다. 사람들이 (고전 슈퍼컴퓨터의) ‘느림’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54큐비트가 양자우월성을 달성하는 문턱인데, 56개의 큐비트를 갖고 있다고 치자. 고전 컴퓨터가 이 양자 우월성을 따라잡으려면 4배의 성능 향상이 필요하다.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맥킨지는 양자컴퓨팅을 사용해 개발된 기후 기술이 2035년까지 연간 7기가톤(G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자컴퓨터가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나. “직접적으로는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탄소포집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와 탄소의 상호 작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기 필터를 통해 공기에서 직접 탄소를 포집하는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다. 태양 전지판과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거나 전력망 최적화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도 있다. 더 적은 에너지로도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만큼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는 40메가와트(미국 내 3만 가구의 전력 수요)의 전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같은 양의 계산을 할 때 최대 1000배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양자컴퓨터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간접적인 방법의 하나다.” -노트북 같은 양자컴퓨터도 나올까. “상온에서 작동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터의 크기가 큰 건 극저온 상태(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영하 269℃)를 유지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실제로는 냉동고와 같다. 양자 칩 자체는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칩보다 더 작다.” -구글과 IBM 같은 선두주자와 IQM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구글과 IBM은 잠재적으로 수백만 큐비트를 갖춘, 그러면서도 소위 말하는 양자 오류를 수정한 미래의 양자컴퓨터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의 양자컴퓨터는 오류가 많다. 오류 없이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 장점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양자컴퓨터, 그리고 향후 2~5년 안에 나올 양자컴퓨터로 이미 할 수 있는 일부 응용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이즈(오류)에 강한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일부 알고리즘은 노이즈에 취약하지만, 정보가 손실되기 전에 이러한 알고리즘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양자 오류를 수정하는 일 없이도 이미 유용한 양자 계산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주목한 점은. “회사 내에 매우 강력한 팀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뿐만 아니라 실제로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엔지니어 기술과 생산시설 확장을 시도 중이다. 동시에 우리 시스템 개선에 필요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학계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알다시피 양자 엔지니어들은 정말 드물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양자 엔지니어 확보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작은 회사나 지역에서 거대한 팀을 갖추는 건 정말로 큰 노력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이 우리에게 주목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들은 우리가 매우 설득력 있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판매할지 알고 있고, 데이터센터 등 잠재적 시장을 개척하고 있어서다.” -한국 방문에서 기대하는 바는. “한국이 양자 기술을 매우 전략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양자 기술이 새로운 기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한국의 연구기관들은 이미 모든 기반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이 기술을 통합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규모를 키우고 성능을 높여 사람들이 실제 접근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IQM은 양자컴퓨터 시스템 통합과 확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과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양국이 양자 기술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싶다. 기업 측면에서 우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산업에서 많은 잠재력을 보고 있다. 파운드리 기술을 활용하면 양자컴퓨팅 칩 생산에 나설 수 있다. 현대·기아차 같은 자동차회사도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이 회사 내부에 배터리 최적화를 목적으로 하는 양자컴퓨팅 팀이 있다고 들었다. 배터리의 무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에너지 저장 용량을 키운다면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추격 전략은. “한국은 양자컴퓨팅의 기초 연구에서 엄청난 R&D 역량을 갖고 있다. 파운드리, 극저온 기술뿐만 아니라 초전도 큐비트, 이온 트랩, 실리콘 스핀 큐비트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 가속화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집중과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험실에서 뭔가를 구축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제품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양자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학계·산업계·정부 세 영역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 [IT 칼럼]핀란드 모범사례 공공서비스 AI(2021. 01. 08 15:42)
- 2021. 01. 08 15:42 경제
-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설한 웹사이트 ‘AI 레지스터’에 대한 찬사가 여전하다. AI 기술이 적용된 공공서비스를 모아둔 이 가상공간에는 ‘인간중심 AI’가 나아가야 할 원칙과 윤리가 세세하게 명시돼 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의 서적 추천 챗봇 ‘오보티(Obotti)’를 예로 들어보자. 오보티는 오디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맥락 분석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AI 솔루션이다. 개별 시민의 관심사와 피드백 데이터에 기반을 둬 그간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서적들도 제안한다. 텍스트형 챗봇 서비스뿐 아니라 음성인식 기반 추천도 앱을 통해 제공한다. pixabay 헬싱키는 이 챗봇의 알고리즘 작동 원리와 데이터세트, 데이터 처리 방식, 비차별 정책, 인간에 의한 감독, 위험요소 등을 AI 레지스터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오보티뿐 아니라 보건소 챗봇, 주차 챗봇, 육아클리닉 챗봇, 지능형 자료관리시스템 등 모두 5종의 공공서비스 AI도 동일한 수준에서 시민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AI의 신뢰를 보증하는 알고리즘 개방성과 투명성을 공공 부문이 선도한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올해는 더 많은 공공서비스 AI를 이 사이트에 등록할 예정이다. 참여하는 도시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의 데이터를 학습하며 진화하는 모델이기에 당연한 조치인 듯 보이지만, 이러한 정책이 모든 국가, 그리고 대도시에서 보편적으로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헬싱키 AI 레지스터의 실험이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저변에 깔린 그 철학에 있다. ‘시민과의 공동 설계, 공동 소유를 통한 AI 신뢰 구축’이 그것이다. 흔히들 기술을 민주주의와 병립될 수 없는 인공적 대상물로 여긴다. 속도가 우선인 기술 경쟁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발 프로세스는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근거에서다. 물론 타당하나 공공 분야의 기술개발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시민의 민감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공공 섹터는 개발 과정을 보다 민주적으로 접근할 이유가 있다. 이를 위한 비교적 쉬운 접근이 규제를 통한 민주적 통제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감시와 규제만이 정부의 역할은 아니다. AI 기술개발의 모범사례를 스스로 창출할 책무도 있다. 모범 없는 선언, 솔선 없는 강제는 자칫 폭력적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헬싱키 AI 레지스터는 그 모순을 넘어서기 위한 공공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12월 과기정통부는 ‘국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공식 발표했다. 인간성을 위한 인공지능을 핵심가치로 삼아 3대 원칙과 10대 요건을 담아냈다. 정부, 공공기관의 AI도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경찰의 얼굴인식 감시기술과 같은 일부 공공서비스는 여전히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공공기관 챗봇 가운데 데이터 소스와 프로세싱을 설명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만큼은 정부가 AI의 모범사례를 직접 만들어내고 윤리기준을 준수하며, 민간 영역의 사업자들을 견인하는 성과를 얻어내길 바라본다. K-AI 레지스터를 기대하는 게 과욕은 아닐 것이다.
- IT칼럼
- [특집]핀란드의 ‘열린 대화’ 프로그램이 가장 모범적(2018. 07. 30 15:03)
- 2018. 07. 30 15:03 사회
- ㆍ의사·가족·이웃 모두 모여 치료와 함께 사회 안착을 목표로 협의 캐나다, 영국, 프랑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매년 7월 14일을 전후해 ‘매드프라이드’(Mad Pride)’가 열린다. 이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로 ‘미친 자존심’ ‘미친 자부심’ 정도로 변역할 수 있다. 첫 번째 매드프라이드는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다. 2017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매드프라이드에서 참가자들이 ‘침대 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Superbass (via Wikimedia Commons) 매드프라이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의미의 전복을 위함이다. 행사에서는 ‘proud to be crazy(미친 것이 자랑스럽다)’, ‘Don’t mess with my brain(내 뇌를 건드리지 마라)’ 등이 쓰인 손팻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퀴어(Queer·괴상한)’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확산시킨 것과 비슷하다. 매드프라이드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 특히 ‘침대 밀기(bed push)’ 퍼포먼스가 주목할 만하다. 참가자들은 화려하게 꾸민 병원 침대를 밀면서 거리를 행진한다. 시설과 병원을 나와 지역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정신장애인을 격리와 감금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que·열린 대화)’는 상당히 진보된 프로그램이다. 이는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동시에 지역사회 안착을 목적으로 한다. 핀란드는 1980년대부터 정신병원 입원 병상을 축소하고 외래서비스를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오픈 다이얼로그로 인해 핀란드에서는 정신장애인에게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하루 만에 회의가 열린다. 첫 회의에는 당사자와 가족, 직장동료, 친구, 이웃 등 모두가 ‘초대’된다. 그리고 정신의학, 간호,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참석해 위기상황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이때 정신과 약물 사용은 최소화하고 모든 과정은 당사자와 가족에게 공개된다.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을까. 핀란드에서는 오픈 다이얼로그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추적연구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서비스를 받은 정신장애인의 약물 사용, 재입원율, 재발률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지역사회 안착을 의미하는 고용률과 학업 복귀는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단번에 핀란드가 될 수는 없다. 일본의 ‘우라가와 베델의 집’은 핀란드 모델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베델의 집은 1987년 무카이야치가 정신병원을 나와 갈 곳이 없는 정신장애인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 기준으로 작업장 2개, 공동주거 12곳, 그룹홈 3곳, 복지숍, 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신장애인들의 거주, 돌봄, 일자리까지 보장하는 것이다. 매드프라이드와 마찬가지로 베델의 집에서는 정신장애를 부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1990년부터 개최된 ‘환각 망상대회’가 대표적이다. 이 대회는 공동주거 모임에서 각자의 환각, 망상 체험을 나눈 것이 너무 재미있어 시작됐다고 한다. 베델의 집을 설립한 무카이야치 홋카이도의료대학 교수는 “자립이란 누구의 힘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사물에 도움을 받고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델의 집이 만들어진 지 30년, 우라가와초에는 정신병원 병상이 하나둘 사라져 지금은 하나도 없다.
- 특집
- [최명애의 북위66.5도] ①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2011. 01. 06 14:43)
- 2011. 01. 06 14:43 국제
- ㆍ“북위66.5도, 그곳엔 산타가 있었네” ㆍ좌충우돌 해외방랑기 ‘핀란드 로바니에미’ 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가기로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느 날 밤 북극곰이 전화기 너머로 “공항코드가 LED라는 도시가 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래”라고 한 기억은 난다. 내 힘으로 돈을 벌어 가는 첫 휴가였다. 우리는 남북극점만 빼고는 어디든 다 갈 기세였다. 충무로 카페 55-32 아저씨가 다녀왔다는 티베트 남초 호수를 갈까, 한여름만 길이 열린다는 인도 라다크를 갈까, 아니면 바탐 빈탄 조호바로 찍고, 인도네시아 휴양지를 갈까. 언제부터인가 목적지는 페테르부르크였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클로스 빌리지 전경. 마침 여름에만 인천~페테르부르크 직항이 다녔다. 국영기 아에로플로트에 이어 러시아 제 2의, 우리나라로 치면 ‘아시아나 항공’쯤 된다는 풀코보 항공이었다. 종로의 허름한 여행사에 가서 초청장을 신청하고, 러시아 비자도 받았다. ‘저를 초청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라며 울먹거리는 내게 여행사 직원은 여권과 돈을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 다음 관문은 거주지 등록이었다. 사흘 이상 러시아에 머무르려면 경찰서에 가서 자진신고해야 한단다. 이쯤 되니 ‘내가 정말이지, 레닌과 마야코프스키의 나라쯤 되니 일단 참아준다’는 심정이었다. 거주지 등록을 피해 보려고 옆 나라 핀란드에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핀란드 철도 패스 총판이라는 충정로의 허름한 여행사는 ‘사실 이 패스 처음 팔아본다’며 의심스럽게 생긴 바우처를 써줬다. 헬싱키 거리 가로수 자작나무 즐비 신문에서는 ‘풀코보 항공이 또 추락해 승객 수십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페테르부르크에서 살해된 사람이 100명이 넘고, 전세계 마피아 조직 가운데 250개가 이 도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실렸다. 나는 ‘백야’ ‘외투’ ‘코’에 이어 ‘세계를 뒤흔든 10일’과 ‘레닌의 추억’을 읽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러시아 민요집’을 사서 들었고, ‘빅트르 최’와 ‘인터내셔널가’도 다운받아 한 달째 들었다. 컴퓨터의 화면보호기도 ‘핀란드’로 바꿨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 빨갛고 뾰족한 지붕의 핀란드 집들이 화면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다시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비행기가 맞았다. 좌석 위에 달린 고속버스 에어컨처럼 생긴 에어컨은 아무리 돌려도 바람이 안 나왔다. 의자는 자꾸만 뒤로 밀리고, 테이블은 앞좌석에 달라붙어 내려오질 않다가 주먹으로 꽝 치자 떨어졌다 (그 이후로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파리 한 마리가 계속 앵앵거리는 가운데 꽃무늬 원피스 제복을 입은 스튜어디스들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3-3 좌석 배치의 이 조그만 비행기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다니. 출국 직전 공항에서 ‘사람의 앞일은 모른다’는 심정으로 여행자 보험 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배급하던 스튜어디스에게 소심하게 말했다. “저기, 베지테리언 식사 신청했….” 화가 난 것처럼 뺨이 붉은 스튜어디스가 식판을 꽝 내려놓았다. “노 베지테리언 밀!” 산타클로스 빌리지를 가로지르는 아틱 서클.11시간 뒤 도착한 페테르부르크 공항 출국장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뭐라고 적혀는 있었다. 하나는 ‘도착’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마도 ‘화장실’이겠지. 경유했던 이르쿠츠크 공항에도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영어는 없다. 다 똑같이 비스킷 장식 같은 러시아 문자다. 무사히 한국인 민박집에 도착하자 주인이 반겨 맞았다. 직업 화가라는 그는 대형 캔버스에 퍼팅하는 박세리를 그리고 있었다. 그날 밤 짐을 채 풀기도 전에 그는 열렬한 동포애로 우리를 데리고 네바강으로 갔다. 도개교가 열리고 군함과 화물선들이 씩씩하게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가 울려 퍼졌다는 넵스키 대로에는 맥도널드 로고와 레닌의 얼굴을 결합한 ‘맥레닌’ 티셔츠가 바람에 날렸다. 모자를 쓴 소년들이 이따금 다가와 꽃을 팔았다. 드 퀴스탱 후작은 1843년 여행기에서 페테르부르크를 ‘자작나무가 서 있는 늪의 저지대’로 그렸다는데, 자작나무는 핀란드에 더 많았다. 헬싱키는 가로수도 자작나무였다. 차창 밖으로 자작나무 숲과 호수가 이어졌다. 나흘 뒤 우리는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하마터면 못 탈 뻔했다. 먼저 페테르부르크 핀란드역에서 핀란드 가는 기차를 놓칠 뻔했다. 헷갈리게도, 러시아 역 이름은 주요 목적지다. 말하자면 서울역이 러시아 식으로는 부산역인 셈이다. 겨우 핀란드역에 도착했건만, 아무리 찾아도 헬싱키행 기차가 보이지 않았다. 역을 몇 바퀴 돌고 나서야 러시아 알파벳으로 ‘X’가 ‘H’ 발음이라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쳤다. 바이킹의 나라 ‘북극 물고기 학술회’ 헬싱키역에서는 다음 기차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러시아 기차가 꾸물거려서도, 핀란드 풍광에 넋을 잃어서도, 배가 고파서 밥을 먹다가도 아니었다. 슈퍼마켓에서 자일리톨 껌을 사다가 놓쳤다. 정말 핀란드 아이들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을 씹나보다. 포도맛, 딸기맛, 크랜베리, 블랙베리, 색색깔 자일리톨 껌이 진열대 가득이었다. 마구 집어담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기차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로바니에미 행 야간열차의 이름은 ‘산타클로스 익스프레스’. 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들이 열차를 끌고 가지는 않지만, 로바니에미 산타클로스가 있어서다. 아이들 무릎에 앉히고 사진 한 장씩 찍는 이 계약직 산타클로스는 2004년 한국에도 왔었다. 로바니에미 교외 산타클로스 빌리지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산타클로스가 근무 중인 집 한 채와 루돌프 오두막이라는 기념품 가게와 사진 찍으라고 만들어 놓은 조그만 오두막집 몇 채가 전부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타클로스와 사진이라도 찍어야겠건만, 우리 돈으로 한 사람당 2만원이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나라별로 모아놓은 기념품 가게의 조그만 우체국에서 여권을 꺼내 산타클로스 스탬프를 한 장 찍었다. 창 너머로 바닥에 앉아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닥에 흰 페인트 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틱 서클(Arctic Circle). 북극점에서 남쪽으로 23.5도, 북위 66.5도의 위선이다. 이튿날 로바니에미에서 가장 큰 박물관, 아르티쿰에 갔다. 늪지와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박물관에서 우리는 에스키모와 바이킹, 랩족과 카누, 고래, 창, 방패, 털 달린 옷들을 구경했다. 마침 ‘세계 북극 물고기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커피라도 얻어 마실까 로비로 다가가는데, 복도에 세워진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이킹의 룬 문자가 새겨진 ‘룬스톤’이었다. 바이킹들은 왜 목적도, 목표도 없는 먼 항해를 떠났을까. 언제고 우리에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북극곰과 나도 바이킹처럼 항해할 수 있을까. 가끔 우리는 하늘의 커튼처럼 드리워진 오로라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텐데. 문득 어제 산타클로스 빌리지에서 봤던 아틱 서클이 떠올랐다. 여행이, 시작됐다.
- 최명애의 북위66.5도
- [우정이야기]핀란드와 한국의 ‘산타우체국’(2010. 12. 22 18:20)
- 2010. 12. 22 18:20 문화/과학
-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신자들만의 경축일은 아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도, 천도교를 믿는 사람도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면서 평화를 기원할 수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누구나 외칠 수 있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사말이다. 남궁 민 우정사업본부장(왼쪽 두번째)이 산타우체국을 운영하는 서울 중앙우체국 앞에서 산타복장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회 안다니는데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는 어린이 아니면 젊은이다.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의 특별한 이벤트를 꿈꾸고, 동심의 어린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주실 선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환상을 깨뜨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산타의 진실에 대해 입을 꾹 다문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이때만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신단다. 그러니까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해.” 어린이가 커서 청소년이 되면 자연스레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조물주가 허락한 아름다운 거짓말이니까. 그래서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산타를 그리워하는 게 보통이다. 상상 속의 산타라 해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욕망이 인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만들어놓은 게 산타마을이다. 산타마을은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지구촌 북쪽 나라에 있다. 그 중 핀란드 헬싱키 북쪽 900㎞쯤 떨어진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이 제일 유명하다. 이곳이 산타마을이 된 것은 1927년 핀란드 방송국의 한 여성아나운서 방송멘트에서 비롯됐다. 이 아나운서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산타클로스는 로바니에미 마을에 있는 코르바툰 투리 산에 살아요”라고 했는데, 이 말에 강한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굳어졌다. 산타마을을 본격 조성한 것은 1985년이며, 지금은 5만8000여명이 이곳에 산다. 산타마을에는 산타도서관, 산타공원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곳은 우체국이다. 세계 어린이들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이곳에 쌓이기 때문이다. 이 우체국에선 각국 언어를 하는 사람을 채용해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해준다. 회신율이 67%쯤 된다고 한다. 한국의 어린이도 이곳에 편지를 보내면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이곳 주소는 ‘Santa Clause Main Post Office, Santa Village Fin-96930 Napapiiri’. 하지만 어려운 영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핀란드 산타할아버지께’라고 써도 우체국에서 알아서 보내준다. 이곳에서 일하는 산타요정 중에는 한국사람도 있다. 핀란드인과 결혼해 로바니에미의 한국 교민 1호가 된 김정선씨(40)가 주인공이다. 이곳 산타우체국은 2006년부터 한글 답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다 김씨 덕분이다. 김씨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04년 처음 이곳 우체국에서 일할 때는 한국에서 오는 편지가 100통 미만이었는데 요즘은 1만통 정도로 늘었다”며 “한국 편지의 특징은 어린이뿐 아니라 고등학생이 절반 가량 된다는 점으로 다른 나라에 전혀 없는 현상이다. 수능을 보고 난 고3학생들이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고 비는 내용이 많다”고 전했다. 입시에 목을 맨 우리나라 고교생의 현주소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바니에미는 위도 68.30도의 북쪽 끄트머리 지역이어서 6~7월에는 백야가 나타나지만 12~1월에는 낮의 길이가 하루 1시간 정도밖에 안되는 어둠의 도시다. 그 속에서 하루종일 형형색색 불을 밝히니 환상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2월이면 세계 각처에서 100여만명의 관광객이 가짜 산타를 보러 몰려든다.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에 가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이 땅에서 비슷한 체험을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산타우체국이다. 우정사업본부는 2005년부터 매년 12월이 되면 산타우체국 9곳을 지정한다. 서울중앙우체국을 비롯, 수원·부산·대전유성·서광주·동대구·익산·춘천·제주 우체국이다. 이들 우체국에선 건물 안팎을 산타 분위기가 나도록 장식하고 직원들은 산타 옷과 모자를 쓰고 근무한다. 우편물에는 산타스탬프를 찍고, 어린이 손님이 오면 산타사진을 찍어준다. 한국의 산타우체국에서도 꿈과 낭만을 맛볼 수 있다.
- 우정이야기
- [우정이야기]핀란드의 기상천외한 편지실험(2010. 08. 25 23:17)
- 2010. 08. 25 23:17 문화/과학
- 핀란드의 집배원이 편지를 배달하고 있는 모습.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우정당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줄어드는 우편물 때문에 고민이다. 손으로 쓴 편지가 이메일보다 정감이 있고, 종이로 된 광고물이 휴대폰 스팸문자보다 효과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전자통신의 신속함과 편리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밀리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의 우정당국에선 이메일을 종이편지로 바꿔 보내주는 서비스를 개발해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애쓴다. 송신인이 이메일로 메시지를 써 보내면 우체국이 중간에서 메시지 내용을 종이에 프린트한 다음 편지봉투에 넣어 수신인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내는 사람에겐 이메일이지만 받는 사람에겐 종이편지가 되어 보낼 때의 편리함과 받을 때의 정감을 모두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그동안에는 ‘우체국 전자우편’, 최근엔 ‘e그린우표’로 바꿔 부르는 바로 그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갈수록 이용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핀란드 우정이 최근 이와 정반대의 사업을 선보여 세계 우정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핀란드 우정 이텔라가 핀란드 북부 포르보시 안틸라 지역에서 지난 4월 12일부터 시작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서비스는 전자메일을 종이편지로 바꾸는 게 아니라 종이편지를 전자메일로 바꿔 고객에게 배달한다.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종이편지 개봉이 불가피하다. 이텔라는 헬싱키 근교에 특별 스캔시설을 설치했다. 여기서 고객들의 편지를 열어 편지내용을 스캔한 뒤 이를 PDF 파일로 만들어 넷포스티(NetPosti)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 넷포스티는 우리로 치면 포스트넷(PostNet)과 같은 우체국 사이트다. 넷포스티에 새 편지가 올라오면 수신인의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로 “고객님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자동 발송된다. 이걸 보고 수신인은 넷포스티에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면 PDF로 변환된 편지를 보는 방식이다. 종이편지는 그럼 어떻게 되나. 핀란드 우정은 이 편지봉투를 버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스캔이 끝난 편지를 다시 종이봉투에 넣어 고객의 우편함으로 배달한다. 그러니까 같은 내용의 편지가 한번은 전자형태로, 또 한번은 원래 모습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다만 전자메일은 매일 아침 9시 넷포스티에 올라가기 때문에 빨리 볼 수 있다는 점, 종이편지는 배달횟수가 일주일에 두번으로 줄고, 배달장소도 개별 가정이 아니라 지정된 동네 가게의 우편함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래도 전자메일로 먼저 보고 나중에 종이편지도 받아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게 이텔라의 설명이다. 도대체 왜 이런 실험을 할까. “고객의 필요와 기대에 부응하는 우편배달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게 핀란드 우정당국의 설명이다. 새로운 서비스에 고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래서 미래시대 어떤 서비스형태가 가장 적합할 것인지 예상해보겠다는 것이다. 토미 티카 이텔라 사업개발국장은 “우리는 이를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 모델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편지내용을 당국에서 통째로 스캔을 뜨다보니 이 디지털 정보가 언제 어떻게 유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의 KGB, 동독의 슈타시가 하던 일이 바로 국민의 서신 검열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친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하지만 우정당국에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편지 스캔시설물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으며, 스캔 작업자들은 편지를 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비밀유지조항에 일일이 사인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험에 응하겠다고 자청한 개인 126가구와 기업 20곳에만 시범 실시된다. 일단 올해 말까지 시행한 뒤 우편엽서 등으로 확대할 것인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시각에선 무모한 실험으로 보이지만 도전과 실험, 창의정신이 넘치는 핀란드에선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두고볼 일이다.
- 우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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